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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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추억의 영화를 발견했다. 바로 진짜 가을의 전설이 된 영화 “가을의 전설”이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이나 “가을의 전설”은 코로나로 인해 야외활동을 못 하는 요즘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줄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의 영상미와 잔잔한 배경 음악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대작이다. 1992년, 1995년 상영된 이 영화는 거의 30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아름다운 여운을 주는 영화이다. “흐르는 강물처럼”은 세 부자(父子)의 이야기이다. 고지식한 스코틀랜드 출신의 아버지 목사님과 순종적인 첫째와 방종한 둘째. 다양한 인생을 사는 세 부자는 서로를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이해하려고 하고 서로를 사랑한다. 이 영화에서 둘째를 잃은 아버지목사님은 마지막 설교에서 이런 말을 한다.
“사실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거의 돕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설사 그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완전한 사랑을 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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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국 대선이 끝났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선이었고, 역대 최악의 대선으로 길이 회자될 정치극이었다. 최근 미국의 대선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어야 유리하다, 바이든이 당선되어야 한국에 유리하다. 등등 많은 주장과 논리들이 있었다. 그런데 정말 트럼프가, 바이든이 당선되면 한국에 유리할까? 좀 더 유리한 후보가 있을 수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그들은 미국대통령이지 한국대통령이 아니다. 그 말은 그들은 미국의 이득을 위해서 일하는 자들이지 한국을 위해서 헌신하는 대통령이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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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은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져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다. 그리고 이 분열에는 종교인들도 합세를 하여 서로를 향하여 비방과 혹세무민의 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명절에 가족끼리 모이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대화주제 두 가지가 종교와 정치인데 종교가 정치를 덮지 못하고 오히려 종교가 정치에 휘둘리는 모습이다. 물론 서로 생각하는 바와 가치관이 다르기에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치에 절대선이 있을까? 절대악이 있을까? 그것을 알기에 항상 이야기하는 것이 차악을 뽑는 것이 정치라고 하지 않는가? 4대강이 문제라고 말하는 진보가 새만금에 대해서는 입도 뻥끗하지 않는다. 이게 정의일까? 진보는 빨갱이라고 외치는 보수정권이 군대도 안 가고, 최첨단 무기들도 취소시켜도 “우리가 남이가?” 하면서 입을 다문다. 자주국방이 아닌 미국에 기대는 것이 안보이고, 보수의 가치일까? 전에는 열렬한 진보주의자였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콘크리트 지지층이 아닌 중도의 스윙보터에 가담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박쥐로 보일수도 있지만 진보나 보수나 극으로 치닫는 사람들은 말도 통하지 않고 너무 극적인 언행이 심히 부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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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 세상의 정치와 권력에 절대선과 절대악이 있을 수 있을까? 선과 악이 공존하는 것이 권력이고 정치인데? 2차대전의 악마 아돌프 히틀러는 천하의 죄인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살인범이 나쁘다고 해서 강간범이 죄인이 아닌 것이 아닌 것처럼 히틀러는 죄인이지만 스탈린은 말할 것도 없고, 루즈벨트나 윈스턴 처칠은 천국에는 없을 것 같다. 히틀러가 볼쉐비키들과 전쟁을 치를 때 발트 3국이나 우크라이나에서 나치정권과 함께 소련과 싸운 이들은 아직도 민족투사로 예우하고 있다. 히틀러가 유태인과 떠돌이 집시들을 학살할 때, 윈스턴 처칠은 인도 국민들 700만 명을 아사시켰다. 아돌프가 유태인들을 대상으로 생화학실험을 시작할 때, 영국은 이미 세계 각국의 식민지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마친 상태였다. 사악한 나치정권을 무찌른 연합군은 세계 각국의 식민지를 평화롭게 해방을 시켜주며 독립정권을 세울 수 있도록 했다지만 실상은 어떤가? 동양의 제국에서는 이이제이(以夷制夷)라 부르고 서양에서는 디바인드 앤드 룰(divide and rule)이라 불렀으며 성경에 나오는 제국 앗시리아나 로마에서는 혼합정책을 통해 제국에 대항할 세력 자체가 형성되지 못하게 했다. 