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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름-여호와 삼마(제20일.2026.4.4.토)
겔48:30-35 *찬송:401장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삼마’입니다. 그 뜻은 ‘하나님이 거기 계시다’라는 말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의 삶 속에 때로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습니다. 나의 슬픔, 나의 고통을 아무도 모르는 것 같고, 나를 사랑하신다는 주님도 그저 아득히 멀리 계신 것 같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는 여건과 환경을 바꿔 달라고 기도하지만 하나님은 먼저 함께 하시고 임재하십니다. ‘여호와 삼마로’ 거기에 내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 여호와 삼마의 확신이 드십니까? 임마누엘이 느껴지십니까?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 곧 회복의 시작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여호와삼마가 어디입니까? 여호와 삼마가 무엇이며 어디에 적용을 해야 합니까?
지금 무너진 상황에서의 기도를 하는데 응답이 없습니까? 아하와 강가와 그 발 강가에서의 간절함입니까? 병상 위의 고통 속에서 치유와 회복을 위한 부르짖음 입니까? 삶의 이것도 저것도 그 무엇도 풀리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나는 거기에 있고, 나는 네가 있는 그 자리’에 있다고 합니다. 모든 믿는 사람에게 이런 여호와 삼마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기 계시다’라는 말은 ‘하나님이 그저 저 멀리 거기 계시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기 가까이 계셔서 나의 슬픔과 고통을 보시고, 아시고, 그 중에 나와 함께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가장 가까이 계시는 여호와 삼마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께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삼마 하나님은 이 세상 어느 곳에나 계십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그리스도인은 그 존재 자체가 곧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신 성령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친히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은혜를 입고 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또한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성도입니다.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이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임마누엘과 비슷한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 삼마’입니다.
우리 인생의 어두운 밤에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삼마 하나님은 특정 장소에만 계시지 않습니다. 처음 부르신 곳입니다. 처음 약속을 하고 은혜를 받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기름부음을 받았던 곳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나의 가정과 직장, 일터와 사업장과 계획한 곳입니다. 눈물의 골짜기입니다. 홍해와 광야의 길입니다. 요단강과 여리고와 아이 성입니다. 헤브론입니다. 고센 땅입니다. 어는 곳이든지 회복이 되는 자리와 현장입니다. 절망과 병상과 실패의 자리에서도 회복이 되는 현장입니다. 그런 곳이 어디입니까? 성도여러분, 무너진 자리라고 하나님이 안 계신 것이 아닙니다. 눈물이 있는 자리에 하나님이 더 가까이 계십니다.
에스겔이 계시를 받고 환상을 본 때는 주전 593년에서 571년까지 약 22년 동안입니다. 이시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한 마디로 절망의 시기였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에스겔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말씀을 전하기 시작한 때는 남왕국 유다가 멸망하기 직전입니다. 강대국 바벨론이 등장했고, 이 때 남왕국 유다는 우상숭배가 극심했고 사회가 도덕적으로도 타락이 극에 달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여호와 유일신앙을 저버리고 바벨론 편에 설 것인지 애굽 편에 설 것인지를 놓고 국론이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바벨론이 쳐들어왔고 주전 586년에 나라가 멸망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에스겔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백성들과 함께 눈물로 겪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래서 바벨론 땅에서 백성들과 함께 깊은 절망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에스겔은 그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계시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에스겔 선지자는 제사장 가문출신으로, B.C 597년에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여호야긴 왕과 왕족 및 귀족들, 그리고 유다의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을 사로잡아 갈 때 그 포로들 가운데 섞여 있었습니다. 그는 바벨론에서 그발 강가 근처에 살았습니다. 그는 포로 후 5년 되던 해에 선지자로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는 30여세로 포로 중 선지자였습니다.
