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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무협영화의 추억
1. 한문선생님
고교시절 한문을 가르쳐주셨던 노선생님은 성격이 괄괄하셔서 우리가 조금만 해찰을 하면 바로 응징을 하곤 하셨다.
노인의 행동거지이시라 아무리 군사부일체에 철저했던 우리들이었지만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으며 막강한 스승의 권위에 도전하는 싹수 없는 놈들을 혼 내주기 위해서 선생님은 망설임 없이 행동에 나서곤 하셨다. 무작위로 내려치는 매를 몇 대 맞다보면 당연히 상단막기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런 추가 반항은 그야말로 정면도전의 용서할 수 없는 행위였으므로 선생님은 주저 없이 교실 뒤편의 대걸레를 들고 달려들곤 하셨다. 더 맞지 않으려면 이리저리 도망 다닐 수밖에 없었고 쫒고 쫒기는 그 상황이 어찌나 우스웠던지 반 전체가 떠들썩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번 터진 웃음은 참기 어렵고 또한 웃음은 전염되는 법이라 심하게 표현하면 그런 에피소드가 있을 때에는 수업이 절반, 리얼 활극 코미디가 절반이었다.
한자만큼 위대한 글자가 있을까?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 중의 하나이며, 세계인구의 1/4이 그 문화권에 있다. 한자를 바탕으로 그 속에 스며있는 유.불.선을 비롯한 숱한 사상들이 우리 가슴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부연하여 서양문화의 근원이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라면 중국의 그것은 단연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이다. 그리고 그것을 집약시켜 놓은 책이 ‘동주 열국지’이다.
기원전 770년 주(周)나라가 낙읍으로 천도하여 시작된 춘추시대로부터 기원전 221년 진(秦)의 영정이 천하를 통일한 전국시대의 끝까지 숱한 인간 군상이 명멸한다.
관중, 포숙아, 제환공, 개자추, 진문공, 초장왕, 공자, 손무, 오자서, 부차와 구천, 상앙, 소진과 장의, 손빈, 오기, 맹상군, 염파와 인상여, 한비, 여불위, 영정...... 그리고 그들이 빚어내는 관포지교, 순망치한, 결초보은, 토사구팽, 오월동주, 와신상담, 계명구도 등의 숱한 고사 들.
영웅호걸들의 활약상과 함께 적나라한 인간의 본성, 권력에의 의지, 살아남기 위해 벌어지는 각종 권모술수들이 오늘날 벌어지는 세상사와 어찌나 닮았는지 감탄사가 절로 난다.
열국지는 명나라의 풍몽룡이란 사람이 사기, 여씨춘추, 좌전 등의 여러 고서를 참조하여 편집하였다고 하며, 나는 젊었을 적 운 좋게 김구용 선생의 번역본을 읽었었다.
한문을 격정적으로 가르쳐 주셨던 노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2. 流星.胡蝶.劍
맹성혼은 자객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홍예다리 난간에 기대어 검미를 찌푸리며 수심에 잠겨 있다. 이윽고 결투를 약속한 상대가 나타나고 멋진 생사투와 함께 다리 아래로 스러져가는 마두.
유성호접검의 첫 장면이다.
'자객의 운명은 유성처럼 덧없고, 사랑은 나비처럼 유한하다'
맹성혼 이라는 자객을 중심으로 사랑과 우정, 의리와 배신, 권력의 암투를 그린 무협영화의 최고봉.
용문방주 손옥백 (谷峰 분)을 암살하기 위해 12비홍방의 방주 만붕왕 등은 최고의 살수 둘을 보내는데, 바로 엽상(凌雲 분)과 맹성혼 (宗華 분)이다. 그런데 이 둘은 손옥백의 딸 소접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소접을 사랑하지만 강호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아비를 죽여야 하는 상황 때문에 괴로워하는 자객 맹성혼.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용문방 내부의 적을 색출해 내기 위해 그를 비호하는 손옥백. ‘차라리 적이 나를 얕보게 할지언정 자신의 적을 얕보지 말라’ ‘모든 일에는 여지를 남겨야 한다’. 용문방주 손옥백은 조직을 지켜내기 위해 심모원려로서 숱한 배신자와 살수로부터의 위기를 벗어나고 마침내 맹성혼과 더불어 배신자 율향천을 처단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 몇을 추려 본다면,
손옥백의 호위무사인 한당(羅烈 분)이 은거하고 있는 호숫가에서 그를 죽이러 온 자객들과의 혈투 장면, 율향천(岳華 분)이 객잔에서 함정에 빠져 살수들과 벌이는 결투 씬, 그리고 맹성혼이 호접림에서 소접(井筣 분)의 아름다운 노래에 빠져드는 장면 등이다.
원작자는 고룡으로서 천애명월도, 절대쌍교, 초류향전기 등의 작가라 한다. - 개인적으로 80년대 후반에 김용의 작품은 많이 읽어봤지만 고룡의 소설들은 영화 이외에는 접해본 적이 없다.
