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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시작하기전에 각종 여행자료를 수집하고 나름 공부를 한 후에 여행을 하시기를 바라면서...
본인은 라틴아메리카 100배 즐기기라는 책을 시작으로 하였습니다.
페루는 수준 높은 문명을 영위했던 잉카제국의 숨결이 살아있는 역사적인곳이다.
몽골계 원주민이 10세기까지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거주하였고 , 이후 11세기말 중부 안데스 지역에서 나타난 잉카족은 12세기 초반에는 수도 꾸스꼬를 중심으로 에쿠아도르, 볼리비아, 칠레를 어우르는 약 5,000평방미터에 달하는 대제국을 건설하여 잉카 문명을 꽃피웠다.
그러나 1532년 스페인의 통치아래 많은 잉카문명의 문화재들이 파괴되었고 1821년 독립전쟁으로 식민지배에서 벗어났으나
민정 이후에도 부정과 비리가 드러나 사회적 물의도 일으킨바있다.
우리나라의 티코차가 택시로 많이 운행되고 있기도하다.
수도 : 리마
면적 : 남한의 13배(128만5216평방미터), 남미에서 3번째로 큰면적
인구 : 2800만명
인종 : 원주민45%, 메스띠소(원주민과 스페인혼혈)37%, 백인혈통15%, 기타3%
공용어 : 스페인어, 산악지대에 따라 께추아어나 아이마라어
통화 : 솔(sol), US$/2.57(2012.3월기준) - 환전은 은행보다는 환율이 좋은 깜비오를 주로 이용함.
종교 : 카톨릭90%이상, 기타 토착종교와 개신교
시차 : 한국보다 14시간 느림
기후 : 남위 15도에 위치하여 열대에 속하지만 기온은 위도보다는 고도와 지형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10월부터 4월까지는 우기로 페루의 지역을 크게 코스타와 시에라,셀바로 나누는데
코스타 - 태평양쪽의 해안지대로 폭 40`50km, 길이 약 2,200km의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연평균 기온이 20도로 일년내내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 해안사막기후를 보인다.
시에라 - 해안사막지대를 벗어나 케브라다 지대를 지나 4,000m에 달하는 녹지대이다.
셀바 - 국토의 60%를 차지하고있는 아마존 열대밀림지역으로 연평균 기온은 28도이나 7월에서 11월에 걸친 건기에는
한낮의 기온이 40도를 넘는 때도 많다. 12월에서 3월의 우기에는 매일비가내려 고온다습하다.
따라서 동절기 및 조석의 온도차로 긴팔 티셔츠나 쉐터가 필수적으로 필요함
동절기는 습도가 높으므로 전기담요나 히터가 있어야한다.
(1) 리마
남미권의 수도등 도시에는 유럽권의 식민지 문화가 많이남아 있어서 마치 빈곤한 유럽국가에 와있는듯 착각하기도 하였다.
식민시대의 건물은 물론 소매치기, 사기꾼, 강.절도, 공해, 교통난등...
그러나 비교적 물가가 싸서 쇼핑과 저렴한 음식등은 좋은데 불안한 치안으로 밤에는 활동이 제한되기도 했고
여행내내 유로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으며 음식점에서도 물은 계속 사먹고, 사들고 다녀야 했다.
아르마스 광장에 붙어있는 대통령궁 - 월~토 아침11:45에 경비원 교대식을 볼수있다
남미 어느국가를 가도 아르마스광장을 중심으로 대통령궁이나, 대성당, 교회, 수도원, 박물관등을 볼수있다.
다만 그규모나 웅장한면에서는 유럽여행시에 봤던것과는 다소 작다고 느낄뿐 고색창연한것까지 역사의 흐름을 알려주는듯했다.
정복자 프란시스꼬 삐사로는 1535년 꾸스꼬에서 리마로 수도를 옮기기로 결정하고 아르마스광장을 중심으로 도시를 세워나갔다.
