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정책대안의 모색
1. 경제정책의 기본방향
경제정책은 경제활동에 직접 영향을 주는 여러 정책으로 종류가 다양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금리나 환율 조정을 통해 투자와 수출을 늘리거나, 재정지출을 확대해 성장률을 올리려는 정책을 주로 경제정책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금리인하, 환율인상, 재정확대 등을 통해 성장률을 올리는 정책을 추진하려는 사람을 ‘성장론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장은 국부를 늘리고 국가 경제력을 키우는 원동력이지만, 성장만을 목표로 하면 경제성장이 대다수 국민의 경제적 생활과 무관하게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성장을 해도 일자리가 늘지 않는다든지, 성장과정에서 물가나 부동산가격, 환율 등이 많이 오르는 경우가 대표적인 것이다. 고용 없는 성장은 자본의 몫은 크게 하고, 노동의 몫을 적게 하여 분배구조를 악화시킨다. 물가와 환율, 부동산가격 상승을 통한 성장은 서민의 생활수준을 떨어뜨리고 무주택자를 더 어렵게 만든다. 선진국에서는 경제정책의 목표로 성장 보다 고용과 물가를 보다 중시한다. 미국 중앙은행인 미 연준(FED)의 정책목표도 최대고용과 물가안정이다. 실제 미 연준의 금리정책도 최근 물가가 안정되어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실업률 등 고용상황 변화를 가장 중요한 관심 대상으로 하고 있다.
다음으로 성장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한 국가의 성장률을 어느 수준 이상 지속적으로 올리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 국가의 지속가능한 최대 성장능력은 대략 노동인구 증가율과 생산성 증가율의 합으로 결정된다. 노동인구는 출산율, 고령화 속도 등 인구구조에 의해 대부분 결정되므로 단기간에 조정이 매우 어렵다. 생산성도 경제가 어느 정도 발전 단계에 이르면 단기간에 늘리기가 어렵다.
대표적 사례가 이명박정부 ‘747 공약’이다. 이명박정부는 2008년부터 747공약 중 하나인 7%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 금리인하와 엄청난 고환율, 4대강사업 등 무리한 토목공사와 재정적자 확대, 법인세인하 등 기업투자 유인책, 지속적인 부동산경기 부양책 등을 무모하게 밀어붙였다. 그러나 2008-2012년 이명박정부 동안 평균 성장률은 연 3% 정도로 잠재성장률에도 미달했다. 여기에다 2007년 21,632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은 고환율정책으로 인해 2012년 22,708달러로, 이명박정부 5년간 달랑 1,076달러 증가하는데 그쳤다. 경제를 잘 하겠다는 정부였는데 너무 형편이 없다. 우리 국민의 근면성과 기업의 경쟁력을 고려하면 그 누가 경제정책을 담당해도 이명박정부 때 보다는 잘 했을 것이다.
이명박정부의 성장실패 사례에서 보듯 금리인하, 환율인상, 재정확대 정책으로는 경제를 성장세를 지속적으로 확대시킬 수 없다. 이런 정책으로 성장률을 계속 높일 수 있다면 선진국이 못될 나라가 없을 것이다. 금리인하, 환율인상, 재정확대 등 정책은 약간의 거시경제학 지식만 있으면 큰 어려움 없이 시행할 수 있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금리 등 거시경제정책은 기본적으로 경제성장 보다는 안정을 위한 정책이다. 경제가 과열되었으면 진정시키고, 경제가 과도하게 침체되어 있으면 활성화시켜 잠재성장률 근처에서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시키는 것이 거시경제정책의 목적이다. 안정적인 성장과 함께 물가안정과 함께 금융안정도 거시경제정책 목적이다. 물가, 성장 등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면 경제 불확실성이 감소되어 성장잠재력이 증가한다. 결국 거시경제정책은 성장과 물가 금리 환율 등을 안정적으로 유지시켜 장기적으로 성장에 도움을 주는 것이 기본 역할이다.
