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의 밤은 추웠다. 펄펄 끓는 물을 넣은 핫팩 한 개를 발치에 두고 다른 하나는 껴안고 침낭 속에서 잤다. 고산지대에서는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는 가이드의 말에 따라 기회가 될 때마다 마신 탓으로 낮에 땀으로 흠씬 빼내었어도 매일 밤, 자다 깨어나 화장실을 찾아야 했다. 대부분 숙소에서 화장실은 멀리 떨어져 있었다. 덕분에 오줌 누러 가고 오는 길에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들과 달을 보고 환호했다. 보름달에서 달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그 별과 달이 히말라야의 잠 못 이루는 밤을 견디게 해줬는지 모르겠다.
히말라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비행기를 바꿔 타야 하는 상하이 공항과 쿤밍 공항에서 여러 가지 일이 벌어졌지만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아 기록으로 옮기는 일은 삼가도록 하겠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35시간 만에 카트만두에 도착했을 때 미국에서 부친 짐은 도착하지 않았고, 셀폰은 잃어버린 상태였다. 오직 백팩 속에 들은 얇은 쟈켓 두 벌과 바지 한 벌, 그리고 양말이 내가 가진 모두였다. 입고 있는 것을 포함한다면 쟈켓 3벌, 바지 2벌, 양말 두 켤레. 팬티 한 장.
그대로 돌아갈까 혹은 카트만두에서 며칠 지내다가 돌아갈까 생각이 많았다. 숙고 끝에 예정대로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까지 트레킹하기로 했다. 트레킹 시작 전에 꼭 필요한 물품 몇 가지를 포카라에서 구입했다. 이때 팬티를 몇 벌 구입해야 했으나 서두르는 바람에 입고 있던 한 벌로 열흘을 지내야 했다. 일행 중에 처지를 딱하게 여긴 몇몇 분이 간식과 수건, 휴지, 물휴지 등의 물품을 일부 나눠주어 요긴하게 썼다.
어디 그뿐이랴. 세면도 면도도 하지 않고 머리도 감지 않았다. 더운 물이 나온다는 롯지에서도 세수를 하지 않았다. 이만 닦았다. 하루 종일 땀 흘리고, 제대로 씻지도 않았어도 버틸 수 있었지만, 잠자리에서 코가 막혀 입으로 숨을 쉬는 관계로 입안의 텁텁함은 참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매일 걷고 또 걸었다. 늘 뒤에서 걸었고 맨 끝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우려의 눈으로 쳐다보았고 측은하게 여기는 눈치였다. 등짐을 매고 걷기 힘들여 보였는지 가끔 가이드들이 짐을 대신 해주기도 했다. 마라톤을 11번 완주하는 동안 혹사당한 무릎이 문제였다. 계단을 오르고 내릴 때마다 고통을 견뎌야 했다. 그때마다 포터들을 생각했다. 변변한 신을 신지도 않고-심지어 슬리퍼를 신은 사람도 있었다- 무거운 짐을 지고 마른 길, 젖은 길, 눈길을 가리지 않고 뛰고 달리는 포터들을 보며 참고 걸었다. 20명을 위해 16명의 포터와 4명의 가이드들이 동원되었다. 포터들은 부지런히 20명의 짐을 운반했고, 가이드 4명은 앞에 1명, 중간에 2명, 그리고 맨 뒤에 1명이 일행과 함께 걸었다.
