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민중개가(民衆凱歌)의 대행진 (21)
불굴의 투혼 명랑하게
언젠가 오르리라 왕자(王者)의 산을!
애제자와
함께 노래하는
기쁨이여
불굴의 투혼
불꽃같이 불태우며
그것은 생명에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였다.
씩씩하게 모인 학원생들이 서원의 눈동자를 빛내고 있었다.
‘우리 학원생은 절대로 지지 않는다. 미래는 반석과 같다.’ 진심으로 그렇게 느꼈다.
3월 16일 그리고 4월 8일에, 도쿄와 간사이의 소카학원(創價學園)에서 졸업식과 입학식을 각각 열었다. 회합에서는 학원생이 결의를 담아 애창가 ‘불굴의 투혼 여기 있노라’를 노래했다.
그 출발을 지켜보며 나도 함께 부르고 축하했다. 불굴의 투혼, 창가교육의 정신도 여기에 있다.
‘원점’인 마음의 노래
시련의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정의의 깃발을 내걸고 벗을 지키기 위해 격려하고 달리는 1978년 7월이었다.
소카대학교와 소카학원이 기숙사축제인 ‘다키야마축제’와 ‘영광제’를 합동으로 열었다. 소카대 중앙체육관에서 연 기념페스티벌이 절정에 달했을 때, 큰 글씨로 쓴 기숙사축제의 테마 ‘불굴의 투혼 여기 있노라’가 무대 정면에 나타났다. 감동이 밀려왔다.
그렇다. 내가 젊은 시절부터 인생을 꿋꿋이 싸운 원점도 바로 이 마음이다.
내 청춘의 혼을 후계의 젊은이들이 나를 대신해 선언했다.
이 감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석달 뒤인 10월, 내가 오사카를 방문했을 때 학원생이 만든 애창가 ‘불굴의 투혼 여기 있노라’의 가사를 받았다.
기뻤다. ‘불굴의 투혼’은 ‘간사이 혼’이기도 하다. 힘들면 힘들수록 ‘지면 안 된다’는
저력을 발휘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상승(常勝)의 어머니들이 품은 마음가짐이다.
그 간사이에서 거센 바람에 씩씩하게 도전하는 젊은 투혼을 보았다.
좋은 노래다. 나는 학원생에게 양해를 구해 가사를 조금 고치고 4절을 지어 덧붙였다. 여기에 곡을 붙여 선사했다.
어머니여 우리 스승이여
잊지 않으리
고난과 로망을
우리는
언젠가 오르리라
왕자(王者)의 산을
불굴의 투혼 언제까지나
다음달 11월, 학원생이 노래하는 ‘불굴의 투혼 여기 있노라’ 대합창을 직접 들었다. 늠름하게 부르는 열창도, 진지하면서도 장한 모습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때 내가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오르리라 왕자의 산을’이라는 가사처럼 여러분이 그 산을 오를 수 있도록 나는 상처투성이가 되어 ‘길 없는 길’을 여는 투쟁을 할 결심입니다.”
자랑스럽게 가슴을 펴라
2009년, 나는 애창가 ‘불굴의 투혼 여기 있노라’에 새롭게 5절을 선사해 3월에 연 졸업식에서 학원생들과 함께 노래했다.
자랑스러운 정의에
가슴을 펴라
그대에게 의탁한다
이 큰 성(城)을
배우고 승리하라
세계까지
불굴의 투혼 명랑하게
이 또한 잊을 수 없는 황금 같은 추억이다.
학원을 졸업한 동창생들도 창가교육을 응원해 주신 부모님들도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나와 함께 ‘길 없는 길’을 개척했다.
바야흐로 창가의 대도(大道)는 미래로, 세계로 열렸다. 종람이청(從藍而靑)의 영재들이 가슴을 펴고 왕자(王者)의 길을 활보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인생은 길다.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다. 벽에 가로막혀 수없이 실패를 거듭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승패는 도중에 결정되지 않는다. 영광은 끈질기게 도전한 끝에 역전극으로 쟁취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지면 안 된다. 아무리 분해도 명랑하게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어려움에 부딪히고 숙명이 덮치면 ‘그래 나올 것이 나왔구나’ ‘지금부터다’ 하고 더욱 불굴의 투혼을 불태운다. 그런 사람이 마지막에 반드시 이긴다.
고생한 만큼 강해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을 구축해야 한다. 고뇌는 모든 사람에게 용기를 북돋우는 인간왕자를 위한 수행이다.
내가 교우를 맺은 각계 일류의 분들도 소카학원과 소카대학교 졸업생들은 ‘역경에 강하다’고 평가했다.
자기를 연마하라!
