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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사찰제보 스크랩 윤장대가 있어 유명한 예천 용문사
靑光 추천 0 조회 66 13.12.27 11:1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윤장대가 있어 유명한 예천 용문사

 

 

일제 강점기 때의 용문사

 

 

우리나라에는 신라때 만들어진  3대 용문사가 있다. 용의 머리부분인 경기도 양평의 용문사, 용의 꼬리에 해당되는 경남 남해의 용문사, 그리고 용의 심장이라고 일컫는 경북 예천 용문사 이렇게 3곳이다.

 

그 중에서도 예천 용문사는 용의 심장에 해당되는 곳에 위치하며 고즈넉함과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조용한 가람이며, 특히 전국 사찰에서 오로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원형의 윤장대(輪藏臺,보물 684호)가 있어 유명한 사찰이다.

 

예천 용문사(龍門寺)는 신라 경문왕 10년(870년)에 두운(杜雲)선사에 의해 창건된 천년고찰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신라를 정벌하러 내려가다 두운의 이름을 듣고 이 사찰을 찾았으나 운무가 자욱해 지척을 분간치 못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청룡 두 마리가 나타나 길을 인도하였다하여 용문사라 불렀다고 한다.

 

 

 

두운선사가 살았던 때는 신라 말로 궁예, 견훤이 삼국을 나눠 쟁패를 다투던 때다.

궁예의 휘하에 있던 왕건은 후백제를 정벌하던 중 이 곳을 찾았고 용을 만났다는 것은 이 지역이 왕건에게 우호적이었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 된다.

두운선사와 고려 태조와의 만남 이후 용문사는 고려왕실의 후원을 받으며 크게 성장했는데, 명종 때는 절의 왼쪽 봉우리에 세자(世子)의 태(胎)를 안치한 것을 기념하여 창기사(昌期寺)로 개명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도 역시 왕실의 대접을 많이 받았는데, 조선 세종대왕의 비 소헌왕후의 태실을 봉안한 뒤 '성불사 '로 다시 고쳤고, 정조 때 문효세자의 태실을 이곳에 쓰고 난 뒤 '소백산 용문사'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용문사는 수양대군인 세조와도 인연이 있다. 세조는 용문사의 잡역을 면해주라는 명을 내렸는데 그 교지가 현재 보물 제729호로 지정돼 용문사 성보박물관에 보관 전시되어 있다.

 

용문사는 한때 '영남제일강원'으로 불릴 만큼 세가 큰 사찰이었다. 많은 학승들이 용문사에와서 공부를 하였다고 하나 세월이 지나면서 외져있는 위치성과 화재로 인해 사찰의 세가 크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일주문

 

회전문

 

소백산 용문사 현판이 쓰여진 일주문을 지나서 처음 만나는 문이 회전문이다. 회전문은 빙그르르 돌아가는 회전문이 아니라 불교의 윤회사상을 담고 있는 윤회전생(輪廻轉生)에서 온 말로 문의 이름일 뿐이다

 

 

해운루

 회전문을 지나고 이 해운루를 통과하여 계단을 올라서면 정면으로 보광명전을 만나게 된다

 

 보광명전

 

극락보전

 

회전문을 지나 계단을 올라 해운루 누각을 지나면 1984년 화재로 불탔다가 복원된 보광명전이 있고 보명광전 뒤에 한 단 높은 곳에는 극락보전이 있다

보광명전 옆에는 용문사 보물 중의 보물인 대장전이 있다. 대장전은 고려 명종 3년(1173)에 세워진 건물로서 1984년 사찰을 휘감았던 화마를 용케도 피한, 용문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왼쪽기둥 뻘목 위의 귀면                                                     오른쪽기둥 뻘목 위의 귀면

 

 

대장전이 1984년에 일어난 화재의 불길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외벽에 치장된 귀면(鬼面)과 물고기 조각, 용 조각 등이 불막이를 제대로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른쪽 문 위에는 있는 도깨비가 물고기를 물고 있는 모양의 조각이 있다. 즉 이 도깨비가 화마를 피해주었다는 것이다.

