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근 칼럼] '우리들의 블루스'와 서툰 사랑 이야기
2022-05-18 12:50 수정 2022-05-18 12:50
TV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화제다. 제주의 멋진 풍광을 배경으로 갖가지 삶의 모습이 옴니버스 이야기로 펼쳐진다. 화면에는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군상이 모여든다. 변화무쌍한 제주의 바다만큼 이들의 삶도 각양각색이다.
생선 장사로 동생들 뒷바라지하면서 정작 자기 삶은 돌보지 못한 은희, 골프선수 딸을 위해 무엇이든 해주고 싶어 옛사랑을 빌미로 돈을 구하려는 한수, 둘도 없는 절친이었지만 스치듯 지나가는 말에 상처를 받아 앙숙이 돼 버린 호식과 인권, 아빠들의 사이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연애에 진심을 다하는 영주와 현, 문득 제주를 찾아와 해녀가 되겠다며 젊은 선장 정준의 마음을 휘저어놓는 영옥, 우울증 때문에 아들을 남겨두고 고향에 돌아온 선아와 그 곁을 지키는 만물상 동석, 몹쓸 병에 걸렸지만 나 몰라라 하는 아들의 원망을 가슴에 안고 마지막 삶을 견디는 옥동….
이들은 줄곧 머물거나, 떠났거나, 돌아오거나, 끼어드는 방식으로 제주와 관계를 맺는다. 제주라는 섬은 이들의 삶을 통해 기억이 되고, 현재가 된다. 칡덩굴처럼 얽히고설킨 상처의 기억은 현재의 비환(悲歡)을 만들어낸다. 엮일 듯 풀릴 듯 이어지는 삶의 이합(離合)은 제주의 내일을 스케치한다. 그렇게 제주는 섬이자, 공동체이자, 우리 삶의 축소판이 된다.
이들은 상처와 고통, 우울과 절망, 분노와 복수의 개인사가 겹겹이 쌓인 흔적 위에서 삶을 시작하지만, 바로 거기서 우정과 의리, 위로와 도움, 돌봄과 배려를 싹틔운다. 드라마는 이들의 삶을 개인의 층위에만 묻어두지 않고, 기러기 아빠, 청소년 임신, 도박과 가정파탄 등 사회적 의제를 가져와 버무린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사랑에 서툴다. 첫사랑과의 재회에는 돈이라는 현실이 끼어들고, 금가 버린 우정은 어긋난 소통의 깊은 상처로 남고, 규범을 벗어난 임신으로 얻은 생명을 어떻게 다룰지 몰라 고민하며, 엄마에 대한 미움과 분노를 치유 받지 못하면서도 자신의 상대는 지켜주려고 온 힘을 다한다.
이야기는 사랑이 낭만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웅변한다. 사랑은 장밋빛도 아니고, 달콤한 사탕도 아니고, 꿈같은 환상도 아니다. 사랑은 우왕좌왕하며, 사랑은 좌충우돌하며, 사랑은 지리멸렬하며, 사랑은 횡설수설하며, 사랑은 얼룰덜룩하다. 여기에 사랑이라는 말 대신 삶, 관계란 말을 넣어도 똑같다.
사랑은 타자에게 가까이 가려는 주체의 몸짓이자 마음이다. 이들은, 아니 우리는 '사랑학개론'을 모두 수료하고 삶에 뛰어든 게 아니다. 사랑은 주체와 타자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현장에서 풀어가야만 하는 복잡한 과제다. 관계에 대해 한 번도 선행학습을 해 보지 못한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내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야만 한다. 숨겨진 정답은 어디에도 없다.
드라마는 중년의 가수 최성수가 불렀던 노래, '위스키 온더락'을 멋지게 발굴했다. "아름다운 것도 즐겁다는 것도 모두 다 욕심일 뿐. 다만 혼자서 살아가는 게 두려워서 하는 얘기"라는 가사는 바로 사랑과 관계로 형상화된 우리 삶에 대한 촌철살인이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명언을 남겼던 작가 노희경은 이제 판결자의 위치에서 내려와 왜 우리가 사랑하지 않는지, 우리의 사랑이 어째서 이렇게 서툰지, 우리가 죄를 짓지 않으려고 얼마나 발버둥 치면서 사는지… '우리들의 블루스'를 통해 뭉클하게 보여주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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