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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흥하여야 하는 자와 쇠하여야 하는 자
https://www.youtube.com/watch?v=_goKaIfkKcc&t=81s
오늘도 말씀을 사모하시고 또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를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아버지 성전을 찾으신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다함이 없으신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의 감동이 함께하길 축복합니다.
오늘은 누가복음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 21번째 시간으로 함께 교독한 말씀을 중심으로 흥하는 자와 쇠 하는 자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으로 은혜 받길 소원합니다.
침례 요한에 대하여 여러번 시간을 활용한 것 같습니다.
요한이 활동할 때 침례를 받는 사람들이 우리에게는 줄어들고 예수께로 사람들이 다 갑니다 라는 제자들의 말을 듣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하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요 3: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이곳에 그는 누구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들으셨습니까?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
그럼 예수그리스도는 잘되고 흥하고 나는 어떻게 되어야 하리라는 말씀입니까?
쇠하리라. 다른 말로는 나는 망하리라.
오늘 우리에게 적용을 하면 어떤 말과 같다고 말씀 들어셨습니까?
주의 일은 잘되고 나의 일은 안되고 또 다른 말로는요
내가 하는 일은 잘 되지 않더라도 교회 일은 잘되고. 우리 성도님들 이런 마음으로 우리가 살아야 됩니까?
그렇게 살다가 이 세상의 모든 것 다 잃어 버려도요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 앉으면 성공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반면에 이 세상 것 원하는 모든 것을 얻는다 하여도 천국을 잃어버린다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 성도님들 오늘 다시 마음을 새롭게 하게 되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정말 나의 안에서 내 생각은 자꾸 죽어 없어지고요.
예수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아 흥왕하는 은혜의 역사가 이루어져서 우리 모두가 다 성공적인 재림 성도의 삶을 살아가게 되길 축복합니다.
흥하여야 하는 자
먼저 흥하여야 하리라고 말씀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사역 중에 오늘 요한이 언급한 사역을 잠깐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의 기별이 예리하고 죄를 책망함에 있어서 두려워 하지않고 책망의 기별을 전하는 요한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그가 혹 성경이 말하는 오실 자 그리스도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물었습니다.
그러한 물음에 요한은 무엇이라고 답을 하였습니까?
눅 3:16-17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백성들이 그런 의구심을 가지고 있으니 요한은 분명하게 말을 합니다.
나는 너희들이 말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나는 물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지만 그분은 무엇으로 침례를 주실 분이라 합니까?
성령과 불로써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분은 능력이 많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나는 그분의 신들매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고 합니다.
신들매가 무엇입니까?
공동번역에는 신발끈으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신발끈 푼다든지 묶는다든지 하는 것이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우리 아이들 가운데서는 그것도 어려운 아이들 있을 것입니다만 몇 번 풀고 묶고 한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것이 아니죠.
근데 요즘은 신발끈을 묶고 풀고 하는 것이 아주 쉬운 신이 나왔습니다.
그냥 돌리면 묶이고 반대로 돌리면 풀리는 신이 나왔죠.
그런데 그렇게 쉬운 신발끈도 잘 안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의 군대 생활이 시작 될 때 였습니다.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자대에 배치가 될려고 하는 중간 지역이 있습니다.
그곳을 가지고 보충대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곳에 가니 현역들이 얼마나 신병들을 잡아 돌리는지 신병들이 군기가 바짝 들었습니다.
한 사람씩 앉으면서 번호를 부르는 것을 인원 파악할 때 그렇게 많이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몇 번을 시켜서 정신을 빼 놓습니다.
앞에서부터 앉은 번호 시작하면 제일 앞에 사람이 하나 하고 그 뒤에 사람이 둘 하고 이렇게 합니다.
스물, 스물하나, 스물 둘, 스물세 이렇게 나가다가 스톱 되었습니다.
다음하고 조교가 말을 하여도 더 이상 앉은 번호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앞에 있던 신병들의 눈이 소리가 나지 않는 쪽을 향하여 봅니다.
한 신병이 스 스 스 만하고 그 다음 번호 스물 넷을 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얼굴이 빨개지면서 하지 못하자 조교가 알아 차리고 스믈 넷 하고 앉아 하니 제 자리에 앉고 다음 번호가 계속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스믈 넷이라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못하였을까요?
미리 자기 차례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환경이 신병들에게는 두려운 자리다 보니 잔뜩 긴장을 하고 있다 보니 그 말이 나오지 않은 것입니다.
요한은 왜 예수그리스도의 신발끈 풀기도 못하는 자라고 하였을까요?
