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5일 성 김 대건 안드레아 신부 대축일 가정미사 후, 남편 요한이 성모님
상 앞에 초를 보며 신기한 것이 생겼다고 사진을 찍어 카페에 글을 올렸습니다.
천사의 날개를 연상시키는 초를 보니, 결코 우연이 아니라 28년 만에
주님께서 주신 응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친정은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천주교 신자셨다고 합니다.
누구보다 저의 할아버지께서는 자녀들의 배우자 선택에 있어서,
세속적 배경보다 우선 천주교 신자여야 된다는 것이 제일 먼저이신
신실한 믿음을 가기고 계셨습니다.
할아버지의 믿음 덕에 모두 성당에서 혼배성사를 받았고, 신자가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저희 집은 서울 양재동 성당에 다녔습니다.
어머니가 열심 하셔서 저희도 성당 마당에서 늘 지냈던 기억이 많이 납니다.
특히 성당을 다니면서 좋았던 것은 송 광섭 신부님께서 찬양에 관심이 많으셔서
모든 연령층에 걸쳐 성가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당에 가면 늘 찬양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 시절은 너무나 행복했고, 모든 것이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하던 시간들이였습니다.
아직도 그 때 성당을 오가며 무심코 보았던 하늘과 구름이 기억이 날
정도이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한국 천주교 역사에 큰 축복이 내립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방문하셔서,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식을
해 주시는 경사를 맞이하게 됩니다.
잘은 모르지만 각 본당에서 교황님께 세례를 받을 대표를 뽑았고,
시성식 전에 복자 김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유해가 전국 각지를 돌며
가정 미사를 하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어떤 경위로 저희 집이 뽑혔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워낙 큰 본당이라,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아마도 신심 깊은 어머니를 잘 보아 주셨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결정된 날 부터 긴장하셨고, 모두들 축하한다고 인사를 해주셨습니다.
집이 작은데 모두들 들어오실 수 있는지 걱정도 하시면서 너무 행복해 하셨습니다.
하지만 악은 늘 우리를 주님 곁에 머물 수 있도록 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돌변하셔서 어머니를 매일 괴롭히기 시작하셨습니다.
이유는, 죽은 남의 제사를 왜 우리 집에서 지내냐며 절대 할 수 없다고
반대를 하시는 겁니다.
다시 기억해 보아도 아버지의 반대는 도를 넘어서는 것 이였습니다.
매일 밤 부부 싸움을 하셨고, 그것을 지켜봐야 했던 우린 너무 지옥 같은
순간 이였습니다.
결국에는 견디지 못하시고 어머니는 포기를 하시게 됩니다.
지금 생각하면, 악의 방해에 굴복 하신 것이지요.
하지만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악의 방해에 굴복한 인간은 하느님의 노여움을 깊게 사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에덴동산에서 쫓겨 난 것처럼,
주님의 진노를 산 저희 가정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그리고 고통 속에 지내게 됩니다.
<임신부님과의 만남까지의 이야기를 적으려니, 글이 길어져 나누어 써보려고 합니다. 다음 편에서 다시 뵐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