진정한 성장정책은 금리, 환율 등의 조정이 아니라 어렵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노동인구를 증가시키고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정책이다.
첫째 노동인구를 늘릴 수 있는 정책을 생각해 보자. 출산율을 높이는 정책은 근본적인 대책이지만 쉽지도 않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민을 늘리는 정책은 장기적으로 보면 사회적 문화적 갈등 해소 비용 등이 많은 고비용 정책이다. 여기에다 외국인 노동자 등 이민 확대가 3D업종 종사자 중심으로 이루어지면 생산성 저하라는 부작용도 생긴다.
따라서 현실적인 대안으로는 보육시설 확대가 여성경제활동인구를 늘릴 수 있는 성장정책의 하나이다. 그리고 관료개혁 등을 통해 노량진, 신림동 등에서 고시, 공시준비에 많은 시간을 소진하고 있는 젊은이를 줄일 수 있는 방안도 노동인구를 늘릴 수 있는 정책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를 줄여 취업준비생들이 중소기업 등에도 많이 가서 일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성장정책이다. 이외에도 직․간접적으로 인구를 늘리지 않고도 실제 노동인구를 증가시킬 수 있는 정책은 또 있을 것이다.
둘째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정책은 더 다양하다. 생산성은 생산기술이나 과학 발전뿐 아니라 경제 정치 사회시스템의 효율성에도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과학기술 육성정책이나 기술자와 기능인 우대정책은 당연히 생산성 향상을 위한 정책이다. 이런 정책은 구호로 끝나서는 안 되고 실질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이렇게 보면 우수한 수험생들이 의대나 치대 보다 자연대나 공대를 지원할 수 있도록 직업 간 종합적인 보상체계를 바꾸는 것이 중요한 성장정책이다. 장․차관 등 고위 관료에 법대나 상대 출신보다 이․공계 출신이 더 많게 만드는 것도 성장 정책의 하나이다. 대학교육이 취업 등을 위한 스펙 쌓기나 간판 따는 곳에서 학문연구와 기술발전의 장이 되게 하는 교육정책도 생산성 증가 방안이다.
그리고 경제 정치 사회시스템의 효율성은 일차적으로 신뢰수준과 투명성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사회의 신뢰수준이 떨어지고 투명하지 못하면 거래비용 등이 크게 늘어나 비효율적으로 된다. 한 국가의 신뢰수준이 높아지기 위해서는 국가를 이끌고 있는 계층이 정직해야 한다. 정치지도자와 고위 관료 등의 잘못은 용서해도 거짓말을 용납하지 않는 시스템의 구축도 성장정책이 된다. 정책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바꾸고 관료 전횡을 막을 수 있는 장치를 만드는 것도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정책이다. 조세 개혁을 통해 세금을 내지 않는 소득을 줄이는 것도 경제의 신뢰수준과 투명성을 높이는 정책이다.
금융개혁을 통해 금융소외계층의 금융접근성을 확대하는 것, 자금 흐름을 부동산 보다는 보다 생산적인 분야로 흐르게 하는 것도 중요한 성장정책이다. 창업이나 기업의 성장을 막는 ‘대표이사 등의 연대보증제’를 폐지하는 것과 기업활동을 옥죄고 있는 비정상적인 규제를 완화하는 것도 핵심적인 성장정책이다. 이외에도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성장정책은 많이 있다.
