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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길을 따라(1)
유월의 마른 장마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반항과 저항의 길을 걷고 싶게 만듭니다. 멈춰지지 않는 나그네의 발자국은 어쩌면 오지도 않는 비를 핑계로 잦아들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일기 예보는 연일 큰 비가 내릴 것이라고 겁을 줍니다만, 맞지도 않는 예보 따위를 믿고 바람도 들지 않는 서까래 밑에서 하늘 구멍만 올려다보고 있다면, 그런 어리보기가 없지요. 해서 구름 한 조각 벗 하리라는 마음으로, 마치 깊은 계곡 능선 길에서 좌선 삼매경에라도 빠져 있을 것 같은 운수 스님이라도 만나야지 하는 심정으로 지리산 칠암자 길을 찾아 나섭니다.
지리산 칠암자 가는 길은 결코 만만한 길이 아닙니다. 건장마에 신새벽 눅은 안개는 무진장 짙은 안개와 흡사하고, 디지털 시대의 길라잡이도 구불구불 시골 포장도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엉뚱한 곳으로 안내를 해댑니다.
그러나 산청을 지나 함양 마천 칠선계곡, 벽소령 가는 시골길은 정겹고 아늑합니다. 진주를 출발한 지 거의 두 시간이 지나서야 칠암자길이 시작되는 삼정리 음정 마을에 도착합니다.
아직도 새벽 6시 40분입니다. 영원사(靈源寺) 가는 길, 초입 마을 끝에 차를 주차하고 내리니 서늘한 산골 아침 한기가 온몸에 와락 달려듭니다. 영원사 가는 길이라고 마치 시골 초등학교 저학년 글씨체 같은 이정표를 따라 발길을 옮기니 마당가에 제법 멋진 바위와 물함박이 자리한 집 한 채가 보입니다.
초행길인데도 원점 회귀가 불가능하고 주차한 곳까지 돌아올 방법이 막연하여 염치 불고하고 봉우리 산장이라고 숨기듯이 쓰여있는 민박집으로 들어가 주인장을 찾았습니다. 이곳 지리와 삼정 마을까지 오가는 버스, 택시비 등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자그마한 체구에 하얗게 센 머리카락, 치아들은 대부분 땅으로 돌려보낸 양반이 나오는데 어르신이라 해야 할지 노인장이라 해야 할지 순간적으로 당황했습니다.
나중에 택시 기사한테 들은 이야기로는 지리산 영원사 계곡 봉우리 산장, 산장지기 백털보 아저씨는 나보다 한 살이 적거나 많아도 내 나이를 넘지 않는 듯했습니다.
그래도 일단 외견상 열 살 이상은 형님뻘 같아 선생님이라 호칭하고 몇 가지를 물었습니다. 뜨아한 표정에 어눌한 말투였지만 자기 집 앞 마당 고무호스에서 나오는 물만큼은 단호하고 커다란 음성으로 바위 틈에서 솟아나는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얘기를 합니다.
만에 하나 칠암자 길이 끝나는 실상사에서 다시 영원사 계곡으로 돌아올 방편이 여의치 못할 상황을 대비하여, 혹 전화하면 한번 태워다 줄 수 있겠냐고 선생이라는 경칭을 붙여가며 부탁한 후 물 한 바가지를 맛있게 마시고, 영원사 가는 임도로 접어듭니다. 임도가 시작되는 곳에서 영원사까지는 3.1km로 만만치 않은 거리입니다.
가파른 영원사 길 포장 임도 길 섶에는 산 딸기와 산 오디들이 군데군데 익어가며 산객의 눈길과 손길을 유혹합니다. 땀은 쏟아지고 숨은 가빠 오지만 새벽의 산 공기는 상쾌하기가 이루 말로는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아침 8시, 이윽고 영원사 입구에 도착하니 해는 산마루를 올라타서 옅은 구름 사이로 햇살을 내보냅니다. 다행히 예보와는 달리 비는 오지 않을 모양입니다.
영원사는 지리산이 품은 숨은 보배입니다. 절간으로 갖추어야 할 천왕문, 대웅전, 삼성각 등을 규모 있게 배치하지는 못했지만 두류선림(逗留禪林)이라는 편액이 붙은 건물은 웅장함과 단아함이 주위 산 풍광을 압도합니다.
이곳은 역사적 장소입니다. 우리 시대에 가장 아픈 역사의 현장이 되었던 곳입니다. 지금에야 수많은 민초들이 이념 쟁투에 휘말려 덧없이 스러져간 곳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더 많지만 역사 속의 영원사는 우리 불교 사상사의 한 페이지를 찬란하게 빛냈던 곳입니다.
