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언어학 강의
(Cours de Linguistique Generale)
저자 :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1857~1913)
1916년 간행된 소쉬르의 이 저작은, 인간언어의 본질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표방하는 일반 언어학을, 새로이 구성된 기호학의 조망 속에서 20세기의 주요한 독립적인 인간과학의 하나로 정립시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 저서는 언어에 대한 과학적 연구영역에서 필연적으로 조우하게 되는 일련의 기본적인 개념을 체계화하고 있는데, 역사 실증주의적 연구와 단절을 이루는 그 내용은 현대 구조주의 언어학의 초석이 되었다.
*조숙한 천재
스위스의 언어학자인 소쉬르는 제네바에서 출생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자연과학 분야에서 활약한 인재들을 많이 배출했다. 15세에 <언어의 일반체계>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주위를 놀라게 하는 등 어릴적부터 천재성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라이프치히 대학 재학중 21세 때인 1878년 저술한 <인도유럽어의 원시모음 체계에 관한 논문>은 기존 학계의 난제를 투철한 논리와 박식함으로 해결한 명저로 오늘날에도 빛을 발하고 있다.
그는 고대 그리스어, 라틴어, 고대 페르시아어 등에서부터 불어, 독일어, 영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언어에 정통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그는 독일학계에서 냉대를 받았으나 파리에서는 크게 호응을 얻어 24세 되던 해에는 브레아르의 뒤를 이어 고등연구소의 강사가 되어 비교법을 강의했다.
만년에는 제네바로 돌아가 일반언어학에 관해서 세 차례 강의했다. 그의 강의는 그때까지 언어학을 지배하고 있던 역사주의나 실증주의 등을 극복하고 언어학의 새로운 장을 여는 것이었다. 역사주의 언어학이란 언어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즉 사회. 문화. 제도 등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경향을 말하는데, 이는 언어학을 언어사로 환원시켜버릴 우려가 있었다.
소쉬르는 이러한 태도를 비판하고 언어를 언어 그 자체로서, 즉 언어가 내적으로 가지고 있는 고유한 '구조'를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언어는 언어 외적인 현상을 연구하지 않고도 완전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일반언어학 강의>의 대미를 장식하는 다음 문장에 잘 나타난다.
"언어학의 유일하고도 진정한 대상은 언어인데 언어는 그 자체로서, 그것만을 위하여 고찰되어야 한다."
그 때 수강했던 학생들의 노트와 소쉬르의 강의노트를 제자들이 정리하여 편찬한 것이 <일반언어학 강의>로서 그의 사후에 출간되었다. 이런 관계로 이 저서에 기술되어 있는 내용 하나하나에 대해 소쉬르가 실제로 한 말인가에 대해 논란이 일기도 한다. 아무튼 이 책은 구조주의 언어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 소쉬르의 언어학적 혁명
1. 언어에 대한 전통적 사고방식
언어나 기호가 갖는 가장 일반적인 특징은 그것이 기호사용자의 의도를 대신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기호를 통해 어떤 사물을 지시하거나 어떤 의도를 표현한다. 예를 들면, '강아지'라는 기호는 실제 강아지의 '이름'이다. '잠잔다'는 말은 자는 행위를 가리키고, 그 기호를 사용하는 것은 자는 것과 관련된 어떤 의도를 표현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기호가 지시하는 대상(강아지)을 보통 '지시체'라 한다. 기호나 언어에 대해 갖는 생각은 '강아지'라는 기호와 실제 강아지(지시체)간에 상응. 일치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즉, 기호는 지시체를 반영한다는 이러한 사고방식을 언어나 기호에 대한 전통적 사고방식이라 할 수 있다.