요한은 그분이 누구인지 알았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번호를 말하지 못하였던 그 신병에게 육군 참모총장이 와서 내 신발끈 좀 매 달라고 발을 앞으로 내어 밀면 아마도 손이 떨려서 매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여러분들은 침례 요한이 지금 말하는 그분이 누구신지 아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가 라는 말을 할 때 잘 찾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잘 아시는 바로 이 말씀입니다.
빌 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는 근본 누구시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본체시나 라고 합니다.
공동번역은 하나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시라고 번역합니다.
제가 한번은 아내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지구가 더 클까? 하나님께서 더 크실까? 라고요.
여러분들에게 한번 물어 볼까요? 하나님께서 더 크실까요? 지구가 더 클까요?
이렇게 물으면 넘겨 짚어서 대답하기가 쉽죠.
저도 모릅니다.
아마도 하나님의 실존을 본 사람들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크신 하나님에 대한 성경의 기록도 많이 있습니다.
시 95:3 “대저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 위에 크신 왕이시로다”
여호와는 어떤 하나님이시라 합니까? 크신 하나님
이 그림처럼 이렇게 크신 분이실까요?
다니엘서에도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단 2:45 “왕이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이 철과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숴뜨린 것을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이 참되고 이 해석이 확실하니이다”
신약에서 사도 바울도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딛 2: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드린 기도중에 있는 말씀입니다.
왕상 8:27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은 어떤 하늘을 가리키는 말입니까?
바울이 말하는 삼층 하늘을 가리키는 용어라고 우리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 삼층 하늘을 우리는 어떤 하늘이라고 이해하고 계씨나요?
하나님께서 계시는 하늘이라고 이해하고 계십니까?
그런데 솔로몬은 어떤 기도를 드립니까? 삼층 하늘도 주를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요? 용납할 수 없다. 이 말씀은 무슨 말씀입니까?
삼층 하늘도 하나님의 실존을 감당할 수가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까.
물론 이 말씀들은 하나님의 실존의 물리적인 크기만을 말씀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크기에도 그 위엄에도 능력에도 모든 것에 우리같은 죄인은 그 앞에 설 수가 없는 그런 분이심을 성경은 가리키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하나님 앞에 사랑하는 성도님들이시여 두려워 하는 마음을 가지시고 떨리는 마음 가짐으로 살아 가시길 바랍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성호로 일컬어지는 성전에서의 우리의 마음가짐은 더 진실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요한이 말한 신들매 풀기도 감당치 못할 것이라는 말씀은 그런 두려원 하나님 앞에서 신끈 푸는 일도 할 수가 없는 그런 연약하고 비천하다는 표현입니다.
누가 그런 분이셨다는 말씀입니까? 자기를 비우시고 오신 예수그리스도께서 그런 분이셨다..
계속하여 요한은 어떤 말씀을 주고 있습니까?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요”
나는 무엇으로 침례를 주지만요? 물로 침례를 주지만 내 뒤에 오시는 그분은 성령과 불로써 침례를 주시는 분이시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성령의 침례를 받으셨나요? 불의 침례는 받으셨습니까?
성령과 불은 같은 의미로 사용된 것 같습니다.
요한은 와서 물로 침례를 베풀어서 우리도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고백하는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침례도 받으라고 합니다. 그것은 누가 주는 것이라고요?
예수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것이다.
불의 침례라고도 하는 성령의 침례는 어떤 것일까요?
불을 안으면 뜨거운 것처럼 가슴에 화끈하게 무엇인가 들어오는 것과 같은 그런 느낌이 오는 것이 성령의 침례일까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기도하는데 가슴에 불덩어가 들어오는 것처럼 회끈하고 뜨거운 그런 경험을 하였다고요.
특별한 성령의 경험은 그렇게 올 수도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성경을 통해서 본 성령의 침례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이해를 합니다.
목회를 꿈꾸는 한 신학생이 더 깊은 성령의 체험을 하기 위하여 기도원을 찾았답니다.
성령을 받으려면 금식기도를 하여야 된다고 해서 금식기도를 시작 하였는데 3일정도 지나니까 정신이 몽롱해 지드랍니다.
그런데 그 신학생 방문 앞에서 도란도란 이야기 하는 소리가 들려서 들어보니 이런 이야기를 하드랍니다. 형님 제가 어제 불을 받았습니다. 무엇을 받았다고요? 불을
그러니 또 다른 사람이 하는 말 그래 아우님 드디어 불을 받으셨군요. 잘하셨습니다.
근데 어떤 불을 받았습니까? 예 저는 시퍼런 불을 받았습니다.
