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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 론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번역가의 과제는 그가 번역하고 있는 언어에서, 그 언어를 통해 원문의 메아리가 울려 퍼질 수 있는 그런 의도를 찾아내는 데 있다.”고 말한다. 이론의 여지 없는 하나의 ‘선언’과도 같은 언급이다. 그러나 이 말엔 번역의 어려움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내포돼 있다. 벤야민은 “예술작품은 원칙적으로 언제나 복제가 가능하였다. 인간들이 한때 만들었던 것은 인간들에 의해 언제나 다시 모방되어질 수가 있었다. (…중략…)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는 좀 새로운 현상이다. 기술적 복제라는 이 새로운 현상은 역사적으로 긴 간격을 두고, 그러나 점점 더 강도를 더해 가면서 관철되었다.”고 말한다. 특히 인쇄를 통해 문자의 복제가 가능해지면서 그를 통해 문학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부분을 강조했다. 그런데 오늘날 진화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의 테크놀로지를 통한 디지털 인쇄 제작이 일상화되면서 복제는 더 이상 ‘새로운 현상’이 아닌 시대로 접어들었다. ‘원문의 메아리’를 유지하면서 데이터에 대한 복제와 학습을 거친 인공지능 번역은 벤야민의 유효한 ‘선언’ 이후 한층 더 진화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앨런 튜링은 기계의 응답이 인간을 속일 수 있을 정도라면 그 대답이 인공 신호에 의해 맞춰진 것으로 만 볼 수 없다는 맥락의 의견을 밝혔다. 인간을 속일 줄 아는 기계는 생각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특히, 인공지능을 활용한 번역 수준은 지속적으로 진화·발전하면서 일반문서는 물론이고 높은 단계의 텍스트라 할 수 있는 문학번역에 가담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또한 인공지능 번역은 사용자 수가 늘어나고, 그 작업을 통한 사례가 늘어남으로써 일련의 학습된 데이터가 인공지능 시스템에 누적됨으로써 번역의 정확도는 높아지고 있다. 심지어 일상에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속어나 은어 등을 인공지능이 구사하는 것이 놀라운 일도 아닌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인공지능은 창의적일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나오고, “인공지능이 인간은 파악할 수 없을 만큼의 방대한 경우의 수를 계산할 수 있고, 창의성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는 답변은 충분한 설득력을 지닌다. 이런 시대적 환경에서 인공지능을 통한 작업이 번역 관련 일에 종사하는 인간에게 산업적 동반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살펴보는 작업은 의미가 있다.
질베르 시몽동(Gilbert Simondon)은 인간과 인공지능이 서로 소통하는 열린 상태에서 기술적 앙상블을 실현할 수 있다고 했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은 컴퓨터가 인간의 뇌가 낳은 자식으로 인간 뇌의 연장물(transference)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연장물에 대한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양면의 본질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 지구를 지배할 수 있도록 하는 면과 인간을 대체해 역할하며 인간사의 공간을 점유할 수도 있다는 맥락으로서, 현재는 물론 미래에 던지는 유효하고도 중요한 메시지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에 대한 활용과 인간이 둬야 할 그것과의 거리를 조절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인간과 인공지능이 어떻게 상호 간 앙상블을 이루며 협력할 수 있는가에 대한인지와 노력이다.
언어철학자 존 설(John R. Searle)에 따르면, 한 나라의 체스 게임을 다른 나라의 체스 게임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같은 ‘기본 규칙(underlying rules)’을 공유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같은 기본 규칙을 공유하기 때문에 한 언어의 발화를 다른 언어로 번역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어떤 문제를 실제로 사고하거나 해결할 수 없는 ‘약인공지능’ 단계에서는 인공지능의 성능이 불완전한 상황이므로 오히려 인간이 활용할 수 있는 협업의 도구로서 역할하게 된다는 말은 꽤 설득력을 지닌다. 존 설의 이런 견해는 현재는 물론, 인공지능이 더욱 진화·발전될 미래에도 계속해서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인간이 인공지능과 협력하는 가운데에서도 긴장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인공지능의 진화와 발전이 인간의 물리적 노동뿐만 아니라 정신노동까지 대체할 수도 있게 될 것이라는 가능성에 내포된 공포감이다. 인공지능이 예술 창작영역까지 점유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넘어서는 긴장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다른 분야에서 응용될 때와 마찬가지로 예술 창작에서는 유용한 ‘미디어’이자 ‘도구’일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 “하지만 현재의 인공지능 수준과 가까운 미래에 개발될 인공지능 수준을 보면, 인공지능은 어디까지나 미디어일 뿐 창작 주체가 될 수는 없다.”
본 연구는 인공지능과 문학번역·출간과의 관계 고찰을 통해, 출판산업시장에서의 인공지능 활용 번역의 유용성과 그 한계를 탐구하는 데 목적이 있다. 특히, 비영어권 문학이 다양한 언어권에서 현지 언어로 번역·출간됨으로써 특정 언어권 독자들과는 물론이고, 80억 세계 독자와 소통하는 문학으로 거듭나는데 인공지능이 유력한 협력자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탐색도 함께 진행하고자 한다. 통·번역 학술연구 분야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기계번역, 번역시스템, 그리고 번역 이행 과정과 그 결과물에 대한 다양한 선행 연구가 진행돼 오고 있다. 그러나 본 연구는 인공지능이 문학번역과 출판산업시장 간의 상관관계를 살피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기존 선행연구와는 차이가 있음을 밝힌다.
