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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 제22차 (41-2코스) 상주은모래비치~ (42코스)남해바래길탐방안내센터~
가천다랭이마을까지 걷기(1-1)
○ 일시 : 2025. 3. 23.(일) 토요무박
○ 구간(두루누비 자료)
- 41-2코스 : 상주은모래비치~대량~두모~남해바라길탐방안내센터(약 14.0km)
- 42코스 : 남해바라길탐방안내센터 ~미ㄱ구마을~두곡월포해변~홍현~가천다랭이마을(약 15.6km)
○ 실거리 : 오룩스맵 기록 30.08km
○ 행정구역 :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이동면, 남면
○ 인원 : 송주봉님, 유주열님, 사르리(신사산악회 43명)
○ 소요시간 : 7시간 37분(05시 01분~12시 39분)
○ 난이도 : ★
○ 감상평 : ★★★
○ 추천시기 : 봄, 여름
○ 날씨 : 맑음 6.2 ℃ ~11.4℃(경상남도 남해군날씨 기준 기상청)
○ 교통편 : 신사산악회 버스(죽전에서 탑승)
○ 개념도
▶ 41-2코스
▶ 42코스
○ 오룩스맵 기록
▶ 걸은 통계
▶ 걸은 고도
▶ 걸은 궤적
○ 길위의 풍경 및 이야기
한 번 발생하면 원상회복이 쉽게 돼지 않는 것이 산불이다. 3월 22일에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은 의성군 안평면에서 발화를 해서 안동시, 청송군, 영양군, 영덕군까지 그리고 산청에서 발화한 산불을 하동군까지 6개의 전통사찰을 전소시키고 75명이라는 인명피해를 입히면서 산야를 숯더미로 만들어 버려 슬픔은 물론 화가 나는 것은 불이 나지 않아도 될 사항인데도 불구하고 작은 실수로 큰피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국이 입산통제 지역과 기간이 확대되어 남파랑길 40구간도 통제되어 21차로 실시 예정이 이었던 지족리하나로마트에서 상주은모래비치 구간을 건너 뛰어서 22차로 구간인 상주은모래비치에서 가천다랭이마을까지 실시하게 되었다.
오늘 걸을 41-2코스는 은빛 고운 모래와 해송으로 유명해 여름이며 100만명이 찾는 다는 상주은모래비치를 시작으로 대량, 소량, 정촌, 손촌 마을을 지나고 해안 절벽길을 따라가면 벽련마을을 지나면서 19, 77번 국도 해안도로를 따라 진행하면서 소막골, 원천, 애골마을을 지나서 남해바래길탐방안내센터에서 끝이 나고 42코스가 시작하면서 해송지역이 있는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화계마을에서 길은 해안도로를 버리고 용소공동묘지 앞 임도로 가기위한 가파른 길로 우회를 유도하고 용소마을로 뒤로 길게 내려오면서 두곡해수욕장에서 월포해수욕장까지 이어질 것이고 계속 해안도로를 따라 진행을 하다보면 가천다랭이마을에 도착하면서 끝이 날 것이다.
오늘 걷는 길을 크게 보면 앵강만을 대량마을에서 시작해서 한바퀴 돌아 가천다랭이마을까지 이어지는 코스이다. 아마 오늘 핵심 지역은 미국마을과 가천다랭이마을이 중심이 될 것이다.
[상주은모래비치 앞 상점가 : 04시 53분]
남해군에서 최남단까지 내려오니 도착시간이 삼십 여분이 늦게 날머리에 도착을 한다. 인적없는 새벽의 은모래비치 앞 점포는 조용하기만 하다. 아마도 여름이면 피서객들로 이시간에도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조용한 상주은모래비치에 설치한 조형물이 어서오라고 반기고 있다.
아직 해수욕장을 찾기에는 이른 계절이지만 마치 여름에 피서인파로 가득차 있는 기분이 든다.
어둠속에서 보아도 멋진 소나무들인데 낮에 보면 더욱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해송 아래에 누워서 해풍을 맞으면 더위도 잊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여름에 다시 한 번 오고싶은 곳이다.
모래사장에 세워놓은 약속을 상징하는 새끼 손가락 조형물인데 다양한 약속들이 조형물에 내포되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상주은모래비치에서 벗어나는 다리를 건너서 진행을 한다.
어제가 보름 이었지만 가득찬 보름달빛이 멀리서 찾아온 나그네들의 발걸음을 비추워주고 있다.
도로가 끝나는 지점을 지나 해안 산길을 따라 걷는다. 좌측은 낭떠러지 해안길이 이어진다.
바다 멀리에 정박해 있는 배들이 불을 환하게 켜고 있는데 바다 바람이 장난이 아니라 배들이 흔들리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해안 산길을 벗어나면 길은 콘크리트 임도를 따라 걷도록 하고 있다.