어쨌든 초원(楚原) 감독과 쇼브라더스사는 천변만화하고 예측불허한 원작의 에센스를 추려내어 다양한 미장센 (많은 장면을 스튜디오에서 찍었다.)과 추리소설의 기법으로 - 나는 그런 것들이 왜 오히려 詩情이 넘쳐나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풀어냈는데, 작품을 관통하는 씨줄과 날줄이 너무도 세심하고 치밀하게 얽혀 있어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려운 버라이어티한 영화이며 한두 번 봐서는 그 진가를 가늠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자세대이자 ‘중국기정무협소설’의 익숙한 피가 흐르는 우리 세대가 다시 한 번 그 세계로 빠져들기에는 충분하다.
쓰다보면 한이 없으므로 찬사는 그만두고 백문 불여일견이다. 내 경우는 몇 년 전에 직원에게 부탁하여 인터넷으로 DVD를 구입했었다.
3. 호금전과 장철, 그리고 쇼브라더스의 작품들
내친 김에 쇼브라더스의 걸출한 두 감독에 대해 맛을 보기로 하자.
호금전 감독은 방랑의 결투 (원제 大醉俠), 용문객잔 등의 감독이며 중국 전통의 경극 바탕 아래 사무라이 영화 등에 일부 영향을 받았다 하며, 완숙기의 협녀 등에는 ‘세련된 미장센과 양식적인 액션 안무’와 더불어 선(禪) 등의 중국 전통사상을 잘 버무려 놓았다. 혹자는 한편의 산수화 같은 느낌이라고도 한다.
대취협은 호금전의 대표작이며 무협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이라 하나 66년도 작품이라 다소 어수룩하다. 와호장룡에서 장쯔이의 사부로 나오는 碧眼狐狸가 바로 대취협의 히로인인 정패패(금연자로 분)이다. 어디서 봤다 했었는데 늙어서도 관록이 여전하다. 俠女도 칸느영화제 수상작이라 하는데 몇 년 전 비디오로 빌려봤었다. 와호장룡의 이안감독이 호금전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대저 평지돌출이 함부로 있는 게 아니다. 역사와 전통이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장철 감독은 동료 호금전의 서정적 작품에 반해 잔혹하고 남성적인 폭력미학의 대가이며 장철류의 새로운 무협영화의 장을 열어 6,70년대를 풍미하며 쇼브라더스사의 전성기를 이끈 거장이다. 그가 확립한 스타일은 오우삼 등의 홍콩느와르의 근원이 되며, 우리나라 액션영화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초등학교시절 심야의 결투 (金燕子)라는 영화를 어른들 따라 우연히 봤었는데 거기에 나오는 ‘흰옷 입은 남자’의 비정함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었고, 동무들에게 침을 튀기며 영화의 줄거리를 자랑하곤 했었다. 수년전에 DVD를 구입해서 다시보고 나서야 그가 王羽임을 알았다. 이후에 나온 외팔이 시리즈나 유성검 등을 포함해 검객으로서의 왕우는 꼬마시절 절대 우상이었다.
장철 감독은 100여편에 가까운 영화를 만들어 쇼브라더스의 황금기를 주도했는데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독비도) 이외에 복수, 자마, 13인의 무사 등 숱한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거의 전 작품에 ‘장철’식의 잔혹무정하고 ‘아나키즘적’이며 피와 살이 튀기는 리얼한 액션장면이 들어 있다. 한마디로 마쵸리즘의 정수라고나 할까...
어쨌든 우리들의 소년기는 왕우, 적룡, 깡따위, 나열. 그리고 박노식, 허장강, 독고성 등이 출연하는 숱한 아류작과 더불어 마쵸스럽게 채워졌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빌은 6,70년대 중국무협영화에 대한, 특히 장철감독의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라 한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예를 들어 우마 써먼-블랙맘바(아프리카의 가장 악명 높은 독사에서 따온 별명)이 디바스의 멤버 중 하나인 ‘버니타 그린’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녀의 집에서 혈투를 벌이고 있는데, 창밖으로 스쿨버스가 정차하고 그녀의 딸이 학교에서 돌아온다. 둘은 잠시 싸움을 멈추고 오랜 친구인양 행세한다.
그 장면을 보다가 로례의 鐵手無情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오마쥬가 분명하다.
4. 브루스 리와 재키 찬
중학시절에 천재가 나타났다.
조각처럼 단련된 몸매와 거만한 표정, 특유의 괴조음, 신기에 가까운 권격과 발차기, 압도적인 카리스마의 이소룡은 단숨에 우리들의 우상이 되었다. 왕우나 깡따위는 까마득히 잊혀졌다.
아마 스크린 상으로 단 한 사람의 배우가 일시에 전 세계를 제패했던 적은 없었으리라.
쌍절곤, ‘추리닝’- 킬빌의 우마 써먼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헤어스타일까지도 대 유행이었다. 우리가 기를 쓰고 머리를 기르려 했던 것도 그 영향이 아니었을까?
정무문, 당산대형, 용쟁호투, 맹룡과강. 더 말해서 무엇하리.
사망유희는 한국배우가 일부 씬을 대신했었다 한다.
단 몇편의 영화에서 그가 뿜어대던 카리스마는 전설이 되어버린 지 오래이며 그런 천재는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다.
