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보요의론 제9권
[방편과 지혜]
『유마힐경(維摩詰經)』에서 말하였다.
“‘방편이 없는 지혜는 얽매이고 방편이 있는 지혜는 풀려납니다.
방편이 없는 지혜는 얽매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만약에 보살이 공(空)과 모양 없음과 바람 없음의 법 안에서 그 마음을 다스려 항복받고서도 상호(相好)로써 불국토를 아름답게 꾸미고 유정들을 성숙하게 하지 않는다면, 이것을 곧 방편이 없는 지혜는 얽매인다고 합니다.’
‘방편이 있는 지혜는 풀려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만약에 보살이 상호로써 능히 불국토를 아름답게 꾸미고 유정들을 성숙하게 하며 공과 모양 없음과 바람 없음의 법 안에서 그 마음을 다스려 항복받아서 능력을 익히고 부지런히 행하되 싫증내고 게으르지 않다면, 이것을 방편이 있는 지혜는 풀려난다고 합니다.’
‘지혜가 없는 방편은 얽매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만약에 보살이 모든 것을 볼 때마다 번뇌가 생겨 일어나며 뒤따라서 머물러 집착하는 바가 있지만, 그러나 다시 일체의 선근을 발하여 일으켜서 위없는 보리(菩提)에 회향한다면 이것을 곧 지혜가 없는 방편은 얽매인다고 합니다.’
‘지혜가 있는 방편은 풀려난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만약에 보살이 모든 것을 볼 때마다 번뇌가 생겨 일어나더라도 뒤따라 있는 모든 집착을 끊으며 일체의 선근을 발하여 일으켜서 위없는 보리에 회향하되 한결같이 붙잡는 바가 없다면, 이것을 곧 지혜가 있는 방편은 풀려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들 지혜와 방편의 두 법은 서로 어우러져 합하므로 반드시 이 모든 것은 보살의 행이라고 알아야 합니다.’
‘보살의 행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말하자면 범부의 행도 아니고 성인과 현인의 행도 아닙니다. 이 보살의 행은 죽음과 삶 안에 있더라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며, 열반 안에 있더라도 영원히 스러져 고요하지 않습니다.
이 보살의 행은 비록 네 가지 진리[四諦]의 지혜를 구하더라도 역시 때가 아니면 열반을 깨달아 얻지 않으며, 이 보살의 행은 비록 안이 공(空)함을 관찰하더라도 언제나 삼유(三有:欲有ㆍ色有ㆍ無色有) 안에서 태어남을 받고 드러내 보이고자 생각합니다.
이 보살의 행은 비록 생겨남이 없음을 관찰하더라도 열반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 보살의 행은 비록 일체 유정을 받아들이더라도 물들어 집착하지 않습니다.
이 보살의 행은 비록 공(空)을 행하더라도 언제나 부지런히 모든 모양의 공덕을 구합니다.
이 보살의 행은 비록 지어냄이 없음을 행하더라도 일체의 선행을 부지런히 닦아 홀가분하고 평안함을 얻습니다.
이 보살의 행은 비록 지관(止觀)의 행을 닦더라도 끝내 적멸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 보살의 행은 비록 법의 바퀴를 굴려 대열반(大涅槃)을 나타내 보이더라도 보살이 행할 바의 행을 버리지 않습니다.
이 보살의 행은 무릇 이와 같은 것으로 한결같이 보살이 행할 바의 행입니다.’”
[보살의 승혜와 방편]
『항마경(降魔經)』에서 말하였다.
“다시 다음으로, 있는바 모든 보살마하살들의 최상의 정행(正行)이 있다.
곧 승혜지(勝慧智)로 불어나고 향상(向上)함에 서로 응함이며,
또한 방편지(方便智)로 일체 선법(善法)의 행을 널리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승혜지(勝慧智)는 곧 나도 없고 인간도 없고 유정도 없고 정해진 수명도 없고 유동(儒童) 따위도 없으며,
방편지(方便智)는 곧 일체의 유정들의 행을 성숙시킨다.
승혜지가 곧 모든 법을 두루 거두어들이는 행이라면
방편지는 곧 정법(正法)을 받아 거두는 행이다.
승혜지가 곧 일체 불법계(佛法界)의 분별 없는 행이라면
방편지는 곧 일체의 불법을 존중하고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는 행이다.
승혜지가 일체의 부처님 세계를 허공처럼 행한다면
방편지는 일체의 부처님 세계의 공덕을 장엄하게 꾸미는 도구이고 장엄함을 청정하게 하는 행이다.
승혜지가 곧 일체의 성인과 현인의 함이 없는 닦는 행이라면
방편지는 곧 일체 스승의 존귀함에 대해 일어나는 존중하는 마음을 펴서 여러 가지 일을 만드는 행이다.
승혜지가 곧 부처님 몸의 유루(有漏)가 없음을 관찰하는 행이라면
방편지는 곧 부처님의 상호(相好)를 닦는 행이다.
승혜지가 곧 일체의 행이 생겨나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음을 관찰하는 행이라면,
방편지는 곧 삼유(三有) 안에서 항상 생겨남을 받아 드러내 보이는 것을 사유하는 행이다.”