산아래 포근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대량마을은 바다를 품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에는 인기척이 없지만 마치 누군가가 나와서 반겨줄 것 같은 마을로 보인다.
밭에는 추위를 이겨내고 자란 마늘이 풍년를 이루고 있다.
대량마을회관 옥상의 스피커에서 금방이라도 안내방송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여느 때와는 달리 방파제에 부딪히는 파도로 멍이들고 있는 것 같다.
멀리 앵강만 건너편으로 우뚝솟은 기암괴석의 설흘산의 산세가 남해로 내려오는 길목 끝에 가천다랭이 마을이 조성되어 있는데 거기까지가 오늘 가야할 길이다.
걸어온 길 반대편 길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대량마을 표지석이다. 여기를 지나면 소량마을로 가는 길이 시작된다.
아직 벚꽃이 떨어지지 않은 벚나무는 벌써 내년을 준비하고 있다.
마을은 마을마다 특징을 가지고 있다. 소량마을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 생각을 해본다.
경기도 임진강 인근에서 살던 사람들이 이주 정착해서 이루워진 마을이라고 한다.
소량마을을 지나서 길은 계속해서 해안가를 따라 걷게 된다. 이 길은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마실길 같은 역할을 햇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멀리 두모마을이 보이기 시작을 한다.
두모마을의 특징은
옛날 도사(道士)가 길을 지나다가 두모(豆毛)라고 부르면 부귀할 것이라 하였다 하여 두모라고 불렸으며, 산자가 수려하고 마을의 형태가 콩의 생태모양으로 생겼다하여 두모라 이름하였다. 어느 마을에도 찾아볼 수 없는 4계촌(村) 마을로 마을회관이 중심이 되어 동쪽은 박촌(朴村), 서쪽은 손촌(孫村), 음지편 송림 동쪽은 김촌(金村), 남쪽은 정촌(鄭村)으로 씨족간 집단마을로 형성되어 반농반어민이 대대로 순박하고 소박하게 살고 있는 마을이다.
[출처 : 남해군청]
두모마을 캠핑장입구를 지나간다. 캠핑장에는 몇 팀이 밤새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 소리를 들으면 잠을 자고 있는 것 같다.
마을 뒷편으로 금산이 정기를 받쳐주고 있다.
길은 마을을 지나서는 산길을 따라 진행을 한다. 이 길도 옛날부터 사람들이 다녔을 것이다. 좌측으로 보이는 노도 섬이 있는데 서포 김만중이 유배되어 생을 마감한 곳이다. 김만중이 노도에서 이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육지에 대한 생각이 더욱 간절하지 않앗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측으로 벽련마을이 보인다. 그리고 좌측으로 앵강만이 시작되고 있다. 그시대 이곳 사람들도 노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김만중이 언제 육지로 나오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붉은 동백꽃이 시맨트바닥에 떨어져 서서히 말라 가듯이 김만중도 노도에서 서서히 생이 마감되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마치 비운의 길을 걷는 것처럼 차가운 시맨트바닥이 더욱 딱딱하게 느껴지는 것은 서포 김만중의 삶이 노도의 작은섬에 갇혀 있는 울타리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을은 댕댕이도 짖지도 않고 조용하다.
유채꽃이 마을의 향기를 대신하고 있듯이 흔들림 없이 노란색으로 덮고 있다.
좁은 골목 사이로 느티나무가 자리를 잡고 있다.
벽련마을 공동창고 앞을 지나간다.
아담하고 아주 작은 벽련교회가 멋스럽게 느껴진다.
돌담밭이 세월의 시간을 보여주고 있다.
벽련마을을 벗어나면 설치한지 오래 돼지 않은 데크길이 기다리고 있다.
도로 가장자리가 좁아 사고 위험이 높은 지역이라 별도로 데크길을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원천항에는 요트가 정박해 있다.
대규모 카라반 설치 지역이다. 아직 잠을 자고 있는지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유채꽃이 잠시 쉬었다 가라고 말을 한다. 쉬고 가지 않으면 유채꽃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밤새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하여 바다속이 뒤집어져 바다물이 혼탁하게 보인다.
좌해우송 좌측은 바다 우측은 해송이 방풍림으로 바람으로부터 마을을 지키고 있다.
유채밭에서 잠시 꽃놀이를 즐겨본다.
송주봉형님도 유채밭으로 글어 들린다.
해풍을 이겨내면서 자라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명품 해송들이 자리를 하고 있다.
41코스가 끝나는 남해바래길탐방안내센터가 시야로 들어온다.
바람에 떠밀려 걸어온 길은 어느새 41코스가 끝나는 지점에 도착을 한다. 이어지는 42코스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면서 앵강만을 해안을 따라 이어 갈 것이다.
일요일이라 탐방센터는 문이 굳게 닫혀 있다.
돌탑의 의미가 무었인지 모르겠다. 큰돌을 상단에 올려 놓은 이유가 있을 것인데 알 수가 없다.
