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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비담심론 제6권
7. 지품(智品)[1], 지(智)와 행
이미 현성이 성립되는 과정을 설명하였으니,
[지(智)]
지금부터 지(智)에 대하여 설명하겠다.
만약 지(智)의 본성 능히 요해(了解)하면
밝게 비추는 것은 모든 존재와
유(有)와 무유(無有)와 열반(涅槃)이니,
그 여러 모습을 지금 설명하겠다.
‘만약[若]’이라 한 것은 ‘만약 그 일이’라는 뜻이며,
‘지(智)’란 결정을 내린다는 내용이다.
‘요지[了]’라 한 것은 분별하는 것을 말하며,
‘밝게 비춤[明照]’이란 관찰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모든 존재[一切有]’라 한 것은 삼계(三界)의 끝까지를 다한다는 것을 말한 것으로 곧 고제(苦諦)와 집제를 말한 것이다.
‘유(有)’란 존재의 성품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유(有)ㆍ무유(無有)’라 한 것은 유(有)가 다한다는 뜻이다.
열반이라는 것은 모든 번뇌가 소멸된 경지를 말하는데 이것을 멸제(滅諦)라고 말한다.
그 여러 모습 가운데서 역시 도제(道諦)의 모습도 나타나게 되는데 모습[相]이란 자성과 자연의 성품[性]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 설명하겠다’고 한 것은 뚜렷이 자성을 나타내 보이겠다는 말이다.
【문】어떤 것이 지(智)인가?
【답】
세 가지 지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최상제일의 깨달음이니
법지(法智)와 비지(比智)와
세속의 등지(等智)를 말한다.
이 세 가지 지혜에 모든 지가 포함된다.
‘법지(法智)1)’란 지(智)이면서 욕계의 고ㆍ집ㆍ멸ㆍ도를 경계로 삼는 무루의 지이다. 이것은 처음으로 법의 모습을 받아들이게 되는 까닭에 법지라고 하는 것이다.
‘비지(比智)2)’란 지이면서 색계의 고ㆍ집ㆍ멸ㆍ도의 무루지(無漏智)이다.
만약 한 행(行)에 법지가 일어난다면, 즉 그 행에 따라 일어나면 이것이 비지이니, 종류를 비교하는 지혜인 까닭에 비지(比智)라고 하는 것이다.
‘등지(等智)3)’란 지이면서 모든 법을 경계로 삼는 유루(有漏)의 지이다.
등(等)이란 세속의 범주를 많이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 것이니, 즉 남자와 여자, 길고 짧은 차별 등이다. 그러므로 등지라 말한 것이다.
등(等)이란 중사(衆事)ㆍ취회(聚會)의 뜻이다.
고제와 집제와 멸제와 도제
두 지는 사제(四諦)로부터 생기는데
여기에 명칭을 주어 사지(四智)라고 하니
모니께서는 사제를 따라 말씀하셨다.
이 법지(法智)와 비지(比智)가 제(諦)에 따라 일어나는 것을 세존께서는 그 진리[諦]의 소리에 따라 설하였다.
경계가 고제일 경우 고지(苦智)4)라고 말씀하셨고
경계가 집제ㆍ멸제ㆍ도제일 경우 집지5)ㆍ멸지6)ㆍ도지7)라 말씀하신 것이다.
만약 지로써 다른 사람 마음을 비추어 본다면
이는 세 가지를 따라 그 가운데서 말하게 된다.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는 둘이나
경계는 네 문[四門]에 있다.
‘만약 지로 다른 사람 마음 비추어 보면 이는 세 가지를 따라 그 가운데서 말하게 된다’고 했는데, 세 가지 지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비추어 본다.
법지가 생기는 단계를 경계로 삼는 것을 법지라고 말하고,
비지(比智)가 생기는 단계를 경계로 삼는 것을 비지라고 말하며
유루의 마음과 마음의 법을 경계로 삼는 것을 등지(等智)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진지와 무생지는 둘이다’라고 했는데,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란 법지(法智)ㆍ비지(比智)의 두 지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 ‘지을 바를 다했다’라고 결정적으로 (생각을)일으킨다면 이것이 진지8)이고,
‘다시는 지을 일이 없다’고 결정적으로 (생각을)일으킨다면 이것이 무생지9)이다.
