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댓글응암리 4구(높은정이)는 예전에는 잎담배 농사를 많이 지은 동네로 알고 있는데 지금도 그런가요? 중,고시절 겨울철에 참새를 잡으러 충북 당곡리쪽에 갔을때 호기심에 담배를 피워볼끼라고 수확하고 남은 담배잎을 말아 불을 붙여 한모금 들이키고 죽는줄 알았어요 ㅋㅋㅋㅋ 90년대 사진을 보니 아직도 높은 잎담배 건조장 건물이 보이네요 그때는 그 건물이 참 신기하게 느껴지곤 했었는데........
아주 귀한 사진을 올 려주셔서 감사요 나도 우리동네 사진을 첨봤어요. 글구 해결사님 높은정이 담배농사를 지금은 짖는집이 없을거예요. 예전에 담배농사가 참 힘들었지요 작은 손이라도 필요해서 학교때 도와줫는데 정말하기 싫엇습니다 담배일을 하고나면 옷이며 손이 끈적이는 검은진이 묻어서 잘 닦이지도 않고
첫댓글 응암리 4구(높은정이)는 예전에는 잎담배 농사를 많이 지은 동네로 알고 있는데 지금도 그런가요?
중,고시절 겨울철에 참새를 잡으러 충북 당곡리쪽에 갔을때 호기심에 담배를 피워볼끼라고
수확하고 남은 담배잎을 말아 불을 붙여 한모금 들이키고 죽는줄 알았어요 ㅋㅋㅋㅋ
90년대 사진을 보니 아직도 높은 잎담배 건조장 건물이 보이네요
그때는 그 건물이 참 신기하게 느껴지곤 했었는데........
아주 귀한 사진을 올 려주셔서 감사요
나도 우리동네 사진을 첨봤어요.
글구 해결사님 높은정이 담배농사를 지금은 짖는집이 없을거예요.
예전에 담배농사가 참 힘들었지요 작은 손이라도 필요해서 학교때 도와줫는데 정말하기 싫엇습니다 담배일을 하고나면 옷이며 손이 끈적이는 검은진이 묻어서 잘 닦이지도 않고
검정 빨래비누로 빡시게 문질러.닦아야만했엇죠
그래도 우리동네 가장 큰수입원이 담배농사 였지요.
담배농사 야기할것 참 많은디...
사진으로 보니
70년대만해도 온마을이 초가집 일색이었어요~
겨울방학땐 어른들이 이영과 용마름을 엮는데 도와준다고
고사리손도 쉴틈이 없었지요~
심원님이 쪼만한 손으로 잎담배를 추리는 모습,
나가서 놀고 싶어 투정을 부리는 모습을 상상하니 귀엽기도 하고
동병상련도 느끼네요~
한번은 양짓말(비룡리)에 사시는 작은 이모님댁에 놀러갓다가
담배 추리는 일을 도와드리는게 첨엔 재밌다가
나중엔 질력이 나서 슬그머니 도망쳐왔던 기억이...
그 다음부턴 절대로 놀러가지 않았어요~
가끔 달리기하러 그 동네로 가면
아직도
담배건조장으로 보이는 지붕높은 황토 집이 몇채 보이던데요~~?
담배일을 도와주고
손에 담배 댓진내가 나고 누렇게 물들었으면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신문지에 담배 말아 피웠다고
오해받진 않았는지요?
하기사야~
들꽃향기나 막폼같았으면 10중 8,9는 오해를 받고도 남았겠지만
심원님이야 워낙 착하고 얌전했으니
가방에서 담배뭉치가 나왔어도 절대 믿지 않앗을듯..
ㅋㅋ
그리고 참....
예양리, 마근터로 한겨울 밤에 찹쌀모치,도나스를 팔러 형들하고
갔었던 적 많았는데...
조치원 분식집에서 물건을 뗘다 장농 서랍장을 꺼내
신문지 깔고,먹음직 스럽게 찹쌀도너츠를 진열하고
광목천으로 어깨끈을 대신하고 어두운 밤길을 헤치며
"찹쌀모치나 도나쓰으~~!" 하며 마을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면서
팔곤했지요~
돈이 귀하던 시절이니 쌀도 내놓고,콩도...
그렇게 현찰보다 물물교환이 태반을 넘엇지요~
형님뒤를 졸졸 따라 다니면 왜 이렇게 재밌던지...
예양리,마근터는 아직도 가가호호 숫가락이 몇개인지 훤햐~~
헌데, 노리미는 간 기억이 없었어~
마을 청년들이 드시고 억셌던 기억..
우리 동네 사는 누구는
그때 찹쌀모치 팔아서 목돈도 마련하여
검정 고무신 벗어 던지고 고급스러운 장화를 준비했다는 전설이...
우리 초딩 졸업앨범에 잘보면 장화신고 찍은 친구 한놈이 보일꺼여~~
누군지 찾아보셔~
6학년 2반...
한겨울에 여름 장화라니...ㅋ
얼마나 자랑하고 싶엇으면...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