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암온천에서 하룻밤을 자고 난 후 우리는 불영계곡과 불영사를 들렀다.
부석사 앞에서 점심을 먹고 부석사를 올라 구경하고
그리고는 여주 이천쌀밥집에서 저녁을 먹고 서울로 올라와 헤어졌다.
이제는 긴 일정을 마치고
마무리를 할 시간이었다.
나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마이크를 잡고 이제는 답사 소감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마이크를 돌려가며
물었다.
작년에도 그랬지만
이 시간이 가장 재미있는 시간이다.
첫날 자기 소개를 하는 자리에서 이선희는
"제주도에서 남편과 함께 꾸린 간식거리란다. 제주도에서 샀기 때문에 작년보다는 부실하지만 남편과 둘이 이걸 포장하면서
우리 부부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너희들에게 나눠주겠다고 선물을 마련하는 기쁨은 정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이야."
하면서 홍삼 사탕 두 개, 초코렛 두 개. 알사랑 두 개. 밀크 카라멜 두개 등등이 담긴 봉지를 각각 하나씩 나눠주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최근 읽어보니 유홍준 교수가 늘 가지고 다니는 것이 밀크 카라멜이라던데
그 밀크 카라멜이 들어있어 나는 정말 좋았다.
살찔까봐 군것질거리를 절대 사지 않는 버릇이 있어서 밀크 카라멜 맛을 보아야겠다고 생각은 했으면서 막상 사보지 않았는데
뜻밖에 선희 덕분에 밀크 카라멜을 입에 넣으며 으흠 유홍준 선생이 이 맛에 먹는군 하는 생각을 했다.
어려서는 정말 귀하게 먹었던 밀크 카라멜인데......
고영란은 마이크를 돌리자
"너무 너무 재밌었어. 일 년에 한 번씩 가지말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일년에 네 번씩 놀러가자." 하였다.
작년에 조용하고 얌전했던 신길남이 마이크를 잡자 어찌나 웃겼던지
"노래방 할 때 내가 노래를 부르는데 장광희가 그만 하라고 하면서 2만원을 내라는 거야. 하지만 나는 흑산도 아가씨를 꼭 부르고 싶었거든. 그런데 광희가 돈을 냈으니 끝까지 부르겠다고 하는데도 못하게해서 못 불렀어. 그럴 수 있니?"
하며 항의하였는데 이번에는
"앞에 앉은 이선희, 김지현아. 나도 내향적이라 사람들하고 잘 못 어울려. 그래서 너희들하고 한마디 말도 못해봤는데 너희들이 내게 먼저 말을 걸어주면 안되겠니?"
하였다.
장광희는
"어제 사우나에서 백클럽을 만들었는데 거기 회장으로 내가 이선희를 지목했어."
라고 했다.
백클럽? 뭐야? 하자 모두 손을 내젓고 난리다....
사우나탕안에서 몇 몇을 백클럽 회원으로 결성하였단다.
궁금한 사람은 장광희한테 물어보면 될 것이야.
여기는 차마 못 적을.....
윤해옥은
"내가 남산공전 출신을 하나 알고 있거든. 혹시 남자랑 미팅할 생각이 있으면 내게 말해. 내가 남산공전 다니던 남자 소개해줄게."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나중에 박윤열과 양주옥도 서로 "남산공전 출신 남자를 알고 있다"고 하였다.
아, 남산공전.... 숭의여고 바로 담벼락에 붙었던 남자 고등학교....
우리에겐 남산공전이 정말 추억의 학교이다.
언젠가 TV에선가 신문에선가 남산공전 동문회가 가장 기부금 후원금 장학금을 많이 낸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다.
어렵게 살며 공부해서 그런 것인가? 공업 전문 고등학교여서 그런가?
하여간 맨 뒷자리에서 시작한 여행 소감이 앞자리로 옮겨 갈수록 점점 재미있어졌다.
김옥희의 차례가 되자
내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일목회가 왜 일목회가 되었느냐 하면 김옥희가 송탄에서 하고 있는 대호사우나가 목요일마다 쉰답니다.
그래서 김옥희가 꼭 참석하라고 첫번째 목요일로 모임 날을 정했다는군요....."
했다.
ㅋㅋㅋㅋ 그래서 일목회가 되다니.... 대호사우나 휴무일에 맞추어....
얼마전 맹시선이 일목회에 참석해서 이런 말을 했다.
"모임에 갔는데 누군가가 "이화회는 어디서 모여?" 라고 묻는 것이야. 그래서 속으로 이화여고 나온 여자들의 모임인가보다고 했는데 글쎄 이화회는 둘째주 화요일에 만나는 모임이라는구나...."
내가 일일이 다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 아무튼 내내 웃고 떠들며 즐거웠다.
그런데 지금 내가 생각해보니 목청 큰 임은순이 마이크를 잡아서 더 큰 목소리에 음향이 좋아서 시끄러웠겠네 하는 후회도 된다.
하지만 천성이 목청 큰 것이라 어쩔 수도 없고....
아무튼 점점 마이크는 앞으로 다가오고
마지막으로 이금연 총무도 한마디 하였는데 이금연이 끝나고 정경자한테 넘기려다가 이번에는 유일한 청일점인 버스기사이며
한솔여행사 사장님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첫날 자기 소개를 하기 전 나는 이번 경주 불국사 여행을 위해 회원을 모집하는데 정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음을 토로하였다.
