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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설교 2011. 5. 29(주일). 한우리교회
*제목: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본문: 요13:34-35
1. 사랑의 계명을 따라 사는 성도 2. 사랑의 기초 위에 세운 공동체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3.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하나님 말씀: *요13;34-35/ 요일4:7-12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들어가는 말) 지난 용인시복음화 대성회때 처인구지역 국회의원이었던 우제창 의원이 축사를 했습니다. 그분은 독실한 크리스찬이요 장로님이십니다. 우리교회에서도 간증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좋은 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중에서도 ‘함께“라는 단어를 자랑하고 싶습니다.- 함께하기에 사랑할 수 있고, 함께 신앙생활하는 것이며,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참 의미깊은 말로 새겨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특별히 오늘 전가족 초청주일에 예배 가운데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이 최고의 복입니다. 저는 함께 하는 것이 곧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도 늘 제자들과 함께 했습니다. 복음을 전파할 때도, 하나님 나라 말씀을 가르칠 때도, 병든 자를 치료할 때도 그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들을 그만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분문이 기록된 요한복음 13장부터 17장까지는 예수님의 마지막설교요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기전 목요일밤에 있었던 내용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몇 시간 전에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던 내용들입니다.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말씀들입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고 했습니까? 그것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오늘 이 말씀으로 함께 은혜받기 원합니다.
1. 사랑의 계명을 따라 사는 성도/ 사랑이란?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주님은 우리에게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계명은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만큼 중요한 계명입니다.
- 그러나 이 세상은 어떤가? / 말세에 “너는 이것을 알라”...경각심을 가져라! 사도 바울은 말세가 되면 이런 현상이 오니 주의 하라고 말씀합니다. *딤후3;1-5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한 마디로 사랑이 식어져가는 무서운 세태를 보게 됩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사건 사고들..........???? 우리 예수님도 마지막 때가 되면 *마24: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마지막 시대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악한 세상을 이길 힘은 오직 사랑입니다. 이제 이 사랑을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그 사랑을 어떻게 회복해야 합니까? 성경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은 사랑의 본질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요일 3:14-15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라는 말은 사랑의 근원이 예수님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한일서에 그 사랑의 본질을 말하고 있습니다.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나님이 곧 사랑이십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구체적으로 예수님에게서 나타나셨습니다. 그것이 곧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기 원한다면 반드시 예수님을 만나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누구도 진정한 사랑, 참된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우리가 진정 사랑할 때 비로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가 할 수 있는 가장 가치있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배반하는 무리를 끝까지 사랑하셨고 용서하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며 섬길 때에 비로소 세상은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 줄 알게 될 것입니다.
[예화] 성자 코리텐붐 여사이야기. 이미 세상을 떠나셨지만 전 세계가 존경하던 인물인 화란의 유명한 성자 코리텐붐 여사가 있습니다. 그녀는 유대인들을 숨겨두었다가 화근이 되어 독일이 침략했을 때 독일 군인들에게 잡혀서 라벤슨부르크 수용소에서 처참한 감옥 생활을 했습니다. 여자로서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끔찍한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 고통을 이길 수 없었던 언니 베티는 감옥에서 죽었습니다. 코리는 극적으로 살았지만 독일이란 말만 들어도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고통을 느꼈습니다. 독일 국기와 지도만 보아도 온 몸이 아파오는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너무나 어려운 명령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독일인을 사랑하라. 독일을 찾아가 용서의 복음을 선포하라. 독일 사람들을 하나님이 사랑한다고 얘기해라. 독일인들에게 치유의 복음을 전파해라. 용서의 복음을 전파해라.” 도무지 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하나님의 강권하심 때문에 독일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한 번은 그의 집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는데, 그의 설교를 듣고 감동 받았던 사람들이 코리 여사의 손등에 키스하기 위하여 줄을 서서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만큼 한 낯익은 얼굴이 있었습니다. 바로 라벤슨부르크 수용소의 그 간수, 자기 몸에 모질게 고문을 가하던 그 간수, 발가벗겨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주던 바로 그 간수였습니다. 