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
세상의 구비를 수 십겹 넘어서고 보면, 덤덤하면서도 옛 정은 그대로 인것같다.
요즘은 세상이 편리해져 핸드폰으로 서로 얼굴을 보면서 애기를 나눌 수 있다.
남편의 누님은(큰 시누이) 올해로 연세가 아흔 여섯되신다. 병원에서 돌아가시겠다고 연락이와서
아이들 데리고 가 뵙고 얼마를 지났는데, 퇴원을 해 시골 막내 딸 한테 가 계신다고 한다.
오직 아들 하나 얻기를 지극정성으로 빌어 다행하게도 아들 하나를 얻으셨다. 그 아들이 머리도 좋아 공부도 잘하고
장가들어 손주도 둘씩이나 보고, 미국에서 좋은 대학에 며느리까지 교수로 재직중이다.
그 귀한 아들이 어머니를 얼마나 정성스럽게 간호를 했는지, 돌아가시겠다는 양반이 이제는 아주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신다.
효자 아들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요즘은 노치원(노인들 다니시는 돌봄 쎈터)에 다니시면서, 남편과 화상 통화를 하신다.
빨간 부라우스에 머리를 곱게 빗고 합죽하게 웃으시면서
" 아이고 동상 잘 지내는가? 얼굴이 좋아뵈여"
" 네, 아픈데는 없으시지요?"
" 나는 잘 지내고있어 밥 잘먹고 노치원에잘 다니고 아주 재미져"
" 네에, 다행이예요"
어릴때 큰 누님은 날 업어키웠다고 늘 추억한다. 누님은 옛날 야학에 다니셨는데, 산 하나를 넘어서 학교가 있기 때문에
매일 산을 넘어서 학교를 다녀야 했다. 공부 마치면 늦은 밤이된단다. 산 을 넘어올때면 산 짐승 울음소리 들리면
우리누나 무서워서 어떻게해 엄마 누나 마중가자고 짐승들이 우리누나 해치면 어떻게하냐고 조르다가 잠이들곤 했단다.
일제강점기 처녀공출(위안부)로 끌려간다고 16세에 결혼을 시키고, 시집갈적에 이 철없는 동생은 누나 어디가냐고 누나가면 안된다고 붙들고 울었단다.
이런 누님이니 이제 서로 늙어가니 애뜻함이 더 할 수밖에, 남편이 기운없어 시무룩하면 누님한테 전화드리라고 한다.
통화 할 때보면, 늘 같은 말이건만 두 분은 재미있어 얼굴에 웃음이 환 하시다.
조카는 우리더러 놀러오시라 하지만, 대추밭을 크게 하는 농장이기도 하고, 남편도 예전같지않아 나서기가 쉽지않다.
이렇게라도 두 분이서 오래오래 서로 늘 즐거워 하시면서 사셨으면 한다.
첫댓글 원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