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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재외동포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대상 수상작
'오시리스의 저울'
이귀순(호주)
오시리스(Osiris)의 옛이름은 착한 존재인 이집트의 신화. 부활과 영생을 상징 하는 신. 사람이 죽는 순간 영혼은 오시리스 신이 지배하는 명계에서 최후의 심판을 받는다. 죄의 부정고백인 정의의 저울에 심장이 올려지게 된다. 저울 한쪽엔 사자의 심장이 다른 한 쪽엔 진실의 하얀 깃털을 얹어서 무게를 달았다. 거짓말을 하면 저울이 기울어 심장이 아래로 떨어져 악어의 머리와 사자의 몸 그리고 하마의 발을 가진 ‘아미트’라는 괴수가 먹어 버린다. 오시리스의 몸은 녹색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녹색이 재생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가 초록색 오시리스를 신고 떠났다. 내 심장의 한 가운데 구멍 하나가 생겼다. 구멍의 지름은 날마다 조금씩 넓고 깊어져 가고 있다.
스케이트 신발을 사려고합니까. 이렇게 바닥이 편편한 것들은 모두 스케이트 신발입니다. 이 줄은 남자들을 위한 스케이트 신발, 이쪽은 여자용 스케이트 신발이죠. 종류가 많다고요. 그래요, 이곳만큼 저렴하고 종류가 많은 스케이트 신발 가게가 ‘뉴캐슬’ 에는 없죠. 미안하지만 사이즈가 얼마지요. 아, 11 이라고요. 아시겠지만, 모두가 아메리카 상표이기 때문에 US사이즈로 표시해 놓았습니다. 샘플 바닥에 표시해 놓은 번호, 그것이 현재 우리 가게가 보유한 사이즈이고, 그래요, 달러 표시된 것이 판매 가격표 입니다. 손님이 현재 신고 계시는 것과 같은 오시리스 브랜드도 이렇게 많은 스타일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요즈음 가장 인기 있는 스케이트 신발이지요.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이는 벌써 한 시간이 넘도록 신발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신발 끈을 꿰어서 건네준 것만 해도 벌써 스무 켤레가 넘는다. 그가 골라온 신발의 모델에 맞춰 그의 발 사이즈인 11을 찾아 끈을 매 준다. 만약 쇼핑센터에서라면, 동양인이 하는 가게가 아니어도 저 젊은이가 저렇게 시간을 끌며 시간을 소비하지는 않을지 모른다. 그리고 내 예감이 틀리지 않는다면, 십중팔구 젊은이는 다음에 오겠다고 말하고 가게를 나가 버릴 것이다. 장사를 하게 되면 그러한 쪽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눈 한 개가 더 머리 속 깊이 생겨 있게 마련이다. 드물기는 하지만 이 젊은 남자처럼 수십 번을 신어보고도 결정을 못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여자 손님보다는 남자 손님들이 부쩍 더 그렇다. 같은 사이즈의 신발을 신어보면서 이것은 크다 작다 넓다 좁다고 말한다. 그래도 자신이 고른 신발이 질이 나쁘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 다행이긴 하다.
카운트로 돌아와 그가 신어보고 밀쳐둔 신발들을 와닥 와닥 소리 나게 상자에 담는다. 그것들은 모두가 초록색 오시리스 브랜드다. 곧 여름이 올 테지만, 아직은 찬 기운의 꼬리가 미적거리는 봄이다. 남편 지우가 오시리스를 신고 떠나던 날도 바람이 심하게 불던 봄날이었다. 젊은이의 발을 바라본다. 그의 발가락은 유난히 길다. 가장 긴 엄지발가락부터 시작해서 자를 대고 빗금으로 가지런히 잘라 놓은 것 같다. 발등이 휘어진 그는 걸음을 잘 걸을 것이다. 신발 상자를 하나씩 제자리로 돌려놓기 시작 한다. 신발들은 높고 낮은 선반들 위에 브랜드 별, 사이즈 별 그리고 색상 별로 정리 되어 있다. 서른아홉을 갓 넘긴 여자의 직감은 매우 예리하고 또 단단하다. 그것은 어쩌면 많은 손님들을 만나면서 습득한 또 다른 형태의 삶의 터득일지도 모른다. 역시 그는 심각하게 눈빛을 두리번거리며 카운트로 걸어와 내일 다시 오겠다고 한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신발은 이번 주 까지만 세일을 하는 것 아시죠. 신발을 살 계획이 있으면 이번 주에 사는 것이 30% 저렴하게 구입 할 수 있습니다. 또 이번 주 안에 레이바이(Lay-by)를 해도 찾아갈 때까지 할인 가격을 적용 받습니다. 세일 기간에는 인기 품목이 금방 팔릴 수도 있습니다. 원 플러스 원 세일도 이번 주면 끝나지요. 벌써 출입문을 향해 걸어 나가고 있는 그의 등에 대고 말한다. 그가 몸의 상체를 돌려서 고맙다고 손을 휘저으며 크게 웃는다.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제 긴 하루가 시작된다. 