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귀한 보시 Mahādāna
난다말라비왐사 큰스님
Ashin Nandamālābhivaṁ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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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자애경의 네 부분
1) 자애경의 이익(게송 1)
1. 얏사-누바-와또- 약카네-와 닷센-띠 비-사낭
얌히 쩨-와-누윤잔또ꠓ
랏띤디와 마딴디또수캉 수빠띠 숫또-짜
빠-빵낀찌 나 빳사띠
에-와마-디 구누-뻬-땅
빠릿땅땅 바나-마 헤
여기까지는 붓다께서 설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자애경을 독송하고 싶도록 하기 위해 후대의 사야도(큰스님)들께서 덧붙인 내용입니다. 자애경의 이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 행복하게 잠든다.
2) 행복하게 깨어난다.
3) 악몽을 꾸지 않는다.
4) 천인들이 보호한다.
5) 선한 이들의 사랑을 받는다.
6) 무기와 독의 해를 입지 않는다.
7) 하는 일이 잘 마무리된다.
8) 얼굴이 맑고 깨끗하다.
9) 평화로운 마음으로 지낸다.
10) 죽을 때 청명한 정신으로 죽는다.
11) 죽은 뒤에는 범천계에 태어난다.
이렇게 자애관의 이익 11가지를 설명하십니다.
‘얏사-누바-와또- 약카ꠓ네-와 닷센-띠 비-사낭’
(자애경의 위력으로 천인들도 도깨비들도 어떤 존재들도 두렵고 끔찍한 것을 보여 주지 않는다. 위협을 줄 수 없다.)
‘얌히 쩨-와- 누윤잔또ꠓ랏띤디와 마딴디또-’
(이 자애관을 끊임없이 열심히 정진한다면)
‘수캉 수빠띠’
(행복하게 잠든다.)
‘숫또-짜 빠-빵낀찌 나 빳사띠’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나쁜 꿈을 꾸지 않는다.)
이러한 이익이 있는 자애관을 닦는 방법을 이 자애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2) 자애관을 하기 전에
갖추어야 할 소양(게송 2&3)
자애경을 독송할 때, 뜻을 이해해서 알고 독송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습관 들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단지 암기하고 있기 때문에 독송합니다. 그 사람의 마음에 자애의 마음 없이 소리만 내고 있기도 합니다. 자애의 마음을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자애관을 열심히 닦기 위해 필요한 소양들을 붓다께서 먼저 설하십니다.
2-1. 까라니-야 맛타꾸살레-나
얀따 산땅 빠당 아비사멧짜
평화로운 열반의 공덕을 떠올리며 지내고 싶다면, 이 일을 하라고 합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면, 지계에 흠이 없도록 사마디가 충분하도록 그리고 지혜가 가득차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하는데 보통 사람들은 잘하지 못합니다. ‘앗타꾸살라atthakusala(자신의 이로움에 능숙한 이)’들만이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 자신의 이로움과 번영을 꾀할 줄 모릅니다. 이런 이들은 이익 없는 일만 하고 삽니다. 예를 들자면 알코올중독자들은 술 마시는 일이 자기 자신에게 이익이 있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손해 볼 짓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추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일이 번영과 행복을 가져오지는 않습니다.
『넷띠netti』 경전에 ‘우물을 파는 이는 파면 팔수록 아래로 내려간다. 담을 쌓는 이는 일을 하면 할수록 점점 올라간다” 이렇게 예를 들었습니다. 우물 파는 이는 우물이 깊어질수록 점점 더 낮아져 갑니다. 어떤 일은 우물 파는 일과 같습니다. 이처럼 점점 퇴보하는 일을 하는 이는 ‘앗타꾸살라’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자신에게 도리어 고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아래로 내려가게 합니다. 이런 이들이 의외로 세상에 많습니다. 담을 쌓는 일을 보십시오.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올라갑니다. 담이 높아질수록 자신도 올라갑니다.
