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스즈카에서 익산의 희망연대를 떠올리다.
이남곡
사토야마(里山)에서
지난 6월 27일부터 4박5일 간 일본 중부 나고야 근처에 있는 인구 20만명 정도의 스즈카라는 곳을 다녀왔다. 작년 논실인문학교에도 한 번 와서 소개를 한 애스원커뮤니티(as one community)라는 새로운 지역사회만들기의 실험이 진행중인 곳이다.
컬쳐스테이션(culture station), 농장, 여러 곳의 컴뮤니티 하우스나 식당, 사이엔즈스쿨이라는 일종의 연수원, 도시락 회사를 비롯한 애스원컴퍼니, 링카(rinka;일종의 지역화폐)사무국 등을 방문하고, 여러차례의 간담회를 가졌다.
컴뮤니티의 구성원이 몇명인지를 잘 모르고, 모든 장소들이 시내 이 곳 저 곳 도시 가운데 흩어져 있는 것이 아마도 이 커뮤니티의 성격을 잘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곳 구성원들 특히 초기멤버의 대다수가 고도의 무소유 공동체인 야마기시실현지 출신들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커뮤니티의 구성원인지 아닌지 모르는 사람들이 다수 늘어간다는 것이 바로 이 사람들이 <형태가 있는 공동체>로부터 일반 사회와 경계가 없는(이것을 이곳 사람들은 無邊境이라고 한다)커뮤니티를 만들어 가고 있는 모습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첫 간담회 모습
커뮤니티를 일본어로 번역해서 사용하지 않고, 영어 그대로 쓰는 것도 실현지나 공동체 등의 용어가 폐쇄성을 띠는 느낌을 주기 때문인 것 같다. 굳이 번역하자면 지역사회 정도가 아닐까 하고 대답을 했는데, 요즘 우리나라의 농촌과 도시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마을공동체 만들기를 연상케 한다.
특히 나에게는 스즈카에서 여러 가지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민관거버넌스가 선구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익산과 그 주체의 하나인 희망연대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참가 인원이나 지역사회와의 접촉수준, 민관의 협력의 정도에서는 오히려 익산의 희망연대가 폭넓은 점이 있지만, 그 지향하는 사회상이나 인간상이 뚜렷하다는 점은 우리가 배우고 진척시켜야할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사실 에스원컴뮤니티의 주체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은 무소유공용사회라는 이상을 추구하여 50년 이상의 역사 속에서 커온 사람들이다. 그것은 대단한 힘이면서 동시에 일반 사회 속에 녹아 들어가는데는 알게 모르게 넘어서야할 과제들도 많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참가자 기념촬영
지향하는 분명한 목표가 있다. 그것은 ‘돈에 의해 지배되지 않고’ ‘늘 대하는 사람들과 어떤 말이나 행위를 해도 즉 있는 그대로의 자신들을 내보여도 사이가 나빠지지 않으며’ ‘누구도 직간접으로 강제당하거나 방해받지 않고, 마치 주위에 신경쓰지 않고, 장난감 조립에 몰두하고 있는 아이처럼 즐겁게 일하는’ 그러면서도 노후를 걱정하거나 생존을 걱정하지 않고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를 부정하지 않고(관광을 커뮤니티멤버가 세사람 같이 갔는데, 입장료나 식사대를 우리 식으로 함께 계산하니까 정색을 하고 더치페이하는 것을 보고 우리 일행이 놀랄 정도로) 개인의 집과 개인적인 삶을 살면서 그 속에서 마음이 먼저 나아간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통해서 조금씩 그런 이상을 향해 나가는 사회적 기풍과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우선 생각되는 몇가지를 소개해 보고 싶다. 이 분들이 만든 회사가 에즈원컴퍼니(as one company)인데, 그 속에 부동산, 농장, 건축, 심부름가게, 도시락 등이 있는데, 도시락회사의 성업에 영향을 받았는지 그곳 대표로 일하고 있는 사람이 요즘 ‘회전초밥집’을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컬쳐스테이션의 수제품 판매장(지역사회의 누구라도 일정한 수수료만 내면 사용가능)
이 에즈원컴뮤니티의 가장 큰 모토는 <회사를 위한 사원이나 종업원이 아니고, 사원과 종업원을 위한 회사>라는 것이다. 엄마손도시락이라는 이름으로 도시락 회사가 가장 성업중이었는데, 파트타임을 포함해서 50명 정도가 일하고 있고, 지금은 세 곳에서 하루 1000개 정도가 팔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의 급료체계가 일반과 달리 노동의 양에 의해서가 아니라 종업원의 필요(가족 등)에 따라 서로 상의하여 책정하고 있었다.
