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보피정 순례 여덟째날
(모슬포성당 → 고산성당 → 용수성지 → 신창성당
→ 조수공소)
그리스도 부활하시어 당신 영광 속으로 들어가셨네. 알렐루야!
아침 미사를 드리는데 세차게 비가 내린다.
미사가 끝난 후 신부님께서 이 곳 제주도에는 지금 비가 필요하지만
우리가 지나는 길목마다 맑은 날씨를 주셨으면 하는 기도를 하셨다며
멋쩍게 웃으시는 그 의미는...
그래서인지 밥 먹고 비옷도 챙겨 입고 출발하려는데 비는 가랑비처럼 내리다가 그친다. 징조가 좋다.
어제 모슬포성당이 잠겨 있어 성당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 다시 성당으로 가서 기도하고 순례의 길을 시작했다. 해안도로를 따라 고산성당으로 가는 길은 스페인의 묵시아와 너무도 흡사하다. 추억이 되살아난다.
예수님 돌아가시고 나서 야고보 사도가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스페인의 피니스테레인데 복음을 전파하려 그 곳에갔으나 냉냉한 사람들에게 실망을 하고 간 곳이 묵시아다. 성모님께서 배를 타고 이곳으로 오셔서 야고보사도에게 “너는 할 일을 다했다(You are done.)”라고 위로하시니 힘을 얻어 그 길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 곳에서 순교하셨다고 한다.
오늘 우리가 걷는 이 길에서 나는 다시 힘을 얻었다. 아, 나에게 그때의 그 행복감을 다시 느껴보라고 부르신 것 같다.
“감사합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우리는 해안도로를 따라 다 같이 침묵으로 각자의 기도를 바치며 걷고 있다. 뒤에서 따라오던 신부님께서 손을 흔들고 지나가신다. 아마도 흐뭇하셨을 것 같다. 어제 밤의 효과가 있었나?
길을 걷다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두 자매가 우리를 보고 반가워한다. 단지 신자라는 이유만으로. 더욱이 안신부님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오래전 부산 만덕동성당 출신인 양신부님이 안신부님과 같은 수도원에 들어갔다며 신부님께 인사를 드리겠다고 해서 함께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제주가 고향인 남편이 2년 전 이곳으로 들어와 양어장을 하고 있는데 이 곳 사람들이 배타적이라 고생을 많이 했단다. 지금은 사람들과 융화하기 위해 농사철인 때에는 가서 일도 한다고 했다. 물론 인건비는 받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동네 분들이 필요할 때 요청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이사벨라가 본명인 그 자매와 함께 앞서 가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무인카페로 갔다. 커피를 비롯해 차종류는 이천원, 과자는 옛날에 먹던 과자 하나에 삼백원씩을 함에 넣고 각자 자유롭게 먹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이층 전망대는 바다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도록 통나무의자를 놓아두어 순례의 기분을 잠시 내려놓고 차 한잔의 여유를 가졌다.
고산성당에 도착하여 밭에서 일하고 있던 수녀님께 미사포도주를 조금 얻었다. 수녀님은 성당은 크지만 신자수가 많지 않아 공소수준이라고 했다. 오늘은 먼 길을 가야하기 때문에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어 발걸음을 재촉하며 또 다시 걷는다.
고산성당에서 김대건신부님이 풍랑에 표류하여 표착한 용수리 해안에 기념성당과 기념관을 지은 용수성지에 도착했다.
기념관에는 당시 신부님이 타고온 “라파엘호”를 고증을 거쳐 복원하여 전시하고 있고 신부님의 유해도 모셔져 있어 잠시 예를 드리고 나왔다. 기념관에서는 우리의 맏형님이신 타칭 원장님이 예전의 죄인들에게 내렸던 벌의 종류와 고문을 하던 기구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 주셨다.
신창성당에 도착하니 매일미사책에 각자의 이름이 붙어 있었는데 20여권이 한 옆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미사에 참여하는 신자수가 적음을 알 수 있었다. 신부님께서도 이곳에서 우리와 잠시 얼굴을 마주했는데 찹쌀떡을 사오셨다. 힘을 내라는 뜻일 것이다. 어제 우리와 합류한 인천에서 온 바오로가 신부님을 보자 한마디 한다.