2. 소쉬르 혁명
소쉬르는 이러한 사고방식에 전면적으로 반대했다. 그것은 기호와 지시체간에는 어떤 유사관계나 일치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호들의 의미는 대체 무엇이고 어떻게 정해질까? 이에 대한 소쉬르의 견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언어학의 대상과 특징을 들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언어활동에는 랑그(langue, 언어)와 파롤(parole, 화언)이 있는데, 언어학이란 '랑그'를 대상으로 한다고 말한다. '나는 고전을 읽었다'는 말은 '고전을 나는 읽었다'라고 말할 수 없는 어떤 동일한 규칙과 순서로 표현해야 하는데, 이러한 언어사용 규칙을 '랑그'라 한다. 반면 '나는 고전을 읽었다'는 말을 전라도 사투리로 표현할 때와 강원도 사투리로 표현할 때 분명히 다른 억양과 음색을 가지게 되고 또 동일인이 시간적 간격을 두고 말할 때도 달리 표현되는데, 이처럼 성대를 울려나오는 소리를 '파롤'이라 한다. 이것은 음악에 있어서 추상적 악보와 실제적 연주와의 관계로 비유해볼 수 있다.
둘째, 소쉬르는 언어현상을 기호학이라는 관점에서 해명하려고 시도했다. 즉, 기호와 지시체가 그것이다. 소쉬르는 기호를 기표(signifiant, 시니피앙)와 기의(signifie, 시니피에)로 나눈다. 기표는 '표시하는 것'이고 기의는 '표시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책'이란 발음은 그 물건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 그 물건을 가리키기 위해 '잭'이나 '착'으로 사용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책'이라고 발음하기로 한 것은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에 달리 발음해서는 안된다. 새로 약속을 바꾸어 '착'이라 한다면 이제 우리는 사전에서 '착'이라는 철자를 찾으면 된다. 이런 식으로 기표는 그 대상과 무관하게 사용되는데, 이 말은 기호는 '자의적'이라는 뜻이다.
셋째, 공시성(synchrony)과 통시성(diachrony)에 관련된 것이다. 공시성이란 어떤 기호를 사용하는데 동시적으로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말한다. 예를 들어 주어는 동사와, 타동사는 목적어와 함께 써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통시성이란 어떤 단어가 탄생부터 겪어 온 역사적 변화를 말한다. 따라서 그가 보기에 언어학에는 '공시언어학'과 '통시언어학'이 있을 수 있다. 통시언어학은 언어의 변천과정을 연구하는 것이고, 공시언어학은 언어의 규칙과 체계를 연구하는 것이다. 소쉬르는 이 둘 중에서 언어학의 중심영역은 공시언어학이라고 한다.
넷째, 소쉬르는 기호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말은 '좋다, 나쁘다'를 말하는 '가치'가 아니다. '의미'라는 말과 유사한데, 사실은 의미라는 말과 달라지는 내용을 표시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이다. 이와 관련하여 소쉬르는 '양'이라는 단어를 든다. 프랑스 어의 mouton은 '양'이라는 뜻인데 영어의 양은 sheep이다. 이런 점에서 '의미'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프랑스 어의 mouton은 살아 있는 양이나 죽은 양이나 또는 양고기 일체를 가리키는 반면, 영어의 sheep는 살아 있는 양만 가리킨다. 이런 점에서 '가치'는 다르다. 영어로 mutton은 죽은 양이나 양고기만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mouton과 mutton은 '가치'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강아지'와 '개새끼'는 모두 '개의 새끼'를 뜻한다. 그러나 누가 봐도 그건 다른 가치를 갖는다. 후자는 주로 욕을 할 때 사용한다. 만약 이게 '강아지'와 같은 뜻이라면 이 단어를 별도로 사용할 이유가 없다. 다시 말해 어떤 단어가 쓰이는 것은 다른 단어와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개새끼'라는 기호의 가치는 '개'나 '강아지'라는 기호와의 차이에 의해 정해진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기호의 가치는 '차이(difference)'에 의해 결정된다고 소쉬르는 말한다.
