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토론]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깨달음과 수행] <19> 이태승
“깨달음을 통한 지혜의 완성이 불교의 목적”
삶이란 몸과 말과 정신적 행위가 더이상 번뇌에 사로잡히지 않는 ‘지혜로운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진흙에서 살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연꽃과 같은 삶을 말한다. 사진은 선암스님의 연꽃사진집 〈부처의 미소〉.
먼저 ‘기획토론’의 주제인 깨달음과 수행의 문제에 들어가기 앞서, 본주제를 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해 두고 싶다. 필자는 여기에서 다루는 ‘깨달음’을 불교 수행의 목적이라고 하는 데는 이의가 없지만, 불교의 근본 성격을 지칭하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라고 정의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지혜의 종교’라고 정의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곧 불교의 근본성격은 깨달음을 통한 지혜의 증득이며, 또한 지혜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깨달음의 종교체험을 통해 심신의 인격이 변화되어, 몸과 말과 정신적인 행위의 일체가 더 이상 번뇌에 사로잡힘이 없는 지혜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 이것이 지혜를 강조하는 불교의 근본목적이 아닐까? 붓다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어 지혜의 눈으로 세상을 본 후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친 것은 더 이상 번뇌가 없는 완전한 인간의 삶이 가능하다는 메시지였다. 그리고 그러한 지혜로운 삶을 위해 중생들로 하여금 수행을 통한 깨달음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것이다. 따라서 깨달음과 수행의 문제는 ‘지혜로운 삶’의 근본성격과 일치가 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깨달음은 지혜를 일으키는 종교체험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깨달음의 종교체험은 인간의 깊은 의식의 세계와 관계한 의식의 내적 전환, 인격의 변화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이 내면의 의식 세계를 통찰하는 방법이 선정으로, 이 선정을 통해 깨달음을 체험함으로써 지혜의 증득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선정과 지혜는 밀접한 관련을 갖는 것으로, 이러한 관계는 초기불교 이래의 수행체계인 계.정.혜의 삼학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삼학의 체계는 불교수행체계의 기본을 보여주는 것으로 중요하다. 곧 계율를 통해 심신을 가다듬고 선정을 통해 지혜를 일으키는 것이 삼학의 체계이다. 그리고 초기불전에서 선정이 9단계로 나타나 선정의 단계에 각기 구분이 있듯 선정과 관련된 지혜도 그 선정의 단계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선정과 지혜의 단계 가운데 최상의 선정과 최고의 지혜를 이룬 사람이 붓다임은 말할 것도 없다.
붓다는 삶의 고통스런 현실을 직시하고 그 고의 원인과 소멸을 위해 출가 수행하여 마침내 깨달음을 이루었다. 6년간의 고행을 거쳐 보리수 아래에 선정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 마침내 고의 원인과 소멸의 길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깨달음의 체험 속에서 고통이 소멸되어졌음을 분명히 자각하고 더 이상 고통의 세계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고의 소멸을 확신하는 과정에서 분명하게 삶의 원리를 통찰하는 지혜로 나타난 것이 연기설로서, 붓다는 12지연기의 순관과 역관을 통해 인간의 고통의 궁극적인 원인을 발견하고 그것의 소멸을 확신하였다.
모든 것이 조건에 따라 생긴다고 하는 연기의 이치를 통하여 고통의 근본 원인으로 나타난 것이 무명으로, 이 무명은 인간의 무지로 인해 생긴 인간의 근원적인 정신적 속박이었다. 이러한 무명을 존재케 하는 인간의 무지를, 붓다는 무상.고.공.무아의 이치를 모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붓다는 깨달음을 통해 지혜를 얻은 이후 한결같이 무명을 타파하는 길로서 무상.고.공.무아의 이치를 설하고 그것을 깊이 생각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렇듯 붓다는 깨달음의 체험에서 연기의 지혜를 증득해 고통의 소멸과 소멸에 이르는 길을 분명히 제시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지혜롭게 된 붓다는 열반에 이르기까지 모든 중생을 해탈의 길로 이끈 위대한 스승이었다.
붓다의 깨달음의 체험에서 우리는 수행의 목표와 깨달음의 의미를 분명히 알 수 있다. 곧 수행은 인간의 오래된 무지에 의해 생긴 무명을 타파하는 데 그 목표가 있으며, 깨달음은 무명의 소멸을 확신하는 지혜를 생기게 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그리고 지혜를 얻은 붓다가 가르친 교설의 근본이 무상.고.공.무아의 가르침이며, 이 가르침을 통해 우리는 무명을 없애는 수행의 길로 들어가게 된다. 붓다의 삶에서 보여지는 수행과 깨달음의 과정은 이후의 불교 승단의 체계적인 수행의 기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붓다 입멸후 승단의 체계적인 수행 과정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논서가 설일체유부의 〈구사론〉이다.