아이들이 학교를 파하는 시간까지, 손님이 없는 가게를 지키는 오전 시간은 먼지의 움직임이 느껴질 정도로 적막하다. 어느새 나는 신발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좋지 못한 버릇에 길들여져 버렸다. 거리를 질주하는 자동차의 소음이 가게 안을 불안정하게 흔들어 놓는다. 나는 가게에 들고 나는 사람들로부터 마치 공기처럼 영향을 받으며 내부의 공간에 갇혀서, 눈은 카메라의 렌즈처럼 무연히 밖을 바라본다. 스케이트의 바퀴 소리가 촤르르 하고 귓가를 스치면, 내 시선의 렌즈는 길 위를 지나가는 아이들의 신발 위에 머문다. 빠르게 미끄러져 달아나는 아이들의 발 위로 무슨 브랜드의 신발을 신고 있는지, 아, 오시리스를 신었군, 반스를, 글로버를------. 내 동공은 그들의 신발에 아웃포크서 되고 시선의 조리개가 열린다. 이제 그들이 신고 있는 신발들을 멀리서 봐도 브랜드며 신발 이름까지 척척 알아 맞추게 된다. 삼 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오랫동안 밖이 내려다보이는 한 장소에 있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말간 유리문 밖을 골똘히 내다보고 있으면 굳이 시간을 확인 하지 않아도 아, 지금은 몇 시쯤 됐구나 하고 저절로 알아지는 것이다. 이를테면 캔이 오는 시간은 정확 하게 10시 7분이다. 고개만 유리문 안으로 들이 밀고, 손에 몇 개의 우편물을 든 채 문밖에서 쥴리아, 하고 부르며 한쪽 볼을 찌그러뜨리고 웃을 것이다. 우체국에 갈 심부름이 있는지 내게 물어 올 것이고, 여느 날과 똑 같은 질문을 하는 그를 안으로 불러 아기처럼 꼭 안아 줄 때는 심부름이 있는 날이다. 중국 레스토랑으로 가고 있는 중국 아가씨 소희가 보이는 시간은 그것보다 조금 늦은 11시이다. 삼촌의 레스토랑으로 종종거리듯 작은 발로 걸어가고 있는 소희에게 언젠가 다 큰 아가씨가 애인도 없어? 하고 물었더니 애인이 중국에 있다며 허리를 꼬고 웃었다. 그리고 아내와 아들이 모두 가수라고 자랑이 늘어지던 필리핀인 마제이가 유리문 안으로 손을 흔들며 지나가는 시간은 정확하게 열두 시이다. 그는 홈 브랜드 맥주가게 주인이다. 시드니에 비하면 이곳은 유색 인종이 그렇게 많지 않다. 백호주의 영향이 심한 이곳에도 유색인종이 급속하게 늘어나고는 있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밖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아직도 동양인을 이유 없이 차별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 말을 우연히 들었다.
오전이 걸어 나가는 허리를 바라보며 두 팔을 올려 몸을 스트레치 한다. 점심으로 무얼 먹을까 고민을 하며 출입문 쪽으로 서성이듯 걸어갔다. 남자가 처녀의 손을 잡고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남자를 얼마간 알고 있다. 언젠가 가게에서 여자 손님 둘이 남자를 두고 주고받는 말을 들었다. 저 사람 ‘푸쉬어’야, 지저분하고 무서운 사람이야. 저 사람이 이 지역 마약의 킹인 것 알아요------. 그런 좋지 못한 말들이었다. 남자가 끌며 걸어가는 처녀는 한눈에 봐도 지능이 모자라 보인다. 깡마른 남자가 지나치게 뚱뚱한 여자와 걸어가는 풍경은 보기에도 우스꽝스럽다. 남자는 곧 처녀를 버릴 것이다. 그리고 저들은 분명히 센터링크로 갈 것이다 라고 나는 단정 해 버렸다. 정신이 모자라는 처녀는 장애자 연금을 탈 것이고 남자는 그 돈을 가로 챌 것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문밖에 서서 가게 안을 들여다보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것은 지우가 떠나고 난 후부터이다. 양손바닥으로 빛을 가리고 들여다본 가게 안은 한 잔의 롱블랙 커피처럼 암담해 보였다. 양쪽 벽을 따라 여러 종류의 신발들이 아이패드 크기의 플라스틱 진열대위에 나란히 진열되어 있다. 신발은 한 짝씩만 진열하고 나머지 한 짝은 신발박스 안에 보관한다. 나는 신발들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빨강, 노랑, 파랑, 초록, 보라색, 오렌지색, 짙은 핑크------, 각가지 색으로 신발 끈을 매 놓았다. 그리고 신발 안으로 보드라운 종이를 구겨 넣어서 신발이 통통하고 보기 좋게 만든다. 마치 크레파스 상자를 열어 놓은 것 같은 신발들 사이로 죽음처럼 탁하고 권태로운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 안에 무덤처럼 갇혀 있는 한 여자의 우울한 실루엣이 보였다. 여자의 귓가로 끊임없이 들려오는 뚜벅뚜벅 발자국 소리------. 지금 그는 어디를 끝도 없이 걷고 있을까.
