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복지관은 ‘지역사회(Community)’를 일구는 조직
정의가 곧 실천 방향을 결정합니다. 복지관을 단순한 물리적 공간인 ‘시설(Facility)’로 보느냐,
본래 목적을 수행하는 ‘조직(Agency)’으로 보느냐에 따라 실천 중심과 방법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생태체계적 관점에서 지역사회는 당사자가 살아가는 삶의 바탕이자 터전입니다.
따라서 복지관은 단순 여가와 편의를 제공하는 ‘Welfare Center(복지회관)’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당사자만을 대상으로 치료를 제공하는 공간이란 의미가 짙은 ‘Rehabilitation Center(재활치료센터)’도 아쉽습니다.
모두 ‘지역사회’를 실천 중심에 두지 않는 듯합니다.
한국 초기 장애인복지관은 사회사업가 외에도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언어치료사, 직업재활사(장애인재활상담사)처럼
다양한 보건·의료 계열 전문직이 함께 일하는 다학제 조직으로 출발했습니다.
당시에는 당사자의 손상을 치료·교정하는 서비스가 복지관의 주된 기능이었습니다.
이 시절 ‘장애’는 주로 개인이 극복해야 할 문제로 다뤄졌습니다.
당사자의 신체적·정신적 손상을 치료하고 교정하여
사회에 적응하게 하는 ‘의료·재활 모델’ 속에서 ‘Rehabilitation Center’라는 명칭도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이 이름은 복지관을 지역사회로 나아가 당사자의 환경을 변화시키는 ‘조직’이라기보다,
특화된 치료실과 전문 장비를 갖추고 당사자가 찾아와서 교정받는 거점 ‘시설’로 머물게 하는 한계를 만들었습니다.
이제 기능 회복과 치료 역시 당사자의 일상과 지역사회 삶을 회복하기 위한 과정으로 다시 정의합니다.
당사자는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어도 ‘지역사회’ 속에서 여느 사람과 어울리며 ‘자기 삶’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사회사업 조직으로 장애인복지관을 정의한다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Community welfare Center for Persons with Disabilities’
장애인복지관은 당사자와 주민이 주체가 되어 복지를 이루게 돕고 양쪽을 주선하는
‘Community Welfare Center’이자 ‘Community Welfare Agency’입니다.
‘지역사회(Community)’라는 본질을 놓치는 순간,
사회사업가는 건물을 지키는 관리자나 특별한 대상 전용 문화센터 운영자로 전락하고 맙니다.
복지관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개별 사업은 결국
‘이웃이 있고 인정이 흐르는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한 구실이자 매개체입니다.
밑반찬 나눔의 본질이 음식 가짓수나 배달 횟수에 있지 않습니다.
반찬을 구실로 이웃과 관계를 잇고 함께 돌보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습니다.
장애인복지관이라면 특정 부서에만 지역성을 한정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업에서 당사자와 주민이 관계를 맺고 지역사회 안에서 삶의 터전을 회복하게 돕습니다.
장애인복지관은 장애인도 살 만하고,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지역사회를 만드는 곳입니다.
우리가 마주한 당사자의 삶
복지관이 지역사회라는 바탕을 일구어야 하는 이유는
당사자의 삶, 특히 생애 전환기를 바라볼 때 더욱 절실해집니다.
발달장애인의 자립은 경제적 자립, 공간적(물리적) 자립, 심리·정서적 자립이라는 세 축이 맞물려 완성됩니다.
경제적·공간적 자립은 제도나 서비스, 혹은 정책적 보조 같은 지원으로 일정 부분 채워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면서도 본질적인 ‘심리·정서적 자립’은 제도만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습니다.
이는 일상에서 부대끼고 마음을 나눌 가족이나 친구와 이웃이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당사자가 중년기에 접어들고 평생 삶의 기둥이었던 부모님이 연로해지거나 세상을 떠날 때를 상상합니다.
당사자는 급격한 가족과 분리 및 주거 환경의 변화를 맞닥뜨립니다.
당사자가 가족 외에 기댈 이웃이 없다면,
거주시설이나 자립생활주택이나 지원주택 같은 곳으로 떠밀리듯 옮겨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속에서 평생 살아온 ‘관계’와 익숙했던 ‘장소’와 심각한 단절을 경험합니다.
이는 새로운 곳에서 적응의 위기로 이어집니다.
낯선 공간에서 마주하는 불안과 통제권 상실은 때로 깊은 우울이나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진정한 자립은 ‘부탁하고 의존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을 때 가능합니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 결정하고 일상을 꾸려가는 경험을 쌓는 것만큼이나,
둘레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이웃을 만드는 일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거주시설이든 지역사회 주택이든 당사자가 ‘자기 삶’과 ‘어울려 사는 삶’의 연속성을 잃지 않게 지원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망을 촘촘히 엮어내는 일이야말로 장애인복지관 사회사업가의 핵심 과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