【문】어떤 제(諦)가 경계인가?
【답】경계는 네 문에 있으니, 즉 그것은 사제(四諦)를 연하는 것이다.
【문】만약 세존께서 세 가지 지를 말씀하셨다면 어째서 열 가지를 말하는가?
【답】
대치와 방편과
자성과 행(行)과 행의 연(緣)과
이미 지은 것과 인(因)의 장양(長養) 등
이것 때문에 열 가지 지혜를 말한다.
일곱 가지 인연 때문에 열 가지 지[十智]10)를 말하게 되니, 즉 대치ㆍ방편ㆍ자성(自性)ㆍ행(行)ㆍ행의 연11)ㆍ이미 지은 것ㆍ인의 장양이 그것이다.
‘대치’라고 했는데, 법지(法智)와 비지(比智)는 무루지이고 욕계의 대치를 법지라고 말하며, 색계와 무색계의 대치를 비지라고 말한다. 법지도 비록 색계와 무색계의 대치이기는 해도 이는 모든 경우, 모든 종류에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런 까닭에 색계ㆍ무색계의 대치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방편(方便)’이라 했는데, 타심지(他心智)는 또한 마음의 법을 아는 것이나, 단지 그는 방편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알고자 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자성(自性)’이란 등지(等智)를 말한 것으로, 속세의 범주를 많이 취하기 때문이니 이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행(行)’이란 고지와 집지를 말한 것으로, 이 두 지는 행은 불괴(不壞)이고 연은 괴(壞)이니 한 가지 연이기 때문이다. 이 두 지는 함께 한 연을 지니게 되는 까닭에 그 연에서 무상(無常)의 행이 일어나니 이것이 고지이다. 그러나 역시 무상지(無常智)라고도 설해야 하는데, 고라는 말은 지극히 싫어하는 마음을 불어나게 하는 까닭에 고지(苦智)라 표현한 것이다. 또한 함께 하는 것이 아닌 까닭이며 고의 행[苦行]은 오로지 유루연(有漏緣)인 것이다. 무상행(無常行)은 가령 그것이 유루라면 3제(諦)의 연이며 무루라면 유루의 연이다.
공(空)ㆍ무아행(無我行)은 가령 그것이 유루라면 세계의 모든 법의 연이고 무루라면 유루의 연이다. 그런 까닭에 고지와 고행은 마땅히 네 구로 분별되어야 하는 것이다.
혹은 고지로서 고행이 아닌 경우가 있으니, 즉 고지가 다른 행을 행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혹은 고행(苦行)으로서 고지(苦智)는 아닌 경우가 있으니, 즉 고지와 상응하는 법이 여기에 해당한다.
혹은 고지로서 또한 고행인 경우가 있으니, 즉 고지가 고행을 행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혹은 고지도 아니고 고행도 아닌 경우가 있으니, 즉 고지로서 다른 행을 행할 때의 여러 가지 상응하는 법이 여기에 해당한다.
행과 같이 과거의 행과 미래의 행도 역시 그와 같다.
고행과 같이 무상(無常)ㆍ공(空)ㆍ무아(無我)도 역시 그와 같으며,
고지(苦智)에 열두 가지의 행이 있는 것처럼 도지(道智)에 이르기까지도 역시 이와 같다.
‘행의 연[行緣]’이란 멸지(滅智)ㆍ도지(道智)를 말한 것이다. 그 지는 연도 불괴이고 행도 불괴이기 때문이다.
‘이미 지은 것[已作]’이란 진지(盡智)를 말한 것으로 지을 바를 이미 지었기 때문이다.
‘인(因)의 장양’이란 무생지(無生智)를 말한 것으로 일체의 무루지를 원인으로 하기 때문이며, 부동의 몸에 머물기 때문이다.
이미 인연이 있어 십지(十智)를 건립하는 과정을 설명하였으니,
[선(善) 등의 분별]
이제 선(善) 등의 분별을 설명하겠다.