II. 세계에서의 한국문학과 AI 출판시장
한국은 세계 10위권 내에 드는 규모의 핵심 출판시장으로 글로벌 출판시장에서 자리매김해오고 있다. 한국은 2005년 오랜 역사를 지닌 독일 프랑크푸르트도서전(Frankfurt Book Fair)에 주빈국(Guest of Honor)으로 참여했고, 2014년에는 영미권의 중심인 영국 런던도서전(London Book Fair)에 주빈국으로 참여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 주빈국으로 참여한 후 9년 만에 참여한 한국출판과 한국문학이 그간 글로벌 무대에서 확보한 국제적 위상은 크게 달라졌다. 그동안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I Have the Right to Destroy Myself)』, 조경란의 『혀(Tongue)』,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Please Look After Mom)』,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The Hen Who Dreamed She Could Fly)』,한강의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Our Happy Time)』, 그리고 이정명의 『별을 스치는 바람(The Investigation)』 등을 비롯한 다양한 작가의 문학작품이 영어로 번역되어 온·오프라인 서점을 통해 전 세계 독자들에게 확대되면서 한국문학을 일상에서 읽고 즐길 수 있는 상황으로 발전하였다. 10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한국문학과 한국출판이 일궈낸 큰 변화였다.
그간 한국문학을 영어로 번역하는 번역자의 수와 한국문학이 해외 출판시장에서 예술적·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사례가 모두 증가하면서 영미권은 물론, 기타 다양한 언어권에서 한국문학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이 확대되었다. 신경숙은 2011년 4월에 미국과 영국에서『엄마를 부탁해(Please Look After Mom)』의 미국판과 영국판(영국판 제목은 Please Look After Mother)을 출간했고, 미국에서는 한국 문인 최초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2012년엔 아시아 여성작가 최초, 한국 작가 최초로 ‘맨 아시아 문학상(MAN Asian Literary Prize)’을 수상했다. 한국 작가가 국제무대에서 세계적 인지도를 지닌 문학상을 수상한 최초 사례이다.
황선미도 큰 성과를 올렸다. 2014년 런던도서전이 열리는 시기에 영국 전역 공항서점 베스트셀러 판매대에 『마당을 나온 암탉』 영어판이 진열되었고, 그해 이 작품은 영국에서 4개 부문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올렸다. 그리고 황 작가는 2014년 런던도서전에서 ‘오늘의 작가(Today’s Author)’로 선정되어 행사 기간 동안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다양한 행사에 참여했다. 2016년, 한강은 『채식주의자』를 통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을 수상하면서 전 세계 독자가 주목하는 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그의 수상은 한국문학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을 한층 끌어올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차원에서 의미를 지닌다.
이정명은 2017년 7월 이탈리아에서 『별을 스치는 바람』으로 이탈리아 최고 권위의 문학상 중 하나인 ‘프레미오 셀레치오네 반카렐라(Premio Selezione Bancarella)’을 수상했다. 이 상 외에 『별을 스치는 바람(The Investigation)』은 영국출판사 맥밀란(Macmillan)에서 출간된 후 ‘2015 인디펜던트 해외소설문학상(Independent Foreign Fiction Prize 2015) 후보(longlist)에도 올라 글로벌 무대에서 주요 작가로 자리매김해오고 있다.
2017년 7월, 편혜영의 단편 '식물애호(Caring for Plants)'가 세계 권위의 문예지 「뉴욕커(The New Yorker)」(2017년 7월 10일자)지에 게재되는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같은 해 8월에는 이 단편을 장편으로 확장해서 쓴 장편소설 『홀(The Hole』이 미국에서 출간됐다. 편 작가의 『재와 빨강(City of Ash and Red)』은 2017년 초 폴란드에서 ‘2016년 올해의 도서’로 선정되었다. 『홀』은 2018년 7월 미국에서 한국 작가로는 최초로 ‘셜리잭슨상(TheShirley Jackson Award)’을 수상했다.
2020년 7월과 8월에 영국과 미국에서 각각 번역 출간된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들(The Disaster Tourist)』은 2021년에 영국에서 추리소설 번역부문 ‘대거상(The 2021 CWA Crime in Translation Dagger)’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2022년에는 정보라의『저주 토끼(Cursed Bunny)』와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Love in the Big City)』, 그리고 2023년에는 천명관의 『고래(Whale)』가 ‘2022 인터내셔널 부커상(International BookerPrize) 후보에 오르는 등, 한국문학이 세계 출판시장의 중심에서 주목받고 있다.
영미권으로 진출한 문학작품 중심으로 상기 열거한 사례 외에도, 언급되지 않은 더 많은 작가와 작품이 영미권은 물론, 유럽·아시아 등을 비롯한 세계 다양한 언어권에서 번역·출간돼오고 있는 가운데 세계 문학계에서는 물론이고 출판산업계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 일련의 이런 과정에서 주목할 부분이 번역이다. 영미·유럽출판시장으로의 본격적인 한국문학 수출을 시도하던 초창기인 2005년 당시부터 2010년에 이르기까지 1년에 한 작가의 장편소설 한 작품 정도를 수출하는 데 그쳤다. 당시로서는 그것 자체도 큰 성과였지만 사업적으로 매력적인 성과는 아니었다. 초창기 성과가 활발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영미권출판시장에서 검증된 유능한 번역자 확보가 충분치 않았던 것과 그로 인해 소개하고자 하는 작품에 대한 영문소개자료 준비가 원활치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2011년과 2012년 신경숙 성과 이후 번역자 김지영 외에 또 다른 유능한 번역자들이 한국문학 해외 수출 시장에 꾸준히 합류하게 되면서 한국문학의 해외 소개를 통한 번역·출판은 활기를 띠게 되었다.
