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807
미륵사지? 이상하다~~오늘은 분명 충주 수안보 여행인데~
그렇다!! 미륵사지는 익산에만 있었던게 아니었다...
중원 미륵사지
중원 미륵사 절터는 동쪽으로 하늘재, 서쪽의 지릅재 사이의 분지에 위치하고 있고, 삼국시대이래 조선시대 이전까지 남북의 중요한 길목에 있으 불교 사찰의 역할 뿐 아니라 군사, 경제적으로도 중추적 기능을 담담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미륵리 절터 안내도
미륵대원터
"중원 미륵사지" (사적 제 317호)의 창건 후에 지리적 여건과 역원제도의 정비로 동쪽에 별도로 역의 기능을 담당하는 원을 세우고 "미륵대원" 이라 한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유사>에 "미륵대원계립령동령야" 라 한 기록과 일치하고 있다. 이 원터는 계립령 (지금의 하늘재) 길과 연관되어 고려초기에 설치되어 운영되다가 조선시대에 조령 (일명: 새재)에 관방시설이 완비되면서 이곳 원터는 점차 그 기능을 상실해 갔던 것으로 보인다.
건물지에 대한 조사결과 2차에 걸친 중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건물지는 "回" 자형의 구조로 가운데에는 말을 묶어 둔 마방시설을 두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 주변의 건물터는 나그네 숙소 및 관리인이 기거했던 건물터의 구조가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곳은 사찰과 원터의 기능이 같이 이루어진 고려초기 중요한 유적지로 평가받고 있다.
주요출토유물
1970년대 말부터 이루어진 발굴조사에서 "미륵당", "미륵당초", "원주", "명창 3년 대원사 주지 승 원명"이라 적힌 기와들이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절이름은 미륵대원으로, 미륵대원터는 본존불, 석등, 오층석탑이 일직선상에 놓인 배치로소 삼층 석탑, 사각석등, 단간지구, 미완성 식불, 건물지, 돌거북 등 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충주 미륵리 사지 귀부
다른 절과 달리 특이하게 북쪽을 향해 절터가 전개되고 있는 것은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후 고구려 땅을 회복하겠다는 의지의 상징으로 추정된다.
현재 석축안에 커다란 돌로 만든 석불입상과 석등, 5층석탑이 일직선상에 북향을 한 단탑식 가람배치를 보여주고 있는데 큰 절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신라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는 도중 이곳에 석굴사원을 조성하고 불상을 세워, 동생인 덕성공주가 송계계곡으로 남향한 암벽에 새긴 마애불 (덕주사 마애불)과 마주보게 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가까이에 하늘재가 있어서 주변 문화재도 잘 보여주고 있다
아이들이 와도 재밌게 보면서 배울수 있는 팻말들이 여기저기에도 있다
http://blog.naver.com/dogdog1974/60113063103
첫댓글 추천했다..^^~~
하늘재 주변에 문화재가 많네요. 다음에 혼자 한번 가봐야 할까봐요.
멋진 포스팅 추천합니다. 좋은날 되세요
오우
대단한 포스팅이네요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