아홉 가지 지(智)는 오직 선(善)하고
한 가지 지는 세 가지로 분별한다.
한 가지 지는 견(見)이고 두 가지 지는 비견(非見)이며
나머지는 두 종류가 있다.
‘아홉 가지 지는 오직 선하다’라고 한 것은 등지(等智)를 제외한 아홉 가지 지는 선한 지혜라고 말하니, 애착할 말한 과보가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지는 세 가지로 분별한다’라고 한 것은 등지(等智)는 경우에 따라 혹은 선(善) 혹은 악(惡) 혹은 무기(無記)임을 말한 것이다.
‘한 가지 지는 견(見)’이라 한 것은 타심지(他心智)는 견(見)임을 말하니 분별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지는 비견(非見)이다’라고 한 것은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가 견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이는 분별하는 성품을 지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두 종류가 있다’고 한 것은 나머지 일곱 가지의 지는 혹은 견에 속할 경우도 있고 혹 견이 아닐 경우도 있음을 말한 것이다.
만약 법지(法智)와 비지(比智), 고ㆍ집ㆍ멸ㆍ도의 지가 진지나 무생지에 속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견(見)이지만, 속한다면 비견인 것이다. 등지는 혹은 견일 수도 있고 혹 견이 아닐 수도 있다.
오견(五見)과 세속의 정견은 곧 견이니, 민첩하고 빠르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심과 애착과 노여움과 오만과 무명과 상응하는 혜(慧)는 견이 아니다. 왜냐 하면, 두 가지 번뇌가 마음을 덮고 있기 때문이다. 무명과 상응하는 혜는 비록 두 가지 번뇌가 마음을 덮고 있지는 않더라도 하나만으로도 능히 극도에까지 마음의 눈을 덮을 수 있기에 나머지 다른 번뇌가 마음을 덮지 않을 뿐이다. 왜냐 하면 무명이란 관찰방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은몰무기의 혜는 견이 아니다. 그것은 민첩하고 빠르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오식(五識)과 상응하는 혜도 견이 아니니, 생각하고 헤아리는 성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學)과 무학엔 여섯이 있으며
두 가지 지는 무학의 경지라 한다.
학도 무학도 아닌 것은 하나이니
하나의 지는 세 종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학과 무학엔 여섯이 있다’라고 한 것은 법지(法智)ㆍ비지(比智)와 고ㆍ집ㆍ멸ㆍ도지는 혹은 학의 경지일 수도 있고 혹은 무학의 경지일 수도 있음을 말한 것이다.
만약 학의 경지에 있는 사람이 이 지를 얻었을 경우 이는 학의 경지에 속하고,
만약 무학의 경지에 있는 사람이 얻었을 경우 이는 무학에 속한다.
‘두 가지 지는 무학의 경지라고 한다’라고 한 것은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는 무학의 경지에 속함을 말한 것이다. 번뇌를 여의어 머무는 지이기 때문이다.
‘학도 무학도 아닌 것은 하나’라고 한 것은 등지는 학의 경지의 지도 아니고 무학의 경지의 지도 아님을 말한 것이다. 유루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지는 세 종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라고 한 것은 타심지는 혹은 학의 경지에서도 일어나고, 혹은 무학의 경지에서도 일어나고, 혹은 학의 경지도 아니고 무학의 경지도 아닌 경지에서 일어나기도 함을 말한 것이다.
만약에 오직 학의 경지의 마음과 마음의 법을 경계로 삼을 경우 이는 학의 경지의 타심지이고,
만약 무학의 경지의 마음과 마음의 법을 경계로 삼을 경우 이는 무학의 경지의 타심지이며,
만약 오직 유루의 마음과 마음의 법만을 경계로 삼을 경우 이는 학의 경지도 아니고 무학의 경지도 아닌 타심지인 것이다.
[유루ㆍ무루]
여덟 가지 지의 성품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두 가지 지는 두 가지로 설명된다.
유루ㆍ무루는 하나이고
하나는 유루라 설명된다.
