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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성도님들이시여 오늘도 우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말씀을 사모하시어 말씀을 통하여 은혜받기를 원하시는 성도님들의 심령 속에 함께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은 성탄과 관련된 말씀으로 구유에 누우신 하나님을 보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먼저 제가 좋아하는 케롤 하나 듣고 말씀 전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를 비우시고 아들로 오신 그 하나님을 우리 모두 만나게 되길 축복합니다.
본문 말씀은 그 때에 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어떤 때를 가리키고 있는지 1장에 그때를 말해주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1장6-25절은 예수님의 초림의 길을 예비할 자로 선택된 엘리야의 이름으로 올 침례요한의 출생과 관련된 예언과 기별이 나옵니다.
여러분의 생각에 할머니가 아이 낳는 것 하고 처녀가 아이 낳는 것 하고 어느 것이 쉬울까요? 둘 다 사람의 상식으로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가능케 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 불가능 같은 일에 도전받고 있으신 분 계시나요?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시길 바랍니다.
할머니의 태를 여시고 처녀의 몸을 통해 잉태케 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들을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은 본문과 관련된 한 두 가지를 말씀 드리려 합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먼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좀 생까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26-38절은 요한의 출생을 천사의 예언 6개원 후 그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만나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성경 절은 요한의 출생을 말하고 요한의 성장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장1절에“그 때에”라고 누가는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눅 2: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가이사는 로마 황제지요. 황제인 가이사의 영에 의한 호적 령은 로마 황제의 령을 받고있는 소수국가에도 해당이 되었기에 유대 나라에도 적용이 되었습니다.
그 명령에 의하여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우리 구속과 관련된 엄청난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말씀을 보겠습니다.
눅 2:2-5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번 한 것이라 3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그 정혼한 마리아아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무슨 말씀입니까?
갈릴리 나사렛이라는 동네에 사는 처녀와 정혼한 요셉은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그들의 고향으로 호적정리를 하기 위하여 출발하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마리아는 정혼은 하였지만 결혼한 상태가 아님에도 다시 말하여 요셉과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음에도 잉태된 사실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기록을 보여줍니다.
마 1:18-19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왜 가만히 끊고자 하였습니까? 정혼한 상태로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잠자리도 같이 한 일이 없는데 들리는 소문에 어떻게 되었다고요? 아이를 가졌다.
요셉이 의로운 사람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될 수도 있었다는 말씀입니까?
처녀가 아이를 가졌으면 유태나라의 법에 의하면 어떻게 될 수가 있습니까?
끌어내어 돌려 쳐 죽일 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어떻게 하지 않았다고요? 그렇게 하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하였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천사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19절과 20절의 말씀을 주십니다.
마 1:19-20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리고 마태는 이사야의 예언을 기록하였습니다.
마 1: 23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오늘 누가는 또 다시 예수그리스도의 초림과 관련된 또 다른 하나를 생각하게 합니다.
미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에브라다는 베들레헴의 또 다른 이름 즉 별명입니다.
저희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도 이름이 둘이 있습니다.
아니죠 세 개같습니다. 행정적인 이름은 덕천리 이고요.
마을 이름은 상삼천이고요. 도로명으로는 큰 삼내길입니다.
구약성경 미가서는 미가라는 사람에 의하여 기록되었는데요. 미가는 이사야와 거의 같은 시대 사람 이였습니다.
그러니 예수님 탄생 약700년 전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에브라다라고 하는 다른 이름을 가진 베들레헴이라는 동네에서 태어나실 것이라고 예언을 하였습니다.
에브라다라는 별명을 가진 베들레헴 말고도 베들레헴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에브라다라는 별명을 가진 베들레헴에서 태어 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는 다윗왕의 고향 이었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이스라엘을 다스릴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유대의 성경학자들이 다 믿고 있었습니다.
한 예로 든다면 동방박사들이 와서 왕이 탄생했다는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그때 유대왕인 해롯은 태어난 왕을 죽이기 위하여 성경학자들을 불러 유대 왕이 어디서 태어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관련된 말씀을 올려드립니다.
