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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의 선택
(민17장 1-13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민수기 17장 말씀 <지팡이의 선택>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12지팡이 중에 아론의 지팡이를 선택을 하고 하나님이 선택하신 그 아론의 지팡이에서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고 그리고 열매가 맺혀졌다 하는 이야기 중심으로 함께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지금 이 사건은 지팡이를 선택하시려고 하는 하나의 비유적인 그런 사건을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바로 앞장에서 살펴본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이 또 온이 힘을 합쳐서 250명의 족장을 이끌고 와서 모세와 아론에게 대항합니다.
왜 너희만 지도자가 되고 너희만 제사장을 하느냐...
그래서 분수를 넘는 그들에 대해 하나님이 땅이 갈라져서 그들의 자손까지 다 삼켜버리고 설 땅이 없게 만들어 버린, 뭐 설 땅이 없다는 것은 죽는 거 아니겠습니까? 삶이 끝났다는 얘기니까.
그렇게 해서 일단락을 지어놓으시고 이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을 때 끊임없이 있을 수 있는 이러한 패역함, 하나님이 이런 걸 반역함이라고 얘기합니다. 이런 반역을 중단을 시키고 예방하기 위해서 아론에게 제사장적 권위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만백성 앞에서 보여주십니다.
그 사건이 바로 12지팡이 중에 아론의 지팡이를 선택하는 사건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지요.
여기서 지팡이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을 대신하는 상징물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론을 선택했다는 뜻은 보이지를 않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선택하심이 나타나지 않으니까 그 지팡이를 아론 대신에 쓰게 해서 그 지팡이를 선택함으로 아론을 선택했다는 것을 나타내주는데 뭐 그렇지요.
아론의 귀에서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고 아론의 코에서 살구열매가 맺히고 이럴 수는 없는 거니까 아론 대신에 지팡이를 인격에 대신하는 상징물로 사용해서 아론을 선택하셨다는 것을 보여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이 선택함, 선택함의 의미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을 해보려고 하는데 우선 11지팡이의 주인 다시 말해서 각 지파의 르우벤, 시므온, 유다... 이런 각 지파의 대표가 되는 사람의 이름들을 써놓은 지팡이.
하나님이 자기의 이름이 쓴 지팡이를 선택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서운한 마음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겠어요? 아무리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더라도 선택이 어떻게 아론에게만 주어지냐 이겁니다. 그러니 서운한 마음이 없겠어요? 서운한 마음이 있지요.
근데 이렇게 서운한 마음을 갖는다고 그러면 정말 그 하나님의 의도와 믿음의 본질을 너무 모른다는 것이에요.
오늘 보면 12지팡이를 모아다가 증거궤 앞에 두었습니다. 회막 안에 있는 증거궤 앞에 12지팡이를 두었어요. 그 증거궤 앞에서 선택을 한 것이에요.
그러니까 나머지 11지팡이에 이름이 쓰여진 그 지팡이의 소유자들이 이제 돌아갈 거 아닙니까?
그러면 이 사람들도 선택을 안 한 게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증거궤 앞에서는 아론을 선택했고 그 다음에 12지파라고 하는 각각의 진영이 있었지 않습니까? 광야에서 진영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각 지파에 진영이 있었는데 그 진영이라고 하는, 예를 들어 르우벤 지파 진영에 그 삶의 현장에서는 그 르우벤 지파를 대표하는 그 사람을 선택을 한 것이에요.
선택을 안 한 게 아니라 증거궤 앞에서 선택한 게 그러니까 제사장으로서 회막에서 일할 사람을 선택한 것이 아론이라는 얘기이지 나머지 11사람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근데 이걸 반역을 해서 나도 제사장 노릇을 할 수 있다, 나도 증거궤 앞에서 선택받은 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해버리면 어떻게 되느냐?
증거궤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역사 살아있는 하늘의 뜻이 내려와서 아론에게 전달이 됩니다.
그러면 그 아론이 12지파에게 전해줍니다.
그러면 12지파의 족장들은 자기 지파 내의 각 가문에 전해줍니다.
그러면 각 가문의 가장들은 자기 가정에 속한 가족들에게 전합니다.