가게가 위치한 지역인 ‘메이필드’는 마치 미국의 ‘할렘가’같다던가, 시드니의 ‘킹스크로스’‘같은 곳이다라고 설명 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빨리 전달 될 것이다. 도시는 어둡고 탁하고 지저분한 색으로 가득 차 있다. 내가 앉아 있는 곳의 정 대각선 방향으로 전당포가 있다. 그곳에는 오늘도 분명히 텔레비전, 컴퓨터, 잔디 깎기, 카메라 그러한 등속들을 손에 든 사람들이 쉬지 않고 들고 날 것이다. 가게의 오른쪽으로부터 나란히 급전을 빌려주는 곳, 오토바이 가게, 24시간 깨진 유리 보수 가게, 문신샵 그리고 센터링크다. 이 거리에서는 싸구려 문신을 한 사람들이 비정상적인 걸음걸이로 걷고 있고, 초점 잃은 눈빛을 두리번거리는 사람들 그리고 질 낮은 언어로 다투는 소리 등을 어렵지 않게 목격 할 수 있다. 어디선가 금방 살인이 일어날 것 같고, 목을 빼고 올려다본 높은 전깃줄에는 운동화 한 켤레가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마약을 팝니다, 라고 마약 딜러가 걸어놓은 것이다. 그곳으로부터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푸쉬어가 망원경으로 그 아래를 주시 하고 있을 것이다. ‘푸쉬어’는 마약 딜러를 속칭하여 그렇게 부른다. 그리고 도시를 면해 있는 ‘이슬링톤’이라는 이름을 가진 거리에는 창녀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대낮에도 마녀처럼 기괴한 의상과 화장을 한 채 마치 오나니 하는 남자의 페니스처럼 빳빳이 세운 집게손가락을 아래위로 흔들며 거리에 서서 남자들을 사냥한다. 그 끈적한 돈으로 마약을 사게 될 것이고 또 몸을 팔고, 마약을 한 남자와 거리의 여자가 몸을 섞고 있는 교성은 도시를 흔든다. 어떤 아기들은 태어난 그 순간 그들의 더러운 목욕물과 함께 버려진다. 뉴캐슬의 지도 위에 찍힌 어둡고 탁한 한 개의 악마적 방점이다. 가게에서 한길을 가로질러 둔덕을 오르면 ’BHP‘라는 회사가 한 눈에 보인다. 철의 강(Steel River)을 낀 그곳에는 강철을 생산 하는 공장과 거대한 석탄 선착장이 있다. 꼭 포항제철시 같은 도시잖아, 한국사람들은 말한다. 한 때는 이 도시에도 사람들이 지구의 구석구석으로부터 일자리를 찾아 몰려왔다. 돈이 철물처럼 철철 흘렀던 한 시절이 있었고 도시의 대부분 사람들이 그곳에서 일을 했다. 한 번의 큰 지진이 일어났을 때 이 도시는 탈바꿈을 시작 했다. 미국에서 온 지질학자들의 검증이 지하에 숨은 과량의 석탄 추출이 지진의 원인 이라고 했다. 아직 작은 규모의 철을 생산하는 공장이 남아 있긴 하지만 옛날에 비해 소규모이다. 바닷가의 벼랑에서 휘어진 철로를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긴 석탄객차가 지나가던 과거를 상상 할 수 있다. 수평선에는 빌딩만한 배들이 언제나 정박해 있고 검고 반짝이는 흑탄을 싣고 한국이나 일본 중국 등으로 떠날 것이다.
처음 이 곳에 스케이트 숍을 열려고 했을 때 누구도 이곳에 대해서 어떠하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만났던 한국 교회 목사님 한 분만이 왜 이곳에 숍을 열려고 합니까 라고 했다. 지우는 시드니에서 탈출하기를 원했다. 하던 청소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고 싶어 했다. 유난히 아침잠이 많은 그는 꼭두새벽에 하는 일을 더는 견디기 힘들다며 낮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는 언제나 쉽게 시작하고 쉽게 옮겨간다. 호주로 이민을 오자고 한 것도 그리고 시드니에서 청소 일로 밥을 먹자고 제안한 것도 그였다. 뉴캐슬로 가서 신발 가게를 하자고, 그가 만났다는 이사장이 신발을 공급해 주겠다고 했다며 금방 성공을 한 사람처럼 들떠서 말하던 사람도 그였다. 그가 먼저 내게 다가 왔고 그가 먼저 사랑한다고 고백 했었다. 그 때 내가 아니면 죽을 것 같다고 죽음 연기를 한 것도 결혼을 하자고 먼저 말한 것도 그였다. 다섯 살씩이나 위인 내가 결혼을 망설이고 있을 때 가장 걱정 해 주었던 사람은 정작 시어머니였다. 그것은 진심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그를 임신 했을 때 소련의 낭만주의 작가 이반 뚜르게네프의 ‘첫사랑’이란 소설을 외우듯 되풀이해서 읽었다며 네가 힘들까 봐 그런다. 연하의 남자와 사는 일로 너의 마음 안에서 직조한 자신의 그물에 얽매 걸릴까 봐서 라고 내게 말해주었다.
가게를 연 후 아이러니한 회의의 그물에서 한 순간도 놓여나 본 적이 없었다. 지나간 일들로 혼란스러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쇼핑센터에서 왔다며 남자 둘과 여자 둘이 한 패가 되어서 들어 왔다. 흠칫 놀라 정리하던 신발 상자를 덮으며 고개를 들었다. 화려한 그들의 옷차림과 거세게 땅을 박차며 들어오는 발소리에 순간 기가 질렸다. 그들이 허락도 없이 여러 종류의 신발 사진을 찍었다. 덩치가 가장 큰 남자가 코앞까지 다가 왔다. “여기 있는 상품들은 모두가 가짜야, 알아?” 남자가 말했다. 손사래를 치며 황당하여 더듬거리며 이것들은 모두 정품이야 라고 설명을 할 때 그들이 획 돌아서서 등만 보인 채 나갔다. 이 가게가 없어지면 그들이 얼마나 더 많은 수입을 올리게 될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나는 말 할 수 없이 서글퍼진 감정 위로 몰아치는 분노를 억눌렀다. 검은 빛을 발하는 세상의 끝 같은 비운이 양쪽 어깨 위로 느껴졌다. 다섯 장의 유리문을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고 이해하기까지 지나치게 많은 시간들이 필요했다. 그것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키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단 한 번도 내 일생을 통해 크고 거대한 것에 대해서 꿈꾸어 본 기억이 없다. 그런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견디고 있을 것이다. 내가 아직 무엇 때문에 죽음의 문턱을 넘지 않고 있는지 그것에 대해서 나는 확실한 대답이 없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을 떠올리는 순간, 삶의 주인은 고집을 부리며 내 뒷덜미를 잡아당길 것이다. 아직은 견뎌야 하는, 삶의 길 위에 버티고 있는 나이이다. 아직은 더 견뎌야 했다. 그러나 누구도 내게 삶을 어떻게 얼마나 더 견디어야 한다고 말해준 사람은 없었다. 다만 견디어야 한다고만 했다.
