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리브로(옛 을지서적, 지하철2호선 을지로 입구역)에 들러 월간문학 9월호를 읽다. 요즈음은 문집을 보아도 아 이 글이구나 할 정도의 수려한 문장은 보이질 않는다.
수필가 김시헌 선생의 수필과 그의 인품을 논한 글이 눈에 띈다 기회가 된다면 1999년 교음사에서 펴낸 그의 글 ‘해질 무렵’을 읽겠다 ‘그는 수필을 쓰는 문사(文士)이기 이전에 청순한 인품의 선비’라고 그의 사람됨을 논한다. 이런 평을 받으며 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김시헌선생은 대구에서 활동하다 서울에 올라와 국립도서관, 애경백화점, 신세계백화점, LG백화점, 인천중앙도서관 등에서 수필창작반의 강사로도 활약하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꼭 수필창작반에 들어가 공부도 하고 싶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여러 곳에 글을 보내야 겠다. 이런 행위를 통해서 습작을 하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좋은 작품도 쓸 수 있을 것이다.
김수헌 선생이 수필에 대하여 논한 글이다.
‘수필은 한길에서 갈려나간 논뚝길이다. 소록소록 내리는 가을비이고 높은 하늘에 깔린 무수한 별이다. 몇 백년 묵은 노송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휘어진 가지에서 수필을 느낀다.
수필은 호젓하면서도 군색하지 않고 멋이 있으면서도 방탕하지 않고 소박하면서도 우둔하지 않다. 수필은 건강하지만 파격을 좋아하고 야유스럽지만 악의가 없고, 날카롭지만 따갑지 않다. 수필은 길이가 짧지만 소설이 담겼고 리듬은 없지만 시가 있다. 수필은 부담 없게 걷는 산책과 같고 장바구니를 든 아낙네와도 같다. 그 속에는 꿈을 돌아보는 낭만이 있고 고초를 극복하는 철학이 있고 생사를 초월한 우주가 있다.’
김시헌 선생의 글은 ‘반짝이는 상상력 보다는 깊이 있는 사색으로 조탁한 발견의 언어’이다. ‘현란한 문체나 역동적 구성보다는 신실한 문장과 정직한 직조가 있다.’
‘수필은 작가 스스로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글이어야 한다.’ ‘작가의 펜이 녹스는 까닭은 글을 쓰지 않아서가 아니라 써야 할 것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창작의 기쁨은 가슴으로 오는 기쁨이다. 창작의 기쁨은 우주의 문을 열면서 온다.’
또 다른 사람이 쓴 글이 눈에 띤다. ‘몸에 세월의 무게가 쌓여갈수록 움직이는 공간은 좁혀지는 걸까. 현직에 있을 땐 연수니 사찰이니 하며 해외 나들이를 해봤다. 퇴직 후에는 아내와 관광을 한다며 외국을 들락거렸다. 고희를 전후해서는 건강을 다진다며 친구들과 산을 탔다. 팔순을 앞두고선 은근 야산을 오르다가 그것도 힘겨워서 집 근처 캠퍼스를 걸었다.’
우리는 이렇게 늙어가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늙어감을 즐기는 것이다. 이 또한 새로운 모험임에 틀림없다. 글을 쓰는 것 역시 새로운 모험이다. 소재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또한 모험이라 아니할 수 없다.
<2004/9/10이택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