언니가 고통 가운데 죽어가던 그 얼굴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코리 할머니는 그 당시의 감정을 책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 내 피가 거꾸로 용솟음쳐 올랐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외쳤습니다. ‘하나님 저 사람만은 용서할 수 없어요.’ 그 때 하나님께서도 내게 큰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용서해라.’ ‘아니 하나님, 할 수 없어요. 용서할 마음이 생기지 않아요.’ ‘아니다. 코리야 용서해라.’ 그러는 중에 그 사람은 계속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에게 용서할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다. 용서해라. 이것은 나의 명령이다. 용서해라.’ 그 순간 나의 힘으로는 도무지 용서할 수 없었으나 나는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그 간수가 내 앞에 섰을 때 우리는 서로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깜짝 놀라서 뒷걸음질하였는데, 나는 팔을 벌려 그를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하고 고백했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순종할 힘을 나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용서하는 능력과 함께 깊은 평화, 하나님의 더욱 놀라운 임재를 경험했습니다.“
2. 사랑의 기초 위에 세운 공동체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예수님께서는 친히 어떻게 사랑하는가를 보여 주심으로써 새로운 공동체의 창시자이자 기초가 되셨습니다. 사랑만이 하나님을 증거 하는 것이며, 사랑할 때에만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 것을 보여 줍니다. 그 사랑은 주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며, 우리가 사랑하고자 할 때 그분은 사랑할 힘을 주십니다. 사랑을 통해 주님이 알려지시며 우리 공동체는 성장합니다.
-교회 같은 가정, 가정 같은 교회의 기초는 사랑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직접 세운 공동체가 있습니다. 하나는 가정이요, 또 다른 하나는 교회입니다. 가정은 작은 교회요, 교회는 또한 큰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가정과 교회는 하나임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도, 축복도 늘 함께 옵니다.
-왜 우리가 사랑해야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본성이 사랑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우리 인생도 당연히 사랑이 우리 인간의 가장 중요한 본성이요, 또한 생명의 근원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사랑 가운데 지으셨고, 또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도록 만드셨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을 알고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입니다.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7-8)
사랑은 하나님의 본성이요, 또한 천국의 속성입니다. 사랑하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고, 사랑하는 곳에 천국이 세워집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면 내 안에 천국이 임합니다. 가정에 사랑이 넘치면 가정이 천국이 됩니다. 부부간에 더욱 사랑하십시오. 부모 자녀간에 더욱 사랑하며 섬기십시오. 여러분 가정에 천국이 이루어지길 소원합니다.
무엇보다도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천국의 모형이기 때문에 세상 어느 곳보다도 교회는 사랑을 보여주고 실천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세상과 다른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도 생명을 주는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사랑을 잃어버리면 교회는 세상 어떤 단체보다도 추한 곳이 되어버립니다. 냄새나는 곳이 되어 버립니다.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그곳이 천국이며, 반대로 사랑이 없으면 그곳이 지옥입니다. 사랑은 천국의 증표요, 미움은 지옥의 증표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반대로 우리가 미워하면 마귀가 우리 안에 거하게 됩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를 충동해서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분열하게 만듭니다. 미움을 이기는 길, 분열과 분쟁을 물리치고 화목한 세상을 만드는 길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천국이 임하게 됩니다. 교회는 세상에 하나님이 계시고 천국이 있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제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교회가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룰 때 바로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라는 것을 세상이 알게 됩니다 우리 한우리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먼저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그 사랑이 흘러넘쳐서 이웃으로 세상으로 나누어주기를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예화) 사랑은 사랑을 낳습니다. 오래전 미국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어떤 부인이 고아원에 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혹시 고아원 아이들 중에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는 아이가 있습니까?” 그 물음에 고아원 원장님이 망설이지 않고 즉각 대답하였습니다. “예, 있습니다. 열 살짜리 여자 아이인데, 매우 흉한 곱추예요. 단지 이름만은 머시 굿 페이스(Mercy Goodfaith, 은혜와 좋은 믿음) 라고 좋은 이름을 가졌지요.” 그러자 그 부인이 대답하였습니다. “바로 그런 아이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아이를 자기가 기르겠다고 말하면서 원장님에게 필요한 서류를 작성해주고는 아이를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35년이 지났습니다. 