쇼핑센터 사람들을 생각하면 영혼의 구석구석이 떨리고 토네이도 같은 분노로 마음이 암울해졌다. 그럴 때마다 어떤 연상 작용처럼 지우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때 캔이 문을 열고 들어 왔다. 여느 날과 다른 오후였고 그의 얼굴이 여러 군데 상처로 부풀어 있는 것이 보였다. 오른쪽 이마에서부터 머리털이 손바닥 크기로 뽑혀 나가버린 자리가 붉게 덧나 있다. 내가 까서 건넨 쵸코렛 한 개를 그가 받아 입 속에 넣었다. 언젠가 물어본 그의 나이는 스무 두 살이라고 했다. 다운 증후군인 그를 안을 때마다 작고 가느다란 몸이 가슴속까지 전해져 왔다. 연약한 떨림은 오랫동안 그대로 가슴언저리에 딱지 붙어 있곤 했다. 한쪽 볼을 찌그러뜨리며 웃고 있는 그의 얼굴에 대고 물어 본다. 얼굴이 왜 그래? -------혀----혀엉이------뜨뜨거운---프---프라이팬으로------. 힘든 말을 할 때면 그는 더 많이 더듬거린다. 며칠 전, 캔이 형을 데리고 가게에 와서 형의 신발을 사 주었다. 나는 고개를 모로 들고 관자놀이를 당기며 이마의 주름을 모았다. 그리고 그날의 기억을 돌아다보았다. 그 때, 반값만 받겠다는 허락을 내게 다섯 번도 넘게 확인하고 형의 생일 선물을 사주게 되었다고 캔은 좋아했었다. 신발을 사준 다음날 형이 마약을 하고 캔에게 신발을 갖고 가서 돈으로 받아 오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미 신어서 더러워진 신발을 어떻게, 못해, 하자. 마약 중독자인 형이 뜨거운 프라이팬으로 이마를 때렸다고 그가 말보다는 더 많은 몸짓으로 설명 했다. 헤벌어진 형의 입술 사이로 보았던 깊고 검었던 잇몸, 떨고 있던 두 어깨, 다리 팔 목 등 온몸에 싸구려 문신이 되어 있던 캔 형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 났다. 캔은 병원에 가게 되면 얼마 동안 못 오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어린아이 같은 캔의 눈을 들여다보면 그의 무구한 세계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그가 몸을 돌려 들어와 포옹을 한다. 도와 줄 것이 없느냐는 내 물음에 고개를 저으며 문턱을 넘는 그를 바라다보고 있다. 문턱을 넘다 상체를 돌려서 손을 흔든다. 그가 다시 되돌아와 품에 안긴다. 그의 눈 속에는 알 수 없는 사무침이 서려 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것이 가슴을 훑어 내린다. 그가 문 앞에 서서 쥴리아 바이 하는 소리를 자동차 소음이 잘라 먹었다. 놓친 말꼬리를 붙들려고 뛰어갔다. 그가 다시 뛰어 돌아 왔다. 어엉, 쥴리아에게 안녕 하려고. 그가 건너려고 서 있는 횡단보도 전광판 위에 앉아 있던 작은 새 한 마리가 몇 번의 깃을 치다 허공을 향해 날아갔다.
삼 년이란 필름을 되감아 기억들을 새겨 본다. 가게를 열고 딱 삼 일만에 쇼윈도우의 큰 유리창이 박살 났다. 경찰의 신고를 받고 달려간 그곳엔 처참하게 널린 유리 조각들과 깨진 맥주병이 뒹굴고 있었다. 왜, 라고 묻는 질문에 경찰은 마약을 한------, 이란 애매모호한 대답을 했다. 그 후로도 맥주병으로 벽돌로 망치로------, 유리문은 쉴 사이 없이 깨졌다. 여자를 사거나 마약을 하기 위한 자들로부터, 나랑은 무관한 분풀이 대상으로, 그 큰 유리문들은 끊임없이 작살이 났다. 보험회사는 이제 더는 보험신청을 받아 줄 수가 없다고 했다. 건물 주인은 안전보조철문을 달아 주면서 두 배로 가게 세를 올렸다. 이제 그들은 지붕으로 올라가 기와를 들어내고 드릴로 두꺼운 천정 벽을 헐어 내고 가게에 침입했다. 이른 새벽이면 경찰로부터 걸려오던 사건 신고에 미친 듯이 달려 나갔던 셀 수 없이 많았던 기억들. 십대의 아들을 앞세워 아버지가 공범으로 도난을 했다. 17세가 되지 전까진 법적 책임이 없는 것을 아버지는 악용했다. 그 큰 유리문을 부수고 아버지와 십대 아들이 함께 공범으로 가게를 털고, 열 살을 갓 넘긴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참담한 사념 속을 깨우며 우편집배원이 들어 왔다. 수취인 직접 확인 우편물이다. ‘귀하는 모조 상품을 매매한 과징금으로 아래의 금액으로 처벌함.’ 작고 가는 글씨들로 꽉 찬 다섯 장의 도큐먼트다. 후들거리는 두 팔을 가누고 호흡을 정리 했다. ‘모함이야, 힘 있는 자들의 명백한 모함이야!’ 굵은 매직으로 도큐먼트 위에 빠른 글씨로 갈겨썼다. 그것들을 한 장씩 북 북 찢은 후 쓰리기 통속에 던져 넣었다. 여진처럼 온몸과 정신이 떨려 왔다.
