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最古(최고)의 어진, 경순왕 어진 국가 지정 문화재 추진 긴밀 협의
만물이 약동하는 2018년 무술년 춘분일이지만 꽃샘추위가 몰아쳐 찬바람이 세차게 불고 진눈깨비가 훗 날리는 혹독한 궂은 날씨가 종일 이어지는 3월21일 오전에 신라 최초의 김씨 왕인 13대 미추대왕과 삼한일통의 대업을 이룩해 만세 융성할 배달의 터전을 일구신 30대 문무대왕, 그리고 경천순민의 대의를 몸소 실천하기 위해 평화적으로 정권을 고려에 이양하여 만백성으로부터 자애로운 제왕으로 세세연연 존숭을 받아오고 있는 56대 경순대왕 등 세분의 훌륭하신 대왕님의 영위가 있는 신라김씨 성지인 숭혜전의 춘향대제가 유림과 후손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은은한 제례 주악이 흐르는 장중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전사관 김윤섭 前(전)원성왕 참봉이 숭혜전과 세분 대왕에 대한 약사 설명과 헌집분정의 창방을 시작으로 후손 김상조(유림,대구)씨가 초헌관, 후손 김상도(유림, 대구)씨가 아현관, 김상수 숭혜전 참봉이 종헌관을 맡아 봉행했다.
이날 춘향대제에 나주김씨에서는 중앙종친회 고문이며 사단법인 범공선사숭선연구회 김근학회장 부부, 김광호 이사 부부, 이사인 김성광 박사, 김광진 감사, 김성복 자문위원 등이 참석해 신라김씨 적통 후예로서 옛 조상의 얼과 위업을 기리는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김근학회장은 춘향대제 전날 숭혜전을 찾아 향사준비를 하는 전릉보존회 관계자, 숭혜전 김상수 참봉. 초헌관 김상도씨 등 춘향대제 봉행 관계자들과 만나 덕담을 나누고, 경순대왕의 9왕자의 서차(계자, 별자)에 대한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숭혜전은 경주시 문화재 자료256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원래 이묘전은 경순대왕의 가없는 敬天順民(경천순민)의 大義(대의)를 실천한 자애로운 仁德(인덕)을 길이 기리고 崇慕(숭모)하기 위하여 978년 대왕께서 송경(개성)에서 昇遐(승하)하시고 陵墓(능묘)를 파주(현 연천) 고랑포 湍陵(단릉)으로 모시자 월성(경주)의 이름 없는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사당을 지어 影幀(영정)을 봉안하고 춘추로 제향을 봉행해온 것이 시초이다. 그러다가 조선 宣祖(선조) 25년(1592) 무도한 왜적의 침략으로 발발한 임진왜란 시 왜적의 방화로 소실된 후, 仁祖(인조) 5년(1627)에 동천동에 새로 사당을 지어 東泉廟(동천묘)라 하고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봉행해 오다가 景宗(경종) 3년(1723)에 경순왕전으로 고치고, 1778년 영천 은해사에서 영정을 모셔와 봉안했다. 正祖(정조)18년(1794)에 신라김씨 왕실의 묘원인 사적512호 대릉원(大陵園) 경내 지금의 황남동으로 옮기고 黃南殿(황남전)으로 고쳤다. 그 후 高宗(고종)24년(1887)에 미추대왕의 위패를 봉안하고, 그 이듬해 문무대왕의 위패를 같이 봉행했다. 이때 고종은 묘전을 크게 짓게 하고 崇惠殿(숭혜전)이라는 편액을 내렸다. 앞면 5칸, 옆면 3칸인 맞배집으로 왼쪽에 영육재, 오른쪽에 경모재가 있다. 앞에는 경순왕 신도비와 비각, 숭혜전 안내판이 있다.
숭혜전 춘향대제 헌집분정(무술년,2018)
笏記 用語解說 (홀기 용어해설)
○ 초헌관(初獻官) : 3대왕 영위에 첫잔을 드리는 제관 ,祭官,五梁冠祭服-焚香 奠幣 飮福 望瘞 禮를 행함 (제관,오량관제복- 분향 전폐 음복 망예 예를 행함)- 향을 사르고 첫 잔을 올리는 제관으로 제사의 주인이다.
