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益山) 미륵사지(彌勒寺址) 위치도.
1969년 6월 중순.
논산 "연무대"에서 전반기 훈련을 마치고 후반기 L.M.G기관총 교육을 받으러 "연무대"에서 "금마"(金馬)까지 걸어서 왔다.
부대에 거의 도착 할 무렵 이 탑을 처음 보았다.
규모도 엄청났지만 한쪽이 세멘트로 수리를 해놓은 특이한 이탑은 당시 불교에 문외한이였던 내게 큰 충격이였다.
좌측에 잘 정돈된 석재들은 무너져내린 석재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그후에도 사격훈련을 받으러 이 앞으로 지나 다니면서 몇번 보았지만 천천히 볼 시간이 없어 그냥 지나쳤다.
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이 "미륵사지 석탑"(彌勒寺址 石塔)은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1910년경의 미륵사지 석탑彌勒寺址 石塔.
이 사진이 아마도 제일 오래 된 "미륵사지 석탑"(彌勒寺址 石塔)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익산(益山)까지 이 석탑(石塔) 하나를 보려고 떠나는 모험은 당시의 형편으로 이루어 질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무려 45년 후인 2015년 4월 7일 "미륵사지"(彌勒寺址)를 방문했다.
그러나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탑(塔)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전에 없던 보다 더 큰 탑이 하나 서 있었다.
내가 처음 보았던 탑은 "서탑"(西塔)이고, 이 탑은 "동탑"(東塔)이란다.
내가 보고 싶어 했던 탑은 완전 해체하여 수리중이라고 했다.
탑이 있던 자리에 엄청나게 높은 창고를 세우고 그 안에서 탑을 복원하고 있단다.
다행히 들어가 볼 수가 있어 들어가 본다.
?
아무것도 없다.
2001년 10월부터 해체작업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15년이 지나도록 해체만 했단 말인가.
이 "미륵사지 석탑"(彌勒寺址 石塔)은 현재 남아있는 석탑으로는 제일 큰 석탑이며 가장 오래된 "백제의 석탑"이라고 한다.
"미륵사"(彌勒寺)는 백제 무왕(武王)때 창건된 백제 최대 사찰로 석탑 역시 이때 함께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조선 영조때 탑이 붕괴되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고, 1913년 "세키노 다다시"(關野貞)와 "다니이 세이치"(谷井濟一)에 의해
탑의 촬영과 실측조사가 실시된 후 1915년 "시멘트 모르타르"로 보수했다고 한다.
그후 86년간 그 상태대로 유지되다가 2001년 10월부터 완전 해체하여 복원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듣기로는 석재를 해체하는데 상당히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이유는 석재의 교묘한 짜맞춤으로 인하여 분해가 무척 까다로왔다고 한다.
해체하던 중 2009년에는 탑신 내부 심주(心柱)에서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를 발견했다고 한다.
2017년 12월에 탑의 조립 공정이 완료되었으며, 2018년 6월 완전히 복원되어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참고로 다른 분이 찍어 인터넷에 올린 사진을 찾아봤다.
2009년 1월 7일 해체 과정 사진.
2016년 4월 30 조립 작업 사진.
해체한 석재들과 새로 조립하기 위해 만들어진 석재들이 야외에 차례로 전시되어 있다.
2015년 4월에 전시되어 있던 "미륵사지 석탑"의 설명문.
미륵사지와 미륵산.
옛날에는 저 미륵산 왼쪽 바위가 보이는 숲속에 LMG사격장이 있었다.
서쪽 당간지주와 동탑.
동쪽 당간지주와 동탑.
중앙의 목탑지(木塔址).
2022년 9월 15일.
"전통문화교육원"의 문화 교육인 "국민과 함께하는 전통문화의 이해과정"을 통하여 "미륵사지"를 다시 찾았다.
미륵사지(彌勒寺址) 전경(全景).
복원된 서탑(西塔)과 동탑(東塔)의 모습.
먼저 이번에 복원된 서탑(西塔)을 자세히 둘러본다.
동탑(東塔)
서탑(西塔)과 당간지주(幢竿支柱).
동탑(東塔)과 당간지주(幢竿支柱).
다른 터도 다시 복원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근거가 없이 복원하는 것은 지양했으면 좋겠다.
익산 박물관에 있는 "미륵사" 상상(想像) 건축 모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