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9 - 에스떼야.

[이경우]

@ 2022년 4월 15일 금요일, 오후 맑음.

에스떼야(리사라 Lizarra)는 볼 것도 많고 즐길 것도 많은 인구 2만 여명의 활기찬 도시다. 괜찮은 부대시설이 다 갖추어져 있을 정도로 충분히 크면서도 멋진 역사적인 건물, 박물관, 흥미로운 교회, 다양한 식당과 카페들을 쉽게 돌아볼 수 있을 만큼 적당히 작다.

먼저 주린 배를 채우기로 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숙소는 오래된 분수를 갖고 있는 아늑한 산티아고 광장에 있다. 주변에는 다양하고 저렴한 식당, 카페, 호텔들이 거리 주변에 모여 있다. 두리번거려 식당을 찾았다.

숙소 가까이에 있는 Bar Lizarra 식당으로 들어간다. 식당 앞에는 사람들이 많이 보여서 들어갔다.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는 오래되고 유명한 식당인 것 같다. 순례자 메뉴를 주문했다.

전식으로 아스파라거스가 들어있는 샐러드, 그리고 주 메뉴로 소갈비구이, 그리고 후식으로 요플레를 주문했다. 친절하고, 풍성하고 맛있는 식사였다. 식사비는 25유로로 제법 비싸다. 음식 받침 종이를 먼저 주는데 인상적인 그림이 인쇄된 것이다.

알고 보니 피카소의 그림이란다. 기념으로 새로 한 장을 얻어 나왔다. 거리의 기온은 23℃를 나타내고 있다. 골목길을 걸어서 우체국이 있는 광장으로 간다. 광장 맞은편에는 버스 터미널 건물이 있다. 광장은 현대식으로 이동하는 사람들도 많다.

젊은이들이 많이 보여 싱싱해 보이는 도시다. 흰색 꽃나무가 줄지어 선 거리를 걸어서 시청 건물을 보며 걸어간다. 건너편 작은 공원에 동상이 있다. ‘Monumento al Auroro’ 동상이다. 모자를 쓴 중년(Adriano Juaniz)이 왼손에 등을 들고 오른손에 종을 들고 있는 모양이다.

새벽에 기도 송을 부르는데 헌신했던 사람, 나바라 지방의 유명한 사람이란다. 동상 아래 여러 가지 부조가 만들어져 있는데 설명을 듣자 면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 자세한 이야기는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데, 모르니 답답하다.

다리를 건너 산 마틴 광장(San Martin Square)으로 간다. 광장에는 사자 모양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분수(Lions Fountain)가 있다. 구 시청사는 관광정보센터로 이용되고 있는데 건물 정면에는 똑같은 문장이 두 개 붙어있다.

그 옆에는 아름다운 12세기 건축물인 ‘나바르 왕들의 궁전’이 있다. 현재는 박물관이자 아트 갤러리다. 이 박물관에는 이 지역의 역사적인 사건과 유물들이 전시되어있다. 특히 유태인 공동체에 관한 문서도 있고 당시 종교재판의 모습도 남아있다.

기념물이 많기 때문에 북쪽의 똘레도라고도 불리는 쌍둥이 도시 에스떼야, 1090년 산초 라미레스 왕이 에가 강가에 만든 계획도시였다. 에스떼야에는 바스크인, 유대인, 프랑스인 등 여러 인종이 모여 살았다.

과거 나바라의 왕은 왕위를 받을 때 에스떼야의 성당에서 선서를 했으며 에스떼야의 로마네스크 양식 궁전에서 살았다. 14세기에 유대인들을 학살한 잔인한 사건의 배경이 되기도 했으며, 까를리스따 전쟁 동안 비운의 왕자 돈 까를로스가 왕이 되길 바라는 추종자들의 본거지였다.

프랑스 도시와 닮은꼴 도시 에스떼야는 나바라에 있는 작은 프랑스라고도 불린다. 이 도시는 특히 산티아고까지 가는 프랑스 길의 또 다른 시작점인 르 퓌(Le Puy)와 닮은 점이 매우 많다.

두 도시에 모두 뿌이의 성모에게 봉헌된 성당이 언덕 위에 있고 성당에 모셔진 성모상의 피부도 모두 검으며, 두 도시의 수호성인도 모두 성 안드레아다. 비슷하게 생긴 강의 구부러진 곳에 도시가 자리 잡고 있다.

게다가 두 도시의 평면도를 거울에 비친 것처럼 반대로 뒤집어서 겹쳐놓으면 도시의 배치가 똑같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11, 12세기에 프랑스의 인구가 늘어나자 베즐레이 사람들이 이곳 에스떼야에 정착했으며 고향을 그리워하여 르 퓌와 비슷하게 에스떼야를 발전시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산티아고 순례 길의 엄청난 가능성을 깨달은 산초 라미레즈는 1090년 강 건너편에 프랑스인 순례자 정착민을 위해 리사라(Lizarra 바스크어로 별)라는 이름의 자치구를 만들었다. 이곳은 나중에 은하수, 혹은 콤포스텔라로 가는 ‘별의 길’과 연결지어 ‘에스테야(스페인 말로 별)’라는 지명을 갖게 되었다.