상술한 바와 같은 환경에서, 인공지능과의 역학 구도 탐색과 그것에 대한 전망과 비전 마련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인공지능을 중심축으로 영역별 관련 시스템과 데이터가 끊임없이 진화와 발전을 거듭하는 상황이므로 특정 현상이나 흐름에 대한 섣부른 판단이 오류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문학 분야에서의 움직임이 현 흐름의 대열에서 분주하다. 시와 소설이 인공지능을 통해 창작되어 국내외 출판시장에 나오기 시작했으며 이에 대한 문학적 평가와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카테고리별 양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앞으로 더욱 다양한 문예 창작물이 인공지능을 통해 나올 거라는 사실은 명약관화하다. 일반문학 이외 영역의 출판시장에서도 현 상황에 대응하는 전략 마련과 함께 다가올 미래에 대한 준비에 들어간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공지능 번역의 역할 상용화는 상당 부분 진화 발전되어가고 있다. 문학번역과 출판, 특히 비영어권 문학의 번역과 출판에서 인공지능의 역할과 유용성이 주요 이슈로 부상하고 있는 배경도 앞서 살핀 바와 같은 맥락이다.
영미 출판시장으로의 번역출판 진입 장벽이 상대적으로 높은 비영어 권역에서 AI 번역은 큰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국가경쟁력이나 출판경쟁력이 낮고, 유능한 번역자 풀이 열악한 국가(혹은 언어권)에서 자국어로 된 문학을 비롯한 출판물이 영어로 번역되어 영미권에서 출판될 수 있는 기회 확보는 여전히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것을 확보하는 데에도 물리적 시간은 물론, 전략적 정책과 전개가 병행되어야 하는데, 그에 따른 경제적 비용 또한 적잖게 요구되는 등 여러 가지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환경에서는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유럽권역 문학이 영미권으로 진출하여 번역·출판되는 것도 쉽지 않은 글로벌 출판환경에서, 소프트파워 경쟁력이 약한 언어권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작품이 영어로 번역되어 영미·유럽권역에서 번역·출간되기는 더욱 어렵다. 그런데 인공지능 번역기의 등장으로 오랜 세월 구조적으로 고착화 된 상식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번역출판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공지능 역할이 창작 및 제작영역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맥락에서 발생한 참고할만한 사건의 예가 있다. ‘미국작가조합(Writers Guild of America. WGA)’은 2023년 5월 이후 수 개월간에 걸쳐 노사 협상 조건 중 작품 제작을 하는 데 있어 인공지능의 도입을 중단하고 조합소속 작가가 창작한 것을 인공지능이 학습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만큼 창작영역에서도 인공지능의 역할과 그것이 가져올 수 있는 기존 질서 변화에 창작자들이 자신의 영역에 대한 사전 방어와 보호를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세계 출판시장에서 문학번역·출간에 어떤 유용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어떤 한계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접근으로, 시와 소설 등의 문학작품을 여러 인공지능 번역기를 통해 번역하고 거기서 나온 결과물을 통해 해당 이슈를 탐색하고자 한다. 이에 앞서 지난 2004년부터 2023년까지 영어로 번역되어 출간된 한국 문학작품으로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우선 간단히 기술하고, 그것이 활성화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됐는지, 그리고 번역자와 번역작업 시간 등, 제반의 번역 문제와 어떤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는지를 함께 살피고자 한다.
III. AI 번역기를 통한 번역작업 모델 분석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의 영어번역판권이 2005년 미국 출판사에 팔리고, 그로부터 2년 후인 2007년 현지에서 한영 번역가인 김지영의 번역을 통해 출간되었다.그때까지만 해도 한국문학을 영어로 번역하는 역자가 많지 않았다. 특히 한국문학번역원이나대산문화재단 등의 정책적 재정적 예산지원을 통해서가 아닌 출판산업 현장에서 활동하는에이전트나 출판사 저작권 담당자들과 함께 협업하며 해외 출판사와 소통하는 번역자는 더욱 적었다. 출판저작권 에이전트 입장에서 보더라도 해외에 소개하고자 하는 작가와 작품이있어도 함께 협력할 훌륭한 역량을 지닌 번역자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았던 시기였다.
이런 출판시장 환경에서 해외에 소개하고자 하는 작가와 예술적·산업적 경쟁력 있는 그들의 다양한 작품을 발굴했다 하더라도 불충분한 번역자 풀로 인해 불가피하게 더 소요되는 물리적 시간과 더불어 영문자료를 매번 준비하는 데 들어가는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하곤 했다. 실례로, 번역자 김지영은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번역한 후, 조경란의 『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 그리고 이정명의 『별을 스치는 바람』 등의 작품에 대한 역자로 작업을 이어갔다. 그만큼 역량 있는, 그리고 출판시장에서 활동하는 번역자가 많지 않았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김지영 이후 소라 김 러셀(Sora Kim-Russell), 데버러 스미스(Deborah Smith), 안톤 허(Anton Hur) 등, 다른 번역가들이 등장하여 그 영역을 넓혀갔다.