* 언어의 구조적 측면에 관심
칸트의 비판철학이 철학에 있어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으로 비유되듯이, 소쉬르의 언어학은 언어학에 있어서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에 비유된다. 그러나 칸트와 다른 점은 칸트는 자신의 철학적 업적이 '혁명'임을 주장한 반면, 소쉬르는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언어학자의 주장이 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철학적 혁명에 비유되었던 것일까? 다시 말해 소쉬르가 언어학에 새로 제기한 명제들은 대체 어떤 의미와 효과들을 가질까?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는 체계적인 구조를 이루는 언어와 그 언어를 사용하는 개개의 주체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앞서 본 것처럼 랑그는 개인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약속된 규칙체계이다. 개인들이 말을 하기 위해선 그 규칙에 따라야 하고 그 규칙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의미는 개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언어체계 안에서 랑그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며, 개인들은 그 규칙에 따라 의미를 말하고 또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다면 사고나 판단은 개개의 '주체'가 아니라 언어의 의미체계(구조) 속에 있는 것이며, 개인들은 그것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런 점에서 의미나 판단 또는 사고가 '주체'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언어구조에 내장되어 있다는 말이고, 거꾸로 '주체'들이 사고하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이 언어구조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언어를 통해 의미나 사고. 판단을 객관화하는 것이다. 그 결과 '주체'는 더 이상 자기가 말하고 받아들이는 행위의 중심이 아니며, 그 중심은 오히려 주체 외부에 있는 언어라는 객관적 구조에 있다는 게 분명해졌다. 이래서 소쉬르는 그 자신은 '구조'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구조주의의 창시자'라고 불려진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소쉬르의 언어학은 주체를 중심으로 회전하던 근대철학을, 그 중심을 해체함으로써 궤도에서 벗어나게 할 가능성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것은 세계의 중심을 다시 주체 외부로 옮겨놓은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소쉬르의 언어학에는 내적 모순이 있다. 예를 들어 "사랑은 / 가을을 끝낸 득녘에 서서/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김남주, '사랑은')"에 나오는 '사과'라는 기호와 "빌헬름 텔은 총독이 아들의 머리 위에 얹어놓은 사과를 향해 떨리는 가슴으로 활시위를 놓았다"에 나오는 '사과'라는 기호를 비교해보자.
전자는 '사랑' '가을' 등과 같은 기호들 속에 자리잡고 있어서 정감과 온기가 느껴지는 반면, 후자는 '총독' '아들의 머리 위' '화살'의 기호 속에 자리잡고 있어 긴장감을 준다. 이 두 개의 '사과'는 말 그대로 기호들간의 관계에 의해 각자 가치를 갖게 된다. 다시 말해 '사과'라는 동일한 기호에 새겨진 기호의 흔적이 '다른' 것이다. 위의 두 문장이 나름의 소중한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이러한 '차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기호는 일단 약속이 성립한 후에는 언제나 동일한 의미를 가질 것이라는 앞의 명제와 모순되지 않을까?
앞의 명제는 언어구조 자체 내에서 기호의 의미를 언제나 고정된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 그리고 주체가 기호를 사용하는 것은 언제나 그 고정된 의미를 갖다 쓰는 것이라고 본다는 점에서 구조주의적 입장과 직결되어 있다. 반면 후자의 명제는 이런 구조주의적 명제를 흔들고 있으며 체계화된 기호의 망 속에서도 기호의 의미(가치)가 얼마나 가변적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점은 나중에 구조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에 의해 강조되고 부각된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모순 역시 앞서처럼 근대적인 측면과 탈근대적인 측면이 소쉬르 언어학에 공존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 소쉬르의 영향과 구조주의 사상가들
소쉬르의 언어학을 가장 적극적으로 발전시킨 사람들은 '프라하 학파'언어학자들이다. 야콥슨을 필두로 하는 이들의 이론을 '구조주의 언어학'이라고 부른다. 특히 야콥슨은 2차대전으로 미국에 망명해 있던 레비-스트로스와 같은 학교에서 지내면서 그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구조주의 언어학은 레비-스트로스에 의해 언어학 차원을 넘어 인문 사회과학의 다양한 분야로 흘러들어간다.