* 광장을 구경하기위해 숙소에서부터 택시를 타고 이동을 하였는데 택시의 메타기가 없어 일괄흥정을 하고 탔는데 신호무시는
물론 과속까지하여 혼줄이 빠질정도였으며, 돌아올때는 택시기사와 짧은 영어도 통하지 않아 지도를 보여주며 가까스로 복귀함
* 우기가 있다고 하여도 강우량이 적어서일까 도심의 도로변 에는 배수로나 배수구등이 없고 주택의 지붕형태는 대부분 수평으로 되어있다.
* 남미여행중 길거리의 특색중 하나는 주인없는 개들이 많았다.
- 광견병등이 예상되었지만 현지인들은 개의치않고 함께 생활(오면 반기고 가면 가는가보다..)한다.
(2) 피스코
리마에서 약 3시간 정도 떨어진곳으로 파라카스해상공원이 있다.
피스코까지 해안도로를 버스로 달릴때 마치 멸치 공장이라도 있는듯 비린냄새가 진동한다.
제2의 갈라파고스라는 별명이 있는 바예스타섬은 파도에 깍인 여러개의 바위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오타리아(물개류), 조그마한 훔볼트 펭귄, 바닷새, 가마우치, 돌고래, 펠리컨등 아주 다양한 해상 동물들이 살고 있다.
- 보트로 투어함
바예스타섬을 가기전 중간섬에 선인장그림이 나스까라인처럼 커다랗게 그려져있어 볼거리를 제공한다.
-비가 많다면 없어질듯도 하건만 계속유지가 되는 불가사의...
바예스타섬 한쪽에 자리한 훔볼트 펭귄들
물개 식구들이 한가로이 햇볕을 쬐고 있다
멀리서 찾아온 나에게 증명사진 한컷 찍어보란듯 멋진폼을 잡아준 물개가 당당해 보인다.
(3) 이까
리마에서 버스로 4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사막속에서 홀연히 솟아오른 듯한 도시. 가도 가도 모래만 보이는 사막이다.
피스코에서 이까로 이동중 사막이 시작됨을 알려준다.
와까치나 오아시스에 모래 언덕이 오아시스의 물에 비춰보여 절경을 이룬다.
사막에서 무한질주를 하는 부기카, 3점벨트를 하고 모래언덕을 넘나들때 차량의 속도에 모래바람이
얼굴에 따갑다.
-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차량이 가끔씩 전복이 된다고도 하는 바람에 가슴을 쓸어 내리기도함
- 팁을 미리주면 즐겁다하여 출발시 걷어서 주었더니 운전기사는 최고의 속도로 무한질주가 최고의
서비스인줄 알고 무조건 달렸다고하니 얼마나 무모했었는지...
모래바람이 부는것을 볼수있는 가파른 언덕에서 부기카 질주는 물론 샌드보드도 탄다- 겁이난다.
샌드보드 밑면에 양초칠을 하여 미끄러움이 더하도록 한후에 내려가기 직전에 한 컷...
경사 60도는 기본 - 엄마야! 소리도 기본 - 스릴 최고
- 무한공포심을 자극한 재미로 한층 젊어진듯하여 저녁에 맥주를 쏨
사막에서의 하루가 서서히 져간다.
(4) 나스까
리마에서 7시간 정도 소요 되는곳으로 해안가에서 80km 떨어져 있는 건조지대로 나스까 시내에서 20km 떨어진 넓은 사막위에 그려진 나스까 라인으로 독특한 문명이 형성된곳이다.
잉카와 나스까 계곡의 중간에 자리 잡고있는 넓은 광야에는 인간이 그렸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규모의 그림과 선들이 펼쳐져있다. 이것을 나스까 라인이라고 하는데 기하학적인 선에서 동물이나 사람을 형상화한 그림까지 장장 310km에 걸쳐서 그려진 지상화로 거미, 벌새, 원숭이, 펠리칸, 앵무새등 약 70여개 정도로 외계인의 우주선 착륙지였다고 하거나 고대인이 우주의 움직임을 그려놓은것이라는등 확실하게 밝혀지지않은 학설이 신비롭다.
