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애니메이션 '피터 팬'의 한 장면. |
|
- 스코틀랜드 출신 20세기 작가
- 성장 거부하는 인간 본성 표현
- 어린이는 물론 성인 추억 자극
- 제목 딴 병리현상 나오기도
네버랜드는 판타지 문학이 낳은 공상의 나라, 환상의 나라다. 네버랜드는 어린이들의 상상력과 결합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현실 세계와 이어진다. 삶이 고달프면 어른도 유토피아를 꿈꾸는데 어린이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네버랜드에 대한 환상은 19세기를 정점으로 하지만, 20세기가 접어들어도 그 기세는 꺾일 줄 몰랐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오즈'가 20세기가 만든 네버랜드라고 한다면,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소년 피터 팬은 20세기가 만든 환상의 주인공이다.
골치 아픈 일이 많은 현대 사회에서 어른이 되고 싶지 않는 어른이 얼마나 많을까. 영국의 극작가이며 소설가인 제임스 매슈 배리가 1904년 그의 희곡 '피터 팬'을 런던의 연극 무대에 올려 성공을 거둔다. 이후 '피터 팬'는 1940년 런던 대 공습의 1회를 빼고는 언제나 크리스마스의 단골 메뉴가 되었다.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피터 팬'과 잃어버린 팔 대신 갈고리를 끼운 해적 선장 후크, 시계를 찬 후크의 팔을 삼켜 끊임없이 시계 소리를 내는 똑딱 악어, 이들은 배리가 창조한 3대 캐릭터다. 후크 선장은 수많은 애니메이션의 등장인물이 되었다.
런던의 캔싱턴 공원 이웃에는 다일링 부처가 큰딸 웬디와 동생 존, 마이클 세 아이를 데리고 살고 있었다. 웬디는 어머니에게서 들은 피터 팬을 실제로 존재한다고 굳게 믿었다. 어느 날 이들의 침실에 피터 팬이 나타나고 이 집 개 나나에게 들키는 바람에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달아난다. 피터 팬은 그림자를 돌려받기 위해 요정 팅커 벨을 데리고 찾아와서는 웬디와 두 동생을 유혹해 하늘을 날아 네버랜드 섬으로 간다.
섬에는 피터를 대장으로 하는 요정 소년들과 피터 때문에 한 쪽 팔을 잃어 복수의 기회를 노리는 해적 선장 후크가 있었다. 추장의 딸 타이거 릴리가 이끄는 인디언들은 해적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해적들에게 포로가 된 릴리와 소년들은 해적선에 끌려가 사형당할 위기에 처한다. 피터는 후크 선장이 겁을 내는 똑딱 악어의 시계 소리를 흉내 내어 겁에 질린 후크 일당을 물리친 뒤 인디언과 소년들을 구해 네버랜드로 돌아오고, 웬디와 두 동생을 다일링 가족에게로 돌려보낸다. 어느덧 어른이 된 웬디는 제인을 낳고 엄마가 되는데, 어느 날 피터는 제인을 데리고 하늘을 날아간다. 별처럼 하늘을 나는 제인을 바라보기만 할 뿐 어른이 된 웬디는 더는 함께 날 수가 없다.
배리는 1880년 스코틀랜드의 카리뮤어라는 마을에서 직물 가겟집의 아홉째 아들로 태어났다. 6세에 둘째 형이 사고로 죽자 어머니의 상심이 어찌나 컸던지 어머니의 슬픔이 고스란히 배리의 마음속에 남아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되었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많은 감화를 받으면서 자랐다. 1882년 맏형의 도움으로 에든버러 대학을 졸업하고 지방지 편집 일을 하면서 익명으로 많은 소설을 발표했다. 그의 희곡이 공연에서 성공을 거두자 오로지 극작에만 몰두했다. 그가 창조한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소년' 피터 팬은 영국과 미국에서 폭발적인 환영을 받았다.
1909년 15년간 함께 살았던 부인과 성격 불화로 이혼하고 고독한 생활을 했으나, 기사 작위, 공로 훈위를 받았으며 많은 대학에서 명예 학위를 받았다. 1911년 배리는 '피터 팬'을 개작한 '퍼터와 웬디'를 발표했지만, 희곡에서 얻은 만큼의 인기는 없었다.
월트 디즈니는 어린 시절 할머니로부터 수많은 민담을 들으며 자랐는데, 그 첫 이야기가 '백설공주'이며 두 번째가 '피터 팬'이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디즈니의 첫 번째 애니메이션이 1937년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였으며 두 번째는 당연히 '피터 팬'이었지만, 세계 전쟁 발발로 차일피일 미루어졌다가 결국은 1953년 디즈니의 14번째 애니메이션이 되고 말았다.
디즈니는 지금까지 연극에서 조명으로 처리했던 팅커 벨을 처음으로 금가루를 뿌리는 작은 요정으로 재현했는데, 메릴린 먼로가 모델이라는 소문이 났지만, 사실은 여배우 마거릿 캐리가 모델이었다. 최초의 영화판 '피터 팬'은 1924년 허버트 브레논 감독의 흑백 무성영화였다. 당시 피터 팬 역을 여우 베티 브론슨이 맡았는데 그 후 줄곧 피터 팬 역은 여자 배우가 맡았다. 1991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피터 팬을 새롭게 해석한 영화 '후크'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팅커 벨 역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70년대 미국 남성을 중심으로 어른이 되어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린애와 같은 행동을 하는 현상을 두고 임상 심리학자 D. 카일리가 '피터 팬 신드롬'이라 했고, 이후 가정의 붕괴와 급격한 페미니즘의 확산으로 인한 남성 사회의 병리를 표현하는 용어로 굳어졌다. '피터 팬'을 어른이 좋아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