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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기다리며 묻혀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무덤)
주제 : 탐욕
제목 : 기브롯 핫다아와의 비극
성경 : 민 11:31-35
찬송 : 268장
저자 : 이삼규목사
출처 : 20180422 낙양교회 주일 낮 예배
민 11:31 바람이 여호와에게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 곁 이쪽 저쪽 곧 진영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
민 11:32 백성이 일어나 그 날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진영 사면에 펴 두었더라
민 11:33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민 11:34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민 11:35 백성이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행진하여 하세롯에 이르러 거기 거하니라
톨스토이가 쓴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바흠’이라는 주인공은 가난했지만, 열심히 일하며 가족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땅에 대한 욕심을 품게 됩니다. 더 넓은 땅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그의 마음을 지배한 것입니다. 그러던 중 어떤 지방에서 아주 싼값에 무한정의 땅을 판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하루 종일 걸어서 밟는 모든 땅을 가질 수 있는데, 한 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해가 질 때까지 출발한 지점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밟는 모든 땅이 자기의 소유가 될 것이라는 사실에 흥분해서 밤새 잠을 설치고 새벽녘이 되어 해가 뜨기 시작하자마자 지팡이 하나를 들고 뛰기 시작합니다. 더 넓은 땅을 차지하고자 너무 많은 욕심을 냈던 그는 해가 지기 전까지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에 숨이 막히도록 달립니다. 그리고 드디어 땅 주인인 촌장이 서 있는 출발점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피를 토하고 죽고 맙니다. 바흠을 땅에 묻는 사람이 “인간의 한 생애에 몇 평의 땅이 필요한가?”하고 묻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납니다. 여러분은 땅을 얼마나 갖고 싶습니까?
유명한 문호 단테에 의하면 탐욕이란 '꺾을 수 없는 원수'라고 지적했습니다. 얼마나 강한지 아무도 꺾을 수 없는 원수가 바로 탐욕이라는 것입니다. 돈을 우상으로 생각하고 탐하는 탐욕은 사람과 나라를 망칩니다. 이런 의미에서 백만장자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의 말은 진리입니다.
"세상에 돈이라는 우상보다 사람을 더 타락시키는 우상은 없다."
돈에 탐심을 갖기 시작하면 어떤 사람이라도 타락하고, 어떤 권력이라도 부패하며, 어떤 나라라도 망하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탐욕이 우리나라의 권력을 잡고 있는 정치인들과 지성인들, 경제인들, 심지어 가정주부들의 밑뿌리에 까지 도사리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탐욕을 품으매
탐욕이 무엇입니까? 지나치게 집착하는 욕심입니다. 그러나 좀 더 솔직히 말해 더 갖고 싶다는 것이 왜 나쁩니까? '남보다 좀 앞서고 싶다. 그리고 좀 더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욕구가 그렇게 잘못된 것입니까? 이것은 인간에게만 있는 유일한 본능일 것입니다.
가령 사자는 먹을 만큼만 사냥합니다. 쌓아 놓기 위해서 사냥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쌓아 놓기를 갈망합니다. 지금 갖고 있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조금만 더'하는 마음이 항상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하는 에너지가 될 수 있습니다. '좀 더'라는 이 욕구가 있기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피곤한지 모르고 뛰는 것입니다. 잘 살아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문명이 발전합니다. 성취욕을 누리게 됩니다. 무언가 살맛이 나기도 합니다. 따라서 좀 더 갖고 싶다는 마음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대신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좀 더 가지려는 욕구에 제동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정선에서 자제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제력이 없는 욕구는 무서운 것이 됩니다. '좀 더' 하는 마음가짐에 제동이 걸리지 않으면 언젠가는 탐욕화 됩니다. 그리고 탐욕화 된 그것은 반드시 우리를 파멸
로 몰고 갑니다.
그러므로 적절하게 적정선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마지노선을 정해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손톱이 자라면 항상 적당하게 깎아 줍니다. 자라는 것을 막을 수도 없고, 또 그대로 내버려두면 보기 흉해지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마음에 있는 '좀 더' 라는 욕구를 완전히 없앨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적절하게 유지되도록 만들어 주면 그것은 우리를 살게 만드는 에너지가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4절 이하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민 11: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민 11: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민 11:6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이스라엘을 따라 나온 많은 잡족들이 있습니다. 오늘본문에도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들이 품은 탐욕은 어떤 것입니까? 먹는 것에 대한 탐욕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탐욕이 누구에게 전이되었습니까? 바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이된 것입니다. 악성종양이 퍼지듯이 금새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 탐욕이 전달된 것입니다.
