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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우여곡절
아침이 되자 제일 먼저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눈이 조금 덜 녹긴 했지만 이내 기온은 영상으로 올랐고 미세먼지 적고 맑은 화창한 날이었습니다. 나들이 가기 딱 좋은 날입니다. 장소가 급작스레 바뀌긴 했어도 날씨가 좋으니 어딜 가도 좋을 겁니다.
일찍 점심 먹고 나갈 채비하며 이정운 어르신께 연락드렸습니다. 오전 중에 일 잘 마치셨는지 여쭈려고 전화했습니다. 우여곡절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르신 일정이 늦어지는 바람에 제 시간에 맞춰 못 오겠다고 하셨습니다. 부랴부랴 약속시간을 한 시간 늦췄습니다. 다행히 어르신 두 분이 화 내지 않고 알겠다며 시원스레 대답해주셨습니다.
네, 외손녀에요
그 사이 홍인혜 어르신께 강아지 두 마리 산책 시키시는 게 어떨지 제안 드렸습니다. 어르신은 그러자 하셨습니다. 저녁 늦게까지 강아지들 두고 나오는 걸 못내 걱정하셨던 어르신의 마음의 짐 덜 수 있어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강아지 산책 마치고 개화산역으로 가는 길 어르신을 만났습니다. 역에 도착할 때쯤 어르신은 교통카드를 두고 오셨다며 다시금 댁으로 돌아가 카드 챙겨오겠다 하셨습니다. 어르신과 동행했습니다. 어르신이 사시는 5동 현관에서 승강기 기다리고 있는데 이웃 분이 물으셨습니다.
“못 보던 얼굴인데 손녀에요?”
“네, 손녀에요. 외손녀.” 어르신이 대답하셨습니다.
“그러게 외할머니랑 닮았네.”
이웃 분의 말씀에 홍인혜 어르신 빙긋 웃으십니다. 잠깐 사이 홍인혜 어르신 외손녀가 되었습니다. 아니라고 설명 드려야했지만 외손녀가 된 기분이 좋아 웃으며 인사만 드렸습니다.
이제껏 어르신이 개 두 마리 키워 내 집엔 초대 못한다 하셨는데 오늘은 멀뚱히 서 있지 말고 안으로 들어와 구경하라고 하십니다. 어르신 댁에 있는 사진들 하나하나 설명해주시며 구경시켜주셨습니다. 어르신 삶터에 가만히 머물다 갈 수 있게 곁을 내어 주셔서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방화11 응원부대 출동
한 시간 늦춘 오후 1시 30분 맞춰 복지관에서 출발했습니다. 직원 분들이 함께 개화산역까지 배웅해주셨습니다. 직원 분들이 배웅해주시자 어르신 굉장히 흐뭇해하셨습니다.
지하 1층 승강장에서 이정자 어르신 만났습니다. 홍인혜 어르신 직원들이 배웅해줬다 자랑하시자 이정자 어르신은 다른 입구로 와서 못 만났다며 아쉬워하셨습니다. 직원들이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어르신들의 나들이 응원하고 배웅하는 일이 참 아름다운 실천이란 생각했습니다.
출발할까요?
이정운 어르신 기다렸습니다. 두 시가 다 되도록 오지 않으셨습니다. 일정이 생각보다 많이 늦어지신 듯합니다. 이러다 혹시 못 오시는 건 아닐까, 둘레 분들도 오실 수 있는 걸까 걱정됐습니다. 홍인혜 어르신과 이정자 어르신 오래 기다려 지치지 않으시도록 옆에서 두런두런 이야기 나눴습니다. 다행입니다. 빨간 모자 이정운 어르신과 둘레 분 두 분 모두 오셨습니다.
이정운 어르신 기다려준 어르신들에게 손잡고 늦어서 미안하다 이야기 하십니다. 달달한 유가 하나씩 손에 쥐어주셨습니다. 마침 지하철도 들어왔습니다.
어르신들과 지하철로 떠나는 월미도 나들이 출발합니다!