이처럼 스스로 퇴보하도록 하지 않고 스스로 고귀해지도록 해야 ‘앗타꾸살라’입니다. 그래서 생에서 이로움이 있고 평화롭게 살고 싶다면
할 만하고 하기에 마땅한 일들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어떤 소양이 필요할까요? 자애관과 관련하여 요구되는 소양들을 붓다께서 계속해서 설하십니다.
2-2. 삭꼬- 우주-짜 수후주-짜
수와쪼- 짯사 무두아나띠마-니-
‘삭꼬-’
능력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붓다께서 설하신 ‘성공하는 이의 조건 5가지’ 중에서 처음 4가지가 ‘삭꼬’를 설명합니다. 첫째,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확신을 갖는다. 둘째, 건강하다. 셋째, 열심히 노력한다. 넷째, 자기가 하는 일에 관련하여 숙고하며 개선하기 위한 궁리를 쉼 없이 한다. 이런 조건들을 갖춘 이를 ‘삭꼬’라 부를 수 있습니다.
이런 소양들이 자기 자신 안에 있는가? 아직 없다면 생겨날 수 있도록 연습해야 합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되지 않습니다. 몸으로 하는 운동도 반복할수록 능숙해집니다. 예를 들자면, 걷는 것조차도 반복 연습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공차기도 연습하면 됩니다. 다른 스포츠도 반복 연습에 의해 노련해집니다. 반복된 연습이 없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음도 대상과 연결 지어서 반복 연습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처음엔 어렵지만 연습하다 보면 나중엔 쉬워집니다. ‘삭꼬(능력 있는 이)’가 되어야 합니다.
‘우주-’
곧은 이(정직한 이)가 되어야 합니다. 곧은 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가? 미얀마에서는 정직한 사람을 ‘바보’라는 뜻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곧은 이란 앞과 뒤가 다르지 않은 사람, 속이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붓다께서 설하신 ‘성공하는 이의 조건 5가지’ 중 마지막 항목이 ‘우주’(정직함)에 대한 설명입니다.
첫째, ‘자신에게 없는 공덕을 있는 척하지 말아야 한다(아사토asaṭho)’입니다. 과장하고 부풀려서 자랑하는 것, 타인이 과대평가하도록 없으면서 있는 척하는 것, 내게 돈이 없는데 돈이 있는 척하는 것, 지혜가 없으면서 지혜 있는 척하는 것, 지계가 없으면서 지계가 있는 척하는 것, 이런 것들을 삼가야 합니다.
둘째, ‘자신이 지은 허물(불선업)을 없는 것처럼 가장하지 말야야 한다(아마야위amāyāvī)’입니다. 내게 없는 것은 없는 것일 뿐입니다. 내가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인정하면 됩니다. ‘아사토’, ‘아마야위’ 이 두 가지를 유념해 곧고 정직한 이가 되어야 합니다. 수행하는 이가 정직하지 않으면 사마디가 없는데도 사마디가 있다고 보고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면 스승이 무슨 수로 그 수행자의 실태를 알겠습니까? 인터뷰를 할 때 ‘우주’(정직)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수후주-’
매우 곧아야 합니다. ‘우주’는 행위와 말이 정직하다는 의미입니다. ‘수후주’는 마음까지 곧다는 뜻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매우 곧아야 한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몸·말·마음까지 정직하고 곧은 이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곧고 바름이 없다는 그 자체가 자애의 파괴를 의미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곧음과 정직함이 없다면 그 마음 안에 자애를 지니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타인에게 자애를 두기도 아주 어려워집니다. 다른 이들도 그 사람에게 자애를 보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붓다께서 ‘우주- : 정직하라’, ‘수후주- : 매우 정직하라’고 하십니다.