번역자는 단순히 정해진 작품 텍스트를 번역하기에 앞서 에이전트(literary agent)나 국내외 출판사 편집자들과의 소통은 물론 필요에 따라서는 저자와 소통하며 작품에 대한 영문 시놉시스와 샘플번역 작업을 진행한다. 해외에 특정 작품을 소개하기 전에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자료들이다. 한국문학 작품에 대한 판권계약을 담당하는 영미·유럽권역 편집자나 저작권담당자가 한국 문학작품에 대한 본격적인 본문 검토를 직접 하거나, 혹은 외부의 특정 인물에게 의뢰하기 전 해당 작품이 어떤 작품이고 작가는 누구인지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바로 그 영문 시놉시스와 샘플번역을 통해서 확보한다. 해당 작품에 대한 영어판권 계약 여부에 대한 판단 근거 50%는 바로 그 자료에서 판가름 난다. 따라서 해외에 특정 작품을 소개할 때 영문 시놉시스와 샘플번역은 유려한 영어를 바탕으로 원작의 목소리를 잘 담아내야 한다. 해당 언어로의 문장이나 표현이 검토자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다음 단계 진행은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영문번역작업을 하는 번역자의 역할은 중요하다. 이런 환경에서 인공지능 역할이 한국문학 해외 번역·출판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탐색은 유효하다.
실제로, 구글(Google), 파파고(papago), 그리고 챗GPT(ChatGPT), 등 다양한 번역기들은 외국어로 소통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준다. 영어 등 외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일부 작가들은 해외 에이전트(literary agent)나 편집자들과의 소통 시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번역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 연구자도 일본의 한 출판사 편집자와의 소통 시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은 바 있다. 연구자는 영어로, 일본 편집자는 일본어로, 각각 다른 언어로 메일을 주고받는데 전혀 소통에 문제가 없었다. 일본으로부터 받은 일본어 메일 텍스트를 한국어와 영어로 전환시켜 상대가 전해온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타이완의 한 출판사 편집자는 자사의 책 내용 소개 시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영어로 소개문을 작성했다는 말과 함께 자료를 보내왔다. 타이완 도서의 본문 텍스트를 읽지 않은 상황에서 해당 도서의 내용, 주제, 그리고 세일즈 포인트 등에 대한 내용들이 영어로 잘 정리돼 있어 해당 도서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인공지능과의 협업이 목적한 비즈니스를 수행하는 데 분명한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례이다.
김영하, 조경란, 신경숙, 공지영 등의 문학이 영어로 번역·출간된 2010년을 전후로 점차 유능한 번역자 풀이 확대되면서 해외 진출을 위한 자료 확보 시간이 우선 단축되는 상황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번역자에게 의뢰하여 영문자료 확보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은 절감되지 않고 있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번역자 수가 늘면서 번역자료 확보를 위한 접근성과 시간 절감에는 긍정적인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자료 확보를 위한 비용 절감에 대한 혜택의 확대는 여전히 역부족인 상황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공지능 활용이 잘 조화를 이룬다면 유효한 성과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것이 번역출판 시장에서 인공지능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산업적 유용성 중 하나이다.
인공지능 번역시스템을 활용한 초벌 번역 진행 후 그 작업 결과물을 가지고 인력을 통한 윤문과 편집과정을 거치게 될 경우 해당 번역작업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는 경험이 최근 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 기계번역 시스템상 번역을 위한 양질의 데이터가 끊임없이 업데이트되면 될수록 학습된 번역시스템은 더욱 진화된 양질의 번역작업을 하게 되므로 이 부분에 대한 전망은 더욱 밝다.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기계번역 시스템 환경에서 번역자는 물론, 한국문학 해외수출을 진행하는 저작권 에이전트나 출판사 저작권담당자가 인공지능 번역시스템을 협업 도구로 잘 활용한다면 유용한 결과물과 함께 긍정적인 성과를 도출해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인공지능이 수행하는 영문 샘플번역이 어느 정도로 유효한지, 그리고 거기에는 어떤 한계가 있는지를 인공지능 번역기 번역 예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다음은 한강의 『채식주의자』 한국어판 원문 시작 부분이다.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끌리지도 않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단발머리. 각질이 일어난 노르스름한 피부, 외꺼풀 눈에 약간 튀어나온 광대뼈, 개성 있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한 무채색의 옷차림.
다음은 『채식주의자』 한국어판 원문에 대한 번역자 데버러 스미스(Deborah Smith)가 작업한 영어 번역문이다.
Before my wife turned vegetarian, I’d always thought of her as completely unremarkable in every way. To be frank, the first time I met her I wasn’t even attracted to her. Middling height; bobbed hair neither long nor short; jaundiced, sickly-looking skin; somewhat prominent cheek bones; her timid, sallow aspect told meall I needed to know.