마 2:4-6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5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6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유대나라의 성경학자들이 우릴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오실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습니까?
근데 하나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주님께서 오시는 시기와 부모 장소 등 수많은 예언들을 주셨습니다.
날마다 성경을 읽고 그 말씀을 강론하는 수많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제사장들이 주님을 거절했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 아닙니까?
사랑하는 성도님들이시여 무엇이 그들로 주님을 거절하게 하였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방법이 자신들이 바라는 그러한 이상으로 임하지 않으니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신앙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내 중심적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 한다면 여러분의 눈들은 주님의 오심을 바르게 볼 수가 없을 것이며 여러분의 귀들은 주님의 소식을 바르게 들을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성경과 예언의 선물은 그러한 내용들을 미리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다함이 없는 사랑을 입으신 거룩한 백성들이시여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갈 수 없도록 하는 나라는 존재를 내어버리게 되시길 바랍니다.
나의 자아가 나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 그대로 받아 들일 수 없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기도하기를 하나님 저의 자아가 말씀을 가로막는 일이 없도록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움 입게 되길 바라고 원합니다.
마리아와 요셉의 사는 곳은 성경이 어디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눅 1:26절과 27절에 보면 마리아가 나사렛에 살고 있었다고 말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나사렛에서 성장하셨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잉태하여 아이 낳을 산달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시간이 거의 되었을 때 가이사가 호적 영을 내려 다 고향으로 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도 그들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지금 올라가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인도하였다고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지금도 역사를 주관하시고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십니까? 아멘입니까?
성경에는 구세주가 베들레헴에서 태어 나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는데 나사렛에서 태어 나시면 안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라기 보다는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시간표는 이미 가이사가 호적령을 내리실 것을 내다 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때를 변개 하시고 기한을 늦추기도 하시고 당기기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를 온전히 믿는다면 많은 두려움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종말의 시대를 슬기롭게 살아갈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믿음으로 받아드리고 온전한 믿음으로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왜 구유인가?
구세주의 초림이 어디서 이루어 졌다고요? 말 구유에서.
이런 내용들은 많은 의문을 주지 않습니까?
이제 만삭된 아내를 데리고 베들레헴을 향하여 가는 요셉을 여러분의 마음의 눈으로 그려보시길 원합니다.
눅 2: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라는 기록을 보면 그들이 베들레헴에 와서 얼마의 시간을 지났음으로 보게 됩니다.
그때 베들레헴은 많은 사람으로 붐볐습니다.
왜 그들은 마굿간 밖에 쉬는 곳을 얻지 못하였을까?
오늘 이 자리에 앉아계시는 남편 되시는 분들은 적어도 이곳에 나오는 요셉보다는 아내에게 잘하는 사람임이 들어났습니다.
여러분들 집을 떠나 타처에서 쉴 때에 마굿간에서 잠을 자 본일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아이를 낳을 때 마굿간 에서 아이를 출산한 일들이 있습니까?
없다면 적어도 요셉 보다는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남편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그러한 고생을 안하도록 해준 남편에게도 감사하길 바랍니다.
왜 그들이 마굿간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을까?
성경은 이렇게 기록을 하고있습니다.
눅 2: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왜 구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구유가 어떤 곳인가요? 말이 먹는 먹이통이죠?
왜 그곳에 뉘었습니까?
“이는” 바로 그 이유는 그 다음 말씀 같이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저희들이 강릉에 가면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냅니다. 모텔에 들어가니 입구에 25.000원입니다. 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비수기에는 손님이 없어서 그렇게라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여름철엔 얼마를 받습니까? 하고 물으니 여름에는 요금대로 받는다고 하는데 대답이 어색하였습니다.
여름 피서철에 해수욕장 부근 여관들이 바가지 요금을 받는다고 말하는 뉴스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제가 한번은 여름철에 여관에 들어가서 가격을 물으니 방이 없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관이나 모텔을 찾으니 없었습니다.
