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갑자기 붕 뜨더니 선실 벽으로 내동댕이쳐진다.
캄캄한 실내, 몸을 추스르려 하는데 이번에는 반대편 벽으로 처박히더니 이내 옆 사람들의 몸과 뒤엉켜 버린다. 중심을 잡고자 버티어 보지만 불가항력이다. 마치 세탁기 속 세탁물이 된 기분이다. 실로 가관이다. 웃음이 난다. 파도가 엄청 센 모양이다.
목적지까지 가는 4 시간 동안 20 명의 조사(釣士)들은 좁은 선실 두 개의 방에 흩어져서 눈을 붙이고 있는 중이었다. 기상 예보에 따르면 0.5m-1m 정도의 물결이라 했는데 대충 짐작해 보니 波高가3,4m 이상 되는 것 같다. 바다 날씨는 여자의 마음 같아서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구나.
배 낚시,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라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이 엄동 설한에 누가 시켜서 이 짓 하고 있었다면 아마 난리가 났을 터.
나는 인천 연안 부두에서 쾌속선을 타고 서해 먼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가고 있었다.
물 때를 맞추어 인터넷으로 출조(出釣) 신청을 한다.
노련한 선장을 만나야 하니 특정 낚싯배는 꾼들의 경쟁 또한 치열하다.
나는 가까운 바다에서 잔챙이를 낚는 큰 배도 자주 이용하지만 겨울에는 거의 먼 바다 침선(沈船)낚시를 즐긴다.
‘큰 물에서 큰 고기가 논다’고 깊은 바다에는 큰 고기를 올릴 수 있으니 손맛도 더 좋다.
그래 봤자 서해는 동해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멀리 나가도 수심이 70m 남짓이다.
주로 잡는 어종은 우럭과 대구다.
미끼로는 살아있는 미꾸라지와 생물 오징어 썬 것, 냉동 쭈꾸미, 인조 미끼, 오징어 내장 등이다.
우럭은 사시 사철 나오지만 대구는 추운 겨울이 되어야 얼굴을 보이고 씨알도 좋으며 맛 또한 좋다.
03시30분까지 인천 연안 부두 사무실로 나오라 하지만 부지런한 조사들은 더 일찍 나와서 수속을 마치고 낚싯배의 명당을 차지한다. 출조(出釣) 전날 초저녁에 미리 잠을 자두는 게 좋지만 나는 그게 잘 안 된다.
나이만 먹었지 초등학교 시절 소풍 가기 전날이나 수학 여행 떠나기 전날로 생각하면 된다.
내일은 어떤 녀석이 나를 기쁘게 할까, 5짜 우럭이 얼굴을 보여줄까? 7짜 대구가 올라올까?
운 좋게 대왕 문어라도 하나 건질 수 있으려나.
밤 11시 30분, 일찌감치 집을 나선다. 나는 바다로 소풍을 간다.
영등포 단골 식당에 들러서 기름진 음식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연안 부두 근방에서 과일과 간식을 준비하고 02시 경에 사무실에 도착을 했지만 벌써 몇 사람들이 나와 있다. 이 사람들은 잠도 자질 않는 모양이다.
04시, 해경의 허가를 받은 22인승 침선 낚싯배는 인천 연안 부두를 출발한다.
잠잠하게 운항하던 배가 내가 잠이 들만 할 때 파도로 인하여 한 바탕 소동을 벌이고 나니 바다는 거짓말 같이 조용해졌다.
선실을 나왔다.
망망 대해 잔잔한 물결 위에 붉은 태양이 떠 오른다.
장관이다. 수십 번을 보아 왔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 일출 광경은 볼 때마다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세상 어디에서 이런 황홀한 광경을 볼 수 있겠는가.
지구에서 태양까지 1억 5천 만 Km,
걸어서 4,000년,
새 마을 호로 117년,
로케트로 250일,
빛의 속도로 8분 19초.
침선 낚시라 함은 어민들의 수익을 위해 먼 바다에 인위적으로 폐선 (廢船)을 침몰 시켜서 고기가 쉴 수 있는 집을 만들어 주고, 사람들로 하여금 고기를 잡게 하는 낚시 방법이다.
바다라고 해서, 물이 있다고 해서 그냥 고기가 있는 게 아니다.
지상에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생각해 보면 된다. 숲이 있거나 쉼터가 있어야 한다.
가까운 연안에는 인공 어초를 만들어서 물고기 아파트를 지어 주거나, 바다 속 산이나 바위 언덕 같은 곳, 여밭이 물고기가 서식하기 좋은 곳이 낚시 포인트다. 우럭이 주로 잡히고, 육질이 풍부한 돌삼치, 광어, 장대, 볼락 등이 잡힌다.
노련한 선장은 낚시 포인트를 많이 확보하고 어선 탐지기로 물고기를 확인한 후 사람들로 하여금 낚시를 하게 한다.
선장의 신호에 따라 낚싯대를 드리우니 오늘따라 대박.
쉴 새도 없이 고기들이 올라 온다. 4짜 우럭 쌍걸이도 두 번이나 나온다.
정신 차리고 보니 양쪽 옆의 조사들은 꽝을 치고 있다.
혼자만 기분 낸 것 같아서 슬며시 미안한 마음이 든다.