에스겔은 예레미야나 다니엘처럼, 팔레스타인 역사의 격동기에 활동을 하였습니다. 당시 주변 정세는 대단히 혼란스러웠습니다. 그 복잡하고 긴 역사를 다 말할 수 없어도, 간략하게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B.C 722년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는, 신흥 바벨론 제국의 세력에 압도되어 힘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유다 왕 요시아는 반 앗수르 정책을 쓰게 되었고, 한참 세월이 흐른 후, 여호야김 임금은 바벨론을 배반하였습니다. 이때 예레미야 선지자는, 친 바벨론 정책을 하라고 했지만, 여호야김이 거절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였습니다. 이때 여호야김이 죽고 말았습니다. 그 뒤를 이어 여호야긴이 왕이 되었으나, 겨우 100일만에 물러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느브갓네살이 다시 공격해 왔을 때, 여호야긴 왕과 왕족들과 귀족, 유명인사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갔는데, 이때 에스겔도 사로잡혀 갔고, 그후 예루살렘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은 에스겔은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그들을 회복시키고, 그들을 축복하실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에스겔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가장 하고 싶었던 말씀입니다. ‘여호와 삼마’,‘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에 있을 때에나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있을 때에나 변함없이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땅을 분배하고 성읍을 구축한 후에 이곳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자신의 속성을 계시하여 주시는데 하나님은 ‘여호와-삼마의 하나님, 곧, 항상 거기 계시는 하나님’이라고 한 것입니다.
바울은 롬8:26절에서 성령으로 우리 안에 계시는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께서는 우리 연약함을 도우셔서 우리가 하나님께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할 때에도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로 부르짖고 간구드릴 때,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은 항상 우리 가까이에 계셔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그의 길로 인도하시며, 우리에게 그의 영광을 소망 중에 바라복 수 있게 하십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성도의 평안과 건강이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우리 몸이 질병으로 고통받고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으로 환난 당함도 또한 은혜인 것은 환난과 고통 가운데 우리가 ‘여호와 삼마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고자 함이 있기 때문이며, 그 때에 ‘여호와 삼마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위로하시기 때문입니다.
겔48:3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회복될 성읍-새 예루살렘을 보이시고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다의 불순종으로 하나님께서 성전을 떠나신 것과 같이 아니하시고, 항상 그 성전에 거하시며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모습을 보이시고 도움을 간구하는 자들에게 복의 근원으로 임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성전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계십니다. 하늘뿐 아니라 음부에도 계시고, 육지와 바다 끝에서 성도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을 보고 계십니다.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은 종말에 새 예루살렘 곧 새로운 낙원이 우리에게 회복되기 전에 자신의 몸이 성전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메시야 오시기를 갈망하던 유대인들에게 보여주시고 영으로 우리 믿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거하시므로 우리 속에서 ‘항상 거기 계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여호와 삼마의 주님께서 영으로 우리 안에 계신 것은 우리의 슬픔과 고통과 약함과 유혹을 담당하시고 위로하시고 도우시고 격려하시기 위함이심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성전에 계시던 하나님께서 성전을 중심으로 세워진 새 예루살렘 도성에도 똑같이 계신다는 말입니다. 이 ‘여호와 삼마’는 바로 ‘에스겔서의 중심사상’입니다.
젊은 선지자 에스겔은 오늘날의 이라크 땅 바그다드인 ‘바벨론’에서 목이 터져라 ‘여호와 삼마’를 외쳤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절망에 지쳐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스겔의 예언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피를 토하도록 외치는 에스겔의 ‘여호와 삼마’의 소리가 자신들을 조롱하는 소리로만 들릴 뿐이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에스겔 선지자는 마지막 쓰러져 죽으면서까지 ‘여호와 삼마’를 외쳤다고 합니다. ‘여호와 삼마’는 바벨론 포로시절, 하나님의 회복을 기다리던 에스겔 선지자의 소원이었고,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소원이었습니다. 또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소원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여호와 삼마’란 구체적으로 어떤 축복을 말하는 것입니까?