나스까라인은 땅위에서는 볼수없고 경비행기를 타거나 아래사진에서 처럼 높은전망대에서 볼수있다.
빤아메리카 고속도로 길옆의 나스까라인 전망대
나스까라인은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기후특성 덕분에 기원후 1~7세기경에 그려진 이후 150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면서 까지 유지 되어 오고있으나 점차 훼손되고 있는상태이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70m 크기의 나무 그림 - 멀리는 일직선이 그려진것이 보인다.
전망대 옆의 고통의 산은 나스까인들이 신성시한 산으로써 비가오지 않는 이곳에서 농사를 위해 기우제를 위한곳으로
모든 선들이 이곳 자그마한 산으로 모여있다.
사진에서 보듯 깨끗함을 유지하는것은 잦은 돌풍이 불어 널려진 쓰레기등을 바람이 쓸어간다고 한다.
차우치야무덤
나스까 시내에서 북쪽으로 40km 정도 떨어진 외딴곳에 위치한 나스까 시대의 묘지터.
사방 1km의 노천에 백골이 널려있다. 묘를 도굴해 토기와 직물등을 가져간 흔적이 있다.
내세가 있다는것을 믿고 죽은후 시신을 팔다리를 자르고 내장을 빼내어 소금으로 부패를 방지케하고
동쪽으로 향하게 하여 태어날때의 자세를 유지시켜놓음
(5) 꾸스꼬
잉카의 성스러운 수도이자 태양신을 숭배하는 황금도시였던 꾸스꼬는 케추아어로 배꼽을 상징한다.
나스까에서 꾸스꼬로 버스로 출발하기위해 멀미약과 고산증세에 대비한 약을 1인당 1알씩 21시이후 6시간 간격으로 복용을 하고 2층버스의 1층 맨뒤에 탔더니 (1층 요금이 더 비쌈)꼬불꼬불한 산악지대에서는 버스의 롤링이 심해져 새벽5시경에 가족이 멀미증세로 구토를 하고, 아침7시에 또 한다.
나도 고산증세인지 두통이 생기는데 버스는 어딘지 모르겠지만 산정상을 넘어가다가 비온뒤의 산사태로 도로가 꽉막혀 버스가
오도가도 못하자 도로복구 대기중인 버스에서 아침 식사로(비행기의 기내식 처럼) 닭고기 샌드위치를 제공한다. 약 3시간이 넘게 기다린끝에 임시복구되어 버스 이동하였으며 오후 2시30분에 꾸스꼬에 도착을 하였으니 신고를 톡톡하게 치룬모양이 되었다.
버스로 약14시간소요되는 거리를 17시간이 넘게 걸렸으니 얼마나 지루하고 고생스러웠는지...또 앞으로 있을 장거리 밤 버스에
대한 두려움도 생긴다.
꾸스꼬는 해발 3,360m의 고산에 위치한 잉카 최초의 도시로서 마추픽추를 비롯하여 주변에 잉카의 문화가 그대로 남아 잉카 시대의 길, 다리등이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스페인 군대에게 제국의 중심인 꾸스꼬를 허망하게 빼앗긴후 정복자는 도시재정비를 명목으로 모든 잉카건물을 부수고 그위에 식민시대의 건축물이 올려져 슬픔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도시이기도하다.