힘든 일정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하루 세 끼를 한식으로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식 전문 주방장과 각종 식기류와 음식 재료 등을 지고 이동하는 부엌 장비 포터들이 10명이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 일정을 끼니마다 밥과 국을 대령시키고 김치찌개, 콩나물, 시금치 무침, 감자전, 감자볶음, 김치, 깍두기 등의 각종 반찬을 제공했다. 그리고 가끔 수제비와 국수를 별식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20명을 위해 30명이 동원되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매일 아침 방마다 찾아다니며 두드리고 깨운 후 방금 끓인 뜨거운 밀크 티로 하루를 시작하도록 했다. 종일 걷고 또 걸었다. 롯지에 도착해서는 저녁을 먹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고 긴 밤을 오지 않는 잠과 싸우며 날이 밝기를 기다리며 힘들게 지냈다. 예상대로 고산병 증세는 뚜렷하게 나타났다. ABC에 도착할 무렵, 호흡이 가쁘고 졸음이 쏟아졌다. 숨이 차서 자주 허리를 굽히고 멈춰 서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전날부터 고산병에 대비해 미리 약을 복용한 탓으로-이 약도 룸메이트 movido님이 제공했다- 머리가 아프지는 않았고 마운틴 위트니에서처럼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힘들게 도착한 ABC에서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눈물은 콧물을 동반했고 가는 흐느낌으로 이어졌다. 그 무엇이 냉정한 나를 울게 한 것인가? 거칠게 부는 바람과 간간이 날리는 눈발이 눈물과 어울려 감격으로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하산 길은 몹시 고통스러웠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무릎의 통증은 고통과 신음을 수반했다. 그러나 어차피 가야 할 길, 이를 악물고 걸었다. 뱀부에서 하루 자고 다음날 지누단다에 도착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노상온천으로 갔다. 팬티바람으로 온천욕을 즐겼다. 그리고 단벌 팬티를 빨았다.
온천에서 숙소까지도 쉬운 길은 아니었다. 혼자 조용히 즐기며 걸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나는 행복합니다.’를 반복하며 걸었다.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걸었다. 천천히 힘들게 걸어 올라오고 있는 내가 딱하게 보였던지 매표소의 노인은 자신의 의자를 권하며 앉았다 가라고 했다. 앉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자 노인은 내게 잠시 서있으라 하더니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정성을 다해 살살 정강이 장딴지를 주무르며 내 반응을 살폈다. 아주 좋다고 하자 마음먹고 한 동안 주물러 주었다. 고마움의 표시로 갖고 있던 돈을 조금 나누어 줄까 잠깐 고심했으나 돈 몇 푼을 나눠주는 것이 오히려 그분의 순수한 마음을 훼손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두 손 모아 합장해서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그분도 환한 미소로 답례했다.
지누단다에서 모비도님과 오영철님이 각각 한 마리씩의 염소를 제공했으며 참가자들이 약간의 돈을 모아 식음료비로 사용했다. 그리고 전 일정을 함께한 포터와 가이드, 주방팀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음식을 먹고 마시며 즐긴 후 잠자리에 골아 떨어져 잤다.
트레킹 마지막 날, 씨울레바잘에서 주방팀이 제공한 마지막 음식을 먹었다. 일행은 사용했던 물품들을 모아서 포터들에게 나눠 주도록 했다. 그들에게 다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모아져서 훈훈함을 자아냈다. 그 자리에서 주방팀, 포터, 가이드들과 이별을 고하고 지프차에 몸을 실었다.
오는 길에 엄홍길 재단에서 설립한 비레탄티학교에 들렸다.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220명이나 되는 많은 학생들이 공부하는 인근에서 가장 큰 학교였다. 마침 명예 교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한국인 다정 김규현 선생님을 만났다. 대구 교육청 초청을 받아 학교 벽화를 그린 학생들 12명과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일행이 산행 시작 전에 전해달라고 맡긴 학용품을 잘 받았다며 감사하다고 했다. 일행 중에 몇 분이 즉석에서 다정 선생에게 금일봉을 전달했다.
비레탄티 학교 벽화앞에서 기념촬영-사진제공 다정 김규현 선생님(앞줄 왼쪽 세번 째)
포카라에 도착해서 저녁까지 2시간의 자유시간이 있었다. 룸메이트 모비드님과 마사지를 받기로 했다. 마사지 방은 추웠다. 콧물을 흘리며 코를 풀어가며 받았다. 추위에 떨면서 마사지를 받고 숙소로 돌아와 쉬다가 저녁식사를 하러 한식당을 찾았다. 저녁은 삼결살이었다. 맥주와 소주, 그리고 상추쌈에 밥까지 배터지게 먹었다. 숙소 돌아오는 길에 몇 사람이 어울려 와인을 몇 잔하고 숙소에 돌아와 죽은 듯이 잤다.
