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경요집 제4권
6.4. 현번연(懸幡緣)
『가섭고아난경(迦葉誥阿難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아육왕(阿育王)은 스스로 경내(境內)에 일천이백 개의 탑을 세우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 뒤에 왕은 병이 들어 곤경에 처해 있었다.
어떤 사문(沙門)이 왕에게 문병을 오자 왕이 말하였다.
‘나는 전에 일천이백 개의 탑을 만들고 각각 금실로 짠 번기를 만들어 손수 그 번기를 달고 꽃을 흩어 비로소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중병을 얻었으니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할까 염려스럽습니다.’
도인(道人:沙門)이 왕에게 말하였다.
‘바라건대 왕께서는 합장하고 한결같은 마음을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도인이 곧 신통을 보이자 당장에 천이백 개의 탑이 한꺼번에 왕의 앞에 나타났다.
왕은 그것을 보고 기뻐하여 곧 금번(金幡)과 금화(金花)를 가져다가 모든 찰간 위에 달았다.
그러자 탑사(塔寺)가 구부러졌다 펴졌다 하면서 모두 왕 가까이로 왔다.
그 때 왕은 본래의 소원을 이루고 몸의 병도 다 나았다. 왕이 곧 큰 뜻을 발하자 수명도 스물다섯 해나 늘어났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번기를 속명신번(續命神幡)이라고 하였다.”
또 『보광경(普廣經)』에서 말하였다.
“만약 네 무리의 남녀가 임종할 무렵이나 또는 이미 목숨을 마쳤을 때, 그가 날 누런 번기를 만들어 찰간 위에 달면 그들로 하여금 복덕을 얻게 할 것이요, 여덟 가지 환난[難]의 고통도 여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시방 모든 부처님의 정토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
번기와 일산의 공양은 마음의 소원을 따라 보리(菩提)까지도 이루게 할 것이고,
번기는 바람을 따라 움직여서 모든 번뇌[都蓋]를 부수어서 작은 먼지처럼 만들 것이다.
번기가 한 번 움직일 때는 전륜왕의 자리와 티끌처럼 작은 왕의 자리까지 그 과보가 한량없이 많아질 것이다.
등을 켜는 공양은 모든 어두운 곳을 다 비추므로 고통받는 중생들도 이 광명을 힘입어 서로 볼 수 있을 것이고, 이 복덕의 인연으로 중생들을 구제하여 다 쉬게 할것이다.’
[문] 무엇 때문에 경에서 죽은 사람을 위해 누런 번기를 만들어 총탑[塚塔]위에 달라고 하는가?
[답] 비록 경에서의 해석은 보지 못했지만 그러나 그 이치로써 찾아볼 수 있다.
이 오대(五大) 색깔 중에 황색(黃色)은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서 충성을 나타내고 있는데, 마음을 다해 복을 닦으면 중음(中陰)선을 인도하여 악한 세계에 가지 않게 하고 변방의 나라에 태어나지 않게 한다.
또 황색(黃色)은 금의 형상이므로 귀신의 명도(冥道)에서는 금으로 사용한다.
세속(世俗)에서 제사를 지낼 때에 흰 색 종이로 돈을 만들면 귀신은 은전(銀錢)으로 쓰고 누런 색의 돈을 만들면 귀신은 금전으로 쓴다.
[문] 어떻게 그것을 아는가?
[답]『명보기(冥報記)』와 『명상기(冥祥記)』갖추어 기록되어 있으므로 알 수 있다.”
또 『비유경(警喩經)』에서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곡식 수백 섬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때 곡식 도적이 주인의 곡식을 다 훔쳐가버려 한 툴도 보이지 않았으며, 주인은 다만 벌레 한 마리만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신장이 지극히 컸다.
도적(벌레)을 붙잡아 고문하였다.
‘너는 왜 내 곡식을 다 훔쳐갔느냐? 너는 무슨 귀신이냐?’
도적이 주인에게 말했다.
‘당신이 나를 데리고 네 거리 길에 나가면 나를 아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주인이 그의 말대로 도적을 데리고 네 거리에 이르러 누런 말을 타고 누런 옷을 입은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타고 있는 수레며 의복이 모두 누런 색이 있다.
그 황관(黃官)이 도적을 보고 말하였다.
‘곡식 도적아, 너는 왜 여기에 있느냐?’
주인이 비로소 이 벌레가 곡식 도적임을 알고 그에게 또 물었다.
‘저가 누런 말을 타고 누런 옷을 입은 사람은 누구냐?’
곡식 도적이 말했다.
‘그는 황금(黃金)의 정(精)입니다. 주인의 곡식을 먹은 값을 갚으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주인은 그로 인하여 금을 얻었는데 아무리 써도 다하지 않았다.