현대의 서구철학은 언어학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레비-스트로스, 라캉 등의 프랑스 학자와 러셀, 비트겐슈타인, 프레게, 오스틴 등의 분석철학자들이 그들이다. 분석철학자들이나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모든 철학적 문제는 언어의 문제라고 한다. 인간이 언어 속에서 사고할 수밖에 없다면 결룰 이 언어를 연구함으로써, 또는 사람들이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연구함으로써 인간의 삶과 사고에 대해 알 수 있다는 입장이다.
위에서 본 것처럼 일반적으로 구조주의의 근원지는 소쉬르의 언어학이고, 구조주의의 실질적인 창시자는 리레비-스트로스로 간주되고 있지만, 구조주의에는 적어도 독립적인 4명의 인물을 포함해야 한다.
레비-스트로스가 인류학에서 구조주의를 발견. 응용하고 있듯이, 심리학 분야에서는 라캉, 마르크시즘에서는 알튀세르, 문학평론분야에서는 바르트, 철학에서는 푸코가 구조주의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앞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1. 라캉
프로이트 이후 최고의 정신분석학자인 라캉은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구조주의로 재해석하여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되어 있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는 성공적인 치료를 위해 의사와 환자와의 실체적 주체가 해체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나는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느 ㄴ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라고 하여 데카르트 제1철학의 원리를 뒤집었다.
2. 알튀세르
알튀세르는 소쉬르적 방법을 마르크스학 속에 도입하여 마르크스의 사상을 헤겔의 변증법에서 해방시킬 것을 주장하고 상부구조. 하부구조 개념, 즉 경제적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해석을 거부하고, 모든 구조는 '다원적'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3. 바르트
바르트는 어떤 종류의 언어의 사용형태가 발휘하는 숨은 작용의 해명에서 출발하여, 이윽고 넓은 문학 및 사회의 여러 현상에 숨어 있는 기호작용을 분석하는 구조주의적 기호학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후에 체계적인 기호학에 의심을 품고 문학적 기호학의 방향으로 선회했다. 우리 나라에도 서서히 그의 붐이 일고 있다.
4. 푸코
푸코는 철학의 대상에서 '인간'을 제외하고 오로지 언어에만 관심을 쏟았다. 그는 인간이 없는 곳에는 지만이 남고 그 구조분석이 철학의 과제로 된다고 주장하고, 각 시대에는 갖가지 지의 타입이 있는데 그것들 사이에는 연속적인 변화는 없고 다만 비연속과 단절에 의한 변형만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끊임없이 진보하는 인간이라고 하는 이미지와 결부된 직선적이고 연속적인 역사를 거부하는 것이 문제로 되어 있다.
첫댓글 구조주의 언어학의 초석을 이룬 소쉬르는 전통적인 언어나 기호에 대한 전통적 사고 방식을 벗어나 언어 그 자체의 구조를 연구해야한다고 주장한 구조주의자였습니다 시호와 지시체간에 유사관계와 일치관계가 없다고 하면서 랑그와 파롤, 기호, 기의 시니피앙, 시니피에 , 공사성과 통시성에 따라 언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호의 가치는 기호의 차이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였으며 주체에 대한 중심에 있는 것이 인간이 아니라 언어으 객관적 구조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한 구조주의자의 창시자랄 일컬어 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조주의는 언어구조로 이해한다면 의미에 변화가 없어야 되는데 그 것이 변하는 것을 설명하지 못하므로해서 비판
받고 있지만 현대 각 학문 분야에 영향을 미칠만큼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전통적인 사고 방식체계의 일대 변혁을 초래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처음에 소쉬를 접할 때 비해서 조금 이해하기가 수월해 졌습니다 오늘 서울대 강의가 있는 것을 미처 인지 하지 못하는 바람에 어제 댓글 보고 알았는데 가지를 못해서 아쉽습니다 저는 좀 단순 세포입니다 이것만 읽고 나가서 ...다방면에 정보에서 항상 밀립니다 성공적인 강의가 되셨길 빕니다 즐거운 주말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