그러니까 증거궤에 임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역사와 생명의 역사 정말 우리 삶에 기쁨과 감사와 기도를 끊이지 않게 해주는 그런 생명의 역사가 아론을 통해서 12로, 12을 통해서 144로, 144를 통해서 20,736 하여간 이렇게 또 1만에게로, 1만에서 퍼지면 1억명에게로 이렇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거 아니겠어요?
근데 반역한다. 반역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 증거궤 앞에서 선택된 것은 아론 뿐이다 라는 사실을 밝히기 위하여 그 열매맺었던 지팡이를 증거궤 앞에 두라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그럼 반역한다는 건 뭡니까?
이 흐름의 맥을 다 끊어버리는 거예요.
중간에서 그 하나님의 흐름의 한 통로가 되어야 될 사람들이 그러기 위해 선택받은 사람들이 이쪽으로 오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선택의 자리가 빈 공간이 되어버리고 흐름의 통로가 끊어져버린다는 얘기입니다. 이게 반역이라는 거예요. 흐름을 중단시키고 흐름을 역류하게 하는...
그게 어떻게 나타납니까?
이런 흐름이 이제 예를 들어 교회로 보면 사회 가정에서 부모님들에게 세상이 들어오고 또 교회에 모이면 교인들이 되니까 교인들을 통해 직분자들에게로 역류하고 직분자에게서 당회로 역류하고 당회에서 목사에게로 역류해서 목사님의 심령까지도 증거궤에 임하는 하늘을 담지 못하고 이 세상을 담아가지고 세상을 반복 순환하는 겁니다.
세상을 담아서 세상이 원하는 대로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서 그렇게 잘 되는 것의 삶을 위하여 그렇게 설교하고 거기에 맞춰주고 이런 식이 되어버리면 이게 반역하는 것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11지팡이를 선택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증거궤 앞에서는 아론을 선택한 것이고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는 또 가정에서 선택하신 거예요. 가정이라는 삶의 영역 안으로 하늘의 역사를 유입해 들어오는 통로로 또 선택을 하신 거라는 겁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택에 우리가 세 가지 의미가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첫째로, 지금 우리가 말한 대로 이 선택이라고 하는 것은 「활주로」와 같아요.
하늘의 뜻과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영이 이 땅에 내려오려면 활주로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창조적인 역사는 하나님과 함께할 때 하나님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우리 인간의 인격을 통해서 나타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선택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발을 붙일 수 있는 활주로를 확보하시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온 세상이 죄로 찌들었을 때 예수님이 혼자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래가지고 예수님 스스로가 말씀이 아닙니까? 말씀이 육신이 된 거 아닙니까? 말씀의 돌판이 법궤 안에 들어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의 육신이 말씀이 돼서 살아 움직이는 법궤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게 하나님의 활주로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12제자가 초대교회를 형성하게 되고 초대교회 교인들이 또 흩어지면서 안디옥 교회라든지 온 유럽과 아시아에 교회를 세우기 시작하고 그것이 유럽으로 건너오고 그리고 유럽에서 아시아로 건너오고 이렇게 계속 확장된 게 예수님이라는 한 인격의 활주로를 확보하시면서 그렇게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집안이 아무도 안 믿습니다. 그러면 내가 활주로가 되어 드린다는 거예요.
선택이라는 것은 이처럼 하늘의 뜻이 나타나기 위해서 하나님이 착륙하시는 활주로라는 뜻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 이진법복음 선교회에서 지금 이렇게 아침마다 홈채플을 하지 않습니까? 아침마다 홈채플을 하는 이유는 이진법복음 선교회의 주일예배에 다 나와야 된다고 하는 의도와 소원을 가지고 이렇게 홈채플을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홈채플을 하는 이유는 여러분이 지금 듣고 계신 그 현장에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택하신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직장에 나가실 거예요. 직장에 나가시기 전에 여러분을 활주로로 준비시키는 작업이 홈채플이라는 겁니다. 직장이라고 하는 삶의 현장에서 여러분을 선택하시는 것이에요. 홈채플을 통해서 활주로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내려오셔서 활동하실 수 있는 활주로로 삼으시는 역사 이게 아침 홈채플의 작업이라는 것이에요.