23일, 포카라에서 11시 30분에 떠날 예정이던 비행기는 2시가 넘어서 출발했다. 카트만두에 도착하자마자 틴바의 요청으로 공항관리들의 도움을 받아 빨리 짐을 찾아 국내선 청사를 빠져나왔다. 택시를 잡아타고 국제선 터미널로 향했다. 틴바는 기다리고 있던 비루에게 나를 맡기고 국내선 터미널로 돌아갔다. 비루는 여행사에서 보관하고 있었던 짐-공항에서 찾지 못해던 짐-을 전해주었고, 나는 빌려 입었던 재킷과 침낭 등을 니마에게 전달해 달라고 비루에게 전해줬다. 그리고 내가 사용하던 일부 물품을 비루에게 주었다. 신속하게 작별인사를 하고 체크인을 하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리고 쿤밍과 상하이를 거쳐 32시간만에 미국으로 돌아와 하루자고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준비해온 간식, 약품, 각종 일상 용품에 이르기까지 나눠준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특히 무릎 보호대를 내게 빌려주고 정작 자신에게 필요할 때는 다른 사람에게 빌려 사용해야만 했던 분께 심심한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매일 아침 홍삼정 엑기스를 제공해준 모비드님, 열흘 동안 함께 해준 현지 포터와 가이드 여러분과 행사를 계획하고 차질 없이 진행시켜준 오영철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첫댓글 이렇게 힘든 상황 이셨는데도 얼굴 한 번 붉히시지않고 덤덤히 받아들이던 모습을 뵈면서 정말 존경스러웠습니다. 저라면 감히 도전할 수 조차 없었을텐데...ABC에서의 감동은 잊지못할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할것입니다. 늘 건강하고 행복하십시요...대단하신 seamaker님!!
사리님의 쉰 목소리가 벌써 그립네요. ㅎㅎㅎㅎ. 소녀의 감성과 섬세한 엄마의 마음으로 모든 이들을 보살피고 살펴주시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한 달여를 한국에서부터 앓다가 오신 분 답지 않게, 밤새 뜬눈으로 새우신 분 답지 않게 즐겁고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셨지요. 오랫동안 기억 속에서 만날 겁니다. 행복한 2017년 만드시기 바랍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다시 뵙기 어렵겠지만 밝은 얼굴은 오래도록 기억이 될거 같아요 ㅎㅎ
늘 건강하시길 기도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꿈을 좇아 카나다에서 분투하고 있는 따님을 위해서도 기도하겠습니다. 행복한 하루하루 만드시기 바랍니다.
seamaker님 멋집니다
언제나 감사드립 뿐입니다. 곧 다시 만날 겁니다. ㅎㅎㅎㅎ.
seamaker님!! 힘들게 한 발 한 발 떼시면서도 여유와 품격을 잃지 않으시던 모습에 존경의 마음을 보냅니다.
안나푸르나 롯지에서 눈물 흘리실 때 저도 같이 울컥했더랬죠!! 산처럼 바람처럼 강건하고 유연하신 모습 배우렵니다.
히말의 밤은 추웠지만 우리의 마음은 어느 뜨거운 용광로 못지 않았네요!
먼 곳에서 항상 건강하시고 평화하시길 기도합니다!
나마스떼_()_
맑고 고운 심성이 두 눈에 그대로 담겨 있던 예쁜 소녀, 평생 소녀일 수밖에 없는 나무지기님, 과찬이십니다. 자만에 가득찬 모습으로 오만방장하게 살아온 지난 삶을 처절하게 반성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나를 찾으러 떠났던 여행에서 수많은 나를 또 다시 발견했지요. 나는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노상온천에서 힘들게 올라온 내 다리를 주물러주던 매표소를 지키고 있던 노인의 손길에 여지없이 또 다시 무너졌습니다. 그는 걷기 힘들어 하는 불쌍한 사람을 위해 자신의 손을 거침없이 내밀었던 것입니다. 스스럼없이 내 넓적다리를 주무르고 알이 박힌 정강이를 주물렀지요.