4성제에 대한 바른 통찰해야 지혜로운 삶 가능해
5정심관.4념주 닦아 인간 내면의 의식세계 변화
〈구사론〉에서의 수행체계는 기본적으로 4제에 대한 통찰을 통한 번뇌의 소멸에 있는 것으로, 이러한 통찰을 현관이라 하며 그 현관은 견도와 수도의 단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구사론〉에서는 먼저 수행에 들기 위한 예비적인 단계로서 문, 사, 수의 3혜를 닦는다. 그리고 수혜인 수소성의 지혜를 더욱 고양시키기 위해 본격적인 수행의 단계로 나아가는데 그것이 3현위의 단계로 5정심관, 4념주를 닦는 단계이다.
5정심관은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시킴으로써 산란한 마음을 정지시키는 수행법으로, 부정관, 자비관, 인연관, 계분별관, 수식관의 다섯을 말한다. 이것은 사마타[止]의 수행법으로, 마음을 가라앉히는 수행법이다. 이에 대해 4념주는 비파사나[觀]를 닦는 단계로 부정.고.무상.무아를 분명하고 확실하게 관찰해 아는 단계이다. 이 4념주의 단계에는 각각을 개별적으로 관찰하는 방법과 총체적으로 관찰하는 방법이 있다.
이러한 3현위의 단계인 지.관을 닦음으로서 수행자의 마음에 성자로 되는 선근이 생기며, 이 선근을 증장시키는 단계가 4선근의 단계이다. 선근을 증장시켜 이 선근이 최고로 증장된 단계에 이르면 수행자는 견도의 단계로 나아가게 되고, 이 견도의 단계에서부터 수행자는 범부가 아니라 성자로 간주된다. 이 견도와 나아가 수도의 단계에 든 사람들은 성자로 불리며, 그 성자들은 각 단계에 따라 예류, 일래, 불환, 아라한의 4단계로 나뉘어 진다.
이〈구사론〉에서 설명하는 수행의 체계는 비록 여러 부파 중의 하나인 설일체유부의 수행체계를 보이는 것이지만, 당시 설일체유부의 영향력이 컸던 것을 감안하면 당시 인도불교의 기본적인 수행체계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비록 대승불교의 흥기와 함께 누구나 붓다가 될 수 있다는 성불의 개념과 보살의 개념이 도입되어 새로운 수행체계가 생겨나게 되더라도, 이 〈구사론〉에서의 수행체계는 붓다 입멸후 불교의 기본적인 수행체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중요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 〈구사론〉의 수행체계를 살펴보아도, 수행은 우리 인간의 내면의 의식세계를 변화시키는 과정임을 알 수 있다. 곧 산란한 마음을 정지시키는 지의 단계와 의식된 상태로 확연히 알아야 하는 관의 단계를 통해 우리의 마음이 선한 상태로 바뀌고, 이러한 선한 마음이 성자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자의 길에서도 그 정도에 따라 계위가 나뉘어져 최고의 단계가 아라한의 단계로 규정되고 있다. 이와같이 아라한을 최고의 경지로 규정하는 것은 붓다의 경지는 감히 범부 중생이 도달할 수 없는 경지로, 붓다에 대해 최상의 존경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붓다가 중생 범부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최상의 선정과 최고의 지혜를 지녔다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사론〉의 수행체계는 본 ‘기획토론’의 주제인 깨달음과 수행의 문제를 고찰하는데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 주고 있다. 즉 〈구사론〉에서 보듯 수행의 과정은 인간 내면의 의식세계를 변화시키는 과정으로서 지와 관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또한 성자들의 단계가 각기 다른 것은 성자들의 깨달음의 단계가 각기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불교도들이 추구하는 깨달음이란 붓다가 깨달은 것과 같은 최상의 깨달음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최상의 깨달음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붓다가 최상의 깨달음을 통해 가장 지혜로운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더 이상 고통의 삶이 없는 무애자재한 자유인으로 대표적인 인간의 삶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혜롭고 온전한 삶을 보여준 붓다를 본받아 불교도들이 깨달음을 위해 수행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붓다가 도달한 깨달음의 경지는 일반 불교도들이 도달하기에 그다지 쉬운 길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불교도인 우리들은 수행의 길에 들어 자신의 의식세계를 변화시키고 깨달음의 단계를 한 단계 한 단계씩 지혜로서 확인하며, 무소의 뿔처럼 꾸준히 정진해야 할 것이다.
이태승 / 위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
[출처 : 불교신문 2059호/ 8월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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