노고도 역경도 승리의 대지
새롭게 사회에 진출하는 벗에게
올봄, 많은 청년이 사회인으로서 새롭게 출발했다. 직장을 옮기거나 지금까지와 다른 환경이나 업무에 종사하는 벗도 있다. 다시 한번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며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낸다.
나는 스물한살 때, 스승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선생님이 경영하는 출판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담당한 소년잡지의 편집을 ‘친구’라고 여기고 소중히 했다. 더 나아가, 힘이 닿는 한 향상시키고 발전시키겠다고 다짐했다.
눈앞의 과제를 철저히 완수하자, 자랑으로 여기고 책임을 다하자, 새로운 길을 개척하자고 결의하고 아침부터 밤까지 열심히 일했다.
나는 그런 악전고투의 날들이 황금의 청춘보(靑春譜)를 가장 장엄하게 장식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최고 기업가인 마쓰시타 고노스케 옹이 ‘성공 요인’으로 세 가지를 들었다.
‘학력이 없었다’ ‘가난했다’ ‘몸이 약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겸허히 배우고 돈이나 건강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바로 모든 역경을 성장의 양식으로 삼은 것이다.
은사의 격려
어쨌든 실제로 일을 해보면, 내가 바라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도다 선생님은 그럴 때 ‘의기소침하면 안 된다’고 격려하셨다.
“지금 자신이 있는 직장에서 온 힘을 다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본존에게 기원하고 노력하면 반드시 마지막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 자신에게 득이 되는 일, 게다가 사회에 커다란 선을 베푸는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어떠한 노고도 헛됨이 없다. 모두 귀중한 재산으로 살릴 수 있다. 그것이 불법의 힘’이라고 가르쳐 주셨다.
어서에는 “금(金)은 태우면 진금(眞金)이 된다.” (어서 1083쪽)라고 씌어 있다.
묘법(妙法)을 수지한 생명은 ‘금’과 같다. 어느 곳에 있어도 제목을 부르고 하나하나 변독위약(變毒爲藥)해 ‘진금’처럼 빛을 발할 수 있다.
그 성실한 길을 나아가는 행동을 봐주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 정의로운 청년을 응원하는 제천의 작용은 엄연히 나타난다.
불굴의 용자이어라
젊은 날, 일과 학회활동으로 분주한 속에 ‘불굴의 의지’라는 말을 어서에서 배독한 신선한 감동을 기억한다.
니치렌대성인은 문하인 시조깅고를 “지극히 불굴의 의지(意志)의 사람” (어서 986쪽)이라고 칭찬하셨다.
어서에는 깅고를 “자기편의 일을 소중하다고 여기는 사람이니라” (어서 986쪽) 하고 씌어 있다. 자기편, 동지를 소중히 여기고 지키기 위해 불굴의 투혼으로 싸우는 용자라고 하셨다. 깅고는 문하의 기수로서 결코 질 수 없었다.
“강성한 대신력(大信力)을 내어서 법화종(法華宗)의 시조깅고․ 시조깅고라고 가마쿠라 중의 상하만인(上下萬人) 내지 일본국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입으로 칭송받으시라.” (어서 1118쪽)
이 말씀대로 꿋꿋이 승리했다.
학회정신도 이와 마찬가지다.
불굴의 투혼을 불태우는 우리 창가의 벗은 아무리 괴로운 처지에 놓여도 ‘신심즉생활’ ‘불법즉사회’라는 법리에 따라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전진했다.
‘불법은 승부’다.
이러한 신념으로 단호히 승리의 실증을 나타냈다. 앞으로도 악구매리 따위 날려버리고 승리로 단단한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이것이 ‘입정안국’의 왕도(王道)다. ‘광선유포’의 대도(大道)다.
가득한 생명으로
지금 사회는 인간의 미덕을 바라고 있다. 일하는 능력뿐 아니라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어떻게 도전해 가치를 창조할지 묻는다.
그렇기 때문에 끝까지 참고 견뎌야 한다. 이를 악물고 한 걸음 또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 수밖에 없다. 불굴의 투혼으로 승리해야 한다.
젊음에는 희망이 있고 미래가 있다. 무한한 힘이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힘껏 노력할 때 그 가능성을 열고 자신의 벽을 부숴 비약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최극의 신념인 신앙이 있다.
강성한 기원으로 일어서라! 제목은 사자후(師子吼)와 같다. 펑펑 용기가 솟고 가득한 생명력이 넘친다.
자, 드디어 이제부터다! 우리는 인간 속으로, 민중 속으로 씩씩하게 뛰어들어 성실을 무기로 승리해야 한다.
새로운 하루, 새로운 도전,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는 무대로 뛰어나가자.
불굴의 투혼 명랑하게!
지지 말라고
오늘도 기원하노라
우리 벗의
불굴의 힘과
상쾌한 승리를
수필 민중개가의 대행진 (21) 불굴의 투혼 명랑하게.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