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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서울역 시계탑>의 줄거리:
바리새인들의 규정에 따른 금식에 관한 논쟁을 통해 주님은 삶에서의 모든 행동과 생각과 말을 위한 규정은 하나님의 라이브 말씀이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성경의 규정인 안식일이 논쟁거리가 되었습니다. 이 논쟁에서 모든 성경의 규정은 하나님과의 라이브 만남을 향해 해석되고 실천 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님은 역설하고 계십니다.
서울역 시계탑
(눅6:1-5)
1.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2.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 및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5. 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서울역 시계탑>이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여러분, 5장 마지막 부분에 금식논쟁이 있었습니다.
금식논쟁에 이어서 바리새인과의 사이에서 오늘은 안식일논쟁이 또 보여 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금식논쟁과 안식일논쟁은 둘 다 똑같이 당시 유대인들의 행동을 규정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바리새인들이 일주일에 두 번씩 하는 이 금식은 바리새인과 서기관 율법사, 이들이 만들어낸 조항입니다.
반면에 안식일 규정은 성경말씀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이 두 개를 가지고 논쟁이 붙은 거예요.
그래서 금식논쟁은 금식이라고 하는 규정 자체가 원래는 일 년에 한 번 대 속죄일에 하도록 되어 있는 것을 바리새인들이 자기들의 열심을 보이고, 일반 사람들과의 차별화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들이 더 의롭다는 우월감을 확인하려는 행동이었고, 동시에 그것은 그만큼 우월하게 의로운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높은 지위를 허락하시고 지금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유지시켜주실 것이고, 우리에게 부를 허락하실 것이다’라는 확신의 근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만든 규정, 관습, 상식, 이런 것을 따라서 행동하지 말고 하나님을 너희 마음 안에 모시고 하나님께서 인격체이신만큼 당신의 생각을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라이브로 듣고 행동해라’라는 말씀으로 바리새인들의 나쁜 의도에 의한 질문에 대해 응수를 하십니다.
자, 여기서 우리가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돈 대신에 하나님이, 세상의 인정과 명예 대신에 하나님이, 바리새인들의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세상 것들 대신에 하나님이 들어오셔서 라이브로 말씀하신다고 그러면, 우리가 성경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는데, 도대체 이 성경말씀과 라이브로 말씀하시는 말씀이 어떻게 구분이 되고 어떻게 다른 것이냐?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얘기가 안식일논쟁인데, 이 안식일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상의 규정입니다.
기록된 말씀, 성경, 하나님의 말씀 속에 나타나는 규정입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 대해서 우리가 갖게 되는 과제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만의 삶에, 나만의 직장에, 나만의 가정에, 나만의 가족을 대할 때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되느냐 하는 것은 삶 속에서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면서 라이브로 말씀해주실 수 있는데, 그러면 성경말씀은 어떻게 우리가 대해야 되느냐?
이미 되어 진 말씀에 대해서 우리가 갖는 과제는 해석하는 겁니다, 이해하는 겁니다.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
이 이해와 해석의 key가 뭐냐 하면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하나님과의 라이브 만남을 향하여 해석하라는 얘깁니다.
라이브 만남.
그저 하나님과 만남, 만남, 말뿐만 아니라 실제 살아계신 하나님과 내 마음이 직접 만나는 그 만남이 해석의 방향이고 이해의 key가 된다는 얘깁니다.
그쪽을 향하여 해석하라는 거예요.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이유조차도 안식일을 잘 지킴으로써 하나님이 예쁘다고 하셔서 결론적으로 내가 많은 돈, 세상의 존경과 형통을 만나게 되는 쪽으로 해석을 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이러한 해석, 세상에서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을 마음에 담고, 그 이루고 싶은 것들을 위한 답으로써 성경을 해석하려고 하는 것, 이리이리 하면 형통한다, 이리이리 하면 부자 되고, 장수한다, 이렇게 하면 병 고친다, 이렇게 세상에서 생긴 소원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고 답으로 해석을 하는 것과, 이 말씀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야 된다고 생각하며 이해하는 것과 어떻게 다른 것인가 하는 것이 오늘 본문에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논쟁의 발단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가 하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밀밭 사이를 지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장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다 익은 이삭을 손으로 훑어서 그 껍질을 까고 그것을 먹었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안식일 규정에는 어떤 내용이 있었나 하면, 안식일 규정도 성경에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에 근거해서 실생활을 살아가면서 아무것도 행하지 말라는 성경말씀에 준거해서 굉장히 미세하게 발전을 시켰는데, 그 중에 ‘추수를 하지 말아야 된다’라는 내용이 들어있었습니다.
