涵溪先生文集卷之二
翫龜亭卽景
완귀정 풍경에 즉하여
함계(涵溪) 정석달(鄭碩達) 1660년(현종 1)-1720년(숙종 46)
野明山影淡。들은 밝고 산 그림자 담담한데,
巖潔水光淸。바위는 깨끗하고 물빛은 맑다.
亭上逍遙翫。정자에 올라 거닐며 완상하는데,
春風斜日傾。봄바람 불고 해는 저무네.
정석달(鄭碩達) 1660년(현종 1)-1720년(숙종 46)
자 가행(可行) 호 함계(涵溪)
이현일(李玄逸)의 문인. 조선장(曺善長), 이형상(李衡祥), 이재(李栽) 등과 교유
直齋文集卷之一 / 詩
登玩龜亭。次板上韻。
완귀정에 올라. 시판에 차운하여
*직재(直齋) 김익동(金翊東, 1793-1860)
地護潛龜出水遲。땅이 보호하는 잠긴 거북은 물에서 나오는 것이 더디고,
幽人嘉遯此間宜。유인이 은둔하기에 이곳이 알맞네.
名賢韻士留題處。명현과 시 짓는 선비 이곳에 머물며 시를 썼고,
孝子慈孫肯構時。효자와 자손은 오늘에 정자를 지었네.
岳勢前環仍後拱。산이 앞을 두르고 뒤에서 공읍하고,
溪流北匯更西馳。시냇물은 북쪽에서 합하여 돌아 서쪽으로 달리네.
終朝微雨凭欄坐。아침 내내 가랑비 내리고 난간에 기대어 앉아서,
觀盡靈區物色奇 신령한 땅의 풍경이 아름다운 것을 다보네.
*직재(直齋) 김익동(金翊東, 1793-1860), 자 자익(子翼), 호 직재(直齋). 유치명(柳致明)의 문인. 이휘령(李彙寧), 최효술(崔孝述), 유치엄(柳致儼), 이종상(李鍾祥) 등과 교유.
尼溪集卷之三 / 詩
登玩龜亭。題贈主人安典籍 景說。
완귀정에 올라 쓴 시를 주인 전적 안경열에게 주다
니계(尼溪) 박래오(朴來吾, 1713-1785)
主人亭子有如斯。주인의 정자가 이와 같이 있으니,
肯搆遺謨玩六龜。남긴 가르침으로 완귀정을 지었네.
滿臼淸波元有本。절구에 가득한 맑은 물결은 원래 있었고,
護堤盤木自生枝。둑을 보호하는 서리 친 나무엔 절로 가지가 나네.
名區豈換三公貴。좋은 경치를 어찌 삼공의 귀함과 바꾸랴?
別業曾開百世基。일찍이 창건한 별장은 백세의 터전이네.
料得淸風明月夜。청풍이 불어오는 밝은 달밤이니,
靈臺一面凈無私。마음은 깨끗하여 한 면에도 사사로움이 없네.
*이계(尼溪) 박래오(朴來吾, 1713-1785)
숙종 39 1713 계사 康熙 52 1 6월 14일, 丹城(山淸) 沙月里에서 태어나다.
숙종 46 1720 경자 康熙 59 8 글을 배우기 시작하다.
경종 1 1721 신축 康熙 60 9 가을, 息山 李萬敷로부터 시문에 대한 칭상을 받다.
~ - ~ ~ ~ - ~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대필을 하였다는 이유로 부친의 엄한 꾸지람을 듣고 회시에 응시하지 않다.
영조 19 1743 계해 乾隆 8 31 12월, 부친상을 당하다. 이후 과거공부를 그만두고 주자와 퇴계의 글에 전념하다.
영조 23 1747 정묘 乾隆 12 35 과거를 위해 상경하다.
영조 28 1752 임신 乾隆 17 40 8월, 지인들과 지리산 천왕봉을 유람하고 〈遊頭流錄〉을 쓰다.
영조 - ~ ~ 乾隆 - ~ 鄭弼臣과 南江을 舟遊하다. ○ 지인들과 泗川, 晉州를 유람하다.
영조 35 1759 기묘 乾隆 24 47 부인상을 당하다.
영조 39 1763 계미 乾隆 28 51 3월, 모친상을 당하다.
영조 41 1765 을유 乾隆 30 53 8월, 安陰의 三洞을 유람하다.
영조 43 1767 정해 乾隆 32 55 봄, 東洛書院을 방문하다.
~ - ~ ~ ~ - ~ 權佶과 統營, 馬山, 昌原을 유람하다.
~ - ~ ~ ~ - ~ 권길, 姜錫復, 李天木과 高興, 光陽 등지를 유람하다.
~ - ~ ~ ~ - ~ 崔柱華 등과 泗川의 南陽洞, 臥龍寺 등을 유람하다.
~ - ~ ~ ~ - ~ 成涉과 慶州, 大邱, 永川, 安東 등지를 유람하다.
정조 9 1785 을사 乾隆 50 73 10월 11일, 定窩에서 졸하다.
정조 10 1786 병오 乾隆 51 - 昭貴谷에 장사 지내다.
고종 30 1893 계사 光緖 19 - 현손 朴圭浩와 5대손 朴憲韶 등이 목활자로 문집을 인행하다.
魯宇文集卷之二
挽安監察 景說
감찰 안경열의 죽음을 애도함
노우(魯宇) 정충필(鄭忠弼, 1725-1789)
高標人說玩龜翁。명망 높은 사람들 완귀옹을 말하고,
孫子山南有古風。산남의 자손에게는 고풍이 있네.
興趣常時門外轍。평상시 흥취는 문밖의 수레이고,
功名過去殿中驄。과거 공명은 궁궐 속 총이말이었네.
