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적인 언어
이렇게 비유적 언어라 할지라도 일상적인 언어의 의미를 벗어나 의미가 전이되고 은유화 되었을 때 이러한 언어의 용법은 일상의 언어가 아니라 특수한 언어, 객관적인 의미를 벗어난 언어, 사물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는 수사적 언어가 아니라 사물의 의미와 가치와 느낌을 새롭게 하려고 기존의 의미를 해체하고 재구축하는 언어다. 바로 이러한 용법의 언어야말로 시적인 기능을 시행하는 시어라고 규정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상상적 언어의 공통적인 특징은 반드시 구체적인 감각성을 지니는 데 있다. 구체적인 감각성이란 빛깔과 무제와 소리와 냄새가 있어 우리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느낄 수 있는 언어를 말한다. 예술이 감성의 기능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면, 시도 당연히 감동성을 지녀야 하는데 바로 그러한 감동은 언어의 감각성으로 가능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감각적 언어가 시각에 호소하는 회화적 이미지, 청각에 호소하는 음악적 이미지가 된다.
(1)
구름은
보라빛 색지(色紙) 위에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
목장( 牧場)의 깃발도 능금나무도
부을면 꺼질 듯이 외로운 들길
- 김광균 시인 「뎃상」에서
(2)
나의 내부에도
몇 마리의 새가 산다.
은유의 새가 아니라,
기왓골을
쫑,
쫑,
쫑,
옮아 앉는
실재의 새가 살고 있다.
- 박남수 「새3」에서
인용한 시 (1)은 서양화를 보는 느낌이다. 목장과 능금나무와 깃발이 넓은 초원, 그 뒷면을 채우고 있는 하늘엔 마치 보랏빛 색지 위에 채색된 장미처럼 검붉은 구름이 깔렷다. 이러한 공간적 배치와 색깔에서 우리는 시각적 충동을 느낄 수 있다. 시(2)는 나의 내부와 새, 그것도 은유의 ㅡ새가 아니라 실재의 새라는 극히 존재론적 형상을 하고 있다. 그러나 ‘기왓골을/쫑/쫑/쫑/옮아 앉는’의 시행을 읽으면 그처럼 고답적인 소재일지라도 마치 새가 기왓골을 열심히 쪼는 소리와 동작을 청각적으로 실감하게 한다. 그 밖에도 감각적 언어의 경우 촉각, 후각, 미각, 근육감각 등이 있겠는데 다음 시는 특히 후각적 이미지를 다양하게 상상하고 있다.
시몬느, 너의 머리칼 숲속에는
커다란 신비가 있다.
너는 마른풀 냄새가 난다.
너는 짐승이 자고 난 돌의 냄새가 난다.
너는 타작한 밀 냄새가 난다.
너는 아침마다 가져오는 빵 냄새가 난다.
너는 나무딸기 냄새가 난다.
너는 비에 씻긴 등나무 냄새가 난다.
너는 저녁때 베어 들이는 등심초와 양치불 냄새가 난다.
너는 호랑가시 냄새가 난다. 너는 이끼 냄새가 난다.
너는 생울타리 그늘에 자라서 여물고 말라버린 노랑풀 냄새가 난다.
너는 풀꽃과 나비꽃 냄새가 난다. 너는 우유 냄새가 난다.
너는 회향풀 냄새가 난다.
너는 호두 냄새가 난다.
너는 잘 익어 따온 실과 냄새가 난다.
너는 꽃이 만발한 버들과 보리수 냄새가 난다.
너는 벌꿀 냄새가 난다.
너는 목장을 헤지를 때 갖는 삶의 냄새가 난다.
너는 흙과 시냇물 냄새가 난다.
너는 정사(情事) 냄새가 난다.
너는 불 냄새가 난다.
시몬느, 너의 머리칼 숲속에는
커다란 신비가 있다.
- 구르몽 「시몬느」에서
인용한 시는 구르몽의 전원시로서, 머리칼을 소재로 한 것이다. 머리채에서 이처럼 다양한 냄새를 상상하고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의식하는 머리칼에 대한 인식과는 전혀 다른 사고를 하고 있다. 전혀 다른 세계의 경험이며 전혀 다른 차원의 논리다. 이 시에서 결정적인 상상력의 변신은 첫 행과 마지막 행의 비유적 논리에 있다. ‘시몬느. 너의 머리칼 숲속에는’이라는 구절이 이처럼 다양하고 풍부한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머리칼이 바로 숲이라는 동일시의 논법에서 전개된다. 이를 지배적 인상이라고 한다. ‘머리칼=숲’이라는 등식이 지배적 인상이라면 머리칼은 당연히 숲이 소유하고 있는 풀냄새, 돌 새에서 불 냄새까지 모두를 소유하고 있다.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동기는 머리칼을 숲과 동일하게 유추하는 상상력에 있었다. 머리칼이 숲으로 전이되는 현상은 머리칼에 대한 일상의 의미가 해체되고 새롭게 해석되는 순간이며 머리칼이 숲으로 재생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현상은 머리칼의 존재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고 확장이라는데 상상적 언어의 창조성이 있고 시적인 위대성이 있는 것이다. 여기에 정서적 언어와 구별되는 상상적 언어의 특징이 있는 것이다. 정서적 언어로 말한다면, ‘아, 아름다운 머리칼이여’라든지 ‘머리칼이 바람에 나부낀다’라는 말로 감탄하거나 수식하는 데 급급했을 것이다. 여기서 ‘아’니 ‘이여’니 ‘아름다움’, ‘나부낀다’ 등의 어휘들은 어느 하나도 새로운 언어가 아니라 일상에서 늘 사용하는 언어다. 그러나 인용 시의 언어들은 그 의미도 새롭거니와 모두가 감각적으로 직접 느낄 수 있는 사물을 표시하는 언어들이어서 더욱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사물을 표시하는 언어들이어서 더욱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어법이 바로 시를 시이게 하는 근본적인 시어법이라는 데 주목해야 하겠다.
홍문표[시창작원리]에서 편집
첫댓글 감사합니다.~~
오늘도 학습을 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도 고차원적 시론 정독합니다
이젠 저는 우교수님을 업그레이드 하는 절차는 생략합니다
이젠 정성껏 차려주시는 문학식탁에서 다양한 식재료와 맛을 고르기만 해도 셰프의 손맛을 아는 정도가 되었거든요ᆢㅎ
시창작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