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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국사 수심결] ⑪ 알 수 없는 의심 하나 이것이 무엇인가 깨달은 뒤 닦는 문 가운데 선정과 지혜를 고루 가진다는 뜻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자성의 선정과 지혜이고 둘째는 상을 따르는 선정과 지혜이다. 깨달은 뒤 닦는 문 가운데 선정과 지혜를 고루 가진다는 뜻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자성의 선정과 지혜이고 둘째는 상을 따르는 선정과 지혜이다.
이것을 깨닫고 보니 걸림 없는 고요와 신령스런 앎이 본래 무위여서 특별한 때가 없고 일체 경계를 따라 분별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아 물들지 않으니 마치 빈 배가 물결 따라 높았다 낮았다 하는 것처럼 인연을 따라 세월을 보내니 깨닫고 나서 자성의 선정과 지혜를 고르게 가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직 확실한 공부 길을 모르기 때문에 마음 스스로는 일체의 이름과 모양이 끊어졌으나 마음이니 불성이니 하여 아는 것으로 의심을 일으켜 공부를 삼아 결국에는 아는 것을 벗어나지 못하고 아상만 높고 지혜는 얕아서 업장만 키우는 것이니 참으로 바른 의심을 해야 한다.
한편 화두를 깨달음의 방편이라는 알음알이를 내어 산란한 마음이 일어나면 의심을 일으켜 번뇌를 끊어버리고 다시 고요한데 떨어져 무기에 빠지면 의심을 일으켜 성성하게 하여 정과혜를 닦는다고 하는 것은 점문의 낮은 근기의 소행으로 참다운 수행이 아니다.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니 망상이 일어나면 의심을 일으켜 이뭣고 하면서 끊어버리는 것으로 공부를 삼았기 때문에 그것이 습이되어 이제는 천진한 마음의 작용마저 끊어버려 오히려 큰 병폐가 되어 괴로움이 된 것이다.
처음에는 치성한 번뇌가 쉬어지는 듯 했으나 무기에 빠져서 마음에는 마치 무거운 돌을 짊어지고 있는 듯 스스로는 답답함을 속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망상이 일어난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얼른 알아차려서 알 수 없는 의심으로 돌이켜야 한다.
이와 같이 활구의 의심은 의심을 통하여 의심하는 놈을 회광반조하는 의심이기에 일체의 업장을 녹여내고 궁극에는 깨달음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집안에서는 오직 모르는 것을 귀하게 여길 뿐 아는 것을 가지고 공부를 삼으면 아는 세계가 나타나서 의심은 생기지 않고 공부길이 바로 끊어지고 헤매게 된다. 오직 알 수 없는 이것이 무엇인가 거금선원장 일선 스님 [출처 : 법보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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