머리에 2개의뿔이 있고 송곳니를 드려낸 모습이 용과 비슷하여 용으로 인식하기 쉬우나 용이 아니고 잡귀나 화마로부터 부처님과 법당을 지킨다는 벽사의 의미를 지닌 귀면이다

 

 

대장전

 

일제강점기의 대장전

※ 일제시대 고적사진에는 거의 대부분 사람이 찍혀 있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대상물의 크기를 사람과 비교하여 보라는 의미로 함께 찍는 것이다

 

 

대장전(大藏殿)-보물 145호

 

고려시대 명종 3년(1173년)에 건축된 것으로 알려진 대장전은 조선 현종 11년(1670년)에 수리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수리가 되었다.

건물의 이름처럼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지었다는 대장전은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 건물로 추정되어 한때 국보 제243호로 지정되기도 했다가 이후 조선시대의 건물로 밝혀짐에 따라 1963년도에 보물 제145호로 변경 지정되었다. .

 

대장전의 옆면 구조

 

대장전의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의 건물로서 규모는 작으나 뛰어난 조각 솜씨와 조선 중기의 건축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는 건물이다

건물의 모서리 부분에는 용머리, 연꽃 봉오리와 같은 조각을 해 놓았고, 건물 내부에는 더욱 화려한 장식을 하여 당시의 정교한 조각과 장식 솜씨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우물천장의 그림

 

 

 

 

 대장전 내부에 있는 각종 용 조각

 

대장전 안에는 용문사라는 절의 이름 때문인지 용새김 장식물이 매우 많다. 대장전 내부뿐 아니라 바깥에도 창방 위의 뻘목에 용머리 장식이 있다.

 

 

원숭이상(?)

 

 

대장전 내부, 윤장대의 뒷쪽 창방 위에 뾰족이 나와 있는 동물 형태의 목조각인데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원숭이를 무척 닮았다.

불교 건축물에서 원숭이가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가 흔히 '도편수(목수)의 돈을 떼먹고 도망가 고통을 받고 있는 술집여인'이라고 알고 있는 강화도 전등사의 나부상도  전설일뿐  사실은 원숭이상이다. 속리산 법주사 팔상전의 2층 전각 네모서리에도 도깨비를 닮은 원숭이상이 있으며 법주사 지하 전시실에는 대웅전 앞 계단 위에 놓여 있던 두 마리의 석조 원숭이상이 있다

뿐만 아니라 경주 불국사 대웅전 안에도 법경대를 쥐고 있는 원숭이상이 있고, 경산 환성사의 수미단에도 부조의 원숭이상이 3면을 장식하고 있다.

권중서 조계종 전문포교사의 말에 의하면,  원숭이상은 주로 대웅전에서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전생에 원숭이의 왕이셨던 석가모니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한없는 공경의 뜻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본다면 대장전 내부에 있는 이 목조상도 원숭이로 생각된다

 

 

     경산 황성사 수미단의 원숭이                                강화도 전등사 귀공포의 원숭이

 

 

 

 

대장전의 지붕 앞면 숫기와 위에는 사기로 만들어진 4개의 연봉오리 같은 것이 덮여 있는데 용도가 궁금하다.  문화해설사의 말이 의하면 기와가 쳐지지 않도록 대못을 쳤는데 그 못머리를 감추기 위하여 덮어둔 것이라고 하지만 신빙성이 적다

 

 

우리나라 윤장대와 같은 티벳트의 마니차

 

대장전 안에는 티벳트의 마니차와 같은 역할을 하는 윤장대(보물 684호)가 좌우에 한 개씩 있다.