다시 그 집에 들어가서 가격을 묻지 않고 들어갔더니 방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가격을 물으니 대답을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죠
아까 하룻밤 자는데 얼마냐고 물을 때 왜 방이 없다 하셨습니까? 하고 물으니 죄송하다면서 방이 얼마냐고 묻는 사람들은 대부분 방 가격을 깍아 달라고 하는 분들이라는 것입니다.
여름 피서 철엔 손님이 많아 방이 모자랄 지경인데 방값을 깍아 주면서 재워 드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정도 되면 왜 요셉과 마리아가 묵을 방이 왜 없는지 아시겠습니까?
시골 사람처럼 보이는데 다가 그렇게 좋은 옷차림이 못되니 돈이 없을 거다 생각하여 방을 주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없어 보여도 만삭인 몸을 이끌고 방을 잡기 위해 다니는 부부의 모습이 불쌍하여서도 방을 내어주어야 될 것이어 늘 오늘날이나 그때나 인심은 그러하였나 봅니다.
그래서 요셉은 피곤해 하는 아내의 쉴 자리를 마련하기 위하여 비어있는 마굿간이라도 얻기를 원하였고 이제 이곳에서 여장을 풀고 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날 성령으로 잉태된 마리아가 몸을 풀게 됩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짚 북지 를 깐 구유가 아기 주님의 요람으로서는 제격이었습니다.
온 하늘은 깜짝 놀라이 광경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환영하는 사람이 없는 이 광경을 너무나 이상하듯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잘 아시죠 주님 오실 것을 4.000년 전부터 여러 차례 예언을 통해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준비하라고 주신 말씀인데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에게 영원한 소망을 주시기 위한 탄생인데 이렇게 반겨 주기는 커녕 구유에 창조주를 눕게 하다니 온 하늘은 너무나 놀람 가운데 빠졌습니다.
이제 하나님 말씀 요한이 기록한 말씀을 올려드립니다.
요 1:1-3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는 그 말씀이 누구시라고 합니까?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1장 10절에서 다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 1:10-11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누가 세상을 지으셨다고 합니까? 하나님께서, 그리고 그분이 아들로 오신 예수그리스도시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사람도 그분이 지으셨나요? 예 우리 인류의 조상인 아담은 예수그리스도의 손에 의하여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럼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습니까?
신명기에는 이런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신 32:6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
누가 우리 아버지시라고요?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께서 우리 아버지시라는 말씀입니다.
아멘입니까?
그 창조주 아버지께서 어떻게 하셨다고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아들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보내셨고요. 아들되어 오신 분은 아담의 자리 창조주께서 만드신 그 피조물 위치로 내려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백성들이 어떻게 하셨다고 합니까?
자기 땅에 오셨지만 자기가 만든 백성들이 어떻게 하였다고요? 영접하지 않았다.
자기 땅에 오셨으나 영접 받지 못하신 창조주 하나님 구유에 누으신 하나님을 이 시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시길 원합니다.
구유에 누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창조 이래로 부모를 선택하여 태어난 사람은 예수그리스도 외엔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분은 육신의 몸을 보호해 줄 부모을 선택하여 태어나신 유일한 분이셨습니다.
여러분들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부모를 선택하라면 지금 부모님을 선택하겠습니까? 아니면 록펠러를 선택하겠습니까?
록펠러는 하나님도 잘 믿은 사람 이였고 돈도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선택은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지상 최고의 통치자의 아들로 태어난다고 하여도 사람이 개로 태어나는 것 보다 더한 수치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러한 가문을 보시지 않고요 요셉의 가정을 선택하였습니다.
비록 따뜻한 아랫목은 없어도 그의 누울 자리가 짚단으로 깐 요람이라 할지라도 겸손한 그들의 가정을 자신의 육신의 보호자로 선택한 것입니다.