우리 아침 비타민을 보냅니다. 오늘도 아마 갈 것입니다. 제가 이 설교 끝나면 아침 비타민을 또 쓰게 될 텐데 아침 비타민을 내가 받습니다. 그럼 아침 비타민 선교사가 돼야 된다는 것이에요. 그것을 내 친구들 내 부모 내 자녀에게 보내요. 보내는 게 뭐 어렵습니까?
이 설교 끝나면 두세 시간 동안 그것을 네 나름대로 머리를 짜내서 말씀을 요약해서 지금 매일 아침 만명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한국찬양선교회라는 카페와 연합이 되어서 그 카페회원들 구천명과 우리 회원들 해서 만명에게 매일 아침에 보내고 있다는 것이에요.
그러면 그 만명이 받아서 자기만 보고 있으면 어떻게 해요? 만명에게 아침 비타민이 보내진다는 것은 그 사람들을 그 장소에서 하나님께서 선택했다는 것이거든요? 선택하셨으면 내가 또 다른 사람들에게 보냄을 통하여 끊임없이 하루에 만명 뿐만 아니라 이게 정말 이만명 삼만명 십만명에게 전해져야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게 바로 하나님의 택하심 속에 들어있는 아주 중요한 첫 번째 내용이고.
두 번째는 뭐냐?
택함이 이루어지는 장소에서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지 않습니까? 선택하시면 그 선택하시는 그 「장소」가 중요하다는 것이에요. 선택하셔서 나를 어느 장소로 꼭 보내십니다. 그 특별히 나를 선택하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장소를 선택하십니다.
지금 아침 홈채플을 통해 여러분 개개인을 선택하십니다. 그럼 여러분이 이제 홈채플이 끝나면 자식을 만나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장소를 하나님이 선택하신 거예요.
왜? 거기서 생명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고 그리고 열매를 맺게 됐다.
그러니까 나를 선택하신 이유는 인간으로서 내가 갖고 있는 뜻과 내가 갖고 있는 소원 어떤 소원이든지 간에 배우자에 대해 갖고 있는 소원, 가족에 대해 갖고 있는 소원, 자녀에 대한 소원 뭐 이런 소원이 열매 맺는 것이 아니라, 기도부터 우리가 문제가 있지요?
우리 소원이 열매 맺는 게 아니라 하늘에서 갖고 계신 뜻이 열매 맺는 다시 말해서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혀지게 하기 위해서 특별한 장소를 택하신다는 겁니다. 그 장소에서 하늘 뜻이 열매 맺게 하시려고.
그래서 우리가 절대로 여러분,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하여 교회로 오는 것이지 교회생활을 위해서 교회 예배당 울타리 안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에요.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로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하여 제사적 의미로 이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립니다마는 예배가 끝난 뒤에는 모두가 하나님이 택하신 장소로 보내져야 된다는 거예요.
이 하나님이 택하신 장소로 보내짐이 없으면 절대로 안 되는 거예요.
요즘은 진짜 만인제사장이 잘못 적용이 돼서 모든 교인들이 교회와 연관해서만 신앙생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거예요. 교회와 연관해서만...
뭐 구역장을 한다든지, 순장을 한다든지, 이러한 타이틀이 적용되는 삶의 환경 내에서만 활동하면 되겠냐 이겁니다.
모두가 다 성전에 머물러 있고 회막 뜰 앞에 다 머물러 있어요. 그거 아니에요.
여러분은 이 예배당 안에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택한 게 아니에요. 여러분의 가정에서 여러분의 직장에서 시장 한복판에서 직장에서 다 그렇게 택하신 것이지, 여기는 목사님만 계시면 돼요.
근데 요즘 목사님들도 왜 그렇게 교인들을 자꾸 예배당 울타리 안에 가둬두려고 하는 지 몰라요. 무슨 프로그램에 무슨 프로그램에 아니 교회에서 해야 될 게 왠 프로그램이 그렇게 많이 필요합니까?