며칠 후 유리문에 달라 붙은 깨진 계란을 닦고 있었다. 미끈미끈한 계란노른자와 강력접착제처럼 달라붙은 흰자위 그리고 잘게 부숴진 껍질들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피부가 다르고 마늘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동양인을 미워하는 자들의 장난이다. 뜨거운 물에 비누를 풀어서 스펀지로 유리의 바깥 면을 빡빡 문질렀다. 계란의 비릿한 냄새를 맏자 속이 심하게 메스꺼웠다. 그 때 호주머니 속의 모발이 진동으로 떨렸다. 미녀가 카톡으로 생일을 축하한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하트모양 속의 메시지를 읽고 웃었다. 미녀는 시드니에 살고 있는 친구다. 내가 잊고 있는 생일을 그녀가 기억해 주는 것이 재미있어서 계속해서 쿡쿡 웃을 때 딜러와 처녀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미녀를 만나지 못한 지가 오래 됐구나 생각하며 그녀의 말대로라면 나는 미련스럽다. 그녀를 만나 몇날밤이 새도록 얘기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들이 오늘은 처녀의 신발을 살 것이라고 믿었다. 남자는 어제 신발을 사갔기 때문이다. ‘오늘 그가 처녀의 신발을 사주게 됐구나’ 나는 내심 기뻐하며 눈인사를 했다. 어제 남자가 네 켤레 째 신발을 신어 본 후 초록색 오시리스를 잡고 돈을 지불했었다. 돌돌 말린 지폐를 그의 바지 뒷주머니에서 꺼냈었다. 그가 신발을 신어볼 동안 처녀도 여러 켤레의 신발들을 신어 봤었다. 처녀가 신어 보았던 신발들은 모두가 우울한 보라색이었다. 그가 신발을 산후 처녀를 향해 가자 고 하자 처녀가 나도 사고 싶어 라고 말했다. 그가 닥쳐 하자 처녀가 내 돈이잖아 하면서 금방 울음이 터질 것 같은 표정으로 그의 등을 따라 나갔던 일이 기억났다. 그러고 보니 오늘 남자의 걸음걸이가 어제보다 더 심하게 비틀거렸다. 핏발선 눈과 초점 없는 시선으로 신발을 카운트에 탁 하고 던져 올렸다. 신발은 상자도 없을 뿐 아니라 여러 곳에 얼룩져 있다. 환불을 해줘, 찢어진 신발을 네가 팔았어, 그가 입술을 치켜 올리며 암흑색 잇몸으로 말했다. 딜러를 쳐다보던 눈을 내려 신발을 보았다. 양쪽의 패딩을 따라 칼로 좍좍 그어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경찰을 부르겠다는 내게 그가 도끼눈을 하고 씻팔, 돈 내 놔, 송곳을 세우고 화를 냈다. 못 내놔, 경찰을 불러봐, 그가 꽥 소리를 치며 검푸르고 더러운 손으로 빗자루로 쓸듯 진열대 위의 신발들을 확 휩쓸어 버렸다. 처녀도 그가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 했다. 그와 처녀가 숍 안의 눈에 보이는 것들을 마구잡이로 던지고 발로 차고 뒤집었다. 그리고 저속한 욕을 하며 그들이 획 사라졌다. 나는 카운트에 올려놓은 찢어진 신발을 집어 들었다. 팔목에 힘을 모아 있는 힘껏 공중을 향해 던졌다. 신발이 포물선을 그리며 뒤죽박죽된 신발들의 더미 위에 툭 툭 떨어졌다. 뒤집힌 신발박스들, 엎어진 신발들이 지진의 잔해처럼 흩어져 있다. 오후 2시, 조금 있으면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신발을 사러 올 시간이다. Close 로 돌려놓고 가게의 문을 닫아걸었다. 너희들 모두 너희들 모두------. 의식을 깨우며 사후의 세계가 몽환처럼 내 머리 속에 어른거렸다. 터져 나오는 분노로 신음하며 신발박스가 쌓인 창고로 들어갔다. 밖에서 손님이 유리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울음을 죽이려고 셔츠로 입을 막았다.
긴 시간이 흘렀다. 그 속으로 수많은 철새들이 날아가는 환영을 보았다. 하얗게 비어버린 의식 속으로 떠나가는 무수히 많은 철새들의 그림자들을 쫓고 있었다. 불을 켜지 않은 가게 안은 어둠만이 가득하다. 사다리 위에 서서 선반의 맨 위의 오시리스 사이즈 10을 꺼냈다. 눈을 감고도 무슨 신발이 어디에 있는지 나는 꿰고 있다. 뒷문을 나와 문을 걸었다. 문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방울은 차츰 굵어져 소나기로 변했다. 집까지 걸어가는 시간은 약 십 분이다. 쓰라린 삶을 경험을 해본 사람은 알게 될 것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피상적인 안목에만 의존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영혼의 깊은 곳으로부터 한없이 조용하고도 알 수 없는 어떠한 힘이 나에게 경고의 귀띔을 해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걸어가는 의식 속으로 폭력을 휘두르고 간 딜러의 얼굴이 연속적으로 떠올랐다. 아우라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 남자의 암갈색 그림자가 세차게 퍼붓고 있는 빗줄기와 빗줄기 틈으로, 빗물을 튕기며 걷고 있는 내 발자국과 발자국 사이로 환시처럼 보였다. 비록 깨진 볼록렌즈일지라도 지속적으로 빛을 반사하면 종이를 태울 수 있듯, 단 하나의 생각을 골똘히 하면 연기 속에서 암시 같은 검은 그림자가 보인다.