『무진의경(無盡意經)』에서 말하였다.
“어떤 것들을 보살의 방편이라고 하는가?
다시 어떤 것들을 보살의 승혜(勝慧)라고 하는가?
말하자면 만약에 선정(禪定)에 들어 있을 때, 크게 불쌍히 여기는 것에서 연(緣)하는 바의 깊고 단단한 마음을 일으켜서 유정들을 관찰하면 이것이 바로 방편이다.
만약에 선정 안에서 고요하게 머물러 두루 고요하다면 이것이 바로 승혜이다.
만약에 선정에 들었을 때 크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일으켜서 불도(佛道)에 순순히 따른다면 이것이 바로 방편이다.
만약에 있는 바가 없음에 의지하여 관찰한다면 이것이 바로 승혜이다.
만약에 선정에 들었을 때 저 일체 법을 널리 관찰하여 거두어들인다면 이것이 바로 훌륭한 방편이다.
만약에 법계(法界)를 관찰하여 분별하는 바가 없다면 이것이 바로 승혜이다.
만약에 선정에 들어 있을 때 부처님의 몸을 아름답게 꾸미고 지어낸 바를 앞에 드러내면 이것이 바로 방편이다.
만약에 법신(法身)의 분위(分位)를 관찰하면 이것이 바로 승혜이다.”
[보살의 두 가지 모양과 두 가지 법]
『유마힐경』에서는 말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씨(慈氏)여, 보살은 두 가지 모양이 있다.
첫째는 잡된 어구(語句)로 문장을 꾸민 것을 믿고 즐기는 것이며,
둘째는 심히 깊은 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알아들어가는 일이다.
이것을 두 가지 모양이라고 한다.
만약에 보살이 잡된 어구로 문장을 꾸민 것을 존중하고 믿어 즐긴다면, 반드시 이것은 처음으로 배우는 보살이라고 알아야 한다.
만약에 다시 이 청정하고 심히 깊은 경전에 대해 여러 가지 글 뜻의 서로 다른 문(門)을 널리 거두어들이고 받아 듣고 펼쳐 설하여 훌륭한 이해를 낳는다면, 반드시 이 보살은 오랫동안 범행(梵行)을 닦아 온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
다시 두 가지 법이 있다.
이것은 곧 처음으로 배우는 보살이 스스로 허물고 상처 입어서 심히 깊은 법에 대해 그 마음을 조복(調伏)받지 못하는 일이다.
첫째는 옛날에 미처 심히 깊은 경전을 들은 적이 없다가 듣고 나서는 놀라고 두려워하면서도 역시 의심을 내고 순순히 따르지 않으면서 오히려 얕보고 헐뜯기를,
≺나는 옛날에 이 법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미처 들은 적이 없다≻고 이와 같이 말한다.
둘째는 대법기(大法器)로서 심히 깊은 법을 펼쳐 설하는 사람은 선남자가 기꺼이 친하여 가까이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으며 간혹 때때로 안에서 은밀히 그 허물을 설한다.
이것을 두 가지 법이라고 한다.
다시 두 가지 법이 있다.
보살이 비록 심히 깊은 법을 믿고 이해하더라도 스스로 허물고 상처 입으면 능히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속히 깨닫지 못한다.
첫째는 처음으로 배우는 보살을 얕보고 허물어서 거두어들이지 않으며 가려서 붙들어 주지 않고 가르쳐 타이르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비록 심히 깊은 법을 믿고 이해하더라도 익혀 배우지 않고 존중하지 않으며 재물을 보시하거나 법을 보시하거나 유정들을 거두어들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두 가지 법이라고 한다.
이 안에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설령 모든 유정들이 모든 불보살(佛菩薩)들의 커다란 위덕력(威德力)을 알고 들어간다고 해도 이것은 더없이 얻기 어렵다.’”
보살의 이 커다란 위덕력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유마힐경』에서는 말한다.
“유마힐이 말하였다.
‘대가섭(大迦葉)이시여, 시방세계에 나타나 활동하고 있는 마왕(魔王)들은 한결같이 이 불가사의해탈보살(不可思議解脫菩薩)에 머무르며 훌륭한 방편으로 유정들을 성숙시키기 위한 까닭에 악마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또한 시방세계에는 간혹 어떤 보살이 있어서 그에게서 손이나 발이나 귀나 코나 피나 살이나 근육이나 뼈나 머리나 눈이나 몸뚱이나 아내나 자식이나 노비나 백성이나 나라나 마을이나 코끼리나 말이나 전차나 수레를 구걸합니다.
무릇 이와 같은 것들을 혹시 구하러 오는 것이 있으면 한결같이 모든 것을 베풀어 줍니다. 보살은 이와 같은 모양이기 때문에 핍박을 받더라도 이들은 한결같이 불가사의해탈보살에 머무릅니다.
가섭이시여, 비유하자면 용과 코끼리가 발로 차거나 짓밟으면 당나귀가 감당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범부도 역시 그러해서 이와 같이 보살을 핍박할 수는 없지만, 보살은 이에 역시 이와 같이 보살을 핍박할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