그랬더니 정경자가 "다시는 이런 여행을 만들지 않겠다. 이번이 마지막이다."라는 말을 했고, 나도 부화뇌동해서 같이
정말 그럴 거라고 말하였다.
그랬는데 두 번째날 경주 남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이선희와 김지현이 내게
"그런데 은순아. 어제 너희들이 말을 잘못한 것 같아. 한솔 사장님이 기분나쁘셨을 것 같아. 버스도 새 차로 장만하고 확보된 고객이기도 한데 버스를 타자마자 너희들이 이제 다시는 이런 여행 안한다고만 하였으니 안색이 변한 것도 같고 서비스도 달라진 것 같아."
라고 충고하였다.
맞아. 한솔 사장님 생각을 전혀 안하였군....
그래서 경주 남산을 다녀온 뒤에 마이크를 잡고
"아, 깜빡하였는데요. 우리를 안전하게 모시고 다니시는 한솔 사장님께 인사를 못 드렸네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모두 안전운전과 우리의 즐거운 여행을 위하여 사장님께 위로와 격려의 박수를 보냅시다" 하였다.
"앞으로는 자주 여행도 하고, 가을에는 제주 올레길도 같이 할 것이며, 사실 나는 김영애의 자카르타 여행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내가 하도 자랑도 많이 한데다가 자카르타 가 본 지도 십년이 다 되어서 동창들과 함께 다녀올 예정인데 지난 번처럼 영애네집에서 내내 있지말고 2박 정도만 영애네에서 하고 나머지는 다른 계획을 짜서 인도네시아 여행을 하려는데 한솔사장님께 여행을 의뢰해서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라는 말을 하였었다. 한솔 사장님도 자카르타 이야기를 듣더니 자기도 꼭 가보고 싶다고 무척 좋아했었는데 버스를 타자마자 다시는 이런 여행을 안하겠다고 우리 기분만 생각하고 말하였으니 이런 실수가 없다.
마이크를 건네주자 한솔 사장은
"정말 서운했습니다. 다시는 안 가겠다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라고 하여서 우리는 정말 와~ 하고 난리를 피웠다.
솔직한 그의 말에 미안하기도 하고, 위트 넘치는 그의 말에 버스가 터져나가라 웃음이 터졌다.
섹스폰을 배웠다면서 다음에 우리와 함께 여행을 하게되면 자신의 섹스폰 노래도 들려주겠다고 하였다.
첫날 나이트 클럽에서도 유일한 청일점이라 그와 같이 춤도 추었고, 노래방 개설에서는 우리에게 서너 곡의 노래도 들려주었는데....
우리는 그의 마음은 헤아리지도 못하고 회원 모집의 어려움으로 다시 안 다니겠다는 이야기만 하다니....
이금연이 대안을 내놓았다.
"안 가긴 왜 안 가.... 다음에는 버스부터 예약을 할 것이 아니라 회원 모집해서 여행비부터 받고 나서 30명이 되면 한솔사장님한테 연락하면 되지."
맞는 말이다.
경주에서 점심을 먹을때 한식 부페집이었는데 관광버스가 그야말로 넘쳐나게 들어왔다.
그 중 우리보다 나이드신 분들이 들어오셨는데 허리는 구부정하신 분이 많았다.
그들을 힐긋거리면서 우리도 십년후면 딱 저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십년 그 정도만 우리의 여행은 계속 될 수 있다. 그 이후는 이렇게 많은 인원을 확보할 수가 없을 것이다.
마무리는 디스코 메들리로 이어졌다.
새 버스라 음향도 좋지만 조명도 좋았다.
모두 나와 흔들고 노래도 부르고.... 해도 져가고 우리의 여행도 끝나간다.
천상병 시인은 인생을 소풍에 비유했다고 한다.
인생살이가 소풍나온 것과 마찬가지라고....
소풍나와서 잘 놀다 간다고 그는 임종을 앞두고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교수 사모도 의사 부인도 대기업 임원 마누라도 우리에게 섞여있지만 그냥 우리는 여고 동창들일 뿐이다.
그것도 육십을 갓 넘긴 나이.
1960년대 경제가 어려운 시절 학창시절을 보내고 1970년대 경제가 서서히 피어나기 시작할때 시작한 결혼 생활은 어려운 고생으로 너나없이 시작했다. 단칸방의 셋방살이로 시작하여 이제는 최소 30여평의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자식들도 키워내고 남편의 뒷바라지도 열심히 했다.
그래서 이제 좀 살만하다 싶은데 육십이 넘었다. 시부모님 부양하느라 아직도 시집살이를 면치 못하는가하면 손주들 봐줘야해서 사는 것도 녹록치 않다.
사십이 다 되어가는 자녀들이 아직도 출가하지 않아 자녀들 뒷바라지도 계속한다.
봉건적인 남편도 쉽게 제 버릇을 못 고쳐서 밥 때 되면 밥상도 잊지않고 차려주어야지 그러지 않으면 굶으려고 한다.
차암 어려운 세대인 전후 세대.....
디스코 메들리에 맞추어 흔들리는 버스안에서 팔을 위아래로 흔드는 친구들의 손동작을 보며 나는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남편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벌써 소풍이 다 끝났네. 올 때는 영원할 것 같더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