다행히 주인 할머니는 집에 없었다. 나는 푹 젖은 옷들을 한 겹씩 벗어 냈다. 젖은 몸은 이가 딱딱 부딪힐 정도로 추웠다. 차가운 알몸으로 옷장 문을 열고 지우가 남기고 간 그의 겨울 옷들을 꺼냈다. 초록색 잠바를 걸치고 그의 청바지를 입었다. 상자를 열고 오시리스를 꺼내어 맨발을 집어넣었다. 훌렁하게 큰 신발의 끈들을 언 손가락으로 하나씩 잡아 당겨 단단하게 조여 매었다. 옷장을 닫고 옷장에 달린 거울을 힐끗 쳐다본 후 잃어버린 물건을 찾듯 다시 옷장을 열었다. 그리고 그가 남기고 간 오시리스 캡을 머리 깊숙이 섰다. 이제 방안을 천천히 돌며 옷장거울 속의 지우에게 묻는다. 네가 찾아 나선 것을 너는 찾았는가? 뚜벅 뚜벅, 팔을 침대나 옷장에 부딪치지 않으려고 어깨의 폭을 최대한 줄여서 좁은 공간 속을 걷는다. 문을 박차고 작은 방안에서 빠져나가 밖으로 나갔다. 거실로 내러 가는 다섯 개의 나무계단은 발이 닫을 때 마다 삐걱삐걱 소리를 냈다. 지우는 계단에 앉아서 할머니와 농담하기를 즐겼었다. 그가 할머니에게 몸짓 언어를 하기 위해 열심히 움직이던 긴 손가락들이 공간 속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것 같다. 훌렁거리는 신을 신고 걷고 있는 거실에는 발소리만이 가득하다. 지구 위처럼 빙글 돌아보기도 한다. 생고무로 된 스케이트 신발의 편편한 아웃 솔이 마루의 바닥에 닿을 때마다 오일이 바닥난 브레이크 소리처럼 삐이삣 소리를 낸다. 얼마나 오랫동안 걸었을까. 몸이 풀어진 미역처럼 늘어졌다. 나무계단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그리고 몸을 돌돌 말아 안아 두 팔로 무릎을 감싼 뒤 그 위에 얼굴을 묻었다.
대학교 때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도서관의 고서 서고였다. 바구미가 책들을 몽땅 쓸어 놓았다. 먼지가 풀썩거리는 서고의 책 더미 속에서 떨어진 먼지와 책들이 내 몸을 폭설처럼 덮고 있었다. 그 옆에도 그 다른 옆에도 시체들이 먼지 속에 죽은 채 묻혀 있었다. 서고 가운데서 촛불 한 자루가 바람도 없이 흔들리며 타고 있었다. 촛대를 타고 붉은 피가 촛농처럼 흘렀다. 갑자기 촛불이 꺼졌다. 꺼진 초의 자루 아래로 하염없이 피가 계속 흘러 내렸다. 무서웠다. 엄마를 외쳐 부르며 그곳으로부터 빠져 나오려고 달음박질쳤다. 그러나 다리가 꼼짝하지 않았다. 무서운 꿈을 꾸고 있었을 때 누군가 몸을 흔들었다. 그새 할머니가 돌아와 쥴리아, 쥴리아, 부르며 깨웠다.
“…어움마가 뭐야. 꿈을 꾸면서 어움마 어움마 하고 소리를 쳐서 너를 깨웠단다. 괜찮아?”
할머니가 생일 케이크 위에 촛불을 켰다. 나는 들켜버린 내 우스꽝스런 모습이 갑자기 부끄러웠다. 옷을 갈아입겠다고 하자 그대로 보기가 좋다며 할머니가 손사래까지 치면 말렸다. 쥴리앙 이라는 젊은 남자랑 앉아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는 농담까지 하며 할머니가 나 대신 촛불을 껐다. 쥴리앙은 지우의 영어 이름이다. 얼룩진 얼굴 위로 생크림이 잔뜩 묻은 내 입술을 응시 하던 할머니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녀가 폐 깊숙이 들이킨 연기를 어둠이 깔리고 있는 문밖으로 후우 뱉으며, 물고기좌에 태어난 여성은 한 사람 만을 생각하며 그와 영원할 수 있기 만을 기도하는 순종적인 여인들이지.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도 오랜 시간 그를 위해 마음 한 구석을 비워두는 순정파란다. 남성들이 좋아하는 여성 별자리 이긴 하지만, 말하며 할머니가 그녀의 낡은 손마디로 내 두 손을 끌어 모아 잡았다. 인간은 누구나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는 적극적인 욕망과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수동적이 욕망이 있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두 성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어느 쪽이 더 강한가에 따라 기댐을 받는 사람이 되어 살아가거나 등받이가 되어주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란다. 말하던 할머니는 침묵하고 있는 내 어깨를 긴 팔을 돌려서 안았다. 일흔 살을 앞둔 할머니의 인생은 기댐을 받는 사람이었는지 기대어 주는 사람이었는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속으로 삼켰다. 나는 불현듯 무거운 분위기를 돌려놓고 싶었다. 나도 할머니를 지우처럼 웃겨 보고 싶었다. 갑자기 지우가 하던 방식을 나도 흉내 내고 싶어졌다.
“할머니, 제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 줄까요?”
“음, 좋지, 좋구말구.”
나는 케이크 뚜껑상자에 연필로 ‘사랑 없음’과 나란히 ‘사람 없음’이라고 썼다.
“뭐가 다른지 한 번 알아 맞춰 보시겠어요?”
그녀는 끝내 필기체로 쓴 한글의 사람과 사랑의 받침 ㅇ과 ㅁ의 미세한 차이를 구별해 내지 못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랑 받지 못한 한 불행했던 할머니의 얘기를 그녀에게 들려주고 싶었지만 금방 포기 했다. 내가 가진 언어로는 할머니를 웃게도 울게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괜스레 이야기를 꺼낸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녀에게 해주려다 접어버린 이야기는 너무 슬프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그 얘기를 듣고 울면서 동시에 웃었다. 혼자만 그 얘기를 생각 하자 슬픔이 두 배로 불어 났다.