‘수와쪼-’
충고해줄 때, 아이디어를 제시할 때, 타이르기 쉬운 이가 되어야 합니다. 고집 세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아주 고집이 세서 황소고집입니다. 누가 말해도 듣지 않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자애가 가지 않습니다. ‘이 사람 고집 세다’ 하고 한두 번 말해 보고는 더 이상 말을 섞지 않습니다. 그냥 내버려 둡니다. 버려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타이를 때, 충고할 때, 가르치기 쉬운 사람(수와쪼)이 되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르치기 쉬운 사람을 더 사랑합니다. 선우들도 이 사람은 말하면 잘 듣는다고 더 아낍니다. 그렇지 않고 ‘저 사람은 말해 봐도 안 돼’라고 하면 자애가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자애를 받고 자애를 주기 위해서는 가르치고 타이르기 쉬운 사람(수와쪼)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의견을 들으면 그 생각이 맞는지 아닌지 스스로 사고해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생각해 보고 받아들일 만한 것은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버리면 됩니다. 이러한 ‘수와쪼’ 공덕으로 가득 차야 한다고 합니다. 이러지 않고 충고를 해주는데 시비를 따지며 달려들면 서로 간에 자애가 파괴됩니다. 자애가 말라 버립니다.
‘무두’
무두란 ‘부드럽고 섬세함’을 말합니다. 부드럽고 섬세해야 합니다. 서로 간에 대화할 때 예의 발라야 합니다. 예의가 필요합니다. 예의가 없으면 사람들의 미움을 받습니다. 나 자신이 무례하면 주변 사람들이 미워합니다. 이런 경우 어떻게 자애의 마음을 키울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섬세함, 예의 바름도 중요한 조건입니다.
‘아나띠마-니-’
지나친 교만이 없어야 합니다. 여기서 붓다께선 ‘교만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설하지 않으시고, ‘지나친 교만이 없어야 한다’라는 의미로 설하십니다. 교만이란 있어서 좋은 교만과 있어선 안 되는 교만 두 종류가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과시, 과장하는 것은 있어선 안 되는 교만입니다. 그러나 배움에 있어서 ‘그런 사람조차도 하는데 나도 잘하도록 해야지’, 이런 생각은 이로운 교만입니다. 이런 교만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사업에 관련해서도 ‘그런 사람도 성공했는데 나도 성공하도록 해야지.’ 수행하는 일에 있어서도 ‘그 사람도 해냈는데 나는 어떻게 하면 될 수 있을까?’ ‘그런 분도 아라한이 되었는데 나도 되어야지.’ 이런 종류의 교만은 있으면 바람직한 교만입니다. 보디삿따이신 수메다 존자는 교만이 있어서 붓다가 되었습니다. 만약 그때 교만이 없었다면 붓다가 될 수 없었습니다. 왜 이 말을 하는가 하면 디빵까라 붓다를 친견하실 때 아라한이 될 소양은 이미 완성되었습니다. 선정과 신통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디빵까라 붓다로부터 주제를 받아 수행을 하셨다면 단번에 아라한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처럼 출중한 인간이 나혼자만 이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나 스스로 붓다가 되어 중생을 구제해줄 것이다. 바른 법을 내가 직접 설하리라. 다른 이가 설한 법을 듣고 아라한이 되어, 나 혼자만 탈출하는 이는 되지 않으리라’라고 맹세하십니다. 이것은 바람직한 교만입니다. 이 바람직한 교만이 있어서 붓다가 됩니다. 경전에는 자비를 원인으로 성불한다고 합니다. 자비가 분명 필요합니다. 하지만 디빵까라 붓다를 친견한 그 순간 생겨난 ‘나도 붓다가 되겠다’라고 하는 서원은 교만이 아주 크게 원인으로 작용한 것입니다. 이로움이 없는 아주 큰 자만을 가진 이는 어르신들조차도 업신여깁니다. ‘내가 가장 똑똑하다, 내 위에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학식이든 재산이든 용모든 명예든 이런 것들에 대하여 거만해선 안 됩니다. 거만하면 주변 사람들이 그를 기피합니다. 꺼리는 마음이 있으니 자애가 생겨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나띠마니’입니다. 즉, 교만이 지나쳐선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