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등급 3급 판정으로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화재가 나 목숨을 잃은 故송국현(왼쪽) 씨, 몸 상태가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 '근로능력 있음' 판정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일을 하다가 몸 상태 악화로 숨을 거둔 최민기(가운데) 씨, 장애등급외 판정을 받아 수급권 박탈의 위협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故박진영(오른쪽) 씨의 영정사진. |
“좌석버스 기사였던 제 남편은 혈관에 문제가 있어서 큰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어요. 그런데 한 번은 연금공단이 우리 집에 와서 남편을 보고 가더니, 근로능력이 있다고 통보한 거예요. 일을 하지 않으면 수급이 차단되니 어쩔 수 없이 지하주차장에서 일을 했고, 결국 몸상태가 악화돼 응급실에 실려 갔죠. 그런데 이 연금공단 사람들은 응급실에 남편이 몸져 누워있는 그 상황에서도 전화를 해 ‘왜 일을 안 하느냐’고 따져 묻더군요. 이게 말이 됩니까?”
-故최인기 씨 아내 곽해숙 씨
“저는 2013년부터 장애등급 1급에서 2급으로 떨어졌어요. 병원에서는 제가 전신마비인데, 신경이 그나마 살아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연금공단에서는 신경이 살아있으니까 2급을 준거예요. 그래서 전 한 달에 활동지원서비스를 약 110시간(보건복지부 90시간, 강북구 20시간 지원, 총 110시간)을 받고 생활합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데 이 시간으로 어떻게 살라는 말입니까. 요즘은 혼자 용변을 볼 수가 없어서 기저귀를 차고 있어요. 하루하루가 수치스럽습니다.”
-장애등급판정 피해자 A씨
현재 국민연금공단(이하 공단)에서 시행하고 있는 장애등급 판정과 근로능력평가로 인해서 수많은 장애인 등이 피해를 보고 있다. 두 제도 안에 존재하고 있는 허점 때문에 충분히 받아야 할 복지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해 심하게는 목숨까지 잃는 상황.
이에 장애계는 지난 6일 공단 장애심사센터 앞에서 장애등급 판정과 근로능력평가의 모순을 지적하고,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서 제대로 인지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국민연금공단의 사과와 시정조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증가하는 ‘근로능력 있음’ 판정, 근로능력평가 강제성에 따른 결과
기초생활보장제도 대상자가 근로능력이 있을 경우, 조건부수급자로 분류해 자활사업 참여를 조건으로 생계급여를 제공하는 기준이 되는 근로능력평가.
근로능력평가는 지난 2012년 12월부터 연금공단이 위탁을 받아 시행하고 있는 가운데, 연금공단이 근로능력평가를 실시한 뒤 ‘근로능력 있음’ 판정은 5%에서 지난 2013년과 지난해 각각 15.2%, 14.2%로 세 배 가량 증가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장애계는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가 늘어났다고 보기 어려우며, 근로능력평가에 대한 강제성으로 인해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장애계는 지난 2008년 목숨을 잃은 故최민기 씨의 경우 ‘근로능력평가의 기준 등에 관한 규정’ 제5조 제2항을 살펴보더라도 ‘근로능력 없음’으로 판단되는 것이 맞지만, 공단에서는 신빙성이 없는 평가로 ‘근로능력 있음’ 판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인도주의실천을위한의사협의회 김대희 사무국장은 “현재 공단의 근로능력평가는 ‘과학적’이라는 미명하에 진행하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과학적이고 의학적인지는 의문.”이라며 “故최 씨의 소견서와 의무기록에 대해 검토를 한 적이 있었는데, 사실 이 기록들만으로 故최 씨의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심사센터에서는 진단서라던가 의무기록 몇 장만을 보고 근로능력을 없다고 판단했다.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했다.