번역자는 “채식을 시작하기”를 “turned vegetarian”으로 작업했다. 해당 장면, 혹은 작품 전반을 이해한 상황에서 ‘채식주의자로의 전환 내지는 변화’를 분명히 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은 “Middling”으로 간단히 작업했다. ‘목표 텍스트(target text)’가 간결하고 명료하게 표현되어 읽는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데에는 분명한 효과가 있겠으나 저자의 ‘원천 텍스트(source text)’를 그대로 전달하지 않고 있는 면에 있어서는 ‘의도된 한계’를 보인다. “각질이 일어난 노르스름한 피부”는 “jaundiced, sickly-looking skin”으로 번역됐다. 목표 텍스트로 작업된 영문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면 “황달이 있고 병색이 있어 보이는 피부”란 의미로도 읽힐 수 있다. 원문에 있는 “외꺼풀”과 “개성 있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무채색의 옷차림”에 대한 번역도 사실상 생략되었다. 그러면서 원천 텍스트에는 없는 표현이 묘사되었는데, 바로 “…told me all I needed to know”이다. ‘내가 알 필요가 있는 모든’이란 의미가 추가되어 인간 번역자의 역할이 발휘되었다. 이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저자의 원천 텍스트에 없는 표현이 번역자에 의해 추가되거나, 원천 텍스트의 일부가 빠지거나, 혹은 간단한 표현이나 묘사로 대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공지능 번역이 할 수 없는 대목인 동시에, 인간 번역자의 작업이기에 의도된 상황에서 원천 텍스트에 대한 그대로의 번역을 수행하지 않고 있다는 한계나 논란을 이끌어 낼 수도 있는 상황이다. ‘번역가의 과제’에 대해 벤야민은“우리의 번역가들은 외국작품의 정신보다는 그들 자신의 언어의 사용에 대해 보다 큰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 번역자의 기본적 오류는, 자신의 언어가 외국어를 통해 강력하게 영향을 받도록 하는 대신에 자신의 언어가 처하고 있는 상태를 고수하고 있다는 데 있다.”번역이 지닌 딜레마 중 하나로, 목표어가 현지 독자들에게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작업해야 하는 가치와 더불어 원천 텍스트 창작자의 목소리를 잘 유지해야 하는 가치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아이러니하게도 인공지능 번역 협력의 유용성은 이런 상황에서도 소환된다. 다음은 인공지능 번역기가 작업한 목표 텍스트의 예다.
영문 번역텍스트/ ChatGPT
Until my wife started practicing vegetarianism, I had never thought of her as a special person. To be honest, when I first met her, I wasn't attracted to her at all. She was of average height, with neither long nor short hair. Her skin was somewhat sallow with occasional blemishes, and her prominent cheekbones slightly stood out beneath her nondescript clothing that seemed almost afraid of looking unique.
“채식을 시작하기”가 ‘채식주의를 실행하기 시작’이란 의미로 작업되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은 ‘average’로 작업되었고 번역자 데버러 스미스는 ‘middling’으로 작업했다. “각질이 일어난 노르스름한 피부”에 대한 번역작업은 인간 번역자의 경우와 달리, ‘Her skin was some what sallow with occasional blemishes’로 작업되었다. ‘혈색이 좋지 않다는’ 표현으로 “노르스름한”은 “sallow”로 작업 되었고, “각질이 일어난”은 “blemishes”로 표현됐다. 그리고인간 번역자 데버러 스미스가 생략한 “개성있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한 무채색의 옷차림”은 “her nondescript clothing that seemed almost afraid of looking unique”로 무난히작업 되었다. 그리고 “외꺼풀 눈”에 대한 번역작업은 생략됐다. 이 표현에 대한 데이터가 본인공지능 번역기에 아직 학습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영문 번역텍스트/ Google
Until my wife started becoming a vegetarian, I never thought she was a special person.To be honest, I wasn't even attracted to my wife when I first met her. A height that is neither too big nor too short. Short hair that is neither long nor short. Yellowish, flaky skin, single-lidded eyes, slightly protruding cheekbones, and neutral-colored clothes that seem to be afraid of appearing unique
구글번역기를 통해 확보된 목표 텍스트는 챗GPT와는 다른 작업물을 내놓았다. 우선, 원천 텍스트가 누락되지 않고 그대로 반영되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이 인간 번역자가 작업한 “middling”, 챗GPT의 “average”가 아닌, “neither too big nor too short”로 작업되었다. 그러나 사람의 ‘키’가 크다는 표현으로 ‘big’이란 단어를 썼는데, ‘tall’이란 표현이었으면 더 나았을 것이란 아쉬움은 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단발머리”는 “Short hair that is neither long nor short”로 작업 되었고, “각질이 일어난 노르스름한 피부”는 “Yellowish, flaky skin”으로, “외꺼풀 눈”은 “single-lidded eyes”로 일단 누락되지 않고 작업 되었고, “개성있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한 무채색의 옷차림”도 “neutral-colored clothes that seem to beafraid of appearing unique”로 작업 되었다.
영문 번역텍스트/ papago
I never thought she was special until my wife started eating vegetarian. To be honest, I wasn't even attracted when I first met my wife. not too tall or too small. a short hair that is neither long nor short. Yellowish skin with dead skin, cheekbones sticking out slightly from the eyes of the single eyelid, and achromatic clothing that seems to be afraid of looking unique.
파파고가 수행한 작업은 인간 번역자, 챗GPT, 그리고 구글이 한 것과는 또 다른 결과물을 냈다. 우선 문장 구성에서, 다른 작업 결과물들은 모두 원천 텍스트와 같이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부분에 대한 목표 텍스트가 문장 맨 앞에 나왔는데, 여기서는 해당 문장의주어인 “나는”을 문장 맨 앞으로 뺐다. 그리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not too tall or too small)”, “길지도 짧지도 않은 단발머리(a short hair that is neither long nor short)”, “각질이 일어난 노르스름한 피부(yellowish skin with dead skin)”, “외꺼풀 눈에 약간 튀어나온광대뼈(cheekbones sticking out slightly from the eyes of the single eyelid)”, “개성있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한 무채색의 옷차림(achromatic clothing that seems to be afraidof looking unique)”부분에서의 각 세부적인 표현에 대체어를 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빠짐없이 그대로 작업 결과물을 냈다. 상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번역기 중에서는 디테일한 부분까지 누락되는 내용 없이 충실히 작업을 수행하였다.