미국 아이오아 주의 고아원 감사를 담당했던 공무원이 한 고아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보고서를 작성하였습니다. “이번에 제가 방문했던 곳은 시설이 아니라 가정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전체가 어느 집 가정과 비해서 손색이 없을 정도로 깨끗하였고, 음식은 아주 훌륭하였으며, 무엇보다도 그곳에 있는 아이들 모두가 밝고 건강하며 사랑에 굶주린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사랑을 많이 받아서 매우 사랑스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데, 이곳의 원장님은 사랑이 넘쳐흐르는 영혼을 가진 사람으로서 아이들 한명 한명을 풍성한 사랑으로 돌보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녁 식사 후에 원장님은 피아노를 치고 아이들은 피아노 앞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데 천국이 따로 없을 만큼 그곳 분위기는 너무 아름답고 평화로웠습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그 원장님의 눈을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눈은 너무 아름답고 맑고 깨끗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원장님과 아이들 또한 내가 너무 감탄만 하자 그들도 깜짝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원장님은 얼굴이 매우 흉한 곱추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원장님의 이름은 머시 굿 페이스란 분입니다.”
한 부인의 헌신적인, 조건 없는 사랑이 가장 흉하고 소망 없던 곱추 소녀를 훌륭하게 자라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자신이 받은 사랑에 사랑을 더하여서 더 크고 더 많은 사랑을 베푸는 사랑의 사람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에는 이처럼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어떤 불가능한 사람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사랑에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어떤 절망도 위험도 이기고 나갈 능력이 나타납니다.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도 오직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능력이 사랑입니다.
3. 그렇다면 우리가 그 사랑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습니가?
1) 먼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앞의 예화에서 보듯이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먼저 사랑을 주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 만일 그 곱추 소녀가 사랑을 받지 못했다면 그 소녀는 어느 누구도 가까이 하지 않으며, 대신 온갖 멸시와 조롱과 비웃음 속에 짐승 같은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소녀가 한 부인의 헌신적인, 그리고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았을 때에 그녀는 짐승이 아니라 천사가 되어서 사랑이 필요한 또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나누어주는 사랑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 사랑이 어디서 왔습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셨습니다. 그것도 죄인 된 우리를 아무런 조건 없이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따라서 참된 사랑은 먼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Give And Take' 식의 주고받기 식의 사랑, 조건부 식의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셨으니 나도 너를 사랑한다, 여기에는 어떤 조건도 없습니다. 오늘 날 가정과 교회에 왜 사랑이 없습니까? 먼저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지 먼저 주는 사랑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참 사랑은 먼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먼저 주는 것입니다. 먼저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4:19)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2) 끝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자기를 믿고 따를 때에만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버리고 도망가고 부인하고 배반하는 그 순간까지도 사랑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배반하는 그 순간에도 주님은 베드로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단이 베드로를 밀 까부르듯이 청구하였으나 실패하고 다시 베드로가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참 사랑은 끝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좋을 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 우리를 실망 시키고, 속을 상하게 하고, 더 나아가 원수가 따로 없을 만큼 우리를 매우 힘들게 할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그렇다고 세상 모든 사람을 그렇게 사랑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도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였지 모든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는 끝까지 사랑하고 붙잡아 주었지만, 가롯 유다는 제 갈 길로 가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따라서 끝까지 사랑의 대상은 1차적으로는 우리의 가족이요, 교회 안의 형제자매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붙여주시는 전도 대상자들입니다. 이들은 주님의 사랑을 먼저 받은 내가 다시 주님의 사랑으로 끝까지 사랑해야 될 사랑의 대상들입니다. 이들을 사랑하다가 실망이 되고, 속이 상하고, 우리를 매우 힘들게 해서 사랑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을 때에 우리는 다시 주님의 끝까지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일 주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해주지 않았다면,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이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또한 베드로처럼 주님을 부인하고 배반하고,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끝까지 사랑으로 인하여 우리도 베드로처럼 다시 회복되어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당신을 끝까지 사랑하겠습니다.” “전도 대상자를 끝까지 사랑하겠습니다.” 아멘!