“신부님, 이 길은 신부님하고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되겠어요.”
“왜?” “사람들이 천천히 걸어라, 쉬었다 가자하고 의견이 분분하니
말이에요”
그 말의 의미는 우리끼리 걸으면 순례길이긴 하지만 일치하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고, 사제의 한 마디로 일치할 수 있는 것은 사제에게서 나오는 보이지 않는 권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도 어림잡아 30Km 이상을 걸어야 순례가 끝날 것 같다. 이제 순례팀은 지치고 힘이 많이 들텐데도 그냥 걷고 있다.
우리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맏형이신 원장님이 한마디 한다.
“발바닥에서 불이 나려고 해요” 첫 날 왕언니가 허리를 삐끗해서 걱정들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어린 동생들보다 더 잘 걷고 있다.
성당을 나서려는데 시골아저씨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들어오시는 분이 계셨다. 신부님이시냐고 여쭈니 허승조 바오로 신부님이라고 친절하게 대답해 주신다. 인상 좋고 마음씨 좋아 보이는 신부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했는데 우리에게 참 좋은 일을 한다며 선한 웃음을 지으시며 우리의 요청을 받고 사진까지 한 컷 함께 찍어 주셨다. 좋은 때 왔으면 귤이라도 줄텐데라고 말하시는 신부님께 건강하시라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오늘 순례의 마지막인 조수공소로 가는 길은 조금은 오르막인 길을 계속 오른다. 가는 길에 성모님 상이 모셔져 있는 예쁜 집이 있었는데 우리를 보더니 차 한잔 마시고 가라신다 . 서울 마포에서 살다가 2년 전 이곳으로 왔다며 고향사람들을 만나 무척 반갑다고 말하며 그냥 지나쳐 서운하다는 말을 여러 번 하신다. 우리는 그 모습에 마음이 풍성하고 따뜻해진다는 말을 하며 힘을 얻고 힘든 발걸음을 옮긴다.
조수공소에 도착하여 조금 있으니 순례를 시작할 때 함께 걷다고 먼저 돌아간 스텔라자매가 우리를 위해 수육과 오리고기, 또르띠아처럼 싸서 먹는 인도인이 즐겨 먹는 난이라는 음식을 준비해서 다시 돌아왔다. 차려놓은 상차람에 우리 모두는 감동을 하며 맛있게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나눔 시간에 신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말씀을 하셨는데 공동체의식과 우리가 그 안에서 지켜야 할 것들을 이야기하셨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걷는 모습을 보고 탈출기를 연상하셨다고 한다. 그 옛날 신앙의 선조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떠나던 그 모습으로 보이셨나보다.
신부님, 좋은 뜻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겠지요?
어제 아오스딩 형제의 제의로 밤에 잠자기 전과 아침에 일어나 미사 전까지 침묵을 하기로 했다.
오늘의 묵상
여덟번째날 : 내가 복음적 삶을 살지 못하는 신자 중에 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 나희찬 마리아 자매님이 쓴 글을 제가 대신 올려 드립니다.
첫댓글 여덟째날 순례의 길 무사히 마침에 감사드립니다.
마침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네요. 그 시간까지 주님과 함께 은총의 여정 되십시요~~^^
날씨가 안좋아 고생이 많으시군요. 매일 강행군에 건강 조심 하세요.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3/4을 마치셨군요. 대단하십니다. 신부님과 순례단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화이팅 하세요...
몸은 고되지만 영적으로 충만해져 가시는 모습이 정말 부럽습니다.
만남그이후 이곳시골일이 너무바빠 오늘에야 들어왔습니다 그동안 밭에서일을 하면서도 궁금했고 신부님을 비롯하여 여러형제 자매님들의 순례여정에 주님께서 함께하시어 무사히 마치게 해주시라고 간간히 기도하면서 많이부러웠습니다
늘건강하세요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