도로는 방파제를 바라보고 방파제는 목단도를 가로막고 있다. 가운데 보이는 섬이 목단도이다.
화계마을 중심에서 마을을 수호하고 있는 보호수 느티나무 앞을 지나간다.
수령이 590년이 되었다고 한다.
느티나무에 대한 또다른 안내판이다. 하나로 통합하여 설치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화계마을회관 앞을 지나간다.
신태양 이용원 썬팅에서 어릴적 이발소의 모습이 떠오르게 하고 있다.
화계마을을 벗어나서 1024번 지방도로를 따라 잠시 걷는다.
길은 여기서 우측으로 돌려서 다시 1024번 지방도로 내려오게 한다.
봉전소류지 앞 느티나무가 여린 녹음을 이루기 시작하고 있다.
층층이 쌓아 올려 놓은 밭뚝 돌들이 각기 다른 모습 때문에 조형물처럼 보인다.
산에는 아직 꽃들이 지지 않은 산벚나무들이 손짓을 하고 있다.
좌우측 밭뚝들이 정겹게 느껴진다. 밭은 호구산의 정기를 받아 농작물에 공급하고 있다.
산벚나무 꽃이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면 떨어지지 않고 있다.
가파른 임도길은 발걸음을 더디게 만들고 있다.
호구산은 호랑이가 누워 있는 것과 닮았다는 내용과 원숭이를 닮아 우리말 납(잔나비)을 넣어 납산이라고 불렀다는 냉요들이 적혀 있다.
호구산 정기를 받아 자란 마늘들이 싱싱하게 고개를 들고 호구산을 바라보고 있다.
용소공동묘지 도로를 건설 준공비와 추가 찬조금 납부자 명단 비석이다.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비스듬이 서잇는 석등과 비석이 보인다.
도로를 따라 걸으면 바다에서 불어오는 맑은 공기가 머물다가고 있으며 측백나무의 피톤치드를 사방으로 날리고 있다.
앵강만의 파도가 심하게 치는 것을 멀리서 바라다 보니 아주 잔잔해 보이는 모습이다.
수로가 밭을 가로지르면서 물을 공급해 주고 있다.
미국마을은 인구유입의 일환이자 미국 교포의 정착을 목적으로 조성 하였다고 한다.
미국마을 후방에서 바라다 보니 미국마을이라 모습이 느껴지지 않은 일반적인 마을의 모습이다.
길은 두곡월포해수욕장으로 가라고 가리키고 있다.
대나무꽃을 처음 본다. 일행 중 한 분이 대나무 꽃이나라고 알려줘서 알게 되었다.
| 대나무 꽃을 거의 안 피우는 식물이기도 하다. 어쩌다가 한 번씩 대나무에서 대꽃이 피는데 일품이다. 꽃이 피면 주변의 모든 대나무가 꽃을 동시에 피우며 피우고 얼마 되지 못해 집단으로 죽는다며 대나무를 기르는 농가에서는 이 현상을 개화병이라는 병으로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대나무는 주기적으로 꽃을 피우지 않고 환경에 따라 매우 드물게 피운다. 꽃을 피운다고 해서 대나무가 죽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꽃을 피우는 간격이 너무 길어서 그렇게 보일 뿐이다. 대나무는 땅속줄기로 자라는 식물이기 때문에 땅 위에서 보면 여러 그루지만 수많은 대나무숲이 실제로는 단지 몇몇 개체인 때가 많아서다. 잡초를 뽑을 때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한 뿌리로 연결된 풀 몇 개체인 경우와 비슷하다. 꽃을 피우는 주기는 대나무 품종과 기후에 따라 다르지만 약 50년 주기를 두고 꽃을 피우며[10] 한 번에 대나무 숲 전체가 꽃을 피워 씨앗을 엄청나게 떨어뜨린 후 죽어 완전히 세대를 물갈이한다. 죽은 대나무들은 썩어 다음 세대의 양분이 되고 씨앗은 새로운 대나무로 자란다. 다만 실제로 다음 세대로 발아하는 데에 성공하는 씨앗은 매우 적고 대부분 야생동물과 곤충의 소중한 먹이가 된다. 한 뿌리에서 수십수백 그루씩 자라는 대나무의 생존율이 높았다면 온 세상이 대나무숲이 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기도 하다. [출처 : 나무위키] |
수로 위에 철재 트랜치를 설치하여 둘레길을 만들어 놓았다.
장미를 가장한 동백꽃이 땅에 떨어지기 위한 화려함을 한껏 피우고 있다.
길은 화계마을 1024지방도로에서 시작해서 용소공동묘지로 올라가서 미국마을로 지나서 다시 1024지방도로를 만난다.
남해군 이동면에서 남면으로 넘어서서 아직 도로 양옆의 떨어지지 않고 남아있는 벛꽃을 바라보면 걷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