순례길이 지나는 다른 지역에서처럼 공인들은 기술을 가지고 돌아오는 것이 권장되었다. 석공들과 예술가들이 유입되었고, 바로 이들이 오늘날 우리가 경탄하고 또 유용하게 사용하는 아름다운 건물, 유적, 다리, 병원, 대성당 등을 만들었다.

하지만 언제나 존재했던 인간의 본성인 질투와 탐욕은 마찰과 전쟁, 무자비한 살육을 가져왔다. 1266년에 서로 다른 자치구가 하나의 마을로 통합된 것은 분란의 끝이 아니었다. 번성하던 유태인 공동체가 14세기에 축출되었고, 산 페드로 성당 곁에 있던 성이 파괴되었으며 아름다운 로마네스크 양식 회랑의 양 벽도 부서졌다.

지난 세기까지만 해도 페르디난드 왕의 계승자와 갈등 관계에 있는 카를리스트(카를로스주의자, 돈 카를로스의 스페인 왕위 계승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본거지 중 한 곳으로서, ‘왕당파 마을’이라는 평판을 얻고 있었다. 오늘날, 불같은 나바르인들의 성미를 식혀주던 재판소는 이제 시청으로 사용되고 있다가 지금은 관광안내소 겸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산 마틴 광장에 있다. 고집스럽게 보이는 오래된 건물들이 그동안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오른쪽에 있는 산 페드로 성당을 올라간다. 계단의 경사가 급하고 제법 길다. 성당 정면의 파사드 특히 출입구가 멋지다.

12세기 후반에 세워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견고한 성당으로 들어간다. 미사 중이다. 조용히 뒤에 서서 성당 내부를 구경한다. ‘순례자여 기뻐하라’라는 한글판 기도문이 눈에 들어온다.

1.순례 길에서 눈이 열려 보이지 않은 것도 보게 되었음을 그대가 알게 되었으니~ 2. 결과에만 집착하지 말고 다른 이와 함께 가는 곳에 그대가 마음을 두었으니~ 3. 길에서 명상에 잠겨가며 많은 이름들과 뜨는 해를 수도 없이 보게 되었으니~ 4. 감사의 말을 할 수 없을 만큼 가는 길마다 그대가 놀라워할지니~ 5. 길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되는 것을 알았으니~ 6. 너의 가방이 비워지면 너의 마음은 그 감동을 어디에 두어야할지 모를 감격을 갖게 될 것이니~ 7. 누군가 도우러 가는 한 걸음이 앞만 보고 가는 천 걸음보다 더 값진 것임을 알았으니~ 8. 진심을 갖고 진리의 길을 걸으며 생명이신 그분을 찾아 나선 순례자가 되었으니~ 9. 순례 길에서 그대 자신과 그대 가슴속 모습을 온전히 간직하게 되었으니~ 10. 길에서 그대를 기다리는 하나님의 충만한 침묵의 기도를 그대가 알았으니~ 기뻐하라 순례자여. 대충 이런 내용이다.

밖으로 나온다. 내려다보이는 시내가 참 멋지다. 뒤로 가기위해서는 다시 층계를 내려와 왼쪽 길로 꺾어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골목길로 가야한다. 아무도 없다 조용하다.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바로 성당 뒤편으로 나온다.

작은 문을 통해 성당 정원으로 들어간다. 회랑이 4각형으로 있는 작은 정원이 나온다. 입구 쪽 회랑 기둥이 하나 뒤틀려 세워져 있다. 특이하다. 중앙에는 분수가 나올 것 같은 수반이 하나 있다. 한 바퀴 돌아본다. 유물도 보이고 석관도 보인다.

출구를 통해 나오니 바로 위에 터널이 있고 도로에는 차들이 지나간다. 머리 위에는 정상에 십자가(Cruz De Los Castillos / Gazteluen gurutzea)가 세워진 돌산이 있다. 올라가려니 다리가 아프다. 그냥 올려다본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산 마틴 광장을 끼고 골목길을 간다. 순례자 메뉴 식당(Bar Carmen)이 있다. 한글 간판이 보인다. 아침식사 7:00, 빵과 커피 사진이 보인다. 내일 아침에 기회가 된다면 여기서 먹고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골목길 끝에서 오른쪽으로 교회 유적이 보인다.

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수도원(Monasterio Santo Domingo) 건물인데 문이 굳게 닫혀있다. 외진 이곳에는 남녀 청소년 둘이 앉아서 데이트 중이다. 조용하고 전망 좋은 아늑한 장소다. 그 앞에 있는 종탑이 하나 보이는 성당으로 돌아간다.