성경에 입각해서도 추수를 하지 말라는 말은 맞아요.
밀 이삭을 비벼서 먹는 것도 추수의 한 행위라고 여겨서 그것도 금지되어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그것을 한 거예요.
그렇게 했으면, 제가 예수님이라면 ‘아, 너희들이 배가 몹시 고팠나보구나!’ 하고 그들의 입장을 살려주는 말을 한 마디 한 뒤에 규정이 규정인 만큼 ‘그래, 알았다, 뭐 이번에는 좀 우리 제자들이 잘못했네!’
예수님이 잘못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주의를 주겠네!’ 이렇게 말씀하시면 될 텐데… 이게 무난한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이 ‘근본적으로 너희들의 안식일에 대한 이해, 성경에 씌어있는 성경말씀으로서의 안식일을 지키라는 그 말씀에 대한 이해가 아예 잘못 되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안식일 논쟁이 계속되는 6장의 11절을 보면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이렇게까지 격노시킬 필요가 있겠습니까?
자, 거두절미하고 안식일을 이해함에 있어서도 하나님과의 라이브만남, 이것이 해석과 이해의 키가 되어야 안식일을 바로 이해하고 바로 지킬 수가 있다는 말씀을 주님께서는 지금 하고 계시는 겁니다.
다윗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얘기에 관한 해석은 마가복음에서 해석한 부분을 참조하시고, 오늘은 곧바로 안식일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이 안식일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길이 바로 서울역 시계탑이라는 거예요.
서울역 시계탑이 왜 내용적으로 안식일과 연관이 되는지 한번 보겠습니다.
서울역 시계탑 아래에 아주 밝고 경쾌한 옷차림을 한 예쁜 아가씨가 시계를 보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구를 기다리는가 하면 같이 여행을 가기로 한 약혼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남자가 오지를 않아요.
화장실을 가고 싶습니다, 갈 수가 없어요, 약혼자가 올까봐.
목이 마릅니다, 서울역 매점에 들어가 물을 사먹으면 좋겠는데, 언제 올지 모르니까 자리를 뜰 수가 없습니다.
저쪽에서 사람들이 갑자기 웅성거리며 모이고 난리가 났습니다, 굉장히 궁금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람이 많이 왔다 갔다 하는 그 서울역 광장 앞에서 시계탑을 벗어나 그곳으로 가볼 수가 없습니다, 시계탑에서 만나기로 했으니까.
그런데 이유를 모른 채 약속한 애인이 오지를 않습니다.
꼼짝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시간 반이나 지나서야 저쪽에서 애인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큰일 난 듯이 부랴부랴 뛰어오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자 마음에서 기쁨이 확 번져나기 시작합니다.
애인이 가까이 왔을 때, 얼굴은 뾰로통 해가지고 화를 내는 듯 하지만 애인을 보는 순간의 그 기쁨은, 무슨 일이 있을까, 어떻게 되었을까, 뭐 시계탑에서 만나는 거 다 핸드폰 없는 시절이니까요.
요즘에야 서울역에서 만나자고 하면 핸드폰으로 ‘너 어디 있어?’ 하고 만나면 되지만 그 옛날에는 그저 시계탑이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하여간 먼저 온 사람은 꼼짝 말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 많은 사람이 오고가는 중에서 움직이면 움직이는 대로 더 만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시계탑에서 만나자고 했으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시계탑 앞에서 꼼짝 말고 있어야 되요.
그런데 일단 늦었더라도 한바탕 난리를 치고 토라지고, 애인이 온갖 애교를 다 떨어서 화해를 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화장실 같이 가서 문 앞에서 기다려주지요, 목마르다 그러니까 같이 매점에 가서 물 사먹지요, 아까 궁금해 죽겠는데 가지 못했던 웅성거리던 그곳에 가서 궁금증을 풀지요, 애인과 다 함께 움직입니다.
이게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라는 것입니다.
‘안식일’ 하면, 대대로 전통적으로 성경말씀에 그렇게 씌어있으니까, ‘너나 네 가족이나 손님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든 일을 그만 두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그냥 손 놓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돼버렸고,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면서 안식일을 지키는 이유가 뭐냐 하면, 이렇게 안식일을 잘 지키면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을 평탄하게 이끌어주셔서 하는 일마다 잘되게 하실 것이고, 사업하면 형통하게 할 것이고, 자녀에게 복주시고, 이 세상의 오복을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키자,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안식일을 지키면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 이렇게 돼버렸던 겁니다.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근본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이유가 뭐였는가 하면, 안식일이 시계탑이라는 겁니다.