지금부터는 이렇게 다양하고 종류가 많은 성장을 위한 경제정책 중에서 정책 우선순위를 정하고 정책을 선별하는 기준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정책의 우선 순위는 아주 중요하다. 5년 단임제 정권 아래서 제대로 실행할 수 있는 중요 정책은 몇 개 되지 않는다. 여기에다 좋은 정책이라도 시행순서가 바뀌면 바둑 수순 잘못과 같이 부정적 효과만 커지는 악수가 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 해소 등을 위한다고 박근혜정부의 안(案)대로 대기업 정규직 해고를 쉽게 하는 방안이다. 대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는 조금 줄겠지만 의사 등 전문직 및 공무원 등과 기업부분 종사자의 격차는 더 커진다. 기업부문으로 좋은 인재 유입이 줄어 경제의 효율성과 생산성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금융종합과세 강화, 소액주주의 주식매매 차익 과세 등도 비슷하다. 금융자산에 대한 과세 강화는 필요하지만 임대소득 등 부동산 부문에 대한 제대로 된 과세 없이 시행되면 자금을 부동산 쪽으로 흐르게 하는 부동산 경기 부양책이 될 뿐이다. 건강보험료 징수체계 개편도 소득세제 개혁 없이 이루어지면 정당성이 크게 떨어진다. 현행 세법상 세금을 내거나 들어난 소득이 있는 사람만 건강보험료를 더 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좋은 정책, 나쁜 정책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좋은 정책은 어느 한 쪽으로 휘어진 상황을 바로 잡아 중앙으로 오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과도한 경쟁에 내몰린 분야를 적절한 지원과 보호가 필요하고, 지나친 보호 속에서 특권을 누리고 있는 부문은 경쟁과 시장원리가 필요한 것이다. 경제정책에서도 중용의 도가 중요하다가 볼 수 있다.
그리고 보다 실무적으로는 정책시행 과정에서 도덕적 해이와 역선택이 적게 발생해야 한다. 모든 정책은 조금씩 도덕적 해이나 역선택이 있지만 어떤 정책으로 인해 이것들이 구조적으로 조장되어서는 안 된다. 대표적인 것이 앞서 설명한 대표이사 등의 연대보증제이다. 이 연대보증제는 구조적으로 경영자로 하여금 회삿돈을 빼돌리려는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고 법을 잘 지킨 사람이 손해를 보는 역선택이 발생한다.
또 하나의 정책 선택기준은 정의와 원칙이 복지와 자선 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복지와 자선이 많이 필요한 나라이지만 정의와 원칙은 더 부족하다. 정의와 원칙이 서면 사회의 신뢰성과 투명성이 높아져 경제성장이 좋아진다. 필요한 복지와 자선이 줄어 들 수 있고, 적어도 국민의 불만을 확실히 줄어 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거의 모든 경제정책은 부작용이 있고 기득권자의 반대가 있다. 공짜 점심이 없고, 위험 부담 없이 수익을 낼 수 없는 것과 같다. 특히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듯이 꼭 필요한 정책은 반대가 더 심한 것이다. 기득권층이 포기해야 할 이권이 그마큼 크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자리 창출, 의료서비스 확대, 의료산업의 수출과 산업화 등을 위해서는 의사 정원을 늘려야 한다. 아마 전국 병원의 거의 모두가 문을 닫을 정도의 저항이 있을 것이다. 국공립 보육시설을 늘리지 못하는 것도 예산제약 못지않게 사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의 로비와 반대 때문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불로소득으로 당연히 세금을 내야 할 주택임대소득에 대한 과세를 하지 못하는 것도 임대소득자 반대가 두려워서일 것이다.
부작용과 반대를 고민하다보면 추진할 좋은 정책은 거의 없다. 정책의 긍정적 효과가 더 크고 다른 정책의 실행에도 도움이 되는 우선순위의 정책은 어렵더라도 결단을 내려야한다. 예상되는 부작용은 철저한 사전 준비와 단계적 실시 등을 통해 최소화 할 수 있다. 부작용을 줄이면서 정책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정부의 실력이다. 기득권자의 반대는 끈질긴 설득과 홍보활동을 통해 정책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한 국민의 공감대를 만드는 작업이 핵심이다. 설득과 홍보는 많은 노력과 시간의 소요되기 때문에 정책을 무리 없이 추진하려면 한 정권에서 정책의 제안과 시행이 모두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버릴 필요가 있다. 이번 정권에서 시작된 정책이 다음 정권이 마무리 할 수 있어야 대한민국의 발전 가능성이 더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