인간 번역자인 데버러 스미스가 원천 텍스트를 어떻게 영역 작업했는지를 살폈고, 이어 챗GPT, 구글, 그리고 파파고 등에 이르기까지 각각 번역된 목표 텍스트를 살피면서 각각의 결과물에서 장점과 한계를 동시에 살폈다. 번역기 간에도 각기 다른 결과물을 내고 있으며, 번역기에 따라 좀 더 원문에 어울리는 결과물을 보이는 있는 예도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각각의 번역기를 통한 작업 결과물에서 차이는 있지만 모두 한계점을 보였다. 따라서 인간이 인공지능과 함께 앙상블을 이뤄 협업하게 될 경우 더 나은 결과물을 낼 수 있겠다는확인과 함께, 번역기가 여기서 더 나은 유효한 긍정적인 결과물을 내더라도 인간 번역자의역할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다.
다음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도입 부분이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오빠 집에 모여 있던 너의 가족들은 궁리 끝에 전단지를 만들어 엄마를 잃어버린 장소 근처에 돌리기로 하였다. 일단 전단지 초안을 짜보기로 했다. 옛날 방식이다. 가족을 잃어버렸는데, 그것도 엄마를 잃어버렸는데, 남은 가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몇가지 되지 않았다.
다음은 『엄마를 부탁해』 한국어판 원문에 대한 인간 번역자 김지영(Chi-young Kim)이작업한 영어 번역문이다.
IT’S BEEN ONE WEEK SINCE Mother went missing.
The family is gathered at your eldest brother Hyong-chol’s house, bouncing ideas offeach other. You decide to make flyers and hand them out where Mother was last seen.The first thing to do, everyone agrees, is to draft a flyer. Of course, a flyer is an old-fashioned response to a crisis like this. But there are few things a missing person’s family can do, and the missing person is none other than your mother.
번역자 김지영은 문장을 나누고, 필요할 경우, 원문에는 없지만 일정 단어나 구를 추가하며 독자가 행간을 읽어가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상기 인용된 한국어판 원작에 없는 표현(단어)이 김지영이 번역한 영문본에는 들어가 있다. “오빠 집”이 영역문에서는 “eldest brother Hyong-chol’s house”로 표현됐다. ‘eldest’를 통해 ‘형철’이 ‘큰오빠’라는 정보가 원문과는 달리 이 지점에서 공유되었다. 영어본을 읽는 독자들을 위한 차원에서 원문이 지니고있는 것에 약간의 설명과도 같은 추가 표현을 통해 좀 더 구체적이며 생동감 있는 정보를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인간만이 시도할 할 수 있는 작업이며, 인공지능 번역기가 인간이 작업한 결과물을 따라잡을 수 없는 지점이다.
영문 번역텍스트/ ChatGPT
It has been a week since we lost Mom.
Your family, gathered at your brother's house, decided to create flyers after much deliberation and place them near the location where Mom was lost. They decided to start by drafting the flyer. It's an old-fashioned approach. Losing a family member,especially Mom, doesn't leave you with many options
원문 기준으로 볼 때, ‘너의’와 ‘오빠 집’은 이상 없이 제대로 작업되었다. 그러나 ‘엄마를 잃어버린 장소 근처에 돌리기로 하였다’는 부분에 대한 번역에서 ‘돌리기로’에 해당하는 영어로 ‘place’를 쓰고 있는데, 이 부분에 있어서는 한계를 보인다.
영문 번역텍스트/ Google
It's been a week since I lost my mom.
After some deliberation, your family gathered at your brother's house decided to make flyers and hand them out near the place where you lost your mother. First, I decided to draft a flyer. It's the old way. I lost my family, especially my mother, and there was little the remaining family could do.
챗GPT에서 한계를 보인 ‘돌리기로 하였다’를 구글번역기는 ‘hand them out’으로 작업하였다. 원문은 물론 번역자 김지영이 작업한 것에 가까운 긍정적 결과물을 내고 있다. 그러나 상기 인용문에서 밑줄로 강조했듯이 마지막 문장에서는 원문과 달리 번역기의 자의적인 선택에 따라 주어와 대명사를 ‘I’와 ‘my’로 쓰는 한계를 드러냈다.
영문 번역텍스트/ papago
It's been a week since I lost my mother.
Your family, who were gathered at your brother's house, decided to make a flyer after thinking about it and send it near the lost place. I decided to draft a flyer first. It's the old way. I lost my family, and I lost my mother, but there was only a few things that the rest of the family could do.
