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비열전 10-2
제10대 연산군(이융)의 여자들
연산군,
장녹수와 사냥을 즐기고 오다가
한 잔 걸치고 창덕궁 금호문 앞에 있는
정업원의 비구니 8명을 겁탈한 적도 있다.
치욕을 그 참지 못해서
그 비구니들은 전부 목을 매어 자결했다.
연산군이 선물을 바리바리 꾸려서
백모(큰엄마)의 집으로 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왕비 신씨는 깜짝 놀란다.
바로 여자의 육감이다.
황급히 채비를 차려 나서겠다고 서두르자
김 상궁이 앞을 가로 막았다.
''중전마마, 윤씨처럼 혹시 사약이라도
받으시면 어찌하시렵니까?''
듣고보니 그 말도 맞다.
연산군 이미 미친 호랑이가 되어 있으니..
그래서 그만 두었다.
그 덕에 63세까지 장수하셨다.
연산군이 강화도에서 죽기 전에
본부인 신씨가 보고 싶다고 했단다.
제정신이 돌아오니 당연했겠지..
원래 조강지처불하당이 왜 나왔겠어..
연산군은 하이애나처럼 집요하고
끈질기게 큰엄마를 설득,
강압으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다. ㅠㅠ
이거 원 남사스러워서...
소문이 나자..
박씨, 이렇게 동생 박원종에게
유서를 남기고 월산대군 곁으로 떠났다.
''억울하고 통분한 일을 죽음으로 청산한다.
네가 혹시 기회가 있으면 이 한을 풀어다오.''
박원종, 피눈물을 쏟으며 이를 간다.
나중에 중종반정에 적극 가담하여
누나의 복수를 멋들어지게 한다.
여자들에게는 이런 남동생이
하나쯤은 있으면 좋을 것이다.
연산군,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문제 삼아
무오사화를 일으켜 사림파를 숙청한다.
이때는 유자광이 한 몫 했다.
두번째 사화는 임사홍과 폐비 윤씨의
어미 신씨가 주연한 갑자사화다.
''폐비 윤씨의 원한을 갚자!'' 라고 한 것이니 '갚자사화'(?)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 역사공부!
이렇게 쉽게 가르쳤으면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역사의식을 많이 가졌을텐데..
그냥 아쉽다. ㅠㅠ
생모인 윤씨를 폐하자고 앞장섰던
작은 엄마(성종의 후궁들)들을 개잡듯이
잡고는 피로써 폐비 윤씨의 한을 푼다.
금삼 자락의 피가 피의 강을 이루었다.
여자의 한!
참 무섭다. ㅠㅠ
연산군은 무려 12년 동안
그렇게 흥청망청 방탕한 생활을 했다.
그러니 국고가 어떻게 되었겠는가~?
재정파탄!
그러면 돈을 충당해야 한다.
당시는 재벌도 없었으니
독대해서 뜯어낼 수도 없었다.
그저 신하들에게 가진 거 내놓으라는 수밖에.
연산군이 저 GR 할 때
옳게 이야기 한 신하는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죽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가 문제가 아니고
바로 목이 날아가는데 누가 감히...
모두가 연산군에게 3아(아부, 아양, 아첨)을
떨면서 일신의 안위를 위해 축재만 했다.
그런데 이제 자기들 것을 내놓으라고 한다.
무릇 자신의 부모 죽음은 빨리 잊어도
부모 재산분배에서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면
죽을 때까지 잊지 않은 게 인간들 속성이다.
그런데 "왕이 감히 내것을 내놓으라고?''
절대 안 될 말이다!
불평불만이 오뉴월 장마 뒤
독버섯처럼 싹트기 시작한다.
결국 반정이 시작된다.
중종반정!
인간이란 상황이 어려우면 서로 서로
도우려는 마음보다는 저부터 살겠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를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많이 보아왔다.
심지어 그 상황을 즐기는 무리들도 있다.
저 유자광과 임사홍처럼...
''너희는 만고의 충신이 될 것이다.
비록 나에게는 역적일지언정...''
세조가 성삼문 등 사육신에게 한 말이다.
그런데 연산에게는 충신이었지만
만고의 간신이 되는 인물들이 많았다.
왜 연산군 때에는 그랬을까?
그것은 리더십의 부재다!
''왜 그랬을까~?''
인간은 원래 선하지 않은 존재여서인가~?
조선왕조 제10대 연산군까지 왕비들을
살펴보았는데 남자가 여성 입장에서 가슴이
따뜻했던 적보다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았다.
여자로..
왕비로 태어난 것이 죄라면 죄였다.
그래도 대부분 천수를 다하고 갔다.
그래도 연민의 마음이 든다.
왜 왕비열전을 통해 그들의 경험을
간접적이지만 느껴고 있지 않는가?
우리긴 전생에 왕비이지는 않았을테고,
그저 무수리라도 되었다는 말인가~?
내일 또 계속됩니 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