애인을 만나기 위해서 꼼짝 안 하고, 물도 안 사먹고, 화장실도 안 가고, 궁금증이 나는 곳도 안 찾아가보고… 꼼짝 안 하는 이유가 애인을 만나려고 꼼짝 안 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논밭에 가서 일하지 말고, 이것저것 하지 말고, 남종이나 여종이나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뭐냐 하면, 시계탑 밑에서 나를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나와의 라이브만남을 위하여 기다리라’라는 말씀이었다는 얘깁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닙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이유가 하나님을 라이브로 만나기 위해서라는 얘깁니다.
화장실조차 안 가는 이유가 뭡니까?
이제 애인이 올 것이니까, 애인이 왔을 때 나를 놓쳐버릴 수도 있으니까…
보세요, 시간 약속 40분이 지나 내가 화장실이라도 가느라 없을 때 애인이 도착해서 내가 없는 것을 본다면 찾아다닐 것 아니겠습니까?
분명히 자기가 늦었으니 이미 온 줄로 알고 있는데, 온 사람이 없으니 도로 집으로 돌아갔나 해서 하숙집으로 찾아갈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 꼼짝 못하는 거죠.
화장실도 안 가고, 물 마시러 안 가는 이유는 뭐냐 하면, 안 하기 위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애인을 만나기 위해서 안 하는 거라 이겁니다.
왜 안식일에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이 일, 저 일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그 일에 마음을 뺏기니까.
마음으로 하여금 아무 일에도 관심을 두지 말고, 아무것에도 뺏기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준비되라고 하지 말라는 거죠.
그런데 그 시계탑 밑에 노점상 아주머니가 한분 계십니다.
이 아가씨가 한 시간 반 동안이나 꼼짝 않고 있을 때, 노점상 아주머니도 꼼짝 않고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나 노점상 아주머니는 애인을 만나기 위해서 꼼짝 안 하는 게 아닙니다.
오고가는 행인들이 자기에게 와서 물건을 사가면서 돈을 주기를 꼼짝 않고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바리새인들이 성경에 나오는 안식일을 지키는 이유가 바로 이 시계탑 앞에 있는 노점상 아주머니, 시계탑에서 만나기 위해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걸 알고 그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팔기 위하여 꼼짝 안 하고 자리를 지키는 노점상 아주머니의 마음으로 안식일을 지켰다는 얘깁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돈을 라이브로 만나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복을 라이브로 만나기 위해서 그 자리에서 자리를 지키고 안식일을 지키며 아무것도 안 했다는 이야기에요.
자, 주님께서 밀 이삭을 베어 먹은 제자들이 잘못한 게 없다고 하신 이유가 뭘까요?
안식일은 하나님과 만나는 것이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나기 위해서 관심을 아무것에도 주지 않겠다는 얘기죠.
그러나 일단 만나고 나면 어떻게 됩니까?
이 아가씨가 애인과 함께 물 사먹으러 가고, 애인과 함께 화장실에 가서 문 앞에서 기다리게 하고, 애인과 함께 궁금증이 나는 웅성거리는 곳에 갔던 것처럼, 하나님을 일단 만나면 하나님과 함께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신 주님과 함께 있는데, 주님과 함께 하는데 안식일을 어겼다는 게 무슨 말이냐 이것이에요.
이미 제자들은 밀 이삭을 먹는 가운데서도 안식 가운데 있다는 겁니다.
주님과 함께 안식 안에 들어가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신 주님과 함께 있으므로…
안식일에 구약에 하지 말라고 했던 것은 안식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하나님과의 라이브만남을 이루기 위해서 하지 말라고 했던 것인데, 지금 제자들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과 함께 만나는 만남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들어가 있으므로 무엇을 하더라도 그 만남 자체가 움직이고 있는 거예요, 지금.
하나님과 제자들이 묶여서 같이 움직이고 있으므로 안식의 상태가 움직이고 있는 겁니다.
이걸 몰랐다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안식일의 주인이다’ 즉, ‘나와 함께 있으면 안식 안으로 들어와 버린 게 된다’는 겁니다.
안식 안에 들어와 버린 상태에서 밥을 먹고 밀 이삭을 비벼먹고 무슨 일을 하더라도 안식일을 범한 것이 아닌 것은, 안식 자체가 움직이고 있는 거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오신 뒤로는 안식일이 없어진 겁니다.
그리고 삶 전체의 시간이 다 안식의 상태 속에서 진행되게 되었다는 겁니다.
