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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정복의 인간병기
(신20:1-20)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복지정복의 인간병기>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복지정복의 인간병기.
인간병기라고 하면 여러분 무엇이 생각이 나십니까?
보통 우리가 흔히 말할 때 해병대나 수중폭파 전문부대인 UDT같은 그런 특수부대를 생각하게 됩니다. 해안에 침투해서 자국의 병사들이 공격을 하기 전에 수중에 있는 모든 장애물들을 다 제거하고 그러기 위해서 추운 겨울에도 바다 아래로 잠수해 들어가고 또 그런 훈련도 하고 그러지 않습니까? 400~500m 상공에서 낙하산으로 바다에 떨어져서 거기서 고무보트를 만들든지 아니면 잠수해서 적국으로 침투하는 그런 훈련을 하고 또 산처럼 일어나는 파도를 맞서서 고무보트 하나에 몸을 의지하고 균형을 잡아가면서 해안으로 침투해들어가는 이런 정말 인간병기.
그러면 복지정복의 인간병기는 도대체 무엇이냐 하는 이야기를 함께 생각해보자는 이야기입니다.
복지를 정복하는데도 병기가 있어야 될 거 아닙니까? 우리 식으로 말하면 우리의 삶에 적용하자면 우리가 복되게 살기 위해서는 그 복된 삶을 쟁취해야 되는데 근데 그 삶을 쟁취할 때 병기가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말 그대로 쟁취이기 때문에 병기가 필요한데 그럼 그 병기가 무엇이냐 라른 것을 생각해보자는 것이지요.
자, 여러분.
오늘 모세의 설교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제 본격적으로 가나안 정복 전쟁을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치러야 되는 상황에서 모세가 설교 속에서 전쟁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을 보고 주석에서 해석을 해놓을 것을 제가 읽으면서 눈에 띠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그 주석이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행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싸우실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 백성과 말과 병거가 많음을 볼 때에 두려워하지 마라 하나님이 싸운다’
그래놓고는 그 다음에 성경이 뭐라고 얘기하시느냐 하면
'새 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하지 못한 자가 있으면 가서 낙성식을 해라 만일 네가 전쟁에서 죽으면 타인이 낙성식을 행할까 한다'
또 '포도원을 만들고 과실을 먹지 못한 자가 있으면 가서 포도원 과실을 따 먹어라 전사하면 타인이 그 과실을 먹을까 한다' 이런 얘기를 쭉 해나갑니다.
그러니까 군대를 징집하지를 않고 많은 사람을 모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힘을 강화시키려면?
근데 많은 사람을 모으려고 하지 않고 이런 사소한 이유들 때문에 이런 개인적인 이유들 때문에 다 집으로 보냅니다.
이 이유를 뭐라고 그랬느냐? 이스라엘은 굳이 사람을 많이 모을 필요가 없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병기가 되시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병기가 뭐냐?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무기가 뭐냐?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런 비슷한 찬송가 가사도 있기는 합니다마는 여러분, 과연 하나님이 우리의 무기가 되면 되겠습니까? 아니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무기가 되는 것이지요.
지금 이 가나아나 정복 전쟁을 근본적으로 시작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에요. 가나안 땅을 뺏어야 되겠다 가나안 땅을 차지해야 되겠다 라고 하는 그 계획과 발상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거지 우리가 아니에요.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는 것은 우리가 원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행복을 이루어 가는 그 주도권은 누가 쥐고 있느냐는 하나님이 쥐고 있는 것이에요.
그럴 때 나에게 행복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용하는 병기가 바로 나 자신이라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인간병기가 된다는 이야기에요.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인간병기가 된다는 것이지요.
UDT대원들을 인간병기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악조건과 각종 장애를 무릅쓰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탁월한 전투력을 각 개인이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더 나가서 인간병기라고 하는 말은 모든 보병이나 기갑사단 같은 것을 투입하게 될 때 조건을 다 생각하게 되지 않습니까? 이게 정말 투입해서 성공할 것인가 실패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조건을 보고 상황을 보고 작전을 짜면서 투입을 합니다.