이어 “의료기록이라는 것은 남들을 보여주기 위해 작성하는 것이 아니다. 의사 자신이 환자의 상태에 변화가 있는 것을 파악하기 위해 작성하는 것.”이라며 “ 때문에 오랫동안 진료한 환자의 경우에는, 과거에 수술을 했다거나 등의 상세한 내용을 기록할 리 없다. 하지만 심사센터는 이 기록들만을 보고 대상자의 근로능력을 판단하고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故최 씨가 지난 2013년 공단에 제출한 ‘근로능력평가용 진단서’를 보면 故최 씨의 상태에 대해 ‘안정시에는 특별한 증상 없으나 계단을 오르는 등의 활동시에는 호흡곤란 증상이 발생함’, ‘현재 상기 증상에 대해 항고혈압제 및 이뇨제 복용하면서 외래 경과관찰 중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의학적 평가기준에서 설명하고 있는 4단계(‘심질환을 지니고 그 때문에 신체활동이 고도로 제한되는 환자. 안정시에는 무증상인데 가벼운 일상생활의 신체활동에서 피로, 동계, 호흡곤란, 또는 협심통이 있거나 심초음파에서 심장기능이 40%이하인 경우’)에 부합하고 있다. 4단계는 활동능력평가와 상관없이 무조건 ‘근로능력 없음’ 판정 대상이다.
하지만 故최 씨는 의학적 평가에서 ‘근로능력평가 진단서 및 제출된 자료 등을 고려할 때 흉복부 대동맥류로 약물치료 중이며 경과관찰 중’이라는 이유로 1단계 판정을 받게 됐다. 이에 故최 씨의 아내인 곽 씨는 연금공단에 정보공개청구를 요구했으나, 정보공개청구를 ‘비공개 처리’함에 따라 평가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곽 씨는 “내 남편은 절대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자체와 공단에서 일을 하지 않으면 급여를 받지 못한다고 말해 강제적으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도대체 공단은 무슨 기준으로 남편에게 근로능력이 있었다고 한건지 그이유가 너무나 궁금하다.”고 호소했다.
서류에만 의존하는 장애등급 판정, 장애인들을 사지로 내몬다
혼자서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해 활동지원서비스가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서비스 욕구와는 상관없이 행정편의적이고 의료적 기준만으로 판단해 장애등급을 매겨 서비스에 제한을 받는 상황 역시 파다하게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4월 화재로 목숨을 잃은 故송국현 씨는 종합장애등급 3급(언어장애 3급, 뇌병변장애 5급, 당시 활동지원서비스 제공은 장애등급 2급) 판정으로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없었다.
장애등급 재심사를 받기 위해 지난해 11월~지난 1월 병원에서 3~4회 진단을 받고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 이유로는 ‘기존 판정 뒤 악화 소견이 확인되지 않는 점’, ‘보행과 대부분의 일상생활 동작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자신이 수행하나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하는 때가 있으며, 수정바델지수가 81~89점’이라는 것.
결국 故송 씨는 홀로 힘겨운 삶을 이어나가다 지난해 4월 13일 서울시 성동구에 위치한 자립생활체험홈에서 불이 나 목숨을 잃었다.
현재 활동지원서비스가 3급까지 확대가 되긴 했지만, 아직까지 활동지원서비스가 절실한 장애인들의 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서류에만 의존하는 장애등급 판정으로 인해 많은 장애인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장애등급 판정 결과 ‘등급 외’ 판정 비율은 지난 2009년과 2010년 각각 2.5%와 4.9% 수준이었지만, 연금공단이 판정업무를 시작한 뒤 지난 2011년과 지난해 각각 17.3%, 16.9%로 급증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장애계는 “연금공단이 시행 중인 판정업무 전체에 대해 깊이 회의한다. 어떻게 몇 가지 단순한 지표와 숫자로 사람의 삶을 가늠할 수 있다고 믿는가.”라며 “우선 연금공단은 잘못된 근로기준평가와 장애등급 판정을 인정하고 사죄해야하며, 이런 문제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한편 이날 장애계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근로능력평가와 장애등급 판정 피해사망자들에게 헌화를 한 뒤 장애등급 판정과 근로기준평가에 대한 시정조치를 촉구하는 내용의 면담요청서를 공단 관계자에게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