산사태로 도로가 막혀 3시간을 보낸곳
해발 3,360m의 안데스 고원에 형성된 꾸스꼬 도시 전경
꾸스꼬에서 10일동안 명시되어있는 박물관 및 유적지 출입시 사용할수있는 미션티켓 - 1인당 130솔
삭사이우망- 3층으로 거석이 22회의 지그재그를 그리며 360m에 걸쳐 이어진다. 최고 높은돌은 9m,무게 350톤
잉카인들이 꾸스꼬시를 퓨마의 모양으로 만들고, 그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에 삭사이우망이라는 유적지를 만들었다는 설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있다. 성벽처럼 보이는 돌벽이 꾸스꼬를 방어하기위한 요새라는설, 꾸스꼬 전체를 내려다보는 중요한 의식용 성전이라는설, 저수지가있는 꾸스꼬의 관개시설이었다는설등 분분함. 일설에 의하면 하루 3만명이 동원되어 80여년에 걸쳐서 완공되었다고 하며 지금도 매년 6월24일은 태양의 축제가 이곳에서 열려 잉카의식이 재연된다..
면도날 하나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거대돌의 틈이 완벽하다
최고로 높고 무거운 바위- 높이 9m, 무게 350톤
꾸스꼬 도시 전경
라마를 데리고와서 사진찍을때마다 모델료로 돈을 받는 원주민들 - 2솔을 줌
재미있게 만든 화장실 입구
땀보마차이 - 1년내내 일정한 양의 물이 흘러 내리게 만든 잉카의 수로기술을 볼수있는 유적
수원을 찾기위해 색소를 풀어 보았으나 찾지 못했다고함. 싸이폰의 원리로 물을 끌어오고 있다는설이 유력함
오얀따이땀보로 이동중 피샥크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길옆 경사진곳의 용설난의 꽃향기가 좋아서 . . .
- 멀리 우루밤바 강이 보인다.
가옥마다 지붕위에는 사진에서 처럼 소 두마리와 십자가를 상징처럼 설치해 놓았다.
- 소 : 먹을 거리를 가져다 주는것으로 여기는 복을 의미하고
- 십자가 : 집안에 닥칠 재앙을 막아주는것으로 각종 재앙으로부터의 보호를 뜻한다고함
오얀따이땀보 마을의 골목길에 잉카인들이 만들어 놓은 수로
오얀따이땀보는 성스러운계곡의 중심에 있고 잉카시대의 숙소 또는 요새의 유적지라한다.
눈앞을 가로막는 잉카시대의 거대한 계단식 밭이 보인다.
잉카시대의 가옥과 멀리 산중간에는 곡물 저장고가 보인다.(가운데는 잉카전사의 사람얼굴 모양이 있다)
돌 하나를 정교하게 깍아만든 왕녀의 욕탕 - 빙하의 녹은 물이 줄지 않고 연중계속 흘러서 신전 및 목욕탕에
분배를 정확히 하는것같다.
사진 위의 계단식 밭이 아래의 사진처럼 라마를 닮았다 -잉카문명의 자존심인것만 같다.
스페인어로 열심히 설명하지만 대충만 알아 듣는다.
잉카의 콘돌로 보이는 바위산에 대한 아래사진과 설명이 자존심을 말해주는듯
이름도 모르는 잉카 제국의 황제 얼굴 옆모습이란다.- 전설의 고향을 만드는 우리나라와 같은가?
계단식 밭을 오르면 광장에서 6태양의 신전이라는 6개의 거석을 세워놓은 불가사의를 만난다.
- 이 돌들을 이곳에서 6km이상 떨어진곳에서 옮겨왔단다.
- 돌과 돌사이에는 작은돌도 사용하였지만 잉카의 석조기술을 엿볼수있다. 돌1개의 무게는 42톤
- 돌을 옮길때의 돌출 부분과 파여진 부분을 볼수있다.
첫댓글 돋보기님 부럽습니다. 더구나 배낭여행이라니---남미여행을 미루다 그만 못갔습니다. 잘 읽어드릴께요. 고마워요.
다시 작성을 하여 사진이 정상적으로 보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혼란스럽게 하였는데 잘하여 계속 이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