○ 아헌관(亞獻官) : 영위에 두 번째 잔을 드리는 제관 (四粱冠祭服 사량관제복)
○ 종헌관(終獻官) : 영위에 세 번째로 끝잔을 드리는 제관(三梁冠祭服(삼량관제복)
○ 대축관(大祝官) : 축문을 읽는 제관(一梁冠祭服일량관제복)
○ 집례관(執禮官) : 홀기를 부르는 제관,한문 홀기를 읽어 진행을 담당하는 제관
○ 전사관(典祀官) : 제수를 준비하고 제상을 차리고 제 봉행 전 진행을 맡은 제관
○ 찬자(贊者) : 제사 때 의식의 순서를 읽는 사람
○ 알자(謁者) : 獻官(헌관) 인도인 / 초헌관을 안내하는 집사.
○ 찬인(贊引) : 의식 진행을 돕고 헌관과 대축을 안내하는 집사.
○ 판진설(判陳設) : 제사 음식의 진설을 감독하고 지시하는 집사
○ 사준(司尊) : 술동이를 맡고 술을 따르는 집사
○ 봉향(奉香) : 향합을 받드는 집사(執事)
○ 봉로(奉爐) : 향로를 받드는 집사
○ 봉작(奉爵) : 술잔을 받드는 집사
○ 전작(奠爵) : 헌관에게서 술잔을 받아 신위 앞에 올리는 집사
○ 직일(直日) : 제례 전반에 대하여 자문을 하는 사람
숭혜전과 최고(最古)의 영정(어진), 경순왕 영정
숭혜전에 신라 56대 마지막 경순왕의 영정이 5본 보관되어 있는데 이 영정이 국내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어진이라는 사실이 두 차례에 걸친 학술 세미나에서 밝혀졌다.
2008년 11월7일 경주문화원부설 향토문화연구소의 제3회 학술대회에서 <경주 숭혜전과 경순왕 어진의 문화사적 고찰>의 학술보고서와 2010년 6월12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사)한국미술사연구소의 제20회 한국미술사연구소 학술세미나의 <최고의 어진, 신라 경순왕 어진의 회화사적의의(2010년 12월 학술지 강좌 미술사에는 신라경순왕영정의 제작과 그 의의[정병모]로 발표)학술 자료에 의해 학계에 보고되어 공개된 것이다.
정병모 교수의 학술 보고서를 집약하면 [신라 경순왕이 935년 나라를 이양할 때 태자 일(마의태자)은 금강산으로 들어가고, 계자(막내아들) 황왕자는 범공선사가 되어 가야산 해인사로 입산할 때 부왕의 어진을 각각 봉안하였으나. 태자가 가져간 영정은 행방미상이고, 범공이 해인사에 봉안한 영정은 영천 은해사로 이안 되어 있다가 1778년 숭혜전(당시 동천묘)으로 이봉한 것으로 1792년(정조12년)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이는 다시 이명기와 이진춘이 그린 <경순왕영정>으로 제작되고 숭혜전에 봉안되어 황왕자본(해인사본)이 경주 숭혜전에 소장된 어진의 주류가 된 것이다.]
<<<경순왕 영정이 두 차례의 학술세미나를 통해 최고의 영정으로 밝혀지기까지는 김병호 숭혜전 참봉이 2008년2월14일 신라김씨연합대종원 총회(제14대 김영삼 대통령 산수연)에 참석하여 숭혜전 소장 영정의 존재를 알리고, 참고자료의 협조를 호소해와 황왕자가 해인사에 봉안한 경순대왕의 영정에 대한 자료를 갖고 있던 사단법인 범공선사숭선연구회 김근학 회장(당시 나주김씨중앙종친회장)이 3월20일 숭혜전 춘제에 참제할 때 경주김씨문헌록과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등 자료를 제공하여 본격적인 학술연구를 하는 계기가 되었음>>>
경순왕 영정의 당초 제작은 935년으로 현존하는 어진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조선시대 모본을 이모한 화가의 명성과 이모 시기도 영정 중 가장 오래되어 문화사적으로나 회화사적인 가치가 출중한 영정이다.
이 영정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410호(2009,4,30)로 지정되어 있으나 문화재적가치가 매우 크지만 훼손 상태가 심각하여 유물보존 필요상 2013년6월에 국립경주박물관에 기증하고 국가지정 문화재로 지정을 고대하고 있는데, 기증 후 5년이 되었는데도 아직 뚜렷한 진행이 없어 문화재 관계자와 몇 차례 접촉을 하고 있다가 이번 숭혜전 춘제에 참예 후 국립경주박물관을 방문해 학예연구실장 김유식 박사와 만나서 긴밀히 협의한바 조속히 보존처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우려 좋은 결과가 나오도록 하겠다는 확답을 받은바 있다. 박물관에는 김근학회장, 김광호 김성광 이사, 김광진 감사가 동행하였으며, 어진 관련 글은 별도로 자세히 정리해 기록으로 남기도록 하겠다.
<표1> 경순왕영정의 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