근데 인간병기라는 건 뭡니까?
그렇게 작전을 짜기 위해서 자연적인 바다 밑에 이 군함이 출항하는데 바다 밑에 암초가 많이 있다. 그러면 인간병기라는 건 뭐냐?
그 암초를 피해가는 작전을 하려면 인간병기가 필요없어요. 그냥 그 작전처의 생각을 그대로 실행할 수 있는 작전처에 손에 쥔 병기가 인간병기입니다. 그 암초라고 하는 자연 조건을 바다 속으로 들어가서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켜 버려요. 군함이 지나갈 수 있도록. 이래서 인간병기 아닙니까?
우리가 인간병기가 된다는 것은 우리의 복된 삶을 위해 정말 우리가 행복하게 산다. '아, 내가 행복해' 'I am so happy'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게 무엇이냐?
나 자신을 또한 병기로 사용하기를 원하신다는 겁니다.
나 자신을 병기로 사용하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조건 같은 걸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이래야 행복하다, 저래야 행복하다 이런 조건이 없어요.
하나님은 무조건 다 부수면서라도 장애가 되는 게 있으면 어떤 식으로라도 다 처치하고서라도 당신의 뜻을 나에게 우리에게 행복한 삶을 허락하시려는 가나안 복지를 허락하시고 주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기본적인 발상과 소원을 그대로 성취해가십니다.
근데 문제는 하나님의 손에 병기가 들려지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내가 하나님의 병기만 되어 드린다면 그러면 하나님은 내 삶에서 어떠한 조건에 상관없이 행복한 삶을 성취해나가실 수 있습니다. 내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삶을 성취해나가실 수 있다는 겁니다.
근데 우리가 병기가 못 되어 드리면 그럼 소용이 없어요. 하나님이 아무리 좋은 계획을 갖고 계시고 탁월한 능력으로 이루시려고 해도 이것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님 손에 쥐어지는 인간병기가 되겠는가?
나의 삶에 복됨을 위하여 하나님이 싸우려하시는데 그 하나님의 손에 쥐어지는 인간병기가 되려면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이게 오늘 본문에 나와 있다는 것이지요.
먼저 우리가 읽은 1절에 보면, 너희가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복된 삶을 우리가 쟁취하려고 합니다. 얻으려고 합니다. 이 세상 살면서 그렇게 하려고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이게 첫 번째 조건이에요.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는데 우리 눈에 보이는 상황이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 두려워집니다. 이 상태로는 내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눈에 보이는 대로 눈에 볼지라도 라고 하는 말. 너희가 너희 생각에 이 상태로는 행볷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그런 상황을 눈에 볼지라도 두려워하면 하나님이 나를 쥐시고 복지를 얻게 하시려는 병기로 사용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천상 이 가나안 복지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차지하고 살게 되겠지마는 하나님이 전쟁을 치르신다고 그러지 않습니까? 4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적군과 싸우시고 구원하실 것이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적군과 싸우시고 구원하실 것이라 그렇게 말하라 이겁니다.
그러니까 이 싸움이 내게 아니다 라고 하는 생각,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은 내가 쟁취하고 내가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싸우시는 것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눈에 보이는 상황이 이렇게 보일 때 이 상황 때문에 내가 어떻게 행복할까, 이런 조건이라면 내가 불행해질 수밖에 없지 않느냐? 이런 생각을 죽이라 이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복지를 쟁취하시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이 쟁취해나가실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눈에 보이는 거 귀에 들리는 거 이거 어떻게 하면 죽일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서 우리 마음이 움직여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쥐실 수가 없어요.
결국은 눈에 보이는 것을 우리가 볼 때 무엇을 통해 보느냐?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어떤 상황이든지.
지금 여러분 마음에 보이고 있는 게 뭡니까?