어두운 창 밖을 무연히 응시 한다. 창에 비친 내 얼굴이 마치 한 마리 물고기처럼 입을 벌리고 공기를 뻐끔 거리고 있다. 물고기의 영혼이 빠져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빈 영혼 안으로 들이치는 발자국 소리, 그가 초록색 오시리스를 신고 발이 땅에 닿지 않은 채 텅 빈 영혼처럼 걸어가는 뚜벅뚜벅------,하는 소리. 잠을 자다 그 소리에 놀라 잠이 깨곤 했다. 그 후 오랫동안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뜬 눈으로 하얗게 아침을 맞곤 했던 많은 날들. 긴 시간 창틀에 고개를 얹고 앉아 있었나 보다. 뻣뻣한 몸을 침대 속으로 밀어 넣자 몸이 한 없이 편안해 졌다. 젖은 머리칼을 털 듯 세차가 목을 흔들었다. 새벽처럼 명료해져 오는 머릿속으로 갇혀 있던 물방울들이 흩어지는 환영을 본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없어. 도로 하기만한 일들을 혼자 끌어안고 책임을 지겠다고 억장을 부렸는지도 몰라. 모멸의 시간이 내편이 될 날을 기다리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여기까지 온 것일 뿐이야. 주어진 것들을 밀쳐 낼 용기가 없어서 그냥 견뎌온 것뿐이야. 캡을 벗어내고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 바지와 그의 초록색 잠바를 벗자 폭죽처럼 갇혀 있던 뜨거운 눈물방울들이 손등 위로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여러 날 째 캔은 보이지 않았다.
부어 오른 눈두덩을 얼음조각으로 문지르며 유리문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른 아침 시간 처녀가 지나가고 있었다. 결국 마약 딜러는 그 새 그녀를 차버린 모양이었다. 처녀가 잔뜩 화가 나 걸어가고 있다. 처녀의 굵은 허벅지보다 훨씬 위인 크다란 엉덩이 중간쯤에 짧은 치마가 우습지도 않게 걸려 있다. 처녀는 팬티를 입지 않았다. 그녀는 딜러를 욕한다. 딜러의 이름이 마이클 이었는지 마이클, 개새끼가 내 돈을 다 뺏어 가버렸어 라고 소리친다. 그 때 헤벌레 벌어진 입술 사이로 싯검은 잇몸을 드러낸 온몸이 문신으로 얼룩진 처음 보는 남자가 그녀 가까이 바삭 다가가는 것이 보인다. 나는 뚜렷하게 명징 할 수 없는 일로 분노하고 있었다. 그러한 순간 내 깊은 바닥으로부터 올라온 예감은 어느 때보다도 선명하고 한결 또렷했다. 도시 전체를 휘도는 암울한 공기를 감지한 나는 한없이 무거운 중력을 밀치며 가게의 문을 열었다. 빗속을 걸을 때 보았던 딜러의 암울한 실루엣은 그날 이후 저승사자처럼 끊임없이 나를 따라 다녔다.
그 저승 같은 환영을 끓어 안고 오랜 만에 깊은 잠 속으로 빠져 들었던 밤이었다. 해가 막 떠오르는 시간 할머니가 깨웠다. “가게 앞에서------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녀가 숨죽여 말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지우의 오시리스에 발을 넣었다. 방안에 두었던 신발은 따뜻했다. 훌렁거리는 신발을 신고 뚜벅 거리며 나는 현장을 갔다. 현장엔 접근 금지 폴리스 라인이 넓은 지역까지 쳐져 있었다. 눈으로 포착 되지 않는 사건 현장으로부터 동풍을 타고 비릿한 피 냄새가 콧속으로 번져 왔다. 범인이 현장을 재확인 하듯 나는 다시 한 번 폴리스 라인 안의 가게를 돌아다보았다. 불행의 집적들, 나는 습관처럼 중얼거리고 있었다. 참을 수 없는 비릿한 냄새로부터 달아나고 싶었다. 다리가 심하게 후들거렸다. 역겨움이 한꺼번에 몰아쳐 왔다. 나는 전봇대 아래서 몸을 말아 앉았다. 위장 안에서 아직 소화되지 않은 음식 찌꺼기들을 크억크억 토해 냈다. 입언저리에 묻은 시큼한 이물질들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전봇대 위에 신발 한 켤레가 금방 내 머리 위에 떨어질 것처럼 대롱거리고 있었다. 마약을 상용 하는 그들, 가장 쉽게 카나비라는 마리화나를 피운다. 아침마다 가게 문을 열 때면, 여름날 아침 전등 아래 죽어 있던 수많은 나방의 시체들처럼 가게 앞에 뒹굴던 마리화나 꽁초들, 그것을 처음 본 나는 돈 없는 사람들이 손수 말아 피우는 담배꽁초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마리화나라는 것을 알기 전까진 맨손으로 그것들은 하나씩 주워서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것이 마리화나 꽁초라는 것을 안 후 다시는 손으로 그것을 만지지 못했다. 더러운 벌레 대하듯 빗자루로 쓸어 버렸다. 그들은 마리화나로 시작해서 엑스터시 알약을 복용하게 되고 그리고 헤로인이나 코카인을 비강흡입하는 단계로 발전해서 리세르그산 디에틸아미드 용액(LSD) 주사를 찌른다. 한 지구 위에 살고 있는 나와 그들은 각각 다른 몸부림으로 오늘과는 다른 내일의 재생을 꿈꾸며 견디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신발이 내 머리 위에 금방 떨어져 내릴 것만 같아 불안했지만 나는 전봇대 아래 앉아 ‘경악을 금치 못할 살인 사건’ 신문기사를 읽었다.