파파고 번역에서는 두 부분에서 결정적인 한계를 보인다. 밑줄 친 부분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돌리기로’는 ‘send’로 작업했고, 두 번째 줄부터 주어와 대명사를 ‘I’와 ‘my’로 작업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상기 각 인공지능을 통한 영문번역 결과물을 보면, 한글 원문의 내용과 문맥은 일정부분 살리고는 있다. 그러나 ‘너’를 비롯해 원문에서 명시되지 않은 대명사를 원문 맥락에 맞게 작업하는 데에는 실패 예를 보였다. 인공지능 번역이 작품 내용에 대한 대략적인 내용과 맥락이해에는 도움이 되지만, 저자의 목소리나 섬세한 표현이나 이미지가 담긴 어휘를 살리는 데 있어서는 여전히 인공지능이 인간의 번역을 대체하기에는 이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공지능이 일차적으로 주어진 텍스트를 번역하고, 작업된 번역텍스트를 인간 번역자가 인간 정서에 어울리고 각 언어에 내포된 섬세한 표현이 어우러진다면 결과물의 질은 높아질 것이다.
이번엔 박주택 시인의 시집 『시간의 동공』(문학과지성사)에 수록된 표제 시 「시간의동공」 일부에 대한 번역자의 영역과 인공지능 번역기가 작업한 것을 살피고자 한다. 다음은 「시간의 동공」으로부터 인용된 원문 텍스트이다.
이제 남은 것들은 자신으로 돌아가고
돌아가지 못하는 것들만 바다를 그리워한다.
백사장을 뛰어가는 흰말 한 마리
아주 먼 곳으로부터 걸어온 별들이 그 위를 비추면
창백한 호흡을 멈춘 새들만이 나뭇가지에서 날개를 쉰다
(하략)
다음은 인간 번역자 홍은택의 영어 번역문이다.
Now remaining things return to themselves
And only things that could not go back miss the sea
A white horse running across the white sands
When stars which walked from far away shine on it
Only pale and breathtaking birds rest their wings on branches
상기 인용된 박주택 시인의 시 원문 텍스트에 대한 인공지능 번역기를 통한 영문번역 작업 결과물들은 다음과 같다.
영문 번역텍스트/ ChatGPT
Now, what remains returns to itself,
Only those unable to return long for the sea.
A white horse runs across the white beach,
When stars from very distant places shine upon it,
Only the birds with pale breaths take rest on the branches.
“남은 것들은”이 ‘what remains(남은 것)’으로 단수로 전환되어 번역되었다. 그에 따라 번역자가 작업한 ‘themselves’가 여기서는 ‘itself’를 결과물로 냈다. “돌아가지 못하는 것들”은 ‘those unable to return’으로 작업했다. 첫 행과 달리 두 번째 행에서는 주어가 원문과 같이복수로 해석되었다. “백사장”은 번역자가 작업한 “the white sands”와는 달리 ‘the whitebeach’로 수행하였다. 그리고 “창백한 호흡을 멈춘”을 인간 번역자는 “pale andbreathtaking”으로 작업했고, 챗GPT는 “with pale breaths”로 작업했다. ‘…을 멈춘’의 의미를 살리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원천 텍스트와는 의미상 차이의 한계를 드러냈다. 그 이외는동원된 어휘와 어순에 차이가 있을 뿐 원천 텍스트에 대한 작업은 무난하게 수행되었다.
영문 번역텍스트/ Google
Now everything that's left returns to itself
Only things that cannot return miss the sea.
A white horse running across the white sand beach
When stars from very far away shine on it,
Only the pale, breathing birds rest their wings on the branches.
전체적으로 원천 텍스트에 대한 번역작업을 무난하게 수행했다. 다만, 여기서도 챗GPT의 경우처럼, “창백한 호흡을 멈춘”을 ‘the pale, breathing’으로 작업함으로써 원천 텍스트상의“멈춘”의 의미를 살리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영문 번역텍스트/ papago
The rest of you should go back to yourself
Only things that can't go back miss the sea.
a white horse running on the beach
When stars from far away shine on it
Only birds that have stopped breathing pale rest their wings on the branches.
파파고에서는 두 행에서 챗GPT와 구글과는 다른 번역을 수행했다. “이제 남은 것들은 자신으로 돌아가고”를 ‘The rest of you should go back to yourself’로 옮겼다. ‘you’와‘yourself’로 번역 수행된 것은 원천 텍스트와도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마지막 행에서“창백한 호흡을 멈춘”이 여기서는 ‘that have stopped breathing pale’로 작업했다. 직역하면, ‘창백한 숨을 멈춘’으로, 앞선 두 번역기와는 다른 선택을 통한 번역을 수행했다.
인공지능 번역기가 작업한 영문 텍스트를 인간 번역가가 작업한 것과 비교해볼 때 각각 한계를 보이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구글과 파파고가 작업한 영문이 가장 원천 텍스트를 잘 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초 시인이 쓴 시의 의미와 정서를 가장 잘 살리고 있는 것에 대한 판단과 선택은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분명한 것은 시작품에 대해 인공지능의 번역 결과물은 아직 만족스럽지 못하고, 시어가 기본적으로 지닌 단어와 문장의 의미를 전달하는 정도에 그쳤고, 작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동원된 단어도 아직은 만족할 상황이 아니라는 결과를 냈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시 번역을 단독 수행하는 것은 소설번역에서와 마찬가지로 현상황에서는 불가하나, 그것을 통해 초역된 원고를 전문 번역자 검토를 거쳐 나온 최종 원고를 관심 가질 만한 해외 출판사 편집자에게 추천·소개하는 자료로서는 활용 가치가 있겠다는 의견이다.