‘여덟 가지 지의 성품이 끊어지지 아니한다’라고 했는데, 타심지(他心智)와 등지(等智)를 제외한 나머지 여덟 가지 지는 끊어지지 않는 지이니, 티끌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두 가지 지는 두 가지로 설명된다’라고 했는데, 타심지의 경우 만약 유루일 경우에는 수도(修道)로써 끊어야 하고 만약 무루일 경우 끊어지지 않는 지혜이다.
등지의 경우는 만약 인법(忍法)으로 대치한다면 견도(見道)에서 끊어지고, 만약 지로 대치한다면 수도(修道)의 단계에서 끊어진다.
‘유루ㆍ무루는 하나’라고 한 것은, 타심지는 혹은 유루일 경우도 있고 혹은 무루일 경우도 있음을 말한 것이다.
즉 유루의 마음과 마음의 법을 경계로 삼을 경우 이것은 유루의 타심지이며,
또 만약 무루의 마음과 마음의 법을 경계로 삼을 경우 이것은 무루의 타심지이다.
‘하나는 유루라 설한다’라고 한 것은 등지는 오로지 유루의 지임을 말한 것이니, 번뇌가 머무는 곳이기 때문이다.
여덟 가지 끊어지지 않는 지를 무루의 지라 한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유위ㆍ무위의 연]
네 가지 지는 유위의 연이고
영구적이 연은 하나이니
다섯 가지 지가 두 경계임은
부처님[明智]의 말씀이다.
‘네 가지 지는 유위의 연이다’라고 한 것은 타심지와 고제ㆍ집제ㆍ도제의 지는 유위의 연임을 말한 것이니, 그것은 5음을 경계로 삼는 지이기 때문이다.
‘영구적인 연은 하나이다’라고 한 것은, 멸제(滅諦)의 지는 무위(無爲)의 연임을 말한 것이니, 그것은 열반을 경계로 삼기 때문이다.
‘다섯 가지 지는 두 경계’라고 한 것은 법지와 비지와 진지와 무생지가 3제(諦)를 그 경계로 삼는 것은 유위의 연이며 또 멸제를 그 경계로 삼는 것은 무위의 연임을 말한 것이다.
등지(等智)의 경우도 역시 삼제를 경계로 삼을 경우 유위의 연이고 수멸(數滅) 및 허공을 경계로 삼을 경우 무위의 연이다.
[법지ㆍ비지ㆍ타심지]
법지는 여섯 경지에서 일어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비지(比智)는 아홉 경지에 일어나며
타심지는 선정에 있는 지혜다.
‘법지는 여섯 경지에서 일어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라고 했는데 법지는 여섯 가지 경지에서 얻을 수 있으며 자성으로 얻는 지혜이다. 즉 4선(禪)과 미래선ㆍ중간선의 경지에서 얻게 된다. 무색계는 해당되지 않으니, 무색계는 욕계를 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지는 아홉 경지이다’라고 한 것은 비지는 아홉 가지 경지에서 얻을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즉 미래선과 중간선ㆍ4선과 삼무색이 그것이다.
‘타심지는 선정에 있다’라고 한 것은 근본선(根本禪)에 타심지가 존재함을 말한 것이니, 이 지는 사지(四支) 또는 오지(五支)의 선정에서 얻는 과보이기 때문이다.
[등지ㆍ그 밖의 다른 지]
등지는 열한 경지에 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그 밖의 다른 지는
품계마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등지는 열한 경지에 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라고 한 것은 등지는 욕계와 미래선ㆍ중간선ㆍ4선(禪)ㆍ사무색정(四無色定) 등 열한 경지에 존재함을 말한 것이다.
‘그 밖의 다른 지는 품계마다 앞에서 설한 바와 같다’라고 한 것은, 고ㆍ집ㆍ멸ㆍ도의 지와 진지ㆍ무생지 등이
만약 법지의 단계에서 생긴다면 법지의 경우와 같이 여섯 경지에 존재하게 되고
만약 비지의 단계에서 얻는다면 비지의 경우와 같이 아홉 경지에 존재하게 됨을 말한 것이다.
[염처]
만약 여러 염처(念處)로 설명한다면
한 가지 지는 마지막 염처임을 알아야 한다.
세 가지 염처를 한 가지 지(智)라고 말하고
나머지 지가 4념처와 관련됨은 부처님[明智]의 말씀이다.