돈 문제에요? 건강 문제에요?
그럼 지금 이 건강 문제, 돈 문제 아니면 자식 문제 이런 상태로는 도저히 행복할 수 없다.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상황을 볼지라도 마음이 두려워하지 말아야 돼요.
근데 두려워지지요? 그래서 뭘 봅니까?
그 상황 앞에다가 십자가를 놓는 거예요. 내가 죽었음을 선택하는 겁니다.
이거는 우리가 믿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물론 은혜에요. 이게 은혜가 임하지 않으면 그 십자가를 보면서 내가 죽었다는 걸 선택하지를 못하더라구요. 내가 손에 못 박혀서 완전히 죽어버렸다. 그래서 그 보이는 상황들 앞에서 완전히 고꾸라지면 하나님이 딱 붙잡으신다는 거예요.
그리고 다 때려 부술 텐데 다 때려 부수면서 행복을 방해하는 모든 장애를 없앨 텐데 우리가 그러지 못해요.
그러면 눈에 보이는 것들을 보고 떨고 있잖아요?
절대로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행복을 연출하시고 행복을 수행해나가시지 않으십니다. 못하세요. 쥐지를 못하시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쥐어지는 인간병기가 되어 지지 못하니까.
인간병기가 되어 드리려면 눈에 보이는 것이 어떠할지라도 많은 것, 걱정될 것을 볼지라도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그 상황에 대해서 내가 죽었다 라는 고백을 통해서만 하나님이 나를 쥐실 수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진법복음 선교회를 하면서 1년 가까이 되어 가는데 50평생 살아가면서 사람들이 자기 입으로 ‘사실 나는 행복해요’라고 하는 말을 하는 걸 듣지가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 몇 번 들어보셨습니까? 여러분 삶 속에서. 내가 행복합니다 라고 하는 고백.. 많이 못 들었어요.
근데 이 1년 어간에 함께 정말 선교적 마인드를 가지고 선교회에 오셔서 신앙생활을 올인하시는 분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분들의 입에서 그렇게 자주 나는 행복하다 라는 아주 명백한 고백을 하는 것을 난 이렇게 많이 들어본 인생의 구간이 없어요.
왜 그럴까 생각을 해봅니다.
주님의 십자가에서 죽으라는 소리만 합니다. 수요일 영성강좌 그렇고 주일설교가 그렇고 날마다 그 설교만 하는 거예요. 근데 꾸역꾸역 오셔서 그 말씀을 듣고 앉아 계세요. 똑같은 그 말씀을. 근데 행복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
이것이 바로 실제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를 손으로 쥐시고 병기 삼아서 우리의 삶에서 역사해나가시는 겁니다. 복지를 실현시켜 나가시는 거예요. 복지라는 것을 현실이 되게 하시는 거예요.
복을 쫓아가지 않습니다. 단지 눈에 보이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 자식의 상황, 남편의 상황, 경제적인 상황, 내 건강의 상황 -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내가 죽는 거예요.내가 주님의 십자가에서 죽었는데 라는 것만 반복하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이 쥐시고 이루어 가신다는 겁니다.
두 번째, 하나님이 쥐시려면 오늘 보면 이런 말을 해요.
너희가 집을 지어놓고 낙성식을 못했다면 돌아가라. 너희가 전사한다면 다른 사람이 차지할 것이다.(5절) 이런 얘기를 해요.
아, 이거 참 좀 모순되는 말 아닙니까? 여러분. 물론 죽을 수 있겠지마는 그래도 한번 보세요.
병거가 많고 백성이 많음을 보고 두려워하지 마라. 왜냐?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직접 싸우시니까 그 대적을 물리칠 것이다 해놓고 사람들이 다 듣는데서 낙성식을 안 한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라. 만약에 싸우다 죽으면 그 낙성식을 딴 사람이 할 테니까.