잠시 우리나라 불교 선통(禪通)의 역사를 살펴보면, 보조국사 지눌 이후 고려 말 태고 보우 스님으로 이어진 우리 불교의 법맥은 환암 혼수 - 귀곡 각운 - 벽계 정심 - 벽송 지엄 - 부용 영관 - 청허 휴정 곧 서산대사로 이어지니, 모두들 선종(禪宗)사의 불꽃들이요 시대의 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스님들이 모두 지리산에서 정진하여 견성하신 분들입니다. 벽계 정심은 당시 조정의 억불정책 때문에 마천에 은둔하였으나 그 법기는 숨기지 못해 전국에서 제자들이 모여들었는데 특히 벽송 지엄이 뛰어났으니 그가 세운 벽송사는 지금도 조선 선종의 종가로 자처하고 있습니다.
마천에서 의신 넘어가는 고개 이름 벽소령은 애초에 스님의 법명에서 유래한 벽송령이었다고 합니다.
벽송 지엄의 제자로는 부휴와 영관이 당대의 걸출한 선승이니, 부용 영관은 삼천포에서 태어나 13세에 출가하여 전국을 떠돌며 좋은 스승을 구하고 참된 진리를 얻고자 하였으나 미치지 못하다가, 이곳 영원사에서 지엄을 만나 견성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분이 기른 두 걸출한 제자가 청허 휴정과 부휴 선수 스님인데, 이 두 분도 역시 이곳 한때 영원사에 주석하며 선풍을 드날렸으니 한국 불교사에서 영원사가 차지하는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잠시 영원사의 창건에 관한 이야기를 옮깁니다.
8년 동안의 공부 끝에 아무것도 잡지 못한 영원(靈源)은 허우적허우적 산길을 내려갔습니다. 계곡을 내달리는 물소리도 건너 산에서 들려오는 산새 소리도 영원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답니다. 다만 공부가 경지에 이르지 못함을 한탄하며 그냥 주저앉아 울고만 싶습니다. 그때 저 아래 풀밭에 어떤 노인이 빈 낚싯대를 드리우고 혼자 중얼거립니다.
“2년만 낚시질을 하면 큰 고기가 낚일 터인데......”
이 말을 듣는 순간 번득 스치는 깨달음이 있어 영원은 다시 지리산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그로부터 2년 후 영원은 크게 깨우치게 되고, 어릴 때 출가한 자신을 자식처럼 아껴주던 스승을 찾아 단숨에 범어사로 달려갑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욕심이 많았던 스승은 먹구렁이가 되어버렸고, 그 스승이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머리를 부딪쳐 죽자 영원은 스승의 혼백을 소매에 담고 다시 지리산으로 들어갑니다.
그 길에 어느 부부를 만난 영원은 스승의 영혼을 그 부부에게 주며
“열 달 뒤에 아이가 태어날 것이니 그 아이가 일곱 살이 되거든 꼭 내게 데려오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 아이가 단명할 것이오”
라고 말하고 불사에 착수합니다.
그렇게 온갖 어려움을 이기고 7년 만에 절을 완성하니 그 절이 오늘의 영원사랍니다. 며칠 후 젊은 부부는 약속대로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아이는 총기가 있으나 욕심이 많아 스승인 영원 대사의 근심을 삽니다. 이에 영원 대사는 아이를 방에 가두고 작은 문구멍을 뚫어주며 말하기를
"이 문구멍으로 황소가 뛰어들거든 말하거라.“
라고 합니다.
총기 있고 눈 맑은 아이는 그날부터 공부에 들었고, 어느 날 작은 문구멍으로 커다란 황소가 달려드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스님! 황소가 문구멍으로 들어옵니다!”
이로써 스승과 제자의 길고 긴 인연은 아름답게 끝납니다.
개 두 마리가 까닭 없이 짖고 있는 영원사를 뒤로하고 상무주암을 향해 발길을 재촉합니다. 십여 분 정도의 산협을 걷다가 가지고 간 빵과 커피로 아침을 때웁니다.
호젓한 산길 바위 위에 앉아 간단한 아침 요기를 하는 것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호사가 아닙니다. 영원사를 창건한 영원스님의 스승이 욕심으로 구렁이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욕망을 넘어 탐욕으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길은 찾는 이에게만 문을 열어주는 모양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가능한 많은 것을 가지고자 끝 간 데 없이 욕심을 부립니다. 그러나 욕심대로 가질 수도 없지만 또한 가지는 순간 더 큰 탐욕이 생겨나 결국은 탐욕의 바위 덩어리에 눌려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속세의 필부필부들이지요.
저 역시 당연히 탐욕의 장삼이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흐르고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야 온전한 비움의 단계에 올라설 수 있을지......
