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NGO신문 4월 25일자 8면 민족NGO섹션에 보도된 내용입니다.
조만간 종합하여 교육부에 청원을 낼 자료이니까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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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교과서, 올해 이것만은 꼭 바꿔라!] 〈10〉
우리 ‘민족’이 형성된 시기를 분명히 하라!
박정학/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교육부의 지침에 한국사는 ‘우리 민족이 역사 속에서 발휘해 온 역량을 주체적이고 비판적으로 이해’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정체성을 가진 세계인으로 성장하게 한다.’고 하여, 한국사의 주체가 우리 민족, 한국인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이 출생신고를 할 때 생일이 중요하듯이 민족의 형성 시기는 민족정체성을 나타내는 요소로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도, 교육부의 지침이나 이에 따른 각종 교과서에서 ‘민족’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면서도 민족의 이름도 없고, 그 형성시기도 분명하게 기술하지 않고 있다. 우리 스스로 다른 민족과 구별하는 정체성 확보를 위해 한국사의 주체인 한민족의 형성시기를 분명하게 기술해야 한다.
‘생일 없는 민족’이라는 교육부 지침과 교과서
교육부의 사회과 교육과정 한국사 부분과 교교 한국사 집필 기준에서는 “선사 문화의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우리 민족의 형성 과정을 파악한다.” “선사 시대에 민족 형성의 기반이 마련되었다는 점에 유의한다.”라고 하여 선사시대에 민족이 형성되는 듯이 기술하고 있다. 그러면서 “신라의 삼국 통일로 우리 민족사의 기틀이 다져졌음을 이해한다.” “신라의 삼국 통일로 고구려‧백제‧신라의 문화가 통합 발전되면서 민족 문화의 바탕을 이룬 사실에 유의하라.”고도 하고, 고려 시대에 “이민족과의 대립 속에서 새로운 민족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었음에 유의한다.”고 하여 신라의 삼국통일 또는 고려의 재통일로 민족이 형성된 듯이 기술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러한 지침에 따라 만들어진 교과서의 내용도 이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초ㆍ중ㆍ고 교과서의 관련 내용을 종합하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해온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우리 역사”라면서 “우리 민족은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를 거치면서 민족의 기틀을 이루었다.” “고조선은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라고 하여 고조선 전에 민족이 형성된 듯이 기술하면서도, “(신라의 삼국통일)로써 민족 형성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우리 민족사의 기틀이 다져졌다.” “신라가…고구려, 백제의 유민들과 함께 당을 몰아내면서 하나의 민족이라는 의식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라 하기도 하고, “왕건은 후삼국의 혼란을 극복하고 민족의 실질적인 통일을 이루었다.…발해의 유민까지 적극 받아들여 민족 통합을 이루고자 하였으며, 실질적인 민족통일 국가를 이룩하였다.”고 하여 고려 때에 민족이 형성되는 듯이 기술하고 있다.
국사의 주체가 민족이라고 하면서도 ‘민족’의 출발점을 분명히 하지 않은 채, 기틀만 닦고 있는 미완의 민족인 것처럼 기술하여 우리 자신을 생일 없는 민족으로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민족의 개념 정립하지 못한 어른들의 직무유기다
그 이유는 ‘민족’이 국가처럼 법적ㆍ제도적 실체를 갖는 집단이 아니고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역사적 인간 공동체이므로 그 형성 시기를 똑 떨어지게 말하기가 어렵다는 점도 있지만, 역사학자들 간에 민족의 개념과 그 형성시기가 정립되지 못하고 있는 국사학계의 실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를 몇 가지 짚어본다.
첫째, ‘민족’의 개념에 대해 우리 역사학자들 간에 우리 식 겨레붙이와 서양식 정치집단의 구성원으로 보는 시각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며, 둘째는 인류사회의 발전단계를 혈연을 중심으로 씨족–부족–종족(또는 부족연맹)-민족으로 보거나, 정치 집단 중심으로 무리사회–마을사회–고을사회–국가 사회 식으로 보아야 일관성이 있는데 이 두 주장을 서로 섞어 서술함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이해를 어렵게 하고 있다. 셋째, ‘청동기 시대에 민족이나 국가가 형성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면서도 우리 겨레의 청동기 시대에 대한 편년이 정립되어 있지 않은 것도 한 이유가 된다. 넷째, 서구 주류 학자들의 주장과 같이 국가가 생긴 후 정치적 필요에 의하여 민족이 만들어졌느냐(근대론자), 오랜 역사를 함께 하면서 형성된 민족을 바탕으로 국가가 형성되었느냐 하는 데 대한 의견 일치가 되지 않고 있다.
민족의 개념이 이렇게 다르다 보니 그 형성시기에 대해서도, 치우천왕 시기로 보는 필자를 비롯하여, 고조선 초기로 보는 윤내현, 신용하, 김종서 등과 고조선 후기로 보는 이종욱, ‘삼국시대에 준비되고 통일신라에서 시험되다가 고려조에 들어와 성립되었다’는 최남선, 고려의 북방개척시기 이후로 보는 이기동, ‘씨족사회는 배태기, 예맥…고조선 등은 시초기, 6국-3국 통합 등 민족운동 추진기, 신라통일을 민족 결정기, 고려 때는 민족의식 왕성기, 세종대왕 때 우리 민족이 완성되었다’는 손진태 등 학자들의 의견이 다양해지고, 정부 지침이나 교과서에서도 이런 실상이 그대로 투영되어 여러 학자들의 주장을 섞어 나열함으로써 오히려 학생들을 혼란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상 교과서가 아니라 어른들의 직무유기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다양한 학자들의 주장에 휘둘리거나 모두 수용하려고 하지 말고, 최근의 새로운 고고학적 발굴과 연구 성과를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종합하여 국사의 주체를 민족으로 볼 것인지, 겨레로 볼 것인지를 먼저 결정하고, 민족 내지 겨레의 개념, 사회 발전 단계론, 겨레(민족)와 국가의 성립시기 전후 문제와 청동기 시대의 편년 등에 대한 개념을 먼저 정립해놓고, 거기에 따라 민족의 형성시기를 정리하여 지침을 내려야 한다. 앞 청동기 시대 편년에서 지적했지만, 이 과정에서 치우와 황제 간의 장기간의 치열한 전투 기록은 매우 중요한 근거사료가 된다.

<겨레를 하나되게 했던 2002 월드컵 응원 때의 치우 상징 장식들>

<초등학교 사회 5-1 제1장의 제목> 민족이 아닌 겨레라는 우리말 표현을 하고 있으나 부연설명이 없다
<보도 지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