티벳트 사람들은 내부에 불교 경전을 넣거나 겉면에 불경을 새긴 마니차를 돌리며 마니차를 돌릴 때마다 경문을 한 번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을 쌓는다고 여긴다고 한다. 글을 읽지 못하는 민중들을 위한 배려였을 것이다

 

 

용문사의 윤장대

 

 

윤장대(輪藏臺)-보물 684호

 

대장전 안에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팔각기둥 모양으로 만든 나무 기둥 안에 대장경전을 넣고 돌리며 예불을 보는 불교 의식품으로, 손잡이를 돌리면서 극락정토를 기원하는 의례를 행할 때 쓰던 도구이다. 
내부에 불경을 보관해 둔 이것의 역할은 부처님의 말씀을 온 세상에 퍼지게 하는 것과 경전이 꽂혀 있는 윤장대를 돌리기만 해도 경전 만권을 읽은 것과 같아 번뇌가 소멸되고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하며 글을 몰라 경전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즉 사람들이 이것을 돌리면 불경을 읽는 효과를 얻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왼쪽의 윤장대-꽃무늬창살                                        오른쪽의 윤장대-빗살무늬창살

 

 

윤장대의 규모는 높이 4.2m, 둘레 3.3m로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장전 협칸 불단 좌우측에 각각 1좌씩 설치되어 있으며 화려한 팔각정자 형태로서 크기나 모양은 동일하나 창호의 형태에서 차이를 두었다.  

 

불상을 바라보고 서서 오른쪽 윤장대는 팔면의 몸체에 속이 환히 보이는 빗살무늬 창살의 문 구조물을 달아 단아하고 단순한 아름다움을,  왼쪽의 윤장대는 각기 다른 꽃무늬 창살을 달아 화려한 불교 장엄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특히 좌측 윤장대에 조성된 꽃살문은 우리나라 고건축에 새겨진 꽃살문 중 가장 아름다운 것 중의 하나로 꼽히는데 그 중 연꽃이 조각된 면의 무늬는 영주 성혈사 나한전의 어간문에 새겨진 꽃창살과 너무도 흡사하다
문을 열면 8면에 서가처럼 단이 만들어져 경전을 꺼내볼 수 있다.

 

윤장대는 마루 밑에 회전축의 기초를 놓고 윤장대를 올려놓았으며, 지붕 끝을 건물 천장에 연결하였다.

아래부분은 팽이모양으로 뾰족하게 깎아 잘 돌아갈 수 있도록 하였고, 난간을 두른 받침을 올린 후 8각의 집모양을 얹었다. 8각의 집모양에는 모서리에 기둥을 세우고 각 면마다 8개의 문을 달았다.
8각형 모양의 특이한 구조수법이 돋보이는 국내 유일의 윤장대로, 경전의 보관처인 동시에 신앙의 대상이 되는 귀한 불교 공예품으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원형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윤장대(輪藏臺)이다

 

                                 윤장대의 구조                                             박물관 있는 윤장대 모형       

 

 

1972년 대장전 건물 수리시 발견된 중수상량문(高麗 毅宗19年:1165)에 윤장대를 설치한 연유를

‘인도의 고승이 대장경을 용궁에 소장하였다’는 고사에 유래를 두고 있으며, 용의 전설이 있는 용문사에 윤장대를 설치하여 국태민안을 기원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이곳에서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많은 법회가 열린 것으로 보아도 용문사가 호국사찰(護國寺刹)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 윤장대가 여기에 설치된 이유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대장전 중건시 두운(杜雲)대사가 제자 자암(資嚴)을 시켜 건물과 윤장대 2좌(座)를 당삼칸(堂三間)에 설치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윤장대 내부에 천계(天啓) 원년(元年, 1621년) 중수(重修)라는 묵서(墨書)가 남아있다.

