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등용문(登龍門)’의 유래
등용문(登龍門)은 용문에 오른다는 뜻으로, 곧 입신출세의 관문을 일컫는 말이며, 주요한 시험에 합격하여 뜻을 이룸을 의미합니다.
등용문엔 상당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데,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그가 궁형(宮刑)에 처해진 후 사내로서 구실을 할 수 없으므로 조상을 욕되게 하였으니 차라리 죽음으로 대신하겠다는 유혹을 물리치고 완성시킨 것이므로, 『사기(史記)』를 ‘용문사(龍門史)’라 하는데,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은 그가 태어난 곳이 황하 상류의 협곡 ‘용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용문(龍門)은 황하(黃河) 상류의 산서성(山西省)과 섬서성(陝西省)의 경계에 있는 협곡의 이름인데 이곳을 흐르는 여울은 어찌나 세차고 빠른지 큰 물고기도 여간해서 거슬러 올라가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러나 일단 오르기만 하면 그 물고기는 용이 된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따라서 ‘용문에 오른다.’는 것은 극한의 난관을 돌파하고 약진의 기회를 얻는다는 말로 중국에서는 진사(進士)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입신출세의 제일보라는 뜻으로 ‘등용문’이라 했습니다.
용문은 북위(北魏)의 역도원의 『수경주(水經註)』에도 보입니다.
“다광어는 공혈(鞏穴)을 나와서 석 달이 되면 용문을 오르려고 한다. 만일 오르게 되면 용이 되고, 그렇지 못하면 점액(點額)하고 돌아온다.”
‘등용문’에 반대되는 말을 ‘점액(點額)’이라 하는데, ‘점(點)’은 ‘상처를 입는다.’는 뜻이고 ‘액(額)’은 이마인데 용문에 오르려고 급류에 도전하다가 바위에 이마를 부딪쳐 상처를 입고 하류로 떠내려가는 물고기를 말하므로, 즉 출세 경쟁에서의 패배자, 중요 시험에서의 낙방자를 가리킵니다.
후한(後漢) 말, 환제(桓帝)때 정의파 관료의 지도적 인물에 이응(李應)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청주자사(靑州刺史), 촉군태수(蜀郡太守), 탁료장군(度遼將軍)을 거쳐 하남윤(河南尹)으로 승진했을 때 환관의 미움을 받아 투옥 당했으나, 그 후 유력자의 추천으로 사예교위(司隸校尉)가 되어 악랄한 환관 세력과 맞서 싸웠습니다.
그러자 그의 명성은 나날이 올라가서, 태학(太學)의 청년 학생들은 그를 경모하여 ‘천하의 본보기는 이원례’라 평했으며 신진 관료들도 그의 추천을 받는 것을 최고의 명예로 알고, 이를 ‘등용문’이라 일컬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