“그들이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여러분 무엇이 먹고 싶어서 울어본 적이 있습니까? 무언가 먹고 싶은 것 때문에 운다면 그것은 아주 불쌍하고 처절한 모습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무엇을 먹으며 광야생활을 하고 있었습니까? 그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양식인 만나를 먹고 살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내려준 양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 영양가치도 없는 그런 양식을 내려주셨을까요? 아니면 이것만 먹어도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셨을까요? 하나님이 주신 양식이기 때문에 다른 양식이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마치 종합비타민처럼 영양소가 골고루 갖추어진 그런 음식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뭐라고 말합니까? 만나가 지겹다는 것입니다. 단백질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력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애굽에 있을 때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난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부추나 파 마늘은 절에서는 오신채라고 하여 먹지 않는 식물들입니다. 이런 것들이 정력을 강하게 하기 때문에 독신으로 지내는 스님들이 먹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기력이 다했다는 말은 정력이 약해졌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단백질이 풍부한 고기를 달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애굽에서 값없이 이런 것들을 먹었을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힘들고 고된 노예생활의 대가로 이런 것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모세의 항의
한두 명도 아니고 200여만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거기에 섞인 인종들까지 합하여 온 종족들이 각기 자기 장막 문에서 서럽게 울었습니다. 그 울음소리가 모세의 귀에 안 들렸겠습니까?
이러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심히 크고 모세도 기뻐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항의합니다.
민 11:10 백성의 온 종족들이 각기 자기 장막 문에서 우는 것을 모세가 들으니라 이러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심히 크고 모세도 기뻐하지 아니하여
민 11:11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민 11:12 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어찌 주께서 내게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민 11:13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이르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민 11:14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민 11:15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
모세는 긴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좌절감을 토설합니다. 모세는 지도자가 담당해야 할 책임의 과중함과 자신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신 하나님께 대해 불평을 쏟아 붓습니다. 모세는 능력의 부족을 절감하며 자신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적절치 않다고 하나님께 항변합니다. 유모가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며 힘들어 하듯, 모세는 자신이 배지도 않고 낳지도 않은 이스라엘을 돌보는 일에 한계를 느끼며 혼자서 백성을 감당하기 힘들다고 말하면서 죽여 달라고 호소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고통을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구하며 부르짖는 자의 간구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장로들 70인을 회막으로 데리고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민 11: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노인 중에 네가 알기로 백성의 장로와 지도자가 될 만한 자 칠십 명을 모아 내게 데리고 와 회막에 이르러 거기서 너와 함께 서게 하라
민 11:17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70인 장로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모세와 함께 짐을 담당하도록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능력 있는 지도자라 할지라도 혼자 무거운 짐을 짊어지면 무너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동역하며 돕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는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독불장군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교회를 섬기는 일은 사람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초대교회를 함께 섬길 일곱 집사를 택할 때에도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을 세웠습니다(행 6:5).
또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민 11:18 또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몸을 거룩히 하여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너희가 울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좋았다 하는 말이 여호와께 들렸으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것이라
하나님께서 고기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얼마나 반가운 소식입니까? 어떤 사람은 체질이 고기체질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런 사람들은 고기를 안 먹으면 병이 납니다. 하나님께서 고기를 주시는데 어느 정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까?
민 11:19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스무 날만 먹을 뿐 아니라
민 11:20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한 달 동안 먹게 하시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계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가 함이라 하라
한 달 동안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몸을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거룩함’이란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되었음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떡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거룩함으로 사는 사람은 자신의 탐욕이 채워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지도자를 힘들게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짐을 나눠지려고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뭐라고 말했습니까?