주님을 알고부터 죽을 때까지의 삶 전체가 안식의 생애가 되었다는 겁니다, 안식일이 아니라.
왜? 주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실 수가 있게 되었으니까.
이게 바로 성경해석의 예가 된다는 겁니다.
안식일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겠다고 하는 의도를 가지고 해석해 들어갈 때, 바리새인들이 이해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하시면서 또한 안식일 자체에 대한 이해에 대해서도 교정을 해주고 계시는 겁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어디에서든지 우리들의 행동을 유발시키는 많은 규정이 있고, 전문가들의 충고가 있고, 또 상황 자체도 내게 행동을 요구합니다.
돈이 없을 때, 어떻게 돈을 벌어야 될까 하고 행동을 요구하게 되지요.
이 모든 이 세상에서 주어지고 있는 외부로부터 내게로 향하는 규정을 따라가지 마세요!
하나님의 라이브말씀을 듣고 사세요!
그러면 하나님을 어디서 만나느냐?
바로 성경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납니다.
법궤가 있는 지성소에 하나님이 임재 하셨던 것처럼 말씀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내려오시고 우리와 라이브로 만나시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다릴 시계탑과 같은 모든 말씀이 귀결되는 지점이 어딥니까?
바로 십자가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경의 말씀은 창세기 1장 1절부터 계시록 마지막 절까지 전부 십자가를 360도, 아니 720도, 아니 1440도, 2880도 각도로, 그보다 더 많은 각도로 무수하게 많은 원주 상의 점들로 돌아가면서 십자가를 비추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화장실도 안 가고, 목마른 것도 참고, 이 세상 모든 일을 중단하고, 이 세상 모든 일에 죽고 기다리면 반드시 애인이신 하나님이 오시니까…
아버지 되신 하나님이 오시니까…
십자가가 시계탑인 거예요.
그 시계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겁니다.
움직이면 못 만나요.
내 마음이 사업 때문에 바빠 돌아가거나 자식 때문에 바빠서 자식에게로 가있거나 내 인생의 미래의 설계를 위해서 가있거나 하면 못 만나요.
십자가에서 시계탑으로 알고 그곳에서 기다릴 때, 반드시 하나님은 뛰어오십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언약이니까.
새 언약이라고 했어요, 새 언약, 십자가 사건을 새 언약이라고 했어요.
새 언약이 뭐에요?
내용이 ‘만나자’ 이겁니다, ‘라이브로 만나자!’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 아버지로 나의 남편으로 라이브로 만나자는 약속이 십자가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시계탑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가씨처럼 하나님을 기다리는 겁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마음에서 아무리 상황이 급해도 그 상황을 쫓아가면 안돼요.
아무리 목이 말라도 물 사먹으러 매점에 가면 안돼요, 아무리 화장실이 급해도 좀 참아야 돼요.
그 사이에 애인이 왔다가 못 만나면 애인이 집으로 다시 돌아가 버리는 수가 있어요, 나를 찾느라고.
십자가 밑에서 세상에 대해 죽는다는 것이 바로 이런 의미라는 겁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하나님과 라이브로 만났을 때, 이제 우리의 삶은 안식상태로 들어가 버립니다.
안식일과 안식 시간이 있는 게 아니라, 안식의 상태로 들어가 버려서 안식의 상태인 채로 직장에 나가서 일하고, 가정에서 살고, 일도 하고…
그러니까 안식일이 이제는 매순간 매일 아침, 사도바울이 매일 죽는다고 한 것이 바로 이 안식이에요.
안식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안식일이 정해진 게 아니라 날마다 매순간마다 들어가는 겁니다.
십자가에서 기다리면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과 라이브로 만나게 되면 하나님과 함께 움직이게 된다는 이야기, 이게 바로 다음 부분에 나옵니다.
여러분, 십자가는 서울역 시계탑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라이브로 만납니까?
시계탑에서 내 마음이 이 세상일에 따라 끌려가지 말고 다 죽었다고 고백하는 겁니다.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 이게 바로 서울역 시계탑에서 애인을 기다리는 것이지요.
꼭 만나세요!
만나셔서 오늘 하루 종일 안식 안에서 아침도 먹고, 점심도 먹고, 직장생활도 하고, 가정생활도 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이 세상 삶이 다할 때까지 십자가는 언제나 약속을 어기시지 아니 하시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로써, 나의 남편으로써 나를 만나기 위해 달려오시는 서울역 시계탑인 것을 우리가 잊지 않게 하셔서, 아침마다 순간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과 떨어졌을 때마다, 시계탑인 십자가 밑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기다릴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