기도하는데 시퍼런 불이 저의 가슴을 태우는 듯이 들어오는 뜨거움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니 그 상대방이 하는 말 아니 아우님 시퍼런 불을 받으셨다고요? 그것은 성령의 불이 아니라 사탄의 불입니다. 하드랍니다.
그 소리 듣고 이 신학생이 너무 놀라 보따리를 싸서 내려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성령의 불을 받으려다 자칫하면 사탄의 불을 받을 수가 있겠다 싶어서 내려 왔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들 성령께서 임하실 때 그렇게 시뻘건 불로 임하실까요?
사탄은 시퍼런 불로 임하고요.
엘리야도 성령의 체험을 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성경 보겠습니다.
왕상 19:11-1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무슨 말씀입니까?
후에 사도 바울도 같은 말씀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고전 13:1-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우리 성도님들 이 두 말씀이 연결 되는 것 같습니까?
말씀을 듣고 나면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3장은 어떤 장입니까?
우리는 보통 이 장을 사랑 장으로 만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 장이 왜 필요하였습니까? 13장 전 장을 보겠습니다.
고전 12:29-31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고린도 전서 13장이 쓰여진 배경을 바울은 12장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선물이 무엇인지 성령의 침례가 무엇인지 여러 가지의 가르참욿 햇갈려 하는 고린도 성도들에게 진정한 성령의 침례 성령의 가장 큰 은사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땅히 사모하여야 할 성령의 은사는 이것이다 라고 설명하는 것이 고린도 전서 13장이라는 것입니다.
엘리야의 경험과 바울의 말씀 어떻게 연결이 되는 것 같습니까?
불의 경험도 땅을 요동하는 그러한 경험도 태풍과 같은 그런 경험도 중요하지만 세미하게 역사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 두 말씀을 깊이 묵상한 결과 진정한 성령의 침례는 화끈함이 없어도요, 불을 보지 못하였어도요. 예언과 방언이 없어도요. 조용한 가운데서 변화된 모습을 보이는 성도의 삶이 성도의 침례를 받은 사람들이라고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아멘입니까?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그리스도께서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성령의 침례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매일 아침마다 우리는 성령의 침례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날마다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이 나의 생애를 주관하여 말씀으로 살아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불이 지나고 바람이 지나고 지진도 지 난후에 세미한 음성처럼 역사하시어서 삶을 변화 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리라 믿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그러한 성령의 은혜를 받으시길 축복합니다.
그 후에 요한은 심판에 대하여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요한이 예언한 것처럼 요한보다 6개월 늦게 오신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비우신 하나님 완전한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우리가 살펴보는 누가 복음의 총 제목이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은 망할 수가 있어도 예수그리스도의 일은 망할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망하는 것처럼 보여도요 2000년동안 복음은 끊임없어 전해져서 지금은 온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다고 할 정도로 복음이 전해 졌습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리라는 요한의 예언은 영원한 하늘나라가 이 땅에 세워져도 끊임없이 하나님의 나라는 흥하게 될 것입니다.
그 나라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감사하지 않으십니까?
그분 사람으로 오시어서 구원의 사업이루시고 다시 우릴 데리러 오시는 그 주님 만나기 위해 믿음으로 준비하는 은혜가 우리 모두와 함께하길 축복합니다.
쇠 하여야 하는 자
이제 쇠 하여야 하는 요한에 대하여 조금만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은 예수그리스도의 초림 6개월 먼저 태어난 사람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신 해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만 침례 요한에 대하여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가 나타난 배경을 성경은 이렇게 언급하고 있을 뿐입니다.
눅 1:80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그리고 3장에서 이런 말씀을 볼 수가 있습니다.
눅 3: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그리고 그 다음 기록에서 요단강 부근에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침례를 전파하는 요한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니 요한이 활동하기 시작한 정확한 때를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 제사장으로 있을 때라고 하는 시기 외는 가늠 할 수가 없습니다.
본교 성경 주석에는 침례요한의 활동 시작한 시점을 AD27년 봄이었을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것은 침묵하고 있고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다른 지역에서지만 같은 시기동안 활동을 한 기록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기간 중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그리스도의 활동에 대한 보고를 자신들의 스승인 요한에게 말한 기록이 있고요, 그리고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요한의 말이 그때 주어졌습니다.
침례 요한은 자신을 따르는 충실한 제자중 두 명을 예수께 보냅니다.
그들중 한명이 요한 복음의 저자 요한입니다.
점점 확산되어 가는 예수그리스도의 활동 소식을 들을 때 침례 요한은 무슨 말을 하였습니까?
요 3: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자신은 망해가고 그리스도의 사업은 확장되는 것을 볼 때 요한은 무엇이라 합니까?
