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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을 되돌아 보면, 지난 10년 간의 우리나라 좌익정부 이전 시절에서와 마찬가지로 패망 이전의 자유월남 정부에서도 공산월맹과 관련된 간첩 사건이나 국가위해 사건은 철저하게 다루었지만, 우리나라가 직접 겪은 지난 10년 간의 좌익정부 이후에서처럼, 점차적으로 코 앞의 악랄한 공산독재집단을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정권을 잡은 좌익 인사들에 의해 우리나라의 주적에 대한 개념이 희석되면서, 입만 열었다 하면 상투적으로 우리 민족, 우리 동포를 운운하는 세력들에게 서서히 밀리기 시작하다가 보니, 나중에는 살아있는 국보법이 사문화, 무용지물이 된 우리 사회마냥 자유월남 정부마져도 겁이 났는지 현재의 우리나라처럼 노골적으로 주적을 찬양하고, 고무해도 잘 잡아넣지도 않은 상황으로 변하게 되었지요. 하지만, 당시 자유월남에도 우리나라처럼 좌익들은 소수였기 때문에 자유월남에서 선거를 치룰 때마다 공산당을 지지하는 비율은 11~18%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자유월남 인구 1900만명 중에서 실제 공산당원은 9500명 뿐이었고, 당시에 무장 세력으로 준동하던, 인민혁명당원(베트콩)들의 수 4만명을 합쳐도 5만명에 불과 했습니다. 하지만, 이 5만명이 대국민 선전선동을 통해 선거 때마다 18%까지의 득표를 기록하기도 했으나 항상 결과적으로는 우익이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우익들은 ‘우리가 절대 다수이므로, 아무리 좌익이 준동을 해도 절대 망하지는 않는다’는 안일한 생각에 빠지기 시작했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마치 우리나라의 우익 시민단체의 실체적 선봉장 역할을 하는 단체 가운데 하나인 국민행동본부 수장이 백주에 서울에서 테러를 당하는 것처럼, 그렇지만 언론에서는 무엇이 두려워서인지 제대로 국민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지도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상황과 마찬 가지로, 자유월남에서도, 마침내 우익인사들이 하나둘씩 암살당하기 시작하고, 급기야는 수상 후보로 나왔던 사람과 대학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던 사람 등... 이렇게 우익인사들이 테러로 죽어가니까 우익들은 겁이 나서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게 되는 사태로까지 진전되었던 것입니다.
과거 중국에서도 숫적으로나 군사력으로는 서로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던, 장개석국민정부가 국공합작이라는 명분아래 공산주의자들의 술수에 놀아나 모택동공산군과 손을 잡았다가 결국에는 대만으로 도망해야 하는 지경으로 참담하게 당하고 말았던 사례가 역사적으로 증명을 해 주고 있듯이 당시의 공산월맹도 미국의 공산월맹지역 북폭과 경제 제재로 인해 지금의 복한처럼 피폐해진 상황이었고, 따라서, 월맹군은 식량이 부족해서 하루 두끼의 식사만 하고, 반찬은 단지 소금뿐이었다고 하지만, 한때는 동양의 파리라고 하는 사이공(지금의 호치민시)의 자유월남정부는 이렇게 빈약하고, 가난한 군대에게 결국 항복하게 되었는데, 패망 직전의 자유월남에서도 현재의 우리 사회에서처럼, 소수의 조직화된 좌익들에게 우익들이 점차 밀리기 시작하다가 급기야는 대처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게 우리와 당시 자유월남 사회의 유사한 점이 아닐 까 하는 생각입니다.