<어르신들과 지하철 안에서>
지하철에서 있던 일
지하철에선 뭘 해야 할까 원종배 선생님과 의논했었습니다. 차를 타고 가면 노래도 듣고 간식 먹기도 하고 간단한 게임도 하고 응원 글 읽기도 하고 길이 멀면 휴게소도 들르고…. 많은 걸 할 수 있을 텐데 대중교통 이용하면 그럴 수 없으니 무료하겠다 싶었습니다.
어르신들은 주머니마다 사탕 챙겨와 하나씩 나눠주셨습니다. 입 안에 쏙 넣고 이쪽 자리 저쪽 자리 바꿔 앉으시며 서로 이야기 나누셨습니다. 지하철 안에서 실례 범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서로 이야기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덕분에 이정운 어르신 둘레 분과도 이야기 나눴습니다. 봉사활동 많이 하시는 멋진 분이셨습니다.
까치산역에 내리자 이정자 어르신 말씀대로 환승하기 편했습니다. 신도림역은 승강기가 느리고 거치는 층이 많아 오래 기다려야했습니다. 어르신들은 신도림역에서 급행이냐 특급이냐 의논하셨습니다. 지하철 이용을 즐기지 않아 잘 몰랐는데 1호선은 급행 말고도 특급이라는 열차가 있었습니다. 몇 정거장 정차하지 않고 급행보다도 빨리 동인천역에 도착하는 열차였습니다. 어르신들은 속속들이 꿰뚫고 계셨습니다.
철딱서니 없는 예쁨이
홍인혜 어르신이 나들이 오기 전 제게 하신 말씀 있었습니다. ‘예쁨이 넌 철딱서니가 없어’였습니다. 아이 엄마라면 넓게 생각하고 아우를 수 있어야하는데 넌 그러질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엔 왜 그런 말씀 하실까 했는데 이유를 알았습니다.
어르신들에게 자꾸만 부탁드리는 일이 어르신들께는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소수를 데리고 무슨 복지를 하느냐’고 말씀하실 때와 같았습니다. 홍인혜 어르신께 식혜를 부탁드리고 이정운 어르신께 요리해 달라 부탁드리고 어르신들께 그저 받고 얻어먹기만 하는 제가 어르신들 형편 헤아리지 못한다 생각하셨나 봅니다.
<속닥속닥 상의 중이신 홍인혜 어르신과 이정운 어르신>
저 만치 떨어져 이정운 어르신과 홍인혜 어르신 들릴 듯 말듯 속닥속닥 상의하셨습니다. 지난 번 한 턱 내셨던 이정자 어르신을 제외하고 식사비를 이정운 어르신과 홍인혜 어르신 서로 나누시면서 인원 수 파악하셨습니다. 두 분이 저랑 원종배 선생님 어떻게 해야 될지 상의하시는 듯했습니다. 철딱서니 없는 예쁨이 어쩌고저쩌고…. 실습생이니 돈을 걷기도 안 걷기도 난감하신 듯했습니다. 어르신들의 속닥속닥 상의가 끝나고 인천역에 도착했습니다.
배는 이미 떠났습니다.
인천역에서 세 명, 세 명씩 나눠 택시 타고 월미도 도착했습니다. 푸른 바다가 펼쳐진 곳엔 덩그러니 남은 어르신 세 분이 서계셨습니다. 섬 가기 위해 타야했던 배를 코앞에서 놓쳤습니다. 이정운 어르신은 배 타고 가야 경치도 좋고 회가 싸다며 아는 길 가지 못한 아쉬움 감추지 못하셨습니다. 연안부두는 멀고 길도 어려웠으며 근처 횟집은 금액대가 높아도 한참 높았습니다. 어르신이 말씀하신 섬으로 갈 방도가 없었습니다. 나오는 배 시간마저 맞지 않았습니다.
이정운 어르신 나서서 식당 찾아보셨습니다. 이정자 어르신 무릎이 좋지 않아 계단이 불편한데 2층으로 된 식당뿐이었습니다. 괜찮다며 근처 식당으로 천천히 올라가셨습니다.