진실로 사람과 귀신은 사는 세계가 다르기 때문에 느끼고 보는 것도 각기 다르다.
그러므로 성인이 누런 번기를 만들어 죽은 사람을 위해 탑총(塔塚)에 걸어두는 것이다.
그리하여 혼신(魂神)으로 하여금 찾아 보아 진실을 얻게 하여 망령을 구제하는 것이다.”
또 『백연경』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가비라위성(迦毘羅衛城) 안에 어떤 장자가 살고 있었다. 그 집은 큰 부자로서 재물과 보배가 한량없이 많아 이루 다 칭량하여 계산할 수가 없었다.
그는 한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열굴이 단정하고 수려하며 절묘한 것이 뭇 사람들보다 뛰어났다.
그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허공에서 큰 번기 하나가 온 성을 두루 덮었다.
부모가 그것을 보고서 한없이 기뻐하였고 그로 인하여 아이의 이름을 파다가(波多迦)라고 지었다.
이 아이가 나이가 들어 점점 자라자 부처님께 출가하기를 구하여 아라한이 되어 삼명(三明)ㆍ육통(六通)과 팔해탈(八解脫)을 갖추었다.
비구들은 그것을 보고는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파다가는 전생에 무슨 복을 지었기에 태어날 때부터 얼굴이 단정하여 뭇 사람들보다 뛰어났으며, 공중에 큰 번기가 있어 성 위를 두루 덮었고, 또 세존을 만나 출가하여 도를 증득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지나간 과거 아흔한 겁 전에 비바시(毘婆尸)부처님께서 열반(涅槃)에 드신 뒤에 그 당시 어떤 왕이 있었으니, 그 왕의 이름은 반두말제(槃頭末帝)였다.
그 왕은 그 부처님의 사리를 거두어 네 개의 보배 탑을 세웠는데, 그 높이가 일 유순(由旬)이었다.
그는 그 탑에 공양하곤 하였는데, 그 때 어떤 사람이 그 탑의 주변에서 큰 법회를 열고 한 개의 긴 번기를 만들어서 탑 위에 달아 놓고 발원하고는 떠나갔다.
이 공덕을 인연하여 이 때부터 아흔한 겁 동안 악한 세계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이나 인간 세계에서 항상 큰 번기가 그를 덮었으며, 그는 또 복을 받아 쾌락을 누렸고 나아가 지금은 나를 만나 출가하여 도를 얻었느니라.’
또 『보살본행경(菩薩本行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여러 비구들과 아난을 데리고 울비라연국(欎卑羅延國)에서부터 여러 촌락을 두루 유행하셨다. 그 때 날씨가 매우 극심하게 더웠는데 시원한 그늘이 없었다.
어떤 양치는 목동이 부처님께서 더위 속에 다니시는 것을 보고 곧 깨끗한 마음을 일으켜 풀을 엮어 일산을 만들어 부처님께 드리우고 부처님께서 다니시는 곳을 따라다녔다.
그러다가 양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일산을 놓아 땅에 던져 버리고 양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부처님께서 미소를 지으시면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양치는 사람은 나를 공경하는 마음 때문에 풀을 엮어 일산을 만들어서 부처님 위를 덮어주었다.
이런 공덕 때문에 열세 겁 동안 악한 세계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이나 인간 세계의 존귀한 가문에 태어나 그 쾌락이 무궁할 것이요, 항상 칠보의 일산이 저절로 그를 씌워줄 것이다.
열세 겁이 지나면 출가하여 도를 닦아 벽지불(辟支佛)이 될 것이니, 그 이름을 아뇩보리(阿耨菩提)라고 하리라.’”
게송을 말한다.
오랫동안 무명수(無明樹)를 싫어했더니
비로소 내원선(奈苑鮮)을 기뻐하게 되었네.
처음으로 향산(香山) 길에 들어가
마침내 무너지지 않는 몸을 만났네.
선정의 꽃 지혜의 열매를 맺고
신비한 등불 범천(梵天)을 비추네.
노을 같은 번기는 비단 빛깔 같고
향기 그유하여 향로 연기와 어울리네.
완연하게 허공에서 펄럭이니
거꾸로 드리운 것이 붉은 연꽃 같구나.
밤낮으로 바람 불어 회전하니
전륜왕의 인연이 겹겹이 쌓이누나.
아무리 우러러보아도 싫증나지 않고
친구 맺어 오래도록 머물러 바라보며 감동하였네.
어찌 알겠느냐? 빛칼 중에 이 비단이
복을 불러오고 수명[壽]을 늘릴 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