郊雲漠漠堪終老。성 밖의 구름이 막막하여 늙어 마침을 감당하고,
世事紛紛本欲聾。세상 일 분분하여 본래 귀를 막으려 하였네.
壽迫稀年何所憾。목숨은 촉박하고 해는 희박하니 무슨 한이 있으며,
西河遺恨最難窮。서하의 유한은 가장 다하기 어려웠네.
*총이말: 감찰어사가 타고 다니던 말의 별칭.
*서하(西河)의 유한(遺恨): 아들을 잃은 아비의 슬픔을 말한다.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가 서하(西河)에 있을 때 아들을 잃고 지나치게 슬퍼한 나머지 실명하는 데 이르렀다. 《禮記 檀弓上》
*노우(魯宇) 정충필(鄭忠弼, 1725-1789):
본관은 영일(迎日). 처음 이름은 흥필(興弼), 자는 창백(昌伯), 후에 자를 백경(伯敬)으로 고쳤다. 호는 노우(魯宇). 아버지는 정욱(鄭煜), 어머니는 영양이씨(永陽李氏) 이수춘(李秀春)의 딸이다. 壬戌(1742)년 18세에 이제송의 딸이고 병와 이형상 선생의 증손녀와 혼인하였다.
1747년(영조 23)에 두역(痘疫-홍역)이 창궐하자 아버지를 따라 경주(慶州)에서 영양(永陽, 영천) 입암(立巖)으로 옮겼다. 이후 대구 칠계에 가서 백불암(百弗庵) 최흥원(崔興遠)의 문하에서 두와 최흥벽(崔興壁)과 동문수학하였다. 또한 백불암과 절친한 친구인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에게도 수학하였다.
어려서부터 병약해 일찍이 과거를 단념하고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 도서(圖書), 상수(象數), 율려(律呂), 산법(算法), 지리(地理) 등을 두루 섭렵, 깊이 연구하지 않는 바가 없었으며, 글씨는 전초(篆草)에도 뛰어나 원근에 널리 알려졌다.
1782년(정조 5)에 경주(慶州) 옥산서원(玉山書院)에서 정구(鄭逑)의 『태극문변(太極問辨)』을 중간(重刊)할 때, 이 책이 직접 정구의 수교(手校)를 거치지 못해 와오(訛誤)가 더러 있음을 밝힌 장현광(張顯光)의 발문(跋文)을 꼭 부간(附刊)해야 한다고 발의하였다. 결국 이 발문(跋文)으로 인해 옥산서원(玉山書院)과 회연서원(檜淵書院) 간에 논쟁이 일기 시작해 마침내 도내(道內) 모든 식자들이 정충필의 의견에 찬성하게 되었다.
정충필은 특히 역상(曆象)에 밝아 ‘일행도수(日行度數)’와 ‘월행도수(月行度數)’를 계산해 일월(日月)이 상회(相會)하는 수(數)를 구해 19년에 일곱 번 윤달을 두는 ‘치윤법(置潤法)’을 계산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역도(易圖)에 있어서 이제껏 후천도(後天圖)에 중괘원도(重卦圓圖)가 없던 것을 새로이 계발(啓發)해 마침내 이를 완성하였다.
1783년 한강(寒岡) 정구(鄭逑)를 모신 회연서원(檜淵書院)을 방문하였다. 정구의 편서인 「태극문변(太極問辨)」의 초(初)ㆍ중간본(重刊本)을 이정(釐正)하여 회연서원에서 개간(改刊)하는데 있어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이 찬집한 「예학편고(禮學便考)」를 산삭 정리하여 완성하였다. 저서로는 『노우문집(魯宇文集)』6권이 있다.
定軒先生文集卷之十四 / 序
翫龜安公實紀序
완귀 안공 실기 서문
이종상(李鍾祥, 1799년(정조 23)-1870년(고종 7)
壁立萬丈之高。惟南冥先生可以當此。而冥翁乃以是言者加諸公。公果何如人哉。公諱嶒字士謙。翫龜其亭名。而因以自號者也。冥翁嘗過題其亭。而有雲門萬丈高之句。蓋以况公也。載在南冥本集。膾炙人口。故至今一方人士。知穎臯有翫龜安先生者。徒以冥翁一言之重也。今以其全什考之。則槩乎皆推奬之語。而其爲萬丈之高則當必有所指而言。決非泛論公之標格大致者也。今雖不敢妄爲之說。而竊嘗論公於出處顯晦之間。則公當乙巳蔑貞之會。炳幾引退。不甚爲宵小所疾。意當時人。或有以居停主人引進龜山之語誘公。而公堅執不撓。故冥翁有是言。苟非然者。當冥翁之世。高標遐擧之士。固自不乏。何獨於公不惜牙頰。而以是言者極口稱揚哉。取考安氏家藏廣溪君遺墨。則公宦遊在洛。恒終日斂膝危坐。惟討論經史。不以他事經心。噫遊宦造次之際。猶尙如此。况家居燕閒之日乎。劬經討史之餘。亦應有多少論著文字。而惜乎無片言隻字傳於世也。重可慨者。公與愼齋周先生交好甚密。而公之初碣出於其手。則不但其邃文巨筆。有足徵信。而此實知己之言也。其於公之志行事實。宜無不盡者。而刓缺不堪讀。雖欲考其萬一而不可得。可勝惜哉。公之後孫璜遠等。裒集諸家文字。爲實紀一卷。而使余執例。且有此謬屬。故僭不自揆而爲之說如此。置諸卷端。
*이종상(李鍾祥, 1799년(정조 23)-1870년(고종 7)
자 종약(宗躍), 숙여(淑汝) 호 정헌(定軒), 습비(習比)
이원조(李源祚), 유치호(柳致皜), 허전(許傳), 윤종호(尹宗鎬) 등과 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