대학 1학년 때 취권을 봤었다.
영화관을 나서면서 얼마나 재미있고 우습고 신기하던지 온몸이 근질거려 함께 싸움장난을 했던 것 같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마지막 장면처럼.
죽은 이소룡을 대신해서 확실한 신파가 이 영화에서 비롯되었다는데 성룡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글을 써나가다 보니 무슨 중국영화 계보에 대한 초략 정도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우습기도 하지만 기왕에 그렇다면 80년대 중후반의 영웅본색이나 첩혈쌍웅류의 홍콩느와르를 끼워넣기로 하자. 주윤발이나 양자경이나 죽은 장국영이 서운해 할 테니까. 그러나 느와르는 우리 세대의 것은 아니다. 3,40대의 향수일 뿐이다.
5. 소오강호와 와호장룡
세월이 흐르고 추동력을 잃은 쇼브라더스사가 문을 닫고, 이소룡과 성룡으로 재미를 본 골든하베스트사의 작품들이 정통무협이 아닌, 취권 류의 희극이나 바로크적 지리멸렬, 허풍이 심한 물량공세와 판타지 계열로 흐르고 말자 나도 ‘중국영화’에 흥미를 잃었다.
아니면 나이를 먹어서 비현실적인 것들이 싫어졌다고 해야 할까.
나이 먹어가며 그나마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던 두 작품은 소오강호와 와호장룡 정도이다.
笑傲江湖의 감독은 서극으로 되어 있지만 역시 호금전과 정소동 등도 관여한 영화이다. 김용 원작. 한편의 거대한 서정시였다.
OST인 창해일성소(滄海一聲笑)는 지금도 피를 끓게 한다.
滄 海 笑
창해가 웃노라.
滔 滔 兩 岸 潮
도도한 파도는 언덕에 굽이치고
浮 沈 隨 浪 記 今 朝
물결따라 들고 잠기며 아침을 맞네
滄 天 笑
창천이 웃노라
紛 紛 世 上 滔
어지러운 세상사
誰 負 誰 剩 出 天 知 曉
누가 이겼고 누가 졌는가는 하늘만이 알뿐
(이하 중략)
nate같은 포털사이트에 들어가서 ‘창해일성소’를 쳐보시라. 동영상과 음악을 보고 들을 수 있다.
臥虎藏龍이야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아카데미와 골든글러브를 휩쓸었으니 서양인들도 좋은 것이 좋다는 것을 알기는 아나보다. 이안 감독은 대만 출신이라는데 이번 칸느영화제에서 수상한 이창동 감독도 그 정도 반열에 들었다고 해도 되겠는지.
개인적으로는 대밭에서의 주윤발과 장쯔이의 결투씬 (협녀에도 나오고 영웅문에서도 묘사되었던)과 대저택 마당과 지붕에서의 양자경(예스마담)과 장쯔이의 결투씬 등이 백미라고 하고 싶다.
이 영화를 본 사람도 많겠지만 하여튼 가장으로서 생업에 매진해왔던 친구들, 문화생활도 적당히 버무려야 일도 잘 되고 인생이 즐겁다.
6. 맺는 말
우리 세대의 어릴 적에는 동화 말고는 판타지가 없었다.
요즘 아이들은 커서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같은 영화를 추억하겠지만 우리는 무협을 반추할 수밖에 없다. 세월은 흐르고 아름다운 꽃들과 반짝거리던 별들도 지고 만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되고 언젠가 정통무협영화의 새로운 思潮가 르네상스의 형태로 출현하지 않겠는가.
나이 먹어가니 재미있는 것들이 적어진다.
나도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장검을 등에 진 채로 ‘검미’를 찌푸리고 그 다리에 서 있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어릴 때 뜻 없이 재미있게 보았던 ‘봉신방’이라는 영화에서 소년 ‘나자’가 용을 찔러 죽이던 장면을 본 이후로 지금까지 숱하게 하늘을 날았었다, 꿈 속에서.
몇 년 전, 그런 꿈을 꾼 적이 있다. 나는 주인공이 되었었다.
-꿈-
말 타고 境界에 가서
일장검 풀어 두고 은결에 찌푸릴 때
슬피 울며 나타난 소복의 여자,
“소녀의 치마가 떠내려가요”
黎明을 날아올라 내려다보니
아득한 난바다에 펼쳐졌어라
누리가 藍裳에 덮여 출렁이더라
첫댓글 망설이다 작년에 동창회 카페에 올렸던 글을 조금 고쳐 올려봅니다.
당시 반응이 폭발적이었답니다.
우리 무사님들 옛추억에 잠겨보세요.
산정선생님 거의 혼자 글 올리시기에 외로우실 것 같아 당분간 동참하려고 합니다.
모든 무협지의 시작은 ~~황산~~으로 시작하더이다만, 논문을 한편 쓰셨네요. 너무 장대하고 광범해서 감히 따라잡을수는 없지만 ...
'취권'을 본 이후로 내 삶의 지표는 '허허실실'법이 됐답니다.
나쁘게 말하면 상대를 교란하는 전법이 되겠지만 진심으로 전 '허허실실'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