 

 

빗살무늬창 안에 보이는 대장경

 

 

윤장대의 구성은 하대, 몸체부 및 옥개부로 구분되는데, 중앙에 원형의 찰주(擦柱)을 세우고 기둥하부는 돌둔테에 끼워 윤장대가 회전할 수 있도록 하였고 윤장대를 돌릴 수 있도록 손잡이를 설치하였다.

난간 아래부분인 하대는 기둥하부에 판재를 둔테 쪽으로 경사지게 붙이고 연꽃을 조각해 두어 마치 팽이모양과 같으며, 몸체부는 8각으로 평면을 짜고 기둥을 세워 창호를 설치하였다. 몸체부의 바닥에는 풍혈청판과 계자각이 설치된 난간을 두었으나 파손된 부분이 많아 복원을 하여 되살렸다.

 

현재 대장전 내에 있는 윤장대는 보존을 위해 고정을 시켜 놓았기 때문에 돌려 볼 수 없으며 대신 용문사 성보박물관에 가면 새로 만든 윤장대를 돌려볼 수 있다

 

윤장대 곳곳에 씌여있는 묵서들

(용문사 불사를 위해 시주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윤장(輪藏)은 전륜장(轉輪藏)의 준 말이며 전관경장(轉關經藏)이라고도 한다. 대장경을 소장해 두는 곳간이란 뜻의 윤장대는 경전을 담는 대층감(大層龕, 서가)의 중심에 돌아가는 기둥을 세워서 8면의 서가를 돌리도록 만들어져 있다.

중국 양나라 쌍림대사 전흡이 처음 만들었다고 전한다. 애초에는 승려들이 경전 등을 보관하며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팽이처럼 회전하는 구조를 꾸몄는데, 후에는 글을 읽지 못하는 중생을 위해 돌리는 것만으로도 경전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가 부여되었다고 한다

 

강화도 전등사의 윤장대

 

 

대장전의 목각후불탱화

 

목각후불탱화(보물 제 989호)

 

대장전의 정면에 있는 삼존불 뒤에는 금칠을 한 목각탱(보물 989호)이 있다. 조선 숙종 10년(1684)에 만든 이 목각탱화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 목각탱은 용문사 내에 있던 대추나무를 판재로 잘라 3조각을 이어 붙인 뒤 조각한 것이라고 한다

 

후불탱화의 외경은 가로 205cm, 세로 261cm, 내경은 가로 198cm, 세로 242cm이며 기본구조는 상하가 긴 사각형이지만 좌우로 구름무늬 광선을 표현한 둥근 모양의 조각을 덧붙여 장엄하게 장식하고 있다.
중앙에 모셔진 아미타불은 얼굴은 앞으로 약간 숙여 사바세계를 굽어 살피듯 평담하게 묘사되어 있고
보상당초문이 새겨진 화려한 키형 광배를 등지고 있다.

본존불 이외의 상(像)들은 상·중·하 3행으로 배치시키고 있다. 가운데줄과 윗줄에는 각각 좌우에 2명의 보살  모두 8명의 보살이 배치되고, 윗줄의 보살 좌우에는 다시 무릎을 꿇고 손을 모은 모습의 2명의 제자를 배치하였다. 아랫줄에는 사천왕상이 본존의 대좌(臺座) 좌우로 2명씩 일렬로 서 있다.

 

보살은 본존불과 동일한 기법을 보여주며, 불과 보살상 사이의 공간에는 구름, 광선 등을 배치하였다했다.

가로 세로 2m가 넘는 크기의 이 조각은 나무에 조각한 것이지만 화려한 금빛으로 도금이 되어 있어 대장전 내부를 환하게 빛내고 있다.  

 

 

삼존목조불상

 

목각탱의 앞면에는 삼존목불좌상이 놓여져 있는데 본존상의 경우 머리에는 반달 모양이 표현되었고, 신체는 둥글며 옷은 두꺼워 신체 윤곽이 드러나지 않는다.
목각탱과 같은 기법으로 동일한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임에는 확실하지만, 목각탱의 불상에 비해 가슴표현이 유기적이며 조각기법에서 조각가의 정성을 엿볼 수 있다.