‘범인은 여섯 시간 만에 경찰의 추적에 의해 잡혔다. 황당하게도 39살인 그는 10 년씩이나 마약 딜러의 단골 고객이었다. 살인자는 어느 날부터 자신이 변신 하겠다고 꿈을 꾸었다. 그가 즐겨 보는 3D 영화의 주인공처럼 하늘을 날고 쉽게 사람을 죽이고 아름다운 여자는 언제까지나 그를 기다려 주고 그리고 마지막엔 승리하게 되는------. 그날도 범인은 그러한 환각증세 속에서 딜러를 만났고, 딜러는 또 한방의 LSD 용액의 주사를 범인에게 찔러 주었다. LSD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무섭게 인간의 뇌에 활성화 되는 마약이다. 사실 그가 딜러를 죽일 계획은 없었다. 성공한 돈이 많은 인간들을 죽이려고 했다 마치 영화에서처럼. 그런데 그날 갑자기 딜러가 그에게 대고 ‘머저리’ 라고 가볍게 농담을 했고, 그 말을 듣는 순간 그가 품에서 칼을 꺼냈다. 긴 식칼이었다. 급작스런 상황으로 딜러가 놀라 달아났다. 그는 전당포까지 따라 오는 살인자를 피하기 위해 한길을 가로 질러 신발가게 앞까지 뛰어 갔다. 살인자를 저지하려고 딜러가 두 손을 높이 들고 돌아 서는 순간 뒤쫓아 온 살인자가 딜러의 목을 댕강 잘랐다. 무처럼 잘랐다. 피는 일대를 물들였고 피비린내는 바람을 타고 백 미터도 더 멀리 이슬링톤까지 날아가 사람들을 불안하게 했다.’
딜러와 살인자의 사진은 기사의 상단에 나란히 실렸다. 신문 속의 두 사람은 형제처럼 사이가 좋아 보였다.
딜러는 죽었다. 메일필드마약킹이란 칭호를 가졌던 그의 심장은 얼마만한 질량으로 명계의 저울에 올려질까. 여자들을 곤충처럼 버렸고 마약을 강매한 돈으로 창녀와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버리고 신발을 칼로 자르기도 하던 그가 메이필드에서 사라져버렸다. 암울한 피의 냄새를 맏은 도시 사람들의 목소리가 조용해질지도 모른다. 창녀들은 길거리에서 사라질지도. 사람들은 어느 날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않으려고 할지도 모른다. 메이필드는 조용하고 정상적인 도시로 탈바꿈 하게 될까. 그 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제일 꼭대기에 있는 초록색 오시리스 신발을 내린다. 소리를 내어 조심해 라고 내 자신에게 경고를 했다. 기다리는 손님을 생각 하며 급하게 신발 상자를 내리다 박스가 뾰족한 코너로 굴러 떨어지면서 얼굴이 심하게 긁혔던 일들이 떠올랐다. 상처들은 칼자국처럼 아직 내 얼굴에 남아 있다. 그러한 기억들은 사람 피폐하게 한다. 한 박스의 신발을 내리고 다시 조심조심 올라가서 다시 한 박스를 내렸다. 둘 다 초록색의 오시리스 사이즈 6이다. 짙은 핑크와 형광 보라색 각각 한 쌍씩의 신발 끈을 풀었다. 한 짝에 짙은 핑크를, 다른 짝엔 형광 보라색을. 다른 한 켤레 신발엔 그 반대로, 각각 엇갈린 색으로 신발 끈을 꿴 후 트럭에 실었다. 트럭에서 신발을 갈아 신었다.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다른 색의 화려한 신발 끈을 매는 것이 이곳 십대들에게 유행이다. 트럭의 트레이가 부서지는 소리를 냈다. 지우가 버리고 간 유틸리티 트럭은 주택가의 저속도 턱을 넘을 때 마다 부서지듯 요란한 소리를 냈다. 나는 트럭에게 항의하듯 심하게 화를 냈다. 문밖에 서서 발의 코끝을 한참 동안 응시 했다. 장애자보호센터 출입문을 밀면서 이유 없이 긴장하고 있었다. 스쳐간 아픔들과 실망들과 외로웠던 다른 많은 갖가지 괴로운 경험들이 기억나자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일들은 너무 많아, 구시렁거리며 입술을 비틀어 웃어보았다.
캔의 첫마디는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는 새엄마와 스텝 형과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캔의 외할아버지는 마약 딜러였다. 오래 살지는 못하고 죽었지만 그는 마약이 섞인 한 톨의 피를 세상에 남겨 두었다. 숨어 있던 피의 유전자는 한 세대를 건너뛰어서 캔의 혈관 속에 장애자라는 유산으로 남았다. 아기였을 때 떠나가버린 기억에 없는 엄마. 캔의 눈자위에 돌연한 바람이 몰아온 한 풍광이 투영되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으스름한 저녁이다. 한 소년이 몸도 마음도 추위로 한없이 지친 채 길을 걷고 있다. 시리고 아픈 시야 속으로 우연히 마주친 환하게 열린 창문, 그 불빛 속에 보이는 김이 오르고 있는 저녁밥상, 식당의 한 벽면에서 장작 난로가 탁탁 소리를 내며 타고 있다. 뜨거운 수저를 놀리며 왁자하게 떠들고 있는 가족들의 웃음소리들, 캔의 눈 속에서 그리움에 사무친 그러한 풍경이 몽환처럼 내 의식 속으로 나타났다. 가방 속의 신발 상자를 꺼냈다. 캔과 나는 같은 발의 사이즈를 가졌다. 왼쪽은 핫 핑크, 오른쪽은 형광 보라색의 신발 끈이 꿰어진 오시리스 초록색 사이즈 6 이다. 그가 신발을 꺼내 들고 “워키토키!" 라고 외치며 왼쪽 볼을 심하게 찌그러뜨리며 웃었다. 그의 오른발과 나의 왼발을 쌍기역자로 높이 올려서 찰칵, 그리고 그의 왼발과 나의 오른발을 다시 쌍기역자로 올리고 어깨를 껴안고 사진을 찍었다.
부서질 것 같은 트럭의 트래이가 골목길의 턱을 넘으며 날 선 소리를 낸다. 정의의 저울에 올라 가 있을 죽은 딜러의 붉은 심장이 환각처럼 보였다. 길 위에서 갑자기 심하게 오줌이 마려워 왔다. 나는 맹그로브 숲 속으로 들어가 양손으로 치마를 우산처럼 펴고서 시원하게 배뇨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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