울창한 나무들의 터널을 한 시간여 걸어가니 삼정산 정상가는 샛길이 보입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십분 정도를 오르니 삼정산 정상에 도착합니다.
잠시 땀을 식히고 정상석에서 인증샷을 찍은 다음 주위를 조망하고자 하나 엷은 안개로 조망이 여의치 않습니다. 해가 뜨는 방향으로 지리산 천왕봉이 어디쯤인지를 가늠하며 다시 두 번째 암자, 상무주암을 향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상무주암(上無住庵), 일찍이 보조국사 지눌(知訥)은 상무주암을 천하제일 갑지라하였습니다. 즉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탐낼만한 좋은 자리라는 뜻인데, 이곳 암자의 이름이 무주(無住), 즉 머물지 않는다는 그 의미가 자못 의미심장합니다. 상무주암은 간화선(看話禪)의 연원이 되는 곳입니다.
보조국사 지눌이 이곳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기록되어 있지요. 바깥 인연을 물리치고 오로지 안으로 자신을 관조하는 수행에만 전념하여 궁극의 근원을 찾았다고 했습니다. 이 상무주암에서 깨달음의 문을 열었다는 말이지요.
아무리 좋은 자리라 한들 그 자리만 탐내고 그냥 머문다면 끝내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경계를 담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잡인을 금하는 상무주암 삽짝 빗장목 아래는 지리산 산록을 마치 텃밭처럼 만들고 고추와 상추, 머위와 곰취 등 갖은 채소가 심어져 있습니다.
법을 구하고 도를 닦기 위한 스님도 사람이니 호구지책은 있어야 하는 법, 한편으로는 인간미가 느껴져 기꺼운 기분마저 듭니다. 암자라고 하기도 어려운, 단출한 일반 가정집 같은 상무주암은 굳게 닫혀 있고 나이를 제법 잡수신 병약한 노스님 한 분이 마루에 앉아 그윽한 눈길로 산바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산새소리를 듣는지 바람 소리를 세고 있는지 알 수는 없으나 형형한 눈빛은 큰 스님의 풍모를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암자 앞 길에 있는 약수 한 바가지를 먹은 보답으로 가지고 간 빵 세 개를 스님께 공손히 공양합니다.
맞절을 하시면서 빵을 받으시는 스님의 두 손이 가볍게 떨리는 것을 느낍니다. 빵에 맛 들이시면 아침저녁 거친 공양이 여의치 않을 텐데 하는 어쭙잖은 걱정을 혼자 하면서 피식 웃습니다. 스님 부디 강건하시고 성불하소서.
산문을 나서면서 기독교 영성가 유영모 선생의 고귀한 말씀을 마음에 다시 되새깁니다. 진리가 사람을 편안케 하리라는 구절이 한줄기 산바람이 되어 청량감을 느끼게 합니다.
“사람은 모두 머무를 곳을 찾는다. 그러나 머물면 썩는다. 주(住)라야 살 것 같지만 무주(無住)라야 산다. 머무르면 썩는다. 산다는 것은 자꾸 움직여 나가는 것이다.”
라는 말씀, 안주와 머무름의 경계를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금강경에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일으켜라.’라고 해석하는 데, 달리 표현하면 '일체의 것에 집착함이 없이 그 마음을 활용하라.'라는 뜻일 것입니다.
금강경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기도 하고 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의 어원이 된 중국의 육조 조계 혜능선사가 이 구절을 듣고 깨우쳤다는 일화로도 유명한 말입니다. 아마도 지리산 상무주암의 암자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한듯합니다.
마치 도둑고양이가 담장 위를 걷듯이 조심스러운 발자국으로 상무주암 순례를 마치고 세 번째 암자 문수암을 찾아 길을 떠납니다. 칠암자 순례길 첫 번째 이야기는 여기서 마감합니다. <끝>

첫댓글 작년 10월 단풍으로 장엄한 지리산에서... 천년송을 가슴에 품고 실상사... 영원사... 그리고 동편제마을... 한걸음 한걸음이 수행이었던 순간 ...//"칠암자순례길" 감사한 마음으로 감상했습니다.
작년 10월 단풍으로 장엄한 지리산에서... 천년송을 가슴에 품고 실상사... 영원사... 그리고 동편제마을... 한걸음 한걸음이 수행이었던 순간 ...//"칠암자순례길" 감사한 마음으로 감상했습니다.
채하님께서도 영원사로 깨달음의 걸음을 하셨군요
그곳은 참 맑은 길이지요
관심있게 읽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글도 고왔고 사진도 정다웠습니다.
가본적 없는 지리산 산사의 봄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