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면 누군가가 또 가평의 그 푸근한 품을 찾아 떠나겠구나 생각하니 지난 주의 산행기가 추월당하면 안되는데 하는 안타까움과 바람님의 독촉에 이 글을 쓴다. 분명 누군가가 쓰기로 했었는데...
1호선 전철의 느림보 걸음에 속을 태우며 청량리역에 도착하니 출발 20분전, 황급히 인사를 나누고는 차에 올랐다. 무지막지한 크기의 배낭들만 시위하듯 짐칸위에 올려놓고는 그 별나지도 못한 사람들이 별난 사람들처럼 부산을 떤다. 그들은 조재문 대장, 나와 동갑내기 강사장, 신한석과장, 김홍실장, 이귀충사장님, 박병희사장님, 이덕희씨와 그의 친구 Mr.신, 나 반석 진기준과 친구 찌우 박흥식, 여성분인 권순옥 여사님과 고재순님 12사람.
기동력만은 최고, 4시간의 열차여행을 마치고 태백역에 내리니 차가 준비되어 있다. 휭~ 달려 금소나무도 구경하며 계곡을 파고드는데 도로와 하천의 공사로 덕풍마을까지는 진입이 허용안된다. 덕풍계곡을 따라 가며 맑은 공기, 청아한 산세를 즐기는데 오늘의 주행사 천렵은 어려울 것 같다. 대장의 주문대로 내일 많이 걷기로 하고 공주골인가로 들어가 폭포아래 여장을 풀었다. 벌써 더러는 힘들어 하고... 후다닥 플라이치고 나무해오고 밥도 하고 술도 마시고, 전에도 그랬듯 그런 일련의 절차를 밟고... 어둠이 짙어오는 사이 난 술에 취해, 분위기에 취해 잠이 들고 친구가 입었던 겉옷을 살짝 덮어줬다. 고마운 놈... 또 그렇게 죽은듯이 잠이 들고... 어슴프레 잠이 깨는데 노래소리가 들리고 웃음소리가 요란하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술잔과 뒤따라 돌아가는 나무 마이크 속에 광화문 가수(강사장)과 목동가수(찌우)의 노래 대결이 벌어지고, 나 잠든 사이에 감자도 다 먹었네... 그 무겁던 됫병 소주도 4병이나 비워지고 모두 쓰러지듯 잠이 든다. 그래, 버려지고 던져진 자처럼 그렇게 쓰러져 하루를 접어보자...
두번째의 잠자리에서 빗소리가 들린다. 아풀싸, 이게 웬일... 비가 내리네. 갑작스레 소나기가 쏟아진다. 예상못하는 것이 산날씨라더니... 조대장 플라이 칠 때 괜한 일 한다고 생각했던 내가 더 우스워진다. 찌우는 조대장 플라이 아래로, 난 박병희씨 플라이 아래로 피신하여 신세를 지고 하루를 지샌다, 빗소리를 들으며...
아침밥 황급히 먹고 덕풍 마을을 거쳐 문지골로 접어드니 사정이 영 달라진다. 이게 장난이 아니다. 그 낌새를 눈치채셨는지 이사장님과 권여사님은 컨디션을 이유로 되돌아가시고... 미끄럽고 때로는 위험하다. 겁많은 나는 정말 불안했다. 무서웠다.....
길도 없는 계곡 산행, 물갔던 길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미답의 풍경과 보기좋은 폭포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1폭, 2폭, ...6폭까지 가서야 우리는 숨을 좀 돌렸다. 이름없는 50미터 높이의 6폭에 우리는 예티라는 이름의 폭포 이름을 붙였다가, 그날의 대장이름으로 재문폭포로도 이름을 붙였다 떼었다 하며 사진도 찍고 라면도 끓여먹으며 숨을 돌리고는 1119미터 고지로 향했다.
길도 없다. 잡목만 무성하고 키 큰 배낭이 나무 가지에 마구 걸린다. 말씀을 잃은 고여사님,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그 자리에서 잠시 휴식" 을 수차례하고는 정상에 오르니 눈밑에 임간 도로가 보인다. 길이 있다는 것에 환호성이 나오고, 비로소 웃음이 도는 누구누구....
산길도로를 따라 걸으니 그 또한 싱겁네... 비는 또 다시 쏟아졌다 그쳤다 하고, 지친 고여사님의 배낭은 같이 가신 분들에 의해 총맞은 짐승의 시신처럼 들리워져 끌려가고 점점 멀어져 가는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의 거리, 마음만은 그러지 않겠지만...
지쳐 길가 고즈넉한 곳에 또 하룻밤의 신세를 진다. 고여사님이 지친 몸으로 부치게를 붙이고, 사내들은 또 다시 술을 따르고... 그렇게 마시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생이여, 우리 인생이여....
11시 열차를 타기 위해 허겁지겁 하산하여 마을을 지나오니 그 반가운 랜트카가 우릴 기다린다. 용케도 찾아오셨다. 다리 아래로 내려가 몸도 씻고, 머리도 감고, 찌우는 홀라당벗고 목욕도 하고...
태백역에 도착하니 시간 여유가 있다. 그런데 다리가 가렵고 따갑다. 물파스를 꺼내 바르고 했지만 별 소용이 없다. 며칠전에 했던 식중독의 재발인가 하는 불안이 인다. 값비싼 새마을 열차에올라서는 좌석에 제대로 앉을 겨를도 없이 식당차에서 건배를 한다. 무사 산행을 자축하며.... (나의 다리에 난 모기에 물린 것 같던 자국과 아픔은 더욱 심해져 밤에 병원 응급실까지 갔었고, 무슨 독초같은 데에 쏘인 것 같다는, 소위 풀독이라는 진단을 받아 치료했으나 아직도 가렵고 아픔....., 우씨~~)
우린 그렇게 다녀왔었고, 다시는 제 정신으로는 문지골에는 못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어쩌랴, 여인이 산고를 또 잊고 애기를 가지듯 우린 또그렇게 아픔을 함께 한 산을 또 찾을 것은 자명할 터인데... 이것 또한 병이 아니고 무엇이랴...., 환자임을 자인하고 고백하며 또 그 맛에 세상살이가 재미도 있음을 아는데...
동행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특히 우릴 챙겨 먹이시느라 애쓰신 신과장님, 김 실장님께 감사드리며, 각종 재료를 준비해오신 고여사님께도 더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조대장 이하 모든 분 고맙지 않은 이 어디 있겠으며, 애쓰지 않은 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그럼, 다음에 또...
bar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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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촉한 보람이 있네요..^^.. 잘읽었습니다. |
2003.08.29 - 11: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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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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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나에게 준 최고의 선물~~~ 예티의 모든 분에게 꽃을 드립니다 |
2004.08.30 - 21: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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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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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도 올리고 글도 올려주시니 너무 고맙군요. 기대했던 천렵은 물건너 갔으나 물고기대신 붕어빵만 먹던 둘째날 밤도 추억속의 한페이지가 되어가고-- 반석님 잘 읽었읍니다. 다음에 또-- 산초(山草) -박병희가 |
2003.08.24 - 04:47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