 

 

목각탱의 윗부분

 

목조탱각 왼쪽 테두리의 명문                                  목조탱각 오른쪽 테두리의 명문 

목각탱화 둘레에는 태극, 범어, 만자 등이 새겨져 있고  명문도 조각되어 있다


목조탱화 하단에 표현된 조성기(造成記)에 의하여 숙종대의 작품이 분명하며, 17세기 후반 조각양식을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므로 역사적 의의가 매우 높은 작품이라고 한다

 

 

자운루

 

자운루

'자비로운 구름-자운(慈雲)'이라는 뜻을 지닌 '자운루'는 대장전 계단을 내려와 마당 아래에 있는 2층 누각이다. 

사적에 의하면 고려 의종 20년(1166)자엄대사가 건립하였으나 조선 명종 16년(1561)에 중창이 있었고 광해군(1621)때 중수를 하였다고 한다. 건축양식으로 보아 조선 중·후기의 기법을 지니고 있으며 장식성이 두드러지지 않는 익공계의 건실한 목구조수법을 지닌 건물로서 불사가 있을 때 법공양 장소로 활용되고 있는 건물이다.
임란왜란 때 승병들의 회담장이었으며, 승속들이 승병들을 돕기 위해 짚신을 만든 신방의 기능을 수행한 호국의 장소이기도 하다.


 

교 지

 

용문사의 불교유물전시관인 성보박물관도 꼭 들려야할 곳 중 하나다.

성보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1층 연건평 247평 규모의 현대식과 전통양식을 혼합한 건물로 전시실과 영상실, 수장고, 학예실 등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전시실엔 용문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탱화와 영정 등 불화류와 불상, 제례의식 도구, 전적류, 기타 유물 등 200여 점이 전시되어 있으며 특히 보물 제684호로 지정돼 있는 국내 유일의 회전식 불경보관대인 윤장대를 실제 모형과 같이 제작, 설치해 놓고 불자들이 직접 돌려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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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의 지정문화재

 

보물 제145호      용문사 대장전(醴泉 龍門寺 大藏殿)     조선

보물  제684호     용문사 윤장대(醴泉 龍門寺 輪藏臺)     고려

보물  제729호     용문사 감역교지(醴泉龍門寺 減役敎旨)    조선

보물 제989-1호   용문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醴泉 龍門寺 木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     조선

보물 제989-2호   용문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醴泉 龍門寺 木刻阿彌陀如來說法像)     조선

보물  제1445호    용문사영산회괘불탱(醴泉龍門寺靈山會掛佛幀)    조선

보물  제1637호    용문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醴泉 龍門寺 木造阿彌陀如來坐像)     조선

보물  제1644호    용문사 천불도(醴泉 龍門寺 千佛圖)    조선

보물 제1330호     용문사팔상탱(醴泉龍門寺八相幀)      조선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349호      예천용문사천불탱(醴泉龍門寺千佛幀)     조선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69호     용문사자운루(龍門寺慈雲樓)     조선

 

 

 

탬플스테이 운영

용문사는 천년고찰의 사찰을 체험할 수 있도록 '템플스테이'도  운영하고 있다. 템플스테이는 사찰에서 직접 머물면서 사찰의 일상생활을 체험하고 한국 불교의 전통 문화와 수행 정신을 체험해보는 프로그램이다.

새벽예불, 사찰예절, 108배, 참선수행, 발우공양, 스님과의 차담, 참선 명상, 연꽃(등) 만들기, 촛불캠프 등 기본적인 수행생활을 체험하고 전통사찰의 전각, 석탑, 부도, 불상, 불화 등 불교 전통 문화에 대한 친밀한 접근과 이해를 얻게 되며, 자연 속에서 어우러져 살아가는 삶의 본래 모습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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