‘만약 여러 염처로 설명한다면 한 가지 지는 마지막 염처임을 알아야 한다’라고 한 것은 멸지는 법념처에 해당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것은 무위의 연이기 때문이다.
‘세 가지 염처를 한 가지 지’라고 한 것은 타심지를 말한 것이다. 그 지는 다른 사람의 마음과 마음의 법과 인연하기 때문에 이것은 신념처를 제외한 세 가지 염처에 해당된다.
‘나머지 지가 4념처와 관련됨은 부처님의 말씀이다’라고 한 것은 나머지 여덟 가지 지는 4념처 모두에 해당된다는 것이니, 5음을 연하기 때문이다.
[지와 삼계]
한 가지 지는 욕계에 의지하고
두 세계에 의지한 한 가지 지가 있으며
두 가지 지는 삼계에 의지하고
나머지 여섯은 혹은 한 경계 혹은 삼계에 의지한다.
‘한 가지 지는 욕계에 의지한다’라고 한 것은 법지는 오직 욕계에만 의지함을 말한 것이다. 법지는 따라 생기는 것이며 혹은 욕계에서 4대(大)가 만드는 지혜이기 때문이다.
‘두 세계에 의지하는 한 가지 지(智)가 있다’라고 한 것은 타심지는 욕계와 색계에 의지하는 지임을 말한 것이니, 색에 의해서 생기는 지이기 때문이다.
‘두 가지 지는 삼계에 의지한다’라고 한 것은 비지(比智)와 등지(等智)는 삼계에 의지하고 있음을 말한 것이다.
‘나머지 여섯은 혹은 한 경계 혹은 삼계에 의지한다’라고 한 것은 고지(苦智) 등 여섯 가지 지는 만약 법지(法智)의 품계라면 욕계에 의지하고 비지(比智)의 품계라면 삼계에 의지한다는 것이다[의(依)라는 것은 몸의 다른 이름이다].
[이름]
이름은 열여섯 가지 행이고
일도 혹 열여섯 가지라고 말하는데
열여섯 가지 행을 벗어나
어둠을 제거하면 무루가 아니다.
‘이름은 열여섯 가지 행이다’라고 한 것은 무상(無常)12)ㆍ고(苦)13)ㆍ공(空)14)ㆍ비아(非我)15)ㆍ인(因)16)ㆍ집(集)17)ㆍ유(有)18)ㆍ연(緣)19)ㆍ멸(滅)20)ㆍ지(止)21)ㆍ묘(妙)22)ㆍ출(出)23)ㆍ도(道)24)ㆍ정(正)25)ㆍ적(迹)26)ㆍ승(乘)27) 등 열여섯 가지 행을 말한 것이다.
수많은 연을 지니고 있기에 무상(無常)이며
핍박받는 까닭에 괴롭고[苦],
아소견(我所見)을 대치하는 까닭에 공(空)이며
아견(我見)을 대치하는 까닭에 비아(非我)이다.
종자에 해당되는 법인 까닭에 인(因)이며
함께 일어나는 까닭에 집(集)이다.
상속되는 까닭에 유(有)이며,
상(相)이 성숙되는 까닭에 연(緣)이다.
모든 음(陰)이 다하게 되는 까닭에 멸(滅)이며
삼화(三火)28)가 멈추는 까닭에 지(止)이고
정신적 고통[內惱]에서 벗어나게 되는 까닭에 묘(妙)이며
외부의 재난[外惱]에서 벗어나게 되는 까닭에 출(出)이다.
향하여 나아가는 까닭에 도(道)이며
솜씨 있는 방편인 까닭에 정(正)이다.
등등하게 나아가는 까닭에 적(迹)이며
구경(究竟)에 이르게 되는 까닭에 승(乘)이다.
또한 구경(究竟)이 아닌 까닭에 무상(無常)이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까닭에 고(苦)이고
5음 가운데 인간이라 할 만한 것을 벗어난 까닭에 공(空)이며
자재롭지 못한 까닭에 비아(非我)이다.
찾아온 방편인 까닭에 인(因)이며
출생의 방편이 있는 까닭에 집(集)이다.