요즘은 우리나라가 제대로 된 자유민주주의를 할 의지가 있는 국가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코 앞에 세계에서도 첫 손가락에 꼽히는 공산독재자 김정일이가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도 세계에서 최고 수준의 자유방임민주주의를 용인하고 있으니, 과거 김일성 초상화 밑에서 충성을 맹세했던 인사들이 정계를 중심으로 사회 각계에서 활개를 치고 있으니, 그들을 멘토로 하여, 소위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운동권학생이라고 하면, 좌익성향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어져 있는 세상이고 보니, 따라서, 아주 공공연하게 대학가에서도 김정일 찬양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어느 교원단체에서는 일선 교사들이 자신이 지도하고 있는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자신들의 종북사상과 반미사상을 심어주고 있는 가 하면, 좌익정치권에 직접 정치헌금을 하면서까지 옹호하고 있는 행태를 보이고 있으며,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공산독재자 김정일과 공산주의를 찬양하고 북한의 적화통일에 협조하는 행위를 소위 ‘민주화운동’이라고 승격시키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은 도대체 우리 사회가 어떤 민주주의를 하려고 하는 국가인지 모르겠습니다.
걸핏하면, 하기 좋은 말로, 고 박정희 대통령을 두고, 국가중흥에 기여한 애국충정의 그의 공로는 일언지하에 폄하하고, 독재자로만 부각시키려는 무리가 있는 데, 박대통령에 대해 거품을 품으면서, 반감을 나타내는 자들 가운데서도 상당수는 박대통령의 활동기에는 철부지 코흘리개였을텐데, 무엇을 누구로부터 어떻게 전수 받았는데, 지금의 노인세대가 피와 땀으로 이루어 놓은 좋은 시절에 태어나 무임승차를 한 터에 주신의 주제 파악은 커녕, 빨간 물만 잔뜩 들어서, 입만 벌리면 민주주의 수호천사처럼 설쳐대는 꼴을 보노라면, 박대통령께서 자신의 심중을 친필로 표현한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해"라는 글귀가 결코, 허튼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좋은 시절에 태어나 잘 살고 있는 좌빨 직업정치꾼 망나니들은, 박대통령 당시는 시대가 누가 대통령을 했어도, 국가중흥을 일으켰을 꺼라고.....입은 살아서 모두 말들은 잘들 하지요.
그럼, 한 분은 작고했어도 아직도 살아있는 역사이니, 질문을 해 보시지요. 근간에 대통령을 하신 연로하신 분이나 얼마 전에 작고하신 분, 당시 소위 야당의 거물이었던 분들은 경부고속도로마져 건설하면 안된다고 나라가 망한다고 국민을 선동하고, 데모를 벌렸던 안목의 분들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박대통령이 혁명을 할 당시 우리나라는 알다시피 자원도 없는 나라요, 국가가 보유한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들 가운데 한 나라였으며, 필리핀이 국민소득 170불, 태국 220불 등이였을 때 우리나라는 겨우 76불에 불과한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이웃 아시아의 작은 국가에서는 독립 후 1959년부터 1990년까지 장기 집권을 한 리콴유 초대 총리가 비록, 자타가 인정하는 권위주의식 국가통치를 했어도, 그리고 지금도 그 아들이 총리를 맡고 있으면서, 당사자는 아직도 국가고문으로서, 그 역량을 다 하고 있지만 어느 누가 그를 독재자라고 합니까?
불과 1960년대만 해도 세계가 가난한 우리나라를 쳐다 보지도 않을 때, 박대통령은 서독이 필요로 하는 우리나라의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주고, 이방인의 시신을 닦든 간호사와 수 천 미터 지하 탄광에서 땀흘리며 일한 우리나라 광부들의 봉급을 담보로 하여, 미국의 방해를 무릅쓰고, 1억 4000만 마르크의 돈을 빌리는 데 성공하고, 목숨을 담보로 이국전선에서 피를 흘렸던 우리 국군장병들과 작열하는 중동 사막의 건설현장에서 일한 지금의 노인세대가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나라를 건설할 수있는 삼짓돈을 마련하여, 이 만큼 세계 속에서 국격을 높히게 되었는데, 애국놀이하는 광대처럼 철 모르고 까불거리는 무리들의 선전선동 공세에 넘어가 사회가 불필요한 소모전에 휘말리며, 이념갈등을 조장하는 그들의 꼼수에 놀아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
사회혼란을 부추기고, 사회갈등을 유발하는 편향적인 이미지를 나타내는 각 분야의 철새 망나니들은 우리 사회의 공적(公敵)으로 우리 국민들이 한 마음으로 추방하는 단호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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