또 커뮤니티의 화폐로서 일종의 지역화폐인 링카(rinka)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법정화폐인 엔화와 똑 같은 가치로 통용되고 있었다. 컴뮤니티의 식당이라던가 커뮤니티 농장의 생산물, 도시락 등 전액을 링카로 지불할 수 있고, 요즘은 링카의 비율을 더 높게 월급을 받는 사람도 늘고 있다고 한다. 얼마든지 마이너스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적어도 기본적인 생계는 보장되고 있는 것 같았다.(어떤 사람은 자신이 20만엔 정도의 마이너스를 사용해보고 주위로부터 얼마나 따뜻하게 사랑받고 있는지를 실감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200명 정도가 링카의 회원이고, 한 달 사용량이 250만엔 정도(3800만원)라고 한다.
농장에서 만난 사람들
우리 일행 가운데 어떤 분이 이런 모습을 ‘소꼽장난’ 같다고 표현했는데, 뭔가 비아냥하는 뜻이 아니라 이런 소꿉장난이 도처에서 이루어져 결국 ‘돈이 필요 없는 사회’로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소박한 꿈을 담아서 말한 것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들렸다.
스즈카컬쳐스테이션 (culture station)이란 곳은 지역사회와의 교류와 소통의 장으로 넓혀가려는 커뮤니티 사람들의 꿈이 베어 있었다.
손으로 만든 물건을 파는 장소, 아이들의 방과후 교실, 학습, 하루 농사체험, 사또야마에서의 놀이, 다도(茶道)교실, 꽃꽂이 교실, 큰 북 교실, 일본화 교실 그리고 사랑방(이 사람들은 툇마루라고 부르는데) 등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었다.
관이 주도하는 경우는 컬쳐센터라는 이름을 쓰는데, 이 곳은 철저히 시민이 중심으로 소통과 만남의 장이라는 의미로 스테이션(驛)으로 부른다고 한다.
컬쳐스테이션의 학습숙(學習塾)을 비롯한 여러 활동의 바탕이 ‘배우는 것은 원래 즐겁다’ ‘알아가는 것은 원래 즐겁다’ ‘성장하는 것은 원래 즐겁다’라는 것이 특색이라고 생각된다.
엄마손도시락의 내부
농장도 젊은 사람들 일곱명이 모여 이른바 스즈카 팜을 운영하고 있었고, 그 옆에 어린이들의 농사체험장, 시니어그룹의 텃밭 등이 있었고, 이른바 사또야마(里山)라는 마을과 산의 중간지대 우리가 흔히 보는 버려진 야산을 살려 거기에 어린이들의 놀이터, 어른들의 휴식처를 만들어 의미를 불어넣는 그런 꿈들이 소박하게 연결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떤 점에서 스즈카에서 하고 있는 일들이 물질주의와 이기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이 점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기타 대부분의 나라들이 같다)에서 아이들의 소꿉장난 같이 느껴질지 모르지만 세상은 이런 소꿉장난들이 넓어져 변해 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가까운 사람들이 처음에는 가벼운 수다처럼 이야기하다가 어느새 꿈으로 자라 현실에 그 모습을 들어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도 시민들의, 특히 엄마들의 손으로, 도처의 사랑방에서.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하나가 이런 사회를 만들어가는 핵심은 역시 그것을 원하고 또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커가는 것인데 스즈카의 에즈원커뮤니티에는 그것이 엔진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고도의 형태를 갖춘 야마기시 실현지의 사람들이 도시로 나와 맨 처음 시작한 일의 하나가 연구소와 연수소 그리고 사이엔즈 스쿨이라는 것을 만든 것이다.
연구소멤버들과의 간담회
여기에서 인간과 사회의 본질적인 면에 대해 탐구하고 삶과 조직 속에서 실천해 보며 다시 피드백되는 과정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여러 곳을 짧은 기간에 돌아보았지만, 성실하고 친절하게 대해 준 커뮤니티멤버들 덕분에 우리 일행은 그 마음들을 잘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어느 곳에서나 익산의 희망연대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지금까지 시민운동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온 희망연대가 보다 내용이 깊어지고 넓어지는 미래를 그려보게 된다.
희망연대가 자체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일도 있겠지만, 회원 가운데 뜻이 모아지는 사람들이 새로운 원(圓)을 만들어 가고, 이 원과 원들이 종으로 횡으로 이어져서 익산이라는 지역의 삶 전체가 업그레이드되는 꿈을 꾸어볼만 하지 않을까. 배우고, 연구하는 모임들, 마음을 풍부하게 하는 프로그램들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삶 속에 녹아나고 끊임없이 피드백되는 그런 모습, 일하는 사람을 위한 회사, 경쟁이 아니라 협동의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노동에 의해 유지되는 적절한 생산력, 인근의 농촌과 도시의 삶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순환공생의 사회, 이런 것들이 희망연대의 회원들에 의해 시도되고 넓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본 글은 한겨레 휴심정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