회 금액 대가 매우 비쌌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며 어르신들의 결정 기다렸습니다. 인원수에 부족하게 시키기도 어렵고 금액대도 높아 한참 고민하시다가 이내 비싸지만 밑반찬 잘 나온다는 차림으로 두 상 주문하셨습니다. 소박하게 하면 좋았을 텐데 아쉬운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뜻하지 못한 감동은 덤
식사가 나오기 전 홍인혜 어르신께서 만드신 식혜 나눴습니다. 이정자 어르신 입맛에 딱 맞는 식혜 저도 한 번 먹어봤습니다. 참 달콤하니 맛있었습니다. 쌀 알갱이 식감도 좋고 생강향이 향긋하니 끝 맛도 좋았습니다. 왜 이정자 어르신이 칭찬하셨는지 이유를 알았습니다.
<홍인혜 어르신의 달달향긋한 식혜>
식혜 나눠 마시며 나들이 전에 준비한 깜짝 선물 나눴습니다. 어르신들의 나들이 응원하고 격려 담은 둘레 분들의 편지와 동영상 보여드렸습니다. 한 분 한 분께 편지와 동영상 보여드리자 어르신들은 굉장히 감동하셨습니다. 원종배 선생님과 깜짝 선물 준비하길 잘했다 생각했습니다.
<응원 편지를 받고 흐뭇해하시는 이정자 어르신의 모습>
이렇게나 아름다운 일몰을 보다니
경치 좋고 식사까지 나오니 분위기 한층 올랐습니다. 어르신들 목소리 또한 밝아졌습니다. 홍인혜 어르신은 식사 중간 어르신과 가족의 사진 보여주셨습니다. 지난 번 보았던 소싯적 어르신의 모습과 가족 분들 사진이었습니다. 늘 버리는 삶 산다고 말씀하시지만 어르신의 마음은 추억에 머물러 계신 듯합니다. 어르신이 따뜻한 과거뿐만 아니라 앞으로 더욱 신바람 나는 삶 사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식당이 2층에 있어 그런지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 멀리 노을 지고 있었습니다. 자연이 주는 선물 모두 감탄하며 보았습니다. 실습생 연수 때 장봉도 오르며 보지 못한 일몰을 맛있는 음식이 펼쳐진 따뜻한 곳에서 매우 쉽게 보았습니다. 서해안이라 정말 멋졌습니다.
<일몰, 그 이상의 아름다움>
하나보단 둘이 나아
밑반찬에 이어 회와 매운탕까지 섭렵했습니다. 홍인혜 어르신이 가져오신 요플레로 후식 했습니다. 이정자 어르신과 홍인혜 어르신은 주거니 받거니 투덕거리셨습니다.
이정자 어르신은 죽음이 두렵거나 무섭지 않다 말씀하시고 홍인혜 어르신은 죽음이 무서운 건 아니지만 고독사가 걱정 된다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출발 전 개화산역에서 어르신들이 나눈 장례 이야기의 연장인 듯싶습니다.
홍인혜 어르신이 ‘하나보단 둘이 낫다’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 마음 안 준다 하셨던 홍인혜 어르신의 말씀이라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이제 조금씩 마음 여신다는 이정자 어르신의 말씀도 참 귀합니다. 미운정이지만 정답게 지내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사회사업은 누구나 정붙이고 살 만한 사회를 지향합니다.
정붙이고 살 만한 사회는,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그래도 이웃이 있고 인정이 있어’ 살 만한 세상입니다. 그래도 혼자는 아닌 세상, 고운 정이든 미운 정이든 정붙이고 살 만한 사회입니다.
사회사업 이상은 문제를 없애는 쪽보다 정붙이고 살아갈 만한 바탕 곧 이웃 관계와 인정의 소통을 살리는 쪽에 가깝습니다. 「복지요결」, 43쪽, 정붙이고 살 만한 사회
이정자 어르신 치즈 나눠주시고 이정운 어르신의 둘레분이 배 즙 나누어주셨습니다. 어르신들의 작은 나눔 속에서 큰 기쁨 누렸습니다.
<어르신들의 하나하나 주고 받는 작은 정>
나들이 의미
식사 마치고 기념사진 찍은 뒤 인천역으로 돌아가는 택시 탔습니다. 「우리가 날던 날」에서 보았던 질문들 어르신들에게 여쭈어봤습니다.
“어르신, 천안 못 가게 되었는데 아쉽진 않으셨어요?”