3) 목숨까지 주는 사랑입니다. / 더욱 성숙한 사랑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15:12-14)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십자가의 사랑, 목숨 건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입으로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말로서만 번지르한 사랑이 아니라, 생명을 던진 사랑이요, 자신의 전부를 던진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바로 예수님의 이 사랑을 본받아 목숨 건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였습니다. 사자 밥이 되면서, 창, 칼에 찔려 죽으면서, 또는 지하 카타콤에서 병들어 죽어 가면서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위하였습니다. 결국 이 사랑으로 초대 교회 성도들은 세상을 이기고,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우리도 목숨 건 사랑으로, 곧 죽기까지 사랑하십시오. 그러나 목숨을 걸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던져서 사랑한다는 것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은 예수 믿는 다고 목숨의 위협을 받을 순교적 상황도 아닙니다. 따라서 목숨까지 주는 사랑은 달리 말해서 내가 죽는 사랑입니다. 내 자아가 죽는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죽는 것입니다. 내가 죽으면 삽니다. 내가 죽으면 가정이 살고, 내가 죽으면 교회가 살고, 내가 죽으면 다른 사람이 삽니다. 할렐루야!
주님께서 온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나의 혈기 다 죽이고, 성질, 자존심 다 죽이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에 감동을 받습니다.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전에 내가 죽으면,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4)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허물을 덮어주는 것입니다. 허물을 덮어주는 것은 허물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허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덮어주는 것, 곧 가리워주는 것입니다. 있어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허물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은 가정입니다. 가족 간에는 흉, 허물이 없습니다. 다 드러내 보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이미 가족 간의 사랑으로 모든 허물을 덮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가정입니다. 예수님의 가족들로 구성된 예수 공동체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되,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내 모친이니라”(마12:50)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서로 사랑하는 데 있어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이 바로 허물을 덮어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허물을 덮어주기보다 오히려 허물을 들춰내고 서로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의 가장 큰 위기는 서로가 서로의 허물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사랑하면 허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다 예뻐 보입니다. 반대로 자꾸 다른 사람의 허물이 보이는 것은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아가서 자신에게도 그와 같은 단점, 허물이 있기 때문에 자꾸 다른 사람의 허물이 드러나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모든 허물을 다 용서하시고 덮어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돌로 쳐 죽이려고 하는 간음한 여인도 용서하시고 허물을 덮어주셨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허물을 덮어주지 못하고 자꾸 들어내는 사람은 예수님보다 더 위에 있는 사람이거나 아예 예수님과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과 상관없다는 것은 마귀나라에 속했다는 것입니다. 마귀 나라에서는 자꾸 허물을 들춰내고, 서로 비난하고 정죄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서로 허물을 덮어주고 서로 용서하고 서로 사라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가 천국이 되는 비결입니다. 그것이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길입니다.
나가는 말)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하며 사십시오. 우리의 삶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나름대로 정해진 시한부 인생입니다. 단지 그 날을 모를 뿐입니다. 이 한정된 시간 속에서 다투고 싸울 시간이 없습니다. 사랑하기에도 너무나 부족한 시간들입니다. 소중한 시간 사랑을 나누십시오. 부부간에 소원해졌다면 대화를 나누십시오. 부모 자녀간에 어느 순간 멀어졌다면 다시한번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며 보듬어 주십시오. 우리 모두는 사랑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며 섬길 이웃들입니다. 주변을 보십시오. 모두 좋은 사람들입니다. 모든 편견을 버리고 이제 사랑하기로 마음먹으십시오.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더욱 더 사랑스러워져가는, 더욱 주님을 닮아가는 여러분과 제가 되길 기도합니다.
한우리교회 박석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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