나는 기뻐한다, 나의 기쁨이 어떻다고요? 충만하다
세상적으로 볼 때 라이벌 관계처럼 그당시 사람들에게 비쳤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 그에게 가더이다 라는 제자들의 보고에 요한의 대답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였습니다.
그런 마음 가짐으로 살아가는 것이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우리가 말로는 교회는 잘되고 나는 망하여야 할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오늘부터 여러분들의 가계가 갑자기 기울어지고 망해 가는 것처럼 보인다면 여러분들 무슨 말을 하실 것입니까?
저 권장로가 교회는 잘되고 우리는 망해 가야 하리라고 하더니만 이렇게 되었다고 하실 분들이 틀림없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사업은 발전적이고 자신을 따르는 자들은 점차로 줄어들고 있는 시점에 그 당시 이스라엘 왕이였던 헤록이 동생의 아내를 뺏어 자기 아내를 삼은 일을 해롯에게 지적함으로 인하여 헤로디아의 충동에 의하여 헤롯은 요한을 잡아 감옥에 감금하였습니다.
그 일은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신 후 약 1년정도 지난 후였습니다.
헤롯에 의하여 감옥에 감금된 요한은 예수님 생각이 나지 않았겠습니까?
병자들을 치유하시는 능력이라면 자신을 구원하실 수도 있을텐데 예수께서는 잠잠 하셨습니다.
요한도 그가 정말 그리스도이실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예수께로 보냅니다.
예수게 물어보라고 한 것입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라고요
그러한 요한의 질문에 예수께서 무슨 대답을 주셨습니까?
눅 7:2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그리고 제자들은 요한에게 돌아갑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주신 말씀을 그대로 전합니다.
소경이 보며 앉은 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 되더이다.
그 말을 들은 요한은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요?
그때의 요한의 심경을 증언의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소망 217 “제자들은 그 기별을 전하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였다”
제자들로부터 그러한 소식을 들은 요한은 이사야를 통해 예언된 다음의 말씀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사 61:1-2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요한은 제자들의 보고를 통하여 예수께서는 지금 그리스도적 사역을 선포하셨다고 믿었습니다.
마치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달라던 엘리야 앞에 강한 바람이 지나나 보이지 아니하시고 지진이 있으나 그 가운데서도 보이지 아니하시고 불이 있으나 그 가운데서도 보이지 아니하신 하나님께서 그 후에 세미한 소리를 통해 나타나셨던 그 하나님을 보게 된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다녀간 다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이 말씀입니다.
눅 7:2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이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하시니”
이제 곧 요한이 더러운 음녀에 의하여서 목이 잘려 순교하게 될 것을 아셨습니다.
외적으로 보기에는 구원의 보장이나 어떤 하늘의 특별한 은총을 받은 표라고는 하나도 없었지만 요한도 그의 제자들도 듣지는 못하였지만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 보다 더 큰 이가 일어남이 없다는 예수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영원한 책에 기록되어서 영원한 세월이 흘러갈 동안 죄 없는 사람들 중에서도 영원할 것이라 믿습니다.
그렇게 요한은 쓸쓸히 죽어 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의 소망중에 잠들었습니다.
멀지 않은 날 제가 잘 사용하는 말처럼 눈 깜빡하는 시간이 지나면 그가 친구라고 그는 흥하여야 하리라고 선언하였던 그분이 천만 천사의 옹위 가운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 다시는 죽지 않을 몸으로 부활한 요한의 눈은 그를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세상에 있는 우리의 목숨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물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을 주를 위하여 쓰여지게 되길 소망합니다.
더욱이 우리의 생명을 다하여 이제 곧 나타나시려는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 시간이 때로는 요한처럼 외롭고 힘이 들고 지칠 때가 있어도 요한이 말씀으로 확신하고 말씀을 붙잡고 견딜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도 오직 말씀만 붙잡고 승리하길 소망합니다.
영광의 주님 오실 때 우리는 주님과 함께 영광의 몸으로 일어난 예수그리스도의 선구자 요한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날 그 자리에 우리 꼭 참여하는 기쁨을 얻게 되길 축복합니다.
하늘에 계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릴 불러주시고 죄사함주시고 영생을 주시어 감사합니다.
여자가 낳은 자중 요한 보다 큰 이가 없다고 하셨는데 요한의 모습 우리의 마음을 찡하게 합니다.
우리도 요한처럼 주를 위해 살게 하소서
우리의 목숨이라도 주를 위하여서라면 버릴 수 있는 그런 믿음 가지게 하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눅 3:15-17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의논하니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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