1.여호와 삼마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사람이 언제 행복합니까? 소유에서보다는 사랑 받을 때 행복함을 느끼게 됩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줄 수 없습니다. 사랑 없이 주는 것은 어떤 면에서 도적 맞는 거와 같습니다. 사랑하지 않고 줄 때에 얼마나 아깝습니까? 사랑은 용서하는 거라고 말합니다. 사랑이 없기에 용서하지 못합니다. 원수를 갚으려고 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무엇이 사랑입니까? ‘마지막까지 같이 있어 주는게’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여기에 계시고, 우리 곁에 계시고, 우리가 슬픔 중에 있어도, 실패하였을 때에도, 실망하였을 때에도, 나이가 들면 찾아오는 사람이 적어서 외로울때도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와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리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사랑하신다는 표현입니다.
2.여호와 삼마는 지켜주심을 의미합니다.
왜 곁에 있습니까? 지켜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음은 하나님의 보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장하도록 지켜 주십니다. 인간은 어리석고 약합니다. 잠시 좋은 일이 있으면 그렇게 기뻐 날뛰다가 조금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낙심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을 지켜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뿐이십니다. 수 없는 사단의 유혹에서도 누가 보호하시고 지켜 줄 수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사단은 지금도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합니다.
사단은 우리편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다면 판단력이 있어야 합니다. 잘 판단해야 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주여! 나를 지켜주시옵소서. 여호와 삼마 되신 아버지여 내 곁에 계셔서 지켜 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문에 여호와 삼마라고 한 것 같이 우리의 가정에도 우리의 교회에도 우리나라의 경계선에 여호와 삼마가 있어야 합니다. 지켜주시기 위하여 곁에 계십니다. 지켜주시는데 ‘주무시지도 아니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시121:3절 ‘왜 실족치 않게 하시려고’지켜주십니다. 출입을 지켜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시간은 일순간이 아니라 영원까지입니다.
3.여호와삼마는 도우시기 위하여 있습니다.
인간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으로 전능하신 하나님 나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려고 우리 곁에 계시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지금 우리에게는 여호와 삼마 곁에 계셔서 도와주심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입니다. 하나님은 도와주십니다. 나의 마음을 도와주십니다. 용기를 주십니다. 새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직접 도와주실 때도 있으나 이겨 나갈 수 있는 힘을 주심으로 도와주실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능력을 주심으로 도우십니다. 풍성한 축복을 주심으로 도와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풍성하신 주님이십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나의 곁에 계신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신다는 확신을 갖고 사업, 공부, 직장 등등 도움을 요청하시기를 축복합니다.
4.여호와삼마는 인도하여 주시기 위하여 삼마가 되십니다.
‘여호와 삼마’는 하나님께서 인생길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인도하는 것입니까? 마음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환경을 통해서 인도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인도하는 것입니다. 행27:23절‘나의 속한 바 나의 하나님의 사자가 내 곁에 서서 말하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여기에도 계십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이 상주감리교회 교회와 성도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영원히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알고 믿는다면 나의 문제에, 나의 아픔에, 나의 고통에, 나의 질병을 여호와 삼마 하나님께 기도하셔서 해결받는 축복이 일어나서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이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의 삶의 현장 속에 함께 들어와 인도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 좋은 결과가 나타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그리스도인 가정은 여호와 삼마라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가정,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가정’,‘고마워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집, 고마워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 세상에 이보다 좋은 이름이 있겠습니까? ‘이제부터 우리 가정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이제부터 내가 일하는 생업의 현장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이제부터 남은 인생이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이제부터 상주감리교회가 여호와삼마라 하리라’,‘이제부터 우리 모든 것의 결론이 여호와 삼마가 되리라’ 임마누엘의 하나님,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삼마이신 하나님과 늘 동행하심으로, 회복의 역사, 치유의 역사, 축복의 역사가 여러분의 삶 가운데에서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