한 국가였던 인도를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로 분리 독립시켜서 분쟁의 씨앗을 심고, 국가의 국경선을 점령 이전 상태가 아닌 자로 대고 그은 것처럼 직선으로 독립시켜 다툼을 야기하고 실수로 가장된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하여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양쪽과 협정을 맺어서 팔레스타인 사태를 야기한 서구열강들의 정책이 과연 실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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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운전을 하다가 위험하게 끼어드는 칼치기 운전에 화가 나서 욕을 하면 아내가 나서서 하는 말이 여보 당신이 차 안에서 아무리 욕해도 그 욕은 우리가 듣지 저 사람은 전혀 못 들어요. 그렇다. 내가 욕을 하면 내 가족이 그 더러운 욕을 다 듣는다. 그렇기에 정히 화가 나면 경적을 울리거나 쌍라이트를 켜거나 잡아서 한 마디 해주던지 해야 한다. 정치도 그렇게 열렬하게 활동을 하려면 투표로 민심을 보여주거나 홈페이지에 글을 남기거나 해당의원들에게 문자를 보내거나 당원활동을 하면 된다. 괜히 국민들끼리 싸우고 마음 상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사람들 생각은 다 정해져 있기에 내가 말한다고 바뀌는 것 아니다. 그냥 생각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시원하게 욕을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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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명절에 가족들이 모였을 때 금기어 두 가지가 있다. 바로 정치와 종교이다. 사람들마다 취향과 생각은 각기 다르다. 탕수육도 부먹과 찍먹으로 나뉜다. 짬뽕과 짜장으로 취향이 갈린다. 치킨도 양념과 후라이드로 나뉜다. 빵도 소보로나 바게트, 베이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초코, 슈크림, 생크림빵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민트초코파가 있는가 하면 안티민초파가 있다. 나도 강한 진보파였으나 이제는 진보도 보수도 싫다. 제발 신앙이 좋으니 뽑아달라는 말도 그만했으면 좋겠고, 정치 이야기는 그냥 마음이 맞는 사람들하고만 하셨으면 한다. 자신의 생각하는 정당에 대해 욕해도 수용하려면 좋겠지만, 그저 각자의 생각과 가치관에 따라서 비판과 조화가 있으면 좋겠지만 끝까지 자신의 생각만을 주장하는 태도에 질려버린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면 전쟁 통에 동료를 잃은 진태(장동건 역)는 자신의 마을동생 용석이를 공산군에게 붙잡혀 강제로 공산군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산군이 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를 괴롭히고 죽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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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사람마다 취향이 있고, 가치관이 다르다. 그렇기에 같은 취향을 가지고 급격히 친해지기도 하고, 다른 가치관에 부담을 갖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것이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다. 그저 다름일 뿐이다.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해야 한다. 12월이 되었다. 이번 달 추천도서였던 「팬인가, 제자인가」를 소개하고 싶었지만 전북극동방송에 코로나 환자가 다녀갔기에 당분간 외부인 출입금지로 방송국에 못 갔다. 이 책을 보면서 나 스스로를 제자로 착각한 팬은 아니었나 많은 고민을 해본다. 십자가복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과연 나는 십자가가 제일 우선순위인 사람인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중 벨기에 이프르 지역에서 대치중이던 연합군과 독일군 사이에 기적이 발생한다. 일명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양쪽의 지휘관과 병사들 모두의 동의하에 총을 내려놓고 촛불을 밝히고, 찬송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서로 용서하고 친구가 된다. 그리고 각 진영의 거센 공격을 미리 알려주고 자신의 진영으로 미리 피신을 시켜주기에 이른다. 실제 한 병사는 부모님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 광경은 평생토록 잊을 수 없어요, 살인과 죽음 속에도, 인간이란 존재는 살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1915년 크리스마스는 제게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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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연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완전한 사랑을 줄 수 있을까? 우리는 세상의 정치와 권력자들의 고도의 정치기술을 극복할 수 있을까? 세상은 자꾸만 자신이 유리한대로 분리해가지만 교회는 십자가 복음으로 하나 될 수 있을까? 평생 교회 밖에서 여러 가지로 분열‘만’ 경험하던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하나됨’을 경험하는 2021년이 되기를 기도해본다. 비난과 분열 속에도 인간이란 존재는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교회 안에서, 하나님 안에서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자 제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