“아쉽긴 뭐가 아쉬워, 하나도 안 아쉬워. 오늘 좋았어. 너희들이 좋아해서 더 좋았어.”
홍인혜 어르신의 말씀이 참 따뜻합니다. 어르신들은 저희를 나들이 데려와주셨다 합니다.
이정운 어르신은 매번 가시던 월미도를 홍인혜 어르신과 이정자 어르신, 둘레 분들과 함께 가셨다는 의미. 새로운 구성원과 함께 가셨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생각 듭니다.
<어르신들과 월미도에서 나들이 연주>
끝까지 고민되는 돈
버스 타기로 계획했는데 얼떨결에 타게 된 택시. 저녁까지 얻어먹고 택시비 한 번쯤은 내가 내드리는 게 인지상정 아닐까 싶은 생각 들었습니다. 어르신이 택시비 찾기 위해 지갑 여기저기 뒤적거리시니 저도 모르게 깜빡 “제가 낼까요?” 말해버렸습니다. ‘아차’ 싶어 가방 여기저기 뒤지며 못 찾는 척 했습니다. 신중히, 임시로, 최소한. 어느 선까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결국 이정자 어르신과 홍인혜 어르신이 택시비 모아 내셨습니다. 백 원 이백 원 아까워하는 택시비를 오백 원, 천 원도 더 내시는 어르신들의 봉사료. 다시 말해 정 문화도 배웠습니다.
원종배 선생님과의 모의
지하철 탈 때 이정운 어르신네와 같이 가시려던 홍인혜 어르신이 이정자 어르신과 함께 다른 칸에 앉아 가셨습니다. ‘철딱서니 없는 예쁨이’ 또 욕하셨습니다.
「우리가 날던 날」에서 어르신들이 같이 가시도록 학생들은 뒤로 빠졌다는 문구가 생각났습니다. 원종배 선생님과 휴대폰 메신저로 모의했습니다. ‘실습생들에게 전달해줄 물건이 있다’ 말씀드리고 우리는 신길역에서 환승해 복지관으로 갔고, 어르신들은 신도림에서 하차하셨습니다.
헤어지기 전 이정운 어르신께 둘레 분들의 응원 영상과 편지 전달 드리니 함박웃음 지으셨습니다. 마지막 깜짝 선물까지 모두 목적 달성했습니다.
<지하철 안에서 한 뼘 더 가까워진 어르신들>
오늘 정말 기뻤어요!
개화산역에 내려 어르신들에게 전화 드렸습니다. 어르신들은 이미 댁에 도착했다 말씀하셨습니다. 혹시나 따로 가시지는 않았을까 우려했으나 다행히 이정운 어르신네와 이정자 어르신, 홍인혜 어르신 함께 가셨다고 했습니다.
이정운 어르신과 홍인혜 어르신께는 원종배 선생님이 전화 드리고 저는 이정자 어르신께
전화 드렸습니다.
“어르신, 오늘 나들이 어떠셨어요?”
“오늘 정말 기뻤어요!”
“어르신,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 마음이 녹아내려요.”
탈 많고 걱정도 많고 우여곡절에 곡절을 겪은 회오리 같은 나들이였는데 어르신의 기뻤다는 말씀 듣고 나니 마음이 사르르 녹아 내렸습니다. 이쯤이면 성공적인 나들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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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미세먼지 적고 화창한 날이었네요~
이정운 님 늦게 오셨는데도 다른 어르신들이 이해해주시며 넓은 마음 보여주셨어요,
홍인혜 어르신과 이정자 어르신 오래 기다려 지치지 않으시도록 옆에서 두런두런 이야기 나눴네요.
잘 했습니다.
대중교통 이용하며 함께 온 어르신들과 두루두루 이야기 나눌 수 있어 의미 있었습니다.
홍인혜 어르신의 ‘하나보단 둘이 낫다’라는 말씀이 와 닿았어요.
홍인혜 어르신이 보여주셨던 가족사진처럼 이 나들이가 어르신들께 소중한 추억이 되면 좋겠네요.
끝까지 예측할 수 없었던 나들이였어요.
순탄하지 않았지만, 예쁨 학생이 어르신들 잘 세워드렸기 때문에
당사자 여행에 저희가 따라갈 수 있었어요.
고생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