그러면 그 낙성식하지도 않아도 되는 사람은 죽어도 된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이 싸워서 이긴다고 해놓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 다음에 전사하면 이라는 말을 왜 세 번이나 반복합니까?
포도원을 만들어놓고 포도원의 열매를 아직 먹지 못한 사람은 돌아가라. 전사하면 딴 사람이 먹을까 하노라.
아니, 이게 무슨 나약한 소리입니까? 아니, 이렇게 말해서 이게 전쟁이 되겠어요?
우리가 전쟁을 나갈 것 같으면 보통 어떻게 합니까?
사기가 충천하게 만들기 위해서 온갖 소리를 다 하는 거 아닙니까?
포도원을 했는데 포도원 열매를 못 먹었다 그러면 어떻게 말해야 됩니까?
이기고 나서 기쁜 마음으로 집에 가서 포도를 먹자.
낙성식을 못한 사람이 있으면 우리가 전쟁을 이기고 나서 기쁜 마음으로 새 집으로 들어가자.
아, 이렇게 얘기해야지 전쟁하려고 모여 있는데 낙성식을 못했으니까 돌아가라, 포도원 열매를 못 먹었으니까 너희가 죽으면 딴 사람이 먹으니까 가서 그 포도원 열매나 먹어라.
아니, 이거 싸우자는 거예요, 말자는 거예요? 여러분.
왜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여러분.
전쟁에 임하는 태도가 다른 거예요. 마음가짐이 다른 거예요 지금 모세가.
어떤 마음가짐이냐?
모세는 압니다. 우리가 사기를 모으고 사기를 막 일으켜 세우고 그리고 정의를 불태우고 이래서 전쟁을 이기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모세는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전쟁에 나가는 자들이 하나님의 손에 쥐임 받을 수 있는 자들이어야 된다는 걸 압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쥐임 받을 수 없느냐? 하나님이 쥐실 수 없는 사람들이냐?
미련이 있는 사람, 마음이 갈린 사람, 마음이 안타까움이 있을 만큼 무언가를 소원하는 사람, 자기의 소원이 따로 있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이 쥐실 수가 없다는 거예요.
내가 여러분 쉽게 말하면 살아가시면서 내가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 ...했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가 요렇게 하면 좋겠다, 우리 집이 팔리면 좋겠다, 우리 사업이 잘 되면 좋겠다, 내가 병이 나으면 좋겠다. 어떤 식으로든지 내가 아쉬움이 소원을 내 스스로 갖지 않습니까? 소원을 내 스스로 갖는 자들 하나님께서 못 쥐어요.
소원을 먼저 내 스스로 갖게 되면 소원을 먼저 가진 자가 항상 칼자루를 쥐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불러도 내가 하나님을 찾기 전에 먼저 소원을 가지면 그 소원을 위하여 하나님이 나의 병기가 되어 주셔야 되는 것이에요.
근데 하나님이 나에 대해서 소원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소원을 인정해드리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이 있다는 거예요.
내가 내 자식을 향한 소원이 있듯이 내 자식이 좋은 데 들어가면 좋겠다, 내 자식이 좋은 취직자리를 얻으면 좋겠다 소원이 있듯이 하나님이 나를 향한 소원이 먼저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소원을 인정해드리면 하나님이 나를 병기 삼아서 그 소원을 이루어 가시는데 그 소원이 복지라는 거예요.
근대 가만히 보니까 모세가 전쟁하겠다고 모인 사람들 마음을 들여다보니까 아, 낙성식을 안 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있어서 낙성식했으면 하는 소원이 있습니다. 또 포도원 농사를 짓고는 포도원 열매를 먹었으면 하는 소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지금 돌아가라는 말은 무슨 뜻의 말이냐?
배려를 하는 게 아니에요.
이 거룩한 정복전쟁. 가나안 정복전쟁에서 하나님이 병기로 사용할 수 없다는 자격미달을 선언하는 겁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조그만한 소원이라도 갖게 돼요.