우리를 끝까지 따라온 검정 개 한 마리를 지극정성으로 살펴주
@seamaker 던 나무지기 님이 바로 그런 마음이었을 겁니다. 검은 개를 보살펴 주던 아름다운 나무지기 님의 마음과 내 다리를 주물러주던 매표소 노인의 모습은 커다란 감동이었습니다. 자타불이, 나와 남을 별개의 것으로 구별하지 않고 실천하며 사는 삶, 이론으로만 가르치고 떠들어댔던 지난 날이 부끄럽고 부끄러웠습니다. 검은 개가 행여 내게 다가올까봐 피하기 위해 급급했거든요. 실천하며 사는 많은 분들을 만났던 뜻 깊은 여행이었습니다.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행복한 하루하루 만드시기 바랍니다.
어려운 여건에도 끝까지 미소로써 버킷리스트중 하나를 완성하신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안나푸르나의 감동을 같이 나누며 다음 버킷리스트를 살펴봅니다.
패셔니 스타, 그날 그날 멋진 드레스와 모자, 선글라스 하나도 예사롭지 않게 챙겨 우리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셨지요. ㅎㅎㅎㅎ. 힘든 여정을 즐기며 걷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남아프리카 여행, 멋지게 즐기시기 바랍니다. 저는 당분간 무위도식하며 뒹굴며 지내겠습니다. 머리가 텅비어버렸어요. 무엇을 위해 지금까지 이러고살아왔는지…..
행복한 하루하루 만드시기 바랍니다.
카트만두 공항에 내려서 급하게 가시는 바람에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잘 가셨지요?
seamaker님의 글을 보니 따뜻했던 한 분 한 분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히말라야의 따뜻하고 청명한 날씨
8박 9일간 함께 하면서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우리 일행
따뜻한 배려로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
맛깔스러운 음식으로 우리의 기운을 챙겨주었던 주방팀
왠지 모를 미안함으로 기억되는 포터들
정말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좋은 시간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리구요.
멀리 계셔도
타운뉴스를 통해 seamaker님의 모습을 뵐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고맙습니다. 멋진 노래,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겁니다. 복 많이 받으십시오.
맨 몸으로(ㅋㅋ 죄송해요) 무에서 유를 만드신 seamaker님의 굳은 의지와 마라토너처럼 당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끝까지 완주하시는 모습에서 인생 후배로서 한 수 배웠습니다. townnewsusa.com에 가끔 들러 잘 지내시는지 멀리서 나마 응원하며 더욱 번창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건강하시고 언제 한국에 오시게 되면 히여동 번개 함 해요~~
예. 그저 먹고 자고 일어나 아무런 생각없이 걷던 그때가 그립습니다. 그러나 다신 안 갈 겁니다. ㅎㅎㅎㅎ.
@seamaker 이말 취소합니다. 다시 가고 싶어졌어요. 혼자나 두셋이 살살 걷다 오고 싶어졌습니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사한가 봅니다.
seamaker님!
당신의 무모한 용기(?)에 갈채를 보냅니다.
미국에서 부친 짐을 찾지도 못하고 제대로 장비도 없이 트레킹을 떠난 당신.
친구야! 고생 많았다. 힐링이 아니라 고행이었구나!
난 돌아와서 자기만족이라고 글을 남겼는데.....
친구! 먼길을 돌아서 찾아 왔구먼. 이제 에베레스트베이스 캠프 갈 궁리 중이라네. 내년 1월 쯤 간다니까 그때까지는 내 몸이 괜찮아지겠지? 시간이 여하시면 함께 가시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