IV. 결 론
본 연구는 인공지능을 통한 문학번역의 예술적·문법적 문장 완성도 수행 탐색에 초점을 두지 않은 것에 한계를 두었고, 인공지능을 통한 문학번역이 글로벌 출판시장에서 현재 어떤 역할을 하고 있으며 작가와 출판인들에게 향후 어떤 비전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부분을 그것이 지닌 유용성 면에서 탐구하였다.
한강의 『채식주의자』,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그리고 박주택의 시 「시간의 동공」 각각의 일부 텍스트를 견본으로 취하고, 그에 대한 번역 작업명령을 복수의 인공지능에 내리고 거기서 나온 각각의 작업 결과물을 인간 번역자가 수행한 번역문과의 상호 비교를 통해 인공지능 번역의 유용성과 함께 거기에 나타난 한계를 동시에 확인하였다.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은 물론 인간 번역자와 관련분야 전문가가 향후, 함께 공동으로 수행하거나 보완해야 할 부분이 어떤 것인지를 본 연구를 통해 확인하였다.
인공지능의 번역기능과 그를 통한 작업은 세계출판시장의 중심인 영미권으로의 진출은 물론, 번역·출판의 언어 권역 확대를 위한 산업적 유용성이 있음을 살필 수 있었다. 그 유용함은 특정 작가의 작품에 대한 문체나 그의 작품이 지닌 고유 목소리를 해당 작품이 완역되기 전 일부 샘플번역이 해외 검토자에게 사전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그러나 인공지능이 작업한 샘플번역 원고에서는 각각의 원천 텍스트나 세부적이고 섬세한 정서가 데이터화 되지 않거나 학습되지 않은 환경인 까닭에 작업 오류와 오역이 있었으며, 원천 텍스트가 의미하는 것과 다른 결과를 내고 있기도 하므로, 반드시 인간이 공동 작업파트너로서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 연구에서 다루지 못한 한계 중 하나는 도서 소개자료에 대한 인간의 번역과 인공지능 번역 결과물에 대한 비교와 유용성 탐구이다. 이 논제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추가 연구를 진행하겠다는 약속을 이 지점에서 밝힌다.
인공지능은 이미 번역과 출판 영역에서 인간과 함께 하는 동반자가 되었다. 특히, 비영어권 출판시장에서 일하는 저작권 수출입업무 담당자나 에이전트 등 현장 실무자들은 일상에서 원하는 외국어로 각자 보유하고 있는 작품에 대한 샘플번역은 물론 그에 대한 소개자료를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작성하는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적 가치를 앞세워 인공지능과 거리를 두는 것은 시대 흐름 상 조화롭지 않다는 의견이다. 2023년 2월 8일자 『문화일보』 기사는 충격과 함께 분명한 논란과 사유의 기회를 모두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 기사는 “40대 日주부, 2022년 신인상/ ‘파파고’로 인기웹툰 초벌번역/ 어색한 표현 등 고친 뒤 공모/ 전문가 “기술발전 못따라가는 인간 시스템의 한계 노출시켜””라는 헤드카피와 함께 “국어를 전혀 못하는 일본인이 인공지능(AI) 번역기의 도움으로 국내 권위의 문학상을 받는 이변이 벌어졌다.”는 내용으로 해당 기사는 글을 이어갔다. 본 기사의 주인공이 행한 작업시도와 더불어, 그와 관련한 박동미 기자의 인터뷰 내용은 인공지능과 그 역할에 대한 분명한 사유공간으로 의미가 있어 공유하고자 한다. 과학기술 연구자 임소연 동아대 교수는 “포스트 에디팅뿐 아니라 전 영역에 걸쳐 기계와의 협업은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이라고 했다. 기술문화 연구자 오영진은 “번역가들이 도구를 활용하는 것을 막을 수 없으며, 막을 이유도 없다”면서 “이제 개개인의 ‘외국어 능력’을 재정의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했다.
핀란드의 테로 오얀페레(Tero Ojanperä)와 티모 부오리(Timo O. Vuori)는 『플랫폼전략(PLATFORM STRATEGY: Transform your business with AI, platforms and human intelligence,)』에서 AI는 우리가 평생 분석할 수 없는 수많은 데이터를 단 몇 초 안에 분석해낼 수 있다고 말하면서, 사전에 결정된 기준에 따라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옵션을 추천하고, 인간은 그 추천된 것들 중에서 선택을 하게 되면서 통제력을 유지하고 AI와 함께 작업하는 것을 즐길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들의 말은 결국 인공지능 환경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이들에게 그것이 이미 상용화되었으며, 그 유용성 또한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핀란드의 상기 두 전문가의 언급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인간은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데이터와 작업 결과물을, 그러나 데이터화 되지 않거나 학습화되지 않아 드러내는 한계 부분에 대해서는 ‘인간지능(human intelligence)’을 통해 보다 나은 버전으로 보완하거나 완성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끝으로,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실제로 사고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강인공지능 환경으로 진화되면 더 많은, 그리고 더 큰 논란의 이슈들이 생겨날 것이며, 특히 인간과 AI가 협업하여 창작한 하나의 작품에 대한 저작권 소유 문제와 그에 따른 산업적 윤리 문제가 숙제로 대두될 것이다. 이는 인공지능을 통한 번역·출판시장에서도 나타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갈등과 대립을 최소화하고 ‘앙상블의 미’ 구축을 위한 신속한 법적 기준 마련과 함께 이와 관련한 지속적인 교육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