작은 성당(Iglesia Santa Maria Jus del Castillo)이다. 유대인 지구가 있던 곳에 세워져 처음에는 회당이 아니었나 간주되는 곳이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내부 구조가 단순, 깔끔한 것이 유대인 회당과 비슷하다. 둥근 샹들리에가 인상적이다.

성당을 나와 맞은편 언덕에 올라 성당을 사진에 담았다. 언덕에는 이름모를 무섭게 생긴 꽃이 보인다. 강 건너편에 성당(San Miguel)이 보인다. 다시 내려와 처음에 건너왔던 죄수의 다리(Prison Bridge)를 찾아간다.

카르젤 다리를 왜 죄수의 다리라고 할까? 아는 사람 알려주세요. 강에서 보니 다리가 제법 높다. 골목길을 걸어서 오른쪽에 있는 산 미구엘 성당으로 간다. 계단을 올라 왼쪽으로 틀어가니 언덕 광장이 나오고 그 뒤로 성당이 등장한다.

광장에는 분수도 있다. 정면 입구의 둥근 파사드가 멋지다. 무겁게 느껴진다. 여기도 예배중이다. 맞은편 산 페드로 성당이 마주보여 반갑다. 오래된 올리브 나무가 예루살렘 겟세마네 동산을 생각나게 한다.

여기서 북쪽으로 더 걸어가면 에스떼야 뿌이 성당(Santuario de El Puy)이 있다. 1085년에 발견한 성모상이 있다. 목동들이 불렀다는 ‘찔레나무, 가시나무, 엉겅퀴 사이에서’라는 가사인데, 이는 기록에도 남아 있으며 에스떼야 지방의 축제에서 부르는 민요에서도 이 내용이 담겨 있다.

1640년경 한 도둑이 뿌이 성당에 침입하여 성모의 보석, 옷, 값 나가는 물건 등을 훔쳤다. 도둑은 밤새도록 지칠 때까지 도망을 갔는데, 동이 터 정신을 차려보니 성당 문 앞이었다. 도둑은 밤새도록 성당 주변을 뱅뱅 돈 것이다.

도둑은 즉시 체포되어 손이 잘리는 벌을 받았고, 잘린 손은 성당 입구의 나무 기둥에 매달았다. 훗날 나무기둥은 돌기둥으로 대체되었고 잘라진 손 대신 라틴어 문구가 새겨졌다.

이 성당 뒤편에는 첫 번째 까를리스따 전쟁이 끝나갈 무렵 평화안에 찬성하지 않은 까를리스따의 장군 다섯 명이 마로또에 의해 총살당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걷기에 너무 다리가 아파서 그냥 돌아 내려온다.

마르틴 광장을 가기 위해 건넜던 다리(The Azucarero Bridge)를 다시 건넌다. 아치모양이 있는 다리다, 강 아래 자갈 강변에는 사람들이 앉아서 쉬고 있다. 숙소 방향으로 돌아온다.

유명한 저택이라는 The Munarriz Family House(Palacio de los Munarriz)를 만났다. 오래된 유적 같은 집이다. 테라스가 조개 모양이다.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중앙 광장인 푸에로스 광장(Plaza de los Fueros)으로 간다.

카페가 잔뜩 있는 떠들썩한 광장이다. 맞은편에는 커다란 성당, 산 후안 바우티스타 성당(San Juan Bautista Church)이 보인다. 꼬마들부터 다양한 사람들이 광장에 가득하다. 이 도시 사람들 모두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일단 숙소로 돌와왔다.

물을 사야할 것 같아서 마켓을 찾아간다. 르카프 익스프레스 마트를 찾았다. 물(0.49유로) 과 쥬스(0.99유로)를 샀다.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니 길이 막혀 있다. 다시 슈퍼 앞으로 해서 숙소로 왔다. 저녁이다.

저녁에는 중앙 광장에서 축제행렬이 있다고 해서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 마침 모든 준비가 끝나고 시작하는 것 같다. 축제 행렬은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에서 죽으심 그리고 무덤에 묻히고 부활하심까지 장면별로 만들어져 음악과 함께 행진한다.

커다란 상여를 맨 것 같은 모양세다. 가신관, 채찍, 사다리를 들고 가는 어린 소녀들이 예쁘다. 사다리는 무슨 의미일까? 로마 병정으로 분장한 꼬마도 귀엽다. 트럼펫을 앞 세운 관악기 합주단이 연주하며 행진한다.

1993년부터 시작된 행렬이란다. 장면을 어깨에 맨 어른들의 분장도 무거워보인다. 구경하는 인파들과 더불어 광장이 가득하다. 어둠이 함께 온다. 숙소로 돌아왔다. 발이 아프다. 오른쪽 발목이 부었다. 물집이 생겨 발이 엉망이다.

바세린을 바르고 발가락 양말을 신고 출발해야한다고 알려준다. 내일 아침에는 바세린이 없으니 갖고 온 니베아 크림을 바르고 양말을 신어야겠다.

걱정이다. 나를 걷게 해주고, 이 세상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다리다. 그동안 너무 무심했던 것 같다. 다리야 수고했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