불어나고 자라나기 때문에 유(有)이며
더불어 의지하기 때문에 연(緣)이다.
상속하지 않고 상속하는 세계를 벗어나기 때문에 멸(滅)이며
세 가지 유위의 모습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지(止)이다.
선하고 영구하기 때문에 묘(妙)이며
제일의 휴식인 까닭에 이(離)이다.
삿된 길을 대치하기 때문에 도(道)이며
부정(不正)을 대치하기 때문에 정(正)이다.
열반의 성에 오르기 때문에 적(迹)이며
일체의 유(有)를 대치하기 때문에 승(乘)이다.
[일의 행의 종류]
【문】일에는 몇 가지 행이 있는가?
【답】일도 혹 열여섯 가지라고 말하며, 이것을 열여섯 가지 행이라 부른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일에 일곱 가지가 있다. 즉 고행에는 명칭이 네 가지 있으며 이에 따른 일도 네 가지 있으니, 전도(顚倒)를 대치하기 때문이다.
집행에는 명칭은 네 가지 있으나 이에 관련된 일은 한 가지 뿐이다.
멸제와 도제의 경우도 역시 이와 같다”고 한다.
이와 같이 말한다면 이름도 열여섯 가지, 일도 열여섯 가지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문】이 열여섯 가지 행을 벗어나 다시 무루의 지혜가 있는가?
【답】열여섯 가지 행을 벗어나 어둠을 제거하면 무루가 아니다. 즉 열여섯 가지 행을 떠나서는 무루의 지혜는 존재하지 않는다.
경전에 이르기를
“나의 생(生)은 이미 다했다”라고 하였는데,
이 지혜도 역시 고(苦)등의 행이 생겨남이 다한 것이다.
가령 “내가 나무를 쪼갠다고 하는데 누가 쪼개는 것인가?
이른바 도끼가 쪼개는 것이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 지혜와 행의 관계도 역시 이와 같다.
[해의 행의 종류]
【문】이 모든 혜에는 몇 가지 행이 있는가?
【답】
두 지는 열여섯 가지 행이 있으니
법지와 비지가 그것이다.
이와 같이 행하고 혹 아닌 것이 있으니
그것은 등지(等智)를 말한다.
‘두 지는 열여섯 가지 행이 있으니, 법지와 비지이다’라고 한 것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열여섯 가지 행이 있어 모든 법지와 비지가 전개되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이 행하고 혹 아닌 경우 있으니, 그것은 등지(等智)를 말한다’라고 한 것은 등지는 열여섯 가지 행을 행하고 또한 열여섯 가지의 행이 아닐 경우도 있음을 말한 것이다. 열여섯 가지의 행이라고 했는데, 난법(煖法) 등의 선근이 곧 열여섯 가지의 행에 속하며 나머지 정해지지 않은 듣는 지혜ㆍ생각하는 지혜를 말한다.
‘아닌 것[非]’이란 병든 것 같고 등창이 난 듯한 행으로, 이것을 이름하여 아닌 것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문】만약 등지이면서 열여섯 가지 행이 있다면 왜 고지(苦智) 내지는 도지(道智)라고 표현하지 않는가?
【답】경계를 허물기 때문이다. 무루의 행은 경계를 허물지 않나니, 따로 사제(四諦)를 연하기 때문이다. 유루의 행은 경계를 허무나니, 유루의 무상행(無常行)은 3제(諦)를 연하기 때문이다.
또 공(空)ㆍ비아행(非我行)은 일체법을 연한다.
[네 가지 지혜와 행]
네 가지 지에는 네 가지 행이 있으니
결정해서 행한다고 일컬어진다.
만약 지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안다면
이와 같이 행하거나 혹은 아닐 수도 있다.
‘네 가지 지에는 네 가지 행이 있으니 결정해서 행한다고 일컬어진다’라고 한 것은 고지에 네가지 행이 있으며 나아가 도제(道諦)에 이르기까지도 역시 이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만약 지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안다면 이와 같이 행하거나 혹 아닐 수도 있다’라고 한 것은 가령 무루의 타심지일 경우 이는 도제의 네 가지 행으로 유루의 지는 아니니, 독자적인 모습을 경계로 하기 때문임을 말한 것이다.