아침에 매일 죽는다는 사도 바울의 말처럼 십자가 붙잡고 죽고난 뒤로는 그 다음에 하나님이 택하신 장소로 보내져야 그게 기독교인이고 그게 신앙인이고 그게 택함 받은 백성이지요. 11지팡이를 다 보냅니다. 하나의 아론의 지팡이만 증거궤 앞에만 남아 있으면 되는 거예요.
제가 아침마다 말씀드리지마는 아무 것도 안 해요. 거듭 말씀 드리지만. 그렇다고 24시간 성경을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니지마는 거의 24시간을 말씀을 준비한다고 봐도 돼요. 운전을 할 때도 말씀을 준비하고.
이렇게 준비합니다. 제가 끝나잖아요? 홈채플이 끝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그 다음 장을 읽어봅니다. 그 다음 장을 제일 처음에 아침에 읽어 보고 하루 종일 그걸 생각을 하는 거예요. 이 장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저는 종일 그 일 하면서 사는 거예요.
그러면 그렇게 생각해서 그렇게 기도하고 준비한 말씀을 전해 들으면 여러분 모두 다 증거궤 앞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에요. 모두가 다 예배당 안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이제는 지팡이를 들고 여러분의 삶의 진영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그 곳에서 하나님을 나타내는 거예요.
요즘 교인들은 어떻게 하느냐?
예배당 안에서 하나님을 찾아요. 그 다음 예배당 바깥으로 나가서 믿지 않는 친구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직장 또 가정에 들어오면 완전히 원리가 달라요. 아이들한테 교육시키는 원리도 다르고 거기서는 하나님을 안 찾아요. 그러다가 또 구역모임을 가지면 구역장으로서 얼마나 구역 인도를 잘 하는지 몰라요. 찬송하고 통성기도하고 뭐 나누자 이래가지고... 그게 무슨 기독교인입니까? 그런 거 기독교인 아니에요.
그렇게 초대교회가 너무 자기들끼리 좋아가지고 뭉쳐있다 보니까 하나님이 교회조직을 아예 부숴버려요. 그래가지고 흩어져서 만들어진 게 안디옥교회고 그곳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생긴 거 아닙니까?
자, 이렇게 해서 하나님은 인격을 택하신다. 첫 번째 택함의 이유 인격을 택하신다.
두 번째 그 인격마다의 정해진 장소를 택하신다. 생명의 역사를 위해서. 바로 그 장소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 위해서 장소를 택하시고 보내신다. 모세를 택하셔서 바로 앞에 보내신 것처럼.
그리고 능력은 말입니다. 그 특정하게 택함 받은 장소에 내가 서기 전까지는 안 나타나요. 아무리 은혜받고 여러분이 집에만 머물러 봐요. 능력이 나타나나... 믿지 않는 오래 전에 헤어졌던 친구와 만날 때 이게 불꽃이 튀는 거예요. 그가 나를 거부하던 받아들이던 그럴 때 불꽃이 튀는 거라구요.
오늘 아침 당장에 아침 비타민을 받고나면 이메일을 아는 친구들에게 다 보내세요. 그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또 이메일을 아무도 받아놓지 않았어. 그러면 친구에게 전화해서 이메일을 받으세요. 그래서 보내보세요. 보내봐야 그 장소 그 가정이라는 장소에 하나님이 택하시고 그 장소에서 일어나는 생명의 역사가 디른 자들에게 관계해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면서 하나님이 나를 택했구나 알고 기쁨과 감사의 생활이 나타나지요. 이거 가만히 내 가정 안에만 내가 머물러 있어선 아무 것도 안 된다는 거예요.
요즘 내가 집안에 머물러 있어도 인터넷을 통해서 세계 각 곳에 연결될 수 있어요. 여러분들이 아침 비타민을 받으면 여러분들의 자녀에게 보내는 부모가 몇 명입니까? 여러분들 자녀 이메일 몰라요? 근데 왜 안 보내요? 여러분들 자녀는 지금 여기에 회원으로 등록이 안 되어 있는데 근데 왜 안 보냅니까? 이거 안 되는 것이지요. 그 장소에 택한 거예요. 자녀와의 관계에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택하신 거라구요.