지금 태목사가 날마다 하는 게 뭐냐 하면 태목사도 인간이니까 소원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럼 이렇게 해요. 아들을 볼 때 아들이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 했다가 금방 그걸 십자가에서 내가 죽은 것을 인정하면서 그런 소원의 마음 자체를 없애버립니다.
우리 선교회가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 없애 버려요.
그럼 이렇게 물어봐요. 아니, 그러면 선교회가 어떻게 됐으면 좋겠다 라는 바람도 선교회를 이끌어 가는 입장에 있는 목사가 그걸 안 갖고 있느냐?
안 갖고 있어야 돼요. 그래야 하나님이 이 선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 태목사가 선교회에 대해서 소원이 있다면 하나님은 오죽이나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사업에 소원이 있다면 하나님은 오죽이나 있겠습니까?
자식에 대해서 여러분이 소원을 갖는다면 자식이 여러분 거예요? 하나님은 아담을 만들 때부터 우리의 자식을 생각했는데 하나님의 소원이 오죽이 있겠습니까?
그 하나님의 소원을 인정하려면 내 소원이 죽어야 돼요. 내 아쉬움이 없어야 돼요. 그거 죽어버려야 돼요.
요거만 요렇게 되었으면 좋겠는데 하나님 조금만 요것만 좀 안 될까요? 이런 마음을 없애라 이거에요. 이런 마음이 있으면 내가 하나님을 병기로 쥐게 되는데 그런 법은 성경에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를 병기로 쥐시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직접 싸우시는데 하나님도 무기가 있어야 되잖아요. 인격적으로 내가 인간병기가 되어서 하나님 손이 딱 잡으면 하나님이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칼자루가 되어야지요.
하나님이 날 쥐시잖아요? 제일 먼저 나타나는 게 뭡니까?
마음의 평안함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딱 쥐시면 이런 마음을 가지고 딱 준비가 되어서 하나님이 딱 쥐시면 내 마음이 편안합니다. 말도 이렇게 편~안~합니다~ 너무 편해서. 이런 마음이 생긴다는 거예요.
그리고 세상에 나가서 떡 서있으면 직장에 서있고, 자식 앞에 서있고, 가정 앞에 서있고, 내 이 빠지는 머리 앞에 서있고, 병든 몸 앞에 서있는 겁니다. 내가 소원없이.
병든 몸 앞에 소원 없어, 머리 빠지는 것도 안 빠졌으면 하는 바람도 죽이고, 직장에 가서도 돈 많이 번다는 소원도 죽이고 그냥 서있어요. 가서 그냥 움직여요.
가서 가 있는데 따라서 조회하면 조회하고, 전화 오면 전화 받고 그러는데 하나님이 나를 병기로 잡으시고 직장에서, 자식 앞에서, 어디를 가든지 복지를 쟁취해가신다는 겁니다.
자, 두 가지.
눈에 보이는 상황 앞에서 내가 죽자!
눈에 보이는 것에 반응하지 말자!
그거는 가짜다. 하나님은 어떤 장애도 문제가 안 되신다. 내게는 문제가 되고 하나님은 문제가 안 되신다.
눈에 보이는 것에 따라서 마음이 좌우되고 흔들려서 근심하고 걱정하고 빨려들어가지 말자! 죽자!
두 번째,
조그만한 아쉬움과 소원이라도 내 마음에 갖지 말자!
그러면 하나님의 소원이 작동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병기로 쥐시고, 쥐시면 어떻게 된다?
평안해집니다. 평안해지는 가운데 어디든지 가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이 복지를 만들어가신다는 것입니다.
복지정복을 위한 인간병기가 되셔서 살아가시기 위하여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지금의 상황들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말고 죽고 그 다음에 내 마음에 일어나는 소원들 - 요게 요렇게 됐으면 하는 작은 모든 소원까지라도 소원과 바람을 십자가에서 다 죽은 것으로 인정하고 하나님께 쥐임 바 되시기를 바랍니다.
(07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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