[진지와 무생지]
진지와 무생지는
공(空)과 무아의 행을 떠나서
열 네 가지 행이 있다고 말하니
평등한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진지와 무생지는 공(空)과 무아의 행을 떠나서 열네 가지 행이 있다고 말하나니’라고 한 것은 진지와 무생지에는 공ㆍ무아행을 제외한 나머지 열네 가지의 행만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문】왜 공(空)ㆍ무아(無我)의 행은 해당되지 않는가?
【답】평등한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진지와 무생지는 제일의(第一義)이면서 평등한 것에 가까우며 공ㆍ무아의 행은 제일의이면서 제일(第一)에 가깝다.
[행을 행하는 이]
【문】그 모든 행은 누가 능히 행할 수 있는가?
또한 다른 이에 의해 행하게 되는 것인가?
또는 어떠한 성품을 지니고 있는가?
【답】
지혜의 행은 능행(能行)이기도 하고
또한 그것은 남의 소행(所行)이기도 하다.
나머지 행은 두 종류에 의지하며
의지 없는 행은 남의 소행이다.
‘지혜의 행은 능행이기도 하고 또한 그것은 다른 소행이기도 하다’라고 한 것은 지혜는 그 자체의 본질이 곧 행이다. 그러므로 능히 그 이염(爾炎)29) 가운데서 무상(無常) 등의 행을 행할 수 있고 그것은 또한 무상 등의 행이 행해지는 바이기도 하다.
‘나머지 행은 두 종류에 의지한다’라고 한 것은 혜를 제외한 다른 상응하는 법등은 능행이니, 연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남에 의해 행해지기도 하니, 다른 소연(所緣) 때문이다. 행이 아니니, 지혜의 성품을 지닌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의지 없는 행은 남의 소행에 의한다’라고 한 것은,
만약 그것이 지혜와 상응하지 않는 법일 경우, 즉 색과 무위(無爲)와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행일 경우 이는 남의 소행이니, 혜의 성품을 지닌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능행이 아니니, 연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행이 성립되는 내용을 설명하였으니,
[행으로 얻는 소득(所得)]
지금부터 이 행으로 얻는 소득(所得)에 대하여 설명하겠다.
최초 무루의 마음은
혹 한 가지 지를 성취하기도 하고
두 번째는 혹 세 가지를 성취하며
네 시기에 각기 한 가지를 증장시킨다.
‘최초 무루의 마음은 혹 한 가지 지를 성취한다’라고 한 것은 최초 고법인(苦法忍)과 상응하는 마음이
만약 애욕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을 경우 하나의 등지(等智)를 성취하게 되고
만약 애욕을 벗어났을 경우에는 타심지(他心智)도 성취하게 된다.
‘두 번째는 혹 세 가지를 성취한다’라고 한 것은 두 번째로 고법지(苦法智)와 상응하는 마음이
만약 아직 애욕을 벗어나지 못하였을 경우 고지(苦智)ㆍ법지(法智)ㆍ등지(等智) 등 세 가지 지를 성취하게 되고
만약 애욕을 벗어났을 경우에는 타심지(他心智)도 성취하게 된다.
‘네 시기에 각기 한 가지를 증장시킨다’라고 한 것은 더 높은 경지에서는 네 가지 시기에 걸쳐 시기마다 하나씩을 증장시킴을 말한 것이다.
고비지(苦比智)는 만약 욕계를 벗어나지 아니하였을 경우 네 가지 지이니 법지ㆍ고지ㆍ비지(比智)ㆍ등지가 그것이다.
만약 욕계를 벗어났을 경우에는 타심지를 얻는다.
집법지에서는 집지(集智)가 증장하고 멸법지에서는 멸지(滅智)가 증장하고 도법지에서는 도지(道智)가 증장한다. 인(忍) 가운데서는 지를 얻지 못하니, 지의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집제와 멸제와 도제의 비지(比智)에서는 지를 증가시키지 않으니, 고비지로써 이름을 얻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성취되는 지의 설명을 마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