이런 주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사 57:15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사랑하는 성도님들이시여 오늘 여러분들의 마음들이 창조주를 영접할 수 있는 겸손한 말구유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거룩하고 지존 무상하며 가장 높은곳에 거하시는 분께서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자들과 함께 할 것이라는 말씀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비가 억수로 퍼붓는 런던시 외곽지대 어느 밤거리였습니다.
깊은 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주인은 마지못해 일어나 문을 열어줍니다.
나약해 보이는 한 부인이 말합니다. 비가 와서 그러하니 우산 하나만 좀 빌려주면 쓰고 내일 갖다 주겠다고 합니다.
얼마나 성질이 나던지 없소 하고는 문을 확 닫아버립니다.
다음 집의 문을 또 다시 두드립니다.
이번엔 여주인이 나와서 갖다 준다고 하는 사람치고는 한 사람도 갖다 주는 사람 못 봤습니다. 하고는 문을 닫아버립니다.
그 부인은 또 다시 다른 집의 문을 두드렸고 또 거절당하고 또 문을 두드립니다.
이러기를 여러 집을 넘어서야 한집에서 문을 열고는 안에 들어와서 몸을 녹히고 가라고 하면서 우산이라고는 살이 부러진 이것 하나밖에 없는데 하면서 그래도 필요하시다면 가지고 가시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부인은 찢어진 우산을 들고 어두운 길로 나갔습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갑자기 동네가 난리가 났습니다.
경찰들이 호위한 차가 한 대 어제 우산을 빌려준 허술한 집 앞에 세우고 한 신사가 다 떨어지고 부서진 우산을 가지고 내립니다.
그리고 그 집으로 들어가서 주인을 찾습니다.
그리고 말을 전합니다.
엘리자베스 여왕 폐하께서 어제 밤 우산을 잘 빌려 쓰셨다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가족을 왕궁으로 초대하셨습니다.
그날 밤 우산을 빌려 간 그 부인은 그 나라 여왕 이었습니다.
온 동네가 난리가 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이시여 이제 한나라의 왕이 아닌 온 우주의 왕께서 여러분들에게 내가 머물 방을 하나 달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마음들이 구유가 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거하실 방이 없을 것입니다.
아직도 여러분의 마음의 방에 자아가 자리를 잡고 있다면 내어 보내시길 바랍니다.
교만이 자리를 잡고 있다면 교만도 내어 보내시길 원합니다.
교만중에 가장 큰 교만이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고자 하였던 루시퍼의 교만입니까?
혹 여러분들 예수님보다 더 나은자가 되려는 욕망은 없습니까?
예수님보다 더 좋은 믿음을 가지고자 하시는 분들은 없습니까?
나를 멸망시킬 아름다운 성품으로 치장한 멸망할 교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높고자 하는 마음과 자만의 정신은 사람되어 이땅에 오신 예수님 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살아가시려는 그 마음 주님 거하실 장소가 아님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비록 다른 사람 보기에 추하게 보일 찌라도 예수께서 머무시길 원하시는 구유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구유에 누으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 구유는 겸손한 자와 함께 한다는 영원한 약속의 표가 될 것입니다.
겸손히 예수그리스도와 동행하였다가 우리 예수님 닮은 사람들을 데리러 오실 그날 겸손한 자들을 모으시는 하나님의 그 큰 날에 아버지로 계셨지만 우리를 위하여 아들의 위를 취하시기를 거절하지 않으시고 영원히 아들로 계실 그 사랑의 예수님 다시 오시는 그 창조주 앞에 기쁨과 감격으로 서시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복합니다.
기도
하늘에 계시는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버지를 비우시고 우리처럼 사람이 되시고 영원한 아들이 되시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고 이제 믿음으로 주님 바라보는 자들을 데릴러 오실주님 그날 우리 모두가 주님을 뵙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모두 그날 그 자리에 서도록 준비시켜 주옵소서.
우리 모두가 말구유처럼 겸손한 사람들로 살아가길 소원합니다.
우릴 그렇게 만들어 주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