민 11:21 모세가 이르되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한 달 동안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민 11:22 그들을 위하여 양 떼와 소 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
이스라엘 장정이 몇 명입니까? 60만 명입니다. 그러면 그 가족들을 생각해보십시오. 적게 부인 하나 그리고 아들 하나 딸 하나씩 두었다면 최소 240만입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산아제한이 있었습니까? 야곱은 열두 아들을 낳지 않았습니까? 그런 것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세도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이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한 달 동안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신다고 하시니 양떼와 소 떼를 잡은들 족할까?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 들 족하오리까? 라고 의문을 표기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그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민 11:2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여기서 여호와의 손이 짧다는 것은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 50:2 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찌 됨이냐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짖어 바다를 마르게 하며 강들을 사막이 되게 하며 물이 없어졌으므로 그 물고기들이 악취를 내며 갈하여 죽으리라
사 59: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라는 수사학적인 질문은 하나님을 불신하던 모세의 믿음을 회복시키고, 그에게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능력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은 전능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확실한 믿음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희미해질 때마다 하나님의 이 반문을 떠올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성취하심으로 당신의 전지전능하심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실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을 회막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그에게 임한 영을 70인 장로들에게도 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셨던 거룩한 영이 장로들에게도 임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있지 않았던 엘닷과 메닷도 하나님의 영을 받고 예언을 하였습니다. 이 모습을 본 한 소년이 모세에게 보고하자, 그 말을 듣던 여호수아는 모세에게 말합니다.
민 11:28 택한 자 중 한 사람 곧 모세를 섬기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말하여 이르되 내 주 모세여 그들을 말리소서
그러자 모세가 대답합니다.
민 11:29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은 누구에게든지 능력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려고 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차별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영생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요3:16). 유대인들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합니다. 믿는 모든 사람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언제나, 어디서나 역사합니다. 우리의 작은 생각 속에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기브롯 핫다아와의 비극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자 바람을 일으켜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민 11:31 바람이 여호와에게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 곁 이쪽 저쪽 곧 진영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
여러분!
바람이 누구에게서 나왔다고 했습니까? 여호와에게서 나왔다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꿩과에 속하는 메추라기는 대략 길이가 20센티미터 정도 되는 새입니다. 대표적인 겨울 철새로, 겨울이 되면 에티오피아와 수단으로 이동하고, 3월 중순에는 팔레스타인, 시나이 그리고 애굽을 통과하여 봄철 이동을 합니다. 메추라기는 짧은 거리는 자유롭게 날 수 있지만 장거리 비행은 바람의 도움이 없으면 어렵습니다. 메추라기가 대단위로 이동하는 모습은 시나이 반도에서 지금도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본문에 등장하는 당시 메추라기의 이동은 하나님이 보내신 바람으로 가능했습니다. 메추라기는 땅 위 60-100cm 정도 쌓일 만큼 많이 내렸고, 사람들이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거두었는데 적게 모은 사람도 열 호멜을 모았습니다. 한 호멜은(2200리터) 약 쌀 한 가마니 반 정도의 부피니, 적게 모은 사람이 열 호멜을 모았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양의 메추라기가 쏟아졌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들은 너무 많아서 사면에 펴 두었습니다. 즉 말렸다는 것입니다.
민 11:33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그런데 사람들이 그것을 먹으려는 순간 즉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하나님의 진노가 내린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고기를 달라고 하나님께 원망했을 때나 고기가 주어졌을 때 이들이 보여 준 탐욕은 실로 엄청났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갖기보다느 자신의 탐욕에 집착하였습니다. 이들의 삶의 중심은 ‘믿음’이 아니라 ‘이기적인 욕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탐욕에 진노하셨고, 이들이 쌓아둔 고기가 그들의 이 사이에서 씹히기도 전에 하나님의 치심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민 11:34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여러분!
누가 거기 장사되었습니까? ‘욕심을 낸 백성’들입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기브롯 하다아와라고 명명하였습니다. ‘기브롯 핫다아와’라는 뜻은 “탐욕의 무덤”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아간의 무덤도 바로 ‘기브롯 핫다아와’입니다. 탐욕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파멸을 가져다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기를 주신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망각한 것입니다. 그들은 고기에 대한 탐욕이 그들의 앞을 가로 막은 것입니다. 메추라기가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복이고 하나님이 능력이십니다. 여호와의 능력을 잊은 백성은 망합니다. 아무리 잘살아도 망합니다. 아무리 배불러도 망합니다.
시 50: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기브롯 핫다아와의 비극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도 그렇게 되기 쉽습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에게 거울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이스라엘이 경험한 처절한 실패는 오늘날 우리에게 분명한 경고가 됩니다. 자기 욕심만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죽음으로 징계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