매일 선교회면 선교회 아니면 교회면 교회에 와서 행동하는 것만 믿음생활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된다는 거예요.
자, 세 번째 택함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마른 나무에서 꽃이 피고 살구열매가 맺힙니다.
이 마른 나무라는 것과 열매가 맺힌다는 건 생명의 역사 이게 대조되고 있다는 것이에요. 이게 기독교입니다.
살아있는 살구나무에서 살구나무 열매가 맺혀지는 것은 신앙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죽어버린 마른 나무에서 생명의 열매가 맺혀진다는 이 현실 이게 택함 받은 백성에게 일어나는 일이라는 거예요.
그럼, 마른 나무가 뭡니까?
그러니까 살아있는 나무가 자기가 진액을 빨아들여요. 자기가 계획을 빨아들이고 생각을 빨아들이고 소원을 빨아들여서 그것을 열매 맺는 게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아니라 내 계획 빨아들이는 거 내 소원 빨아들이는 거 죽는 거예요. 마른 나무가 되는 거예요.
여러분, 살아있는 나무에서 열매가 맺혀지는 것은 기독교의 본질이 아닙니다.
모세가 80살의 마른 나무가 되었을 때에 그 지팡이 그게 곧 자기 자신을 상징하는 거라고 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때 하나님이 얘기하세요. “바로 왕 앞에 서라!”
모세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모세로 하여금 바로 왕 앞에 서라고 말합니다. 특정 장소를 선택합니다. 그런 다음에 모세는 하나님께 들은 말만 전달하는 다시 말해서 자기의 뜻과 자기의 계획이 다 죽어버린 마른 나뭇가지의 할아버지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마른 나무가 되어버립니다. 이때 사도 바울이 어머니의 모태에서 나를 선택했다 라고 말합니다. 왜? 이방인이라고 하는 장소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 장소로 갑니다. 가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러기 위해서 바울이 뭐합니까? 날마다 마른 나무가 됩니다. 날마다 죽노라...
내가 살아서 내 소원과 내 가치관의 실현과 내 판단의 실현, 이 내 판단의 실현이라는 건 대화 속에서도 나타나요. 절대로 여러분, 교우들이나 이웃들이나 가족 친척 중에 다른 사람의 얘기를 나쁜 이야기들을 그 사람이 없는 데서 하지 마세요. 제발 그렇게 하면서 판단하지 마세요. 절대로 그런 거 하지 마세요. 그게 곧 내가 살아서 열매 맺히고 있는 거예요. 절대 그러시면 안 돼요. 그냥
우리가 할 것은 택함 받은 사람으로서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면 하나님이 그 순간 장소를 택하신 거예요. 그냥 마음으로 기도하세요. ‘하나님 내가 이 장소에서 죽게 해주세요. 마른 나무가 되게 해주세요. 그래서 내 판단의 기준이나 내 소원이나 내 느낌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타나게 해주세요.’ 기도하세요.
마른 나무에 하늘의 열매가 살아서 생명이 있는 것으로 열매가 맺혀지게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자, 세가지 다신 한 번 정리합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통로가 점점 더 피라미드처럼 넓어지고 확산되어지는 일을 위하여 모든 사람을 택하셨습니다. 누구 한 사람만 택한 게 아니에요.
근데 목사는 말씀 바로 앞에서 나를 하나님이 택하시고, 목사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삶의 자리로 나갑니다.
그래서 두 번째 택함의 의미는 모든 사람을 택하셔서 특정한 장소로 보내신다는 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아론은 법궤 앞에 머물게 하시고 12지파 다른 족장들은 자기의 삶의 지역으로 보내십니다.
그 다음 세 번째 택함의 의미는 나는 마른 나뭇가지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하늘의 생명이 열매 맺혀야 된다.
이 세 가지 의미가 택함에 있다는 것입니다.
나를 택했다. 특정한 장소에서 나에게 생명의 역사를 드러내시기 위하여 나를 택하셨다. 그리고 그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려면 나의 죽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 죽음을 가능케 하는 것이 주님의 십자가 아닙니까?? (2007.08.16)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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