배가 다음 포인트로 이동하는 틈을 타서 사무장을 불러 우럭 두 마리로 회를 뜨게 했다.
거저 얻었으니 거저 나누는 거, 이런 기쁨도 있다.
기분만 내는 거지 사실 금방 잡은 고기 맛은 별로다.
TV 방송에서 배 위에서 회를 먹으며 맛 있다 말하는 것 다 거짓말이다.
생선은 잡자 마자 바로 피를 빼고, 쿨러에서 최소한 몇 시간이라도 저온 숙성을 시켜야 꼬들 꼬들 제맛이 난다.
운칠기삼(運七氣三)이라고 했다.
어느 날은 내 양쪽 두 사람은 정신 없이 고기를 건지고 있는데 나는 밑걸림을 하거나 허탕만 치고 있었다. 미끼에 문제가 있나? 혹시 내가 지난 주에 남에게 잘못한 게 있나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지만 그게 아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낚시다. 전반전에 거저 그런 것 몇 마리 건지다가 막바지에 대물들을 건져서 역전을 일으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오늘 조황이 나쁘다고 안타까워하거나 아쉬워할 이유는 없다. 우리에게는 내일이라는 희망이 있으니까,
70년을 살면서, 수십 년 낚시를 하면서 낚시와 인생의 공통점을 생각해 본다.
낚시는 기다리는 것, 인생 또한 기다리는 것.
낚시는 짜릿한 손맛을 기다리고, 인생은 자식이 철 들기를 기다리고, 내가 바라는 바가 현실이 되기를 기다리는 것.
돌아 오는 길에 배가 고장이 났다. 잘 달리던 배가 갑자기 멈춰버린 것이다.
망망 대해, 순간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선장과 사무장은 무표정한 얼굴로 재빨리 움직인다. 배 바닥을 여니 맑은 물 속에 스크류가 보이고 폐그물이 엉겨 있었다. 둘은 긴 창과 긴 갈고리, 톱으로 그물을 잘라서 분해시켰다. 처음 당하는 나로서는 상당히 당황했지만 몇 차례 같은 일을 당하고 보니까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그러나 FRP(Fiberglass Reinforced Plastic) 22인승 쾌속선은 연안 대형 낚싯배에 비해서 사고 위험이 큰 편이다. 기상 예보와 달리 변덕스러운 바다 날씨, 연약한 배 프레임, 파도에 배가 뒤집어지기로 한다면 험한 파도 속에서 살아 남는다 하더라도 구조선이나 헬기가 도착하기 전에 동사(凍死)할 위험이 크다.
언젠가 한 번은 정신 없이 고기를 건져 올리고 있는데 선장이 기상 악화로 철수하자고 한다. 돌아보니 먹구름이 몰려 오고 있었고 파도가 거칠어지고 있었다. 그 날 따라 쉴 새 없이 고기가 올라 왔다. 너무 아쉬워서 한 번만 더 하자고 사인을 보냈더니 다행이 선장이 허락해 줘서 막판에 4짜 우럭 쌍걸이를 한 적이 있었다. 차마 한 차례 더 하자고 할 수는 없었다. 던지기만 하면 씨알 좋은 한 마리는 더 올릴 자신이 있었는데......
퇴근길 올림픽 도로는 많이도 막힌다.
힘들게 집에 도착하니 9시 뉴스가 진행 중이다.
처음 한 두 번은 반기던 아내가 시도 때도 없이 생선을 잡아 오니 싫은 기색이 역력하다.
‘여보, 고생 그만 하고 우리 그 돈으로 횟집에나 자주 갑시다’
졸음이 쏟아지고 피곤하지만 혹여라도 다음에 낚시 가지 말라고 할까봐 상당량의 생선은 곧장 다듬어서 냉장 숙성을 시키고 나머지는 회덮밥용으로 냉동 보관을 한다. 긴 시간 고생을 하고 집에 와서 하는 생선 손질이 너무 힘들어서 나중에는 돌아오는 배 안에서 사무장에게 횟감 손질을 부탁한다. 한결 부담이 적었다.
잠실 운동장 앞에서 밤 11시에 출발하는 낚시 버스가 있다.
서울에서 먼 곳이 500여 km 정도이니 4 시간 남짓이면 우리 나라 어디든 갈 수 있다.
25인 승 전국구 무박 2일의 낚시 버스는 마치 나를 위한 맞춤 낚시 같았다.
물고기의 흐름을 따라 삼척 앞바다 부시리 낚시, 거문도, 대마도,백도, 홍도,속초,신진도,위도, 목포 갈치 낚시......
비용이 다소 비싼 게 흠이지만 그 만큼 편리하게 낚시를 즐길 수 있다.
다른 취미에 비해서 중독성이 유난히 강한 바다 낚시, 정년 퇴직을 앞두고 퇴직 후 20년을 계산, 낚시 바늘 공장에다 26호 바늘 1만 개를 주문한 적이 있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 수고했으니 이제 남은 인생, 나 하고 싶은 것 몇 가지는 내 맘대로 하겠다는 굳은 생각으로,
퇴직한지 십수 년이 지난 지금 대충 세어 보니 바늘 1천 개도 소화하지 못했다.
바다 낚시, 비용도 만만찮지